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가 머물렀던 ‘아를의 침실’을 그대로 재현한 방에서 하룻밤을 지낸다면 얼마나 멋질까? 그 상상이 실제로 이루어졌다.
반 고흐 미술관을 재현한 에어비앤비 방. 3 빈센트 반 고흐 ‘침실’ 1889, 캔버스에 오일, 72×90cm ©artinstituteofchicago
반 고흐라는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다는 사실은 최근의 미디어아트 쇼에서도 증명된 바 있다. 그의 작품을 디지털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임에도 사람들은 기꺼이 먼 길을 마다 않고 값비싼 입장료를 지불한다. 반 고흐 미술관과 재단이 있는 암스테르담과 아를르, 그의 묘소와 마지막으로 거처한 여인숙인 오베르 쉬르 우아즈뿐만 아니라 ‘감자 먹는 사람들’을 그린 네덜란드 뉘에렌과 그의 고향 준데르트 등 반 고흐의 흔적은 강력한 문화유산이다. 그런데 반 고흐가 가본 적도 없는 미국에 반 고흐가 머물렀던 방이 나타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바로 2016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전시를 열며 ‘아를의 침실’을 고스란히 재현한 것이다. 실제 반 고흐의 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앉아볼 수도 있고, 심지어 10달러에 하룻밤을 보낼 수도 있는 이 신박한 아이디어는 미술관과 에어비앤비가 협업한 프로젝트로 열자마자 3개월 치나 예약이 매진되었고 여러 광고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방은 미술관에 설치된 것이 아니고, 시카고 시내의 한 아파트를 개조해서 만들었다. 방 하나는 고흐의 침실로 꾸며졌으며, 나머지 공간은 주방, 욕실, TV가 있는 거실 등 일상 생활이 가능한 숙소이다.
빈센트 반 고흐 ‘침실’ 1889, 캔버스에 오일, 72×90cm ©Vartinstituteofchicago
빈센트 반 고흐 ‘노란 집’ 1888, 캔버스에 오일, 76×94cm ©Van Gogh Museum in Amsterdam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릴 때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벽은 옅은 보라색, 바닥은 빨간색 타일이며, 침대와 의자는 신선한 버터 옐로에, 시트와 베개는 매우 밝은 레몬 그린, 침대보는 스카렛 레드, 창은 녹색, 화장대는 주황색, 세면대는 파란색, 문은 라일락색’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색상의 생생한 느낌을 강조했다. 방은 각각의 색을 살려 고스란히 재현되었으며, 그림 같은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사물 위에 붓 터치를 더했는데, 관객들은 마치 만화 속에 주인공이 되어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림 속 풍경은 사실 남프랑스 아를, 반 고흐가 머물렀던 ‘노란 집’의 내부다. 고흐는 이 그림을 모두 3점 그렸고, 특별 전시를 위해 3개의 작품이 시카고 미술관에 모였다.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 있는 것이 오리지널 버전으로 아를에 도착한 후 자신의 방을 그린 것이고,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 있는 작품은 고갱과 싸우고 나서 정신병원에서 요양을 하는 동안 똑같이 그린 것이고, 마지막 버전이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것으로 앞의 두 작품보다 조금 사이즈가 작다. 고흐가 똑같은 주제로 여러 점 그린 이유는 나중에 팔릴 때를 대비해 한 점은 본인이, 다른 한 점은 동생 테오의 보관용으로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버전은 어머니와 여동생을 위해 그린 것인데, 모두 알다시피 고흐의 작품은 생전 단 한 점밖에 팔리지 않았다. 그럼 각기 다른 세 작품은 모두 똑같이 그려졌을까? 아니다. 마치 닮은 그림 찾기처럼 자세히 관찰해야 알 수 있긴 하지만, 세 작품의 차별화는 바로 벽에 걸려 있는 액자에 있다. 반 고흐 미술관 버전에는 벨기에의 화가 외젠 보흐와 고흐의 술친구였던 군인 미예의 초상이 걸려 있다. 보흐라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지 않나. 유명한 식기 회사 빌레로이 앤 보흐 가문의 자손으로 작품 속 주인공의 누나가 생전에 고흐의 작품을 유일하게 구매한 컬렉터다.
반 고흐의 침실 전시회, 2016년 2월 14일~5월 10일 ©artinstituteofchicago
반 고흐 작품의 미디어 아트 전시. Newfields. ©INDIANAPOLISMUSEUMOF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