당신이 잠을 자는 동안

고전 예술 작품을 통해 들여다본 달라진 잠의 의미

고전 예술 작품을 통해 들여다본 달라진 잠의 의미
고전에서 표현된 잠은 죽음과 두려움을 의미하기도 하고 여성의 신분 상승 계기도 되었지만 현대 작품 속에서 들여다본 잠은 위안과 가장 사적인 시간으로 의미가 달라졌다. 나날이 그 중요성이 짙어지고 있는 잠은 과거와 현재 작품에서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존 윌리엄 워터 하우스 ‘금상자를 여는 프시케’ 1904. ©Wikimedia
 
고야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 1799, 판화(에칭), 21.5×15cm. ©Wikimedia
  고전 명화에서 잠자는 순간은 의외로 자주 등장한다. 잠은 문제의 실마리를 풀고 이야기의 전개를 뒤바꾸는 계기가 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잠과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먼저 아르고스 이야기다. 제우스가 아름다운 여인 이오와 만나는 것을 헤라에게 딱 들키려는 순간, 제우스는 이오를 암소로 바꿔버리고 시치미를 뗀다. 모든상황을알고있는헤라는암소를선물로줄것을요청하고,눈이100개달린 아르고스에게 암소가 절대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시하게 한다. 제우스는 꾀쟁이 헤르메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헤르메스는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여 아르고스를 잠들게한다.하나씩스르륵감겨드디어모든눈이감긴채깊은잠에빠져들었을때, 헤르메스는 아르고스를 죽이고 이오를 탈출시키고, 돌아온 헤라는 죽은 아르고스를 불쌍히 여겨 그의 몸에 있던 100개의 눈을 뽑아 자신이 기르던 공작새에게 붙여준다. 공작새의 몸에 있는 수많은 화려한 동그란 무늬가 바로 아르고스의 눈인 것이다. 이처럼잠자는시간동안통제할수없는일이닥칠수도있다는두려움은그리스 신화의 원형이다. 신화에서 잠의 신 히프노스는 죽음의 신 타나토스와 형제간이다. 즉 그리스 사람들은 잠을 죽음에 가깝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차피 죽으면 계속 잘 텐데’라는 생각은 이토록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전래동화에도 결국 토끼가 잠에 드는 바람에 느리지만 부지런한 거북이한테 지는 것을 보면 잠이 들면 위험이 닥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어수선한 세상을 지배했을 것이다. ‘이성이 잠들면 악마가 깨어난다’는 고야의 드로잉은 통제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그림이다. 그렇다면 잠이 긍정적으로 묘사된 스토리는 없을까.  
 
윌리엄 아돌프 부게로 ‘프시케와 큐피트’ 1895, 209×120cm. ©Wikimedia
  이번에는 잠이 들어 애인을 놓친 아리아드네 공주의 반전 스토리다. 크레타 섬의 공주 아리아드네는 적국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를 돕기 위해 아무도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미로에 들어갈 때 문설주에 실을 묶고 들어가라는 비책을 알려준다. 테세우스는 미로의 한가운데 살고 있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치고 실을 따라 되돌아 나오는 데 성공하고, 뇌물로 바쳐질 뻔했던 고국 사람들을 이끌고 탈출한다. 적국의 왕자를 도운 아리아드네도 테세우스를 따라 길을 나선다. 아테네로 돌아가는 먼 길, 배는 잠시 낙소스 섬에 머무르고, 긴장이 풀린 아리아드네는 깊은 잠에 빠진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 안타깝게도 테세우스 일행은 이미 떠나버린 후였다. 배신한 고국으로 되돌아갈 수도, 자신을 버리고 떠난 왕자를 찾아 가는 것도 아닌 그 섬을 벗어날 배한 척 조차 없는 처지가 된 아리아드네. 그런데 그녀 앞에 섬의 주인 디오니소스가 나타난다. 디오니소스는 마녀 키르케로부터 도망쳐 나오는 길이라 낯선 여인이 자신의 섬에 와있는 것을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고, 깊은 절망감에 빠져있던 아리아드네는 디오니소스가 혹시 자신을 데리러 온 저승사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눈이 마주치는 순간 다행히도(?) 둘은 서로한테 반하고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진다. 또 다른 유명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프시케다. 에로스의 아내였던 프시케는 남편을 의심한 죄로 버려지고, 다시 남편을 되찾기 위해 험난한 네 단계의 관문을 통과하게 된다. 지옥에 가서 페르세포네의 아름다움의 비결이 담긴 화장품을 받아오라는 마지막 관문마저 성공한 그녀는 이제 남편과 재회할 순간만을 앞두고 있다. 헌데 그 화장품이 무엇일지 너무 궁금한 나머지 살짝 열어본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바로 그 속에 담긴 ‘깊은 잠’이 그녀를 감싸버린 것이다. 결국 아름다움의 비결은 깊은 잠이었던 것일까. 다행히 이 모든 과정을 보고 있던 남편 에로스가 안타까이 여겨 잠든 프시케를 깨워 하늘로 올라가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는 해피엔딩이다.  
우발도 간돌피 ‘아르고스를 참수하려는 헤르메스’ 1770~75, 218.8×136.8cm. ©Wikimedia
 
