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이드보딩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요즘, 하위문화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스트리트 컬처가 주류문화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GITD 스케이트팤 아카이브 전시 전경. 잠실 애비뉴엘 아트홀 9월 5일~10월 24일.
작품 앞에 선 구정아 작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매장에 스케이트 볼을 만들어 히트 친 슈프림 스토리가 해외의 소식처럼 느껴졌는데, 요즘에는 심심찮게 보드를 들고 걸어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고, 한강공원에 나가면 보드 연습에 한창인 아이들도 많이 볼 수 있다. 한강공원에서 보드 연습에 한창인 아이들 중에 미래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케이드보딩이 처음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선정된 지난 도쿄올림픽, 13세의 일본 소녀가 금메달을 획득했고 다른 금메달리스트 4명 중 3명이 10대였으니 말이다. 하위문화가 올림픽에까지 진출했다면, 스트리트 컬처를 문화로 담는 시도가 그래피티 아트 외에도 있을 법한데, 바로 그 지점을 포착한 작가가 있다. 프랑스 퐁피두 센터에서 한국 작가 최초로 개인전을 연 바 있는 구정아 작가다. 여러 호수로 둘러싸인 한적한 프랑스의 바시비에르 섬. 작가는 2012년 이곳에서 전시를 진행하던 중 조각공원과 지역재생 그리고 젊은 관객에게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아트센터에 호응하며 스케이트 볼 형태의 <Otro>를 고안한다. 미술관 야외에 조성된 숲속에 마련된 볼은 마치 “두껍아, 두껍아~” 흙놀이를 하고 간 아이들이 남겨놓은 흔적처럼 동그랗고 움푹 파인 구덩이가 여럿 연결된 형태다. 자연의 지형을 이용한 조형물은 밤이 되면 내부에 발라진 인광이 빛을 발하며 초록빛 에너지가 흘러나오는 듯한 비현실적인 꿈의 풍경을 조성한다. 작가는 실제 보더들이 원하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전문 보더 팀과의 대화는 물론, 건축가와의 협업을 통해 작품을 고안하였다. 그 결과 조각이자 건축이며, 그림이며 또한 풍경인 작품이 마련되었다. 바시비에르 아트센터 조각공원이 보더들의 성지가 되면서 세계 유명 도시에서도 이 작품을 작가에게 의뢰하기 시작했다. 영국 리버풀 비엔날레,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 이탈리아 밀라노 트리엔날레에 소개된 특별 설치 작품들이 그것이다.
구정아, NEGAMO, 의왕 롯데프리미엄아울렛 타임빌라스, 2021.
스케이트 보더가 구정아 작가의 작품 ‘NEGAMO’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장면. 의왕 롯데프리미엄아울렛 타임빌라스.
한국에서는 의왕 롯데프리미엄아울렛 타임빌라스에서 영구 조각으로 만나볼 수 있다. 제목도 파격적이다. Negamo! 라틴어일까 추측하다 그것이 ‘내가 모’라는 한국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웃음이 나왔다. ‘내가 뭐’라는 말 뒤에는 느낌표도, 물음표도 올 수 있다.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자신의 개성에 대한 존중을 요청하는 보드 문화와 연결되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 보드는 누구나 특별한 장비 없이도 쉽게 참여할 수 있지만 순서를 기다리는 에티켓을 지켜야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자유롭지만 서로 존중하는 문화는 보드 컬처가 서핑으로부터 유래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서퍼들이 파도의 순서를 기다리듯 보더들 사이에도 나름의 룰이 존재한다. 스투시와 슈프림을 연달아 성공시킨 제임스 제비아가 첫 매장을 열 때, 보더들이 보드를 탄 채 실내로 들어와 매장에 설치된 스케이트 볼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했던 것처럼 이 작품은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는 참여형 예술 작품으로 거대한 브론즈 조각이 주류를 이루는 건축물 공공조각의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리듬에 몸을 맡기고, 나를 내려놓게 만드는 작품. 내가 뭐냐고 스스로에게 묻고 남들에게도 당당하게 “뭐!?”라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을 주는 것, 바로 그 힘이 젊은이들을 열광시키고 하위문화가 주류문화를 압도하게 된 원동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