피터 폴 루벤스 ‘헤르메스와 아르고스’ 1636~38, 179×297cm. ©Wikimedia
  마치 어린아이가 잠들기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잠’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시대, 예술 작품에서의 잠은 깨어있지 못하고, 따라서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이 가장 약해지는 순간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성을 중요시하는 시대의 산물이다. 반면, 잠들어 버림으로써 도리어 왕자들의 구원을 받는다는 공주들의 이야기는 잠의 긍정적 측면이라기보다는 여성에게 수동적인 이미지를 부여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잠에 대한 이미지는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잠은 돌연 그 신분이 달라지게 되었다. 꿈과 상상, 무의식의 세계가 발견되면서 잠은 깨어 있는 시간 못지않게 중요해진 것이다. 지금은 건강한 낮을 위해 푹 자는 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 예술에서의 흐름도 자연히 변화했다. 현대미술가의 작품 속에서 잠은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 잘 잠들 수 있도록 위안을 주는 시간으로 나타난다. 트레이시 에민의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 1963~1995’(1995)이 대표적이다.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아름다운 여성 작가의 작품에 대해 사람들은‘잔다’라는 말이 가진 성적인 뉘앙스를 떠올렸을 테지만, 1963~1995라는 설명에서처럼 그녀와 함께 잔 사람들은 어머니, 할머니, 어린 시절의 소꿉친구에서부터 남자친구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방대하다. 함께 잠을 잘 정도로 가까운 관계를 형성했던 102명을 소환하며 그들의 이름을 자수로 새겨 넣은 작품은 지금의 내가 이들과의 관계 덕분에 만들어진 것임을 깨닫게 만든다. 잠자는 시간이 죽음에 가까운 것이라면,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것은 부활이고 성장인 것이다. 애인과 함께 잔 행복한 순간의 기억을 도심 한복판에 광고처럼 내걸며 유명해진 작가도 있다. 바로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무제’(1991)라는 작품이다.  
피터 폴 루벤스 ‘헤라와 아르고스’ 1610, 249×296cm. ©Wikimedia
마치 침구 회사의 광고 사진인가 싶게 거대한 화면에는 두 사람이 이제 막 잠에서 일어난 듯 베개 머리 부분이 푹 꺼져 있고 이불은 흐트러져 있다. 에이즈로 1996년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토레스의 작품은 대개 자전적이다. 그의 연인 로스가 먼저 세상을 떠난 경험을 표현하고자 미술관 한구석에 애인의 몸무게와 똑같은 사탕더미를 쌓아놓고 관객들로 하여금 가져가도록 한 것이 대표적이다. 사진 작품 속 침대에 함께 누웠을 두 사람도 아마토레스와 로스일것이다. 작가는 이 사진도 포스터처럼 인쇄하여 미술관에 쌓아놓고 관객들이 하나씩 가져갈 수 있게 했다. 이 작품에서도 느껴지듯이 오늘날 잠은 재생, 행복 그리고 가장 사적인 영역에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인테리어도 이러한 인식 전환에 맞게 바뀌고 있다. 예전에 침실이란 옷장과 화장대와 침대가 함께 있는 안방 같은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집에서 가장 작은 방을 침실로 삼아 아무것도 두지 않고 침대만 넣어 방해받지 않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트렌드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한 가지, 여전히 ‘미라클 모닝’ 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왜 잠에서 깨는 시간조차 대세를 따라야 하는지 안타까움이 앞선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외쳤던 데카르트도 스웨덴 여왕의 초청을 받아 그녀의 리듬에 맞춰 새벽 강의를 하다 감기에 걸려 53세의 이른 나이에 사망했다. 부디 잠을 양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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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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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에서 만나는 가리모쿠60

디앤디파트먼트가 선보이는 가리모쿠60의 특별 기획전 'KARIMOKU60 FAIR'

디앤디파트먼트가 선보이는 가리모쿠60의 특별 기획전 'KARIMOKU60 FAIR'
디앤디파트먼트 서울이 가구 브랜드 가리모쿠60을 소개하는 특별한 기획전 [KARIMOKU60 FAIR]를 마련했다. 가리모쿠60은 일본의 최대 목제 가구 회사 가리모쿠의 수많은 가구 가운데 1960년대 출시된 제품 중 규격적인 아이템만 모아 재편한 브랜드다.

  디앤디파트먼트 서울이 가구 브랜드 가리모쿠60을 소개하는 특별한 기획전 <KARIMOKU60 FAIR>를 마련했다. 가리모쿠60은 일본의 최대 목제 가구 회사 가리모쿠의 수많은 가구 가운데 1960년대 출시된 제품 중 규격적인 아이템만 모아 재편한 브랜드다. 특히 이번 전시는 디앤디파트먼트의 창립자 나가오카 겐메이가 설립한 60 비전 프로젝트의 시발점이 된 브랜드를 조명해 더욱 뜻깊다. 브랜드의 출발 계기와 목재 특유의 포근함과 클래식함이 특징인 가리모쿠60의 역사도 함께 소개한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가리모쿠60 가구를 제작할 수 있도록 원하는 패턴 오더 패브릭을 제안하는 기획도 진행하고 있으니 참고할 것. 전시는 9월 26일까지.

tel 02-795-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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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여름 영화

새로운 여름 영화를 찾고 있다면 '그린 파파야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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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이었다면 해외에서 여름을 만끽하기 위해 하루하루 D-day를 세어가며 남은 시간을 버텨냈을 텐데, 도저히 그럴 수 없으니 대체할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비슷한 마음인지 인터넷에서건 유튜브에서건 여름을 소재로 한 영화 추천 리스트가 업로드되는 걸 종종 목격했다.

예년이었다면 해외에서 여름을 만끽하기 위해 하루하루 D-day를 세어가며 남은 시간을 버텨냈을 텐데, 도저히 그럴 수 없으니 대체할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비슷한 마음인지 인터넷에서건 유튜브에서건 여름을 소재로 한 영화 추천 리스트가 업로드되는 걸 종종 목격했다. 그러니 슬그머니 나도 직접 추천을 해보려고 한다. 트란 안 훙 감독의 1994년 작 <그린 파파야 향기 The Scent of Green Papaya>다. 열 살 남짓 된 소녀 무이는 어느 부잣집에 식모로 들어가게 된다. 성인이 될 무렵까지 이 집에서의 생활을 이어가던 무이지만, 가족을 수시로 등지는 남편의 빈번한 부재와 사망으로 가세가 기울어가면서 여주인은 무이를 큰 아들의 친구인 쿠옌에게 보내기로 결정한다. 함께 매일을 보내게 된 무이는 쿠옌의 옆을 조용히 맴돌며 남몰래 그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간다. <그린 파파야 향기>는 드라마틱한 기승전결을 보여주는 서사는 없지만,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는 캐릭터들이 그 허전함을 대신한다. 딸처럼 여기던 무이를 떠나보내며 조심스레 옷가지와 장신구를 건네던 여주인, 남편의 죽음에 허우적대던 여주인을 말없이 위로하는 그녀의 둘째 아들처럼 따뜻한 마음을 주고 받는 이들의 모습은 못내 성숙한 관계의 면면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를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트 필름이라는 착각이 들 만큼 미학적인 영상미다. 사계가 여름 같은 열대성 기후의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만큼, 독특한 패턴과 컬러를 내세운 이국적인 인테리어와 오브제, 수시로 보이는 파파야 같은 우거진 열대 식물과 과일, 균형 잡힌 환상적인 화면 비율을 자랑하는 미장센 등 눈을 즐겁게 하는 요소가 다수 포진해 있어 매 프레임마다 감상할 포인트가 무궁무진하다. 이를 증명하듯 그 해 당당히 칸 영화제 황금 촬영상을 거머쥐기도 한 만큼 새로운 여름 영화를 찾고 있다면 꼭 한 번쯤 감상해보길. 참, 중간 중간 보이는 배우들의 살짝 어색한 동작은 애교로 봐주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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