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프는 책상에 놓이면 데스크 램프, 바닥에 놓으면 플로어 램프로, 설치되는 방식에 따라 직관적으로 분류된다. 다양한 종류의 조명이 있지만 이 두 가지가 어려움 없이 구매할 수 있어 공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램프는 기능적으로는 대상을 밝게 하기만 하면 되는데, 사용하지 않을 때에도 오브제로 훌륭하게 활용할 수 있다. 오랜 런던 생활에서 한국에 들어왔을 때 눈이 아플 정도로 강한 백색의 빛으로 둘러싸여 있는, 단조롭게 강약이 없어져버린 공간이 어색했다. 계획 없이 형광등으로 뒤덮인 마트 같았다. 영국의 조명 환경과는 달리 빛이 과도하게 느껴져 눈이 쉽게 피로해졌다. 신기하게도 처음 런던을 방문했을 때는 공간이 전체적으로 상당히 어두워 어색함이 있었다. 공간 설계를 하다 보면 빛에 대한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게 되는데, 과도하지 않은 밝기의 공간에 데스크 램프나 플로어 램프를 적절한 곳에 배치해 조도를 조절하면, 빛에 의해 공간이 형성된다. 긍정적인 결과는 각 장소에 물감이 번지는 경계 같은 자연스러운 조닝이 분위기를 살려준다. 천장을 리플렉터로 활용해 은은한 볼륨이 있는 빛으로 공간을 감싼다. 기능적으로 훌륭하지만 과하지 않게 지루해질 수 있는 공간에 성격을 부여할 수 있다. 1986년 미켈레 데 루치 와 지안카를로 파시나가 디자인한 톨로메오 조명은 오래된 낚시 구조 트라부치 Trabucchi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디자인 스토리를 알면 더욱 흥미롭게 느껴진다. 엔지니어 조지 카바딘이 1931년 자동차 서스펜션을 위한 스프링 구조의 아이디어를 2년 후 데스크 램프로 탄생시킨 앵글포이즈 1227을 바라보고 있으면 힘이 넘치는 엔지니어링의 미학이 느껴진다. 극도로 현대적인 해석을 한 제이크 다이슨의 CYCS를 보면 리니어 베어링과 알루미늄 몸체 속에 히트파이프를 숨겨 광원인 고휘도 LED의 수명을 연장시키려 열을 발산시키는 아이디어로 전체를 냉각핀으로 바꾸고 타워크레인에서 영감을 받은 형태를 리니어 베어링을 응용해서 수직 수평의 메커니즘으로 디자인하였다. 제이크 다이슨과 직접 조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추억이 떠오른다. 런던에서 재직하던 건축 회사에서 선물로 받은 롤라 플로어 램프는 미니멀하지만 공간을 빛으로 아우르는 상당히 파워풀한 직접, 간접조명이다. 독서를 하기에는 적절한 조도와 공간을 정의할 수 있는 데스크 램프야말로 경건한 행동을 이끌기 위한 가장 저렴한 오브제가 아닌가 싶다.
학생 때 구경하기도 힘든 톨로메오 조명이 파트타임을 하던 설계 회사의 테이블에 있어 넋이 나가도록 바라보았다. 나중에 대표님께서 선물로 그 조명을 주셨는데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다. 요즘은 쉽게 구할 수 있지만, 필자에게는 너무나 갖고 싶었던 구하기 힘든 고가의 조명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4가지 다양한 버전으로 가지고 있지 않나 싶다. 책도 좋아하고 직업의 특성상 많은 스케치를 하는 편이라 데스크 램프는 소중하다. 이상하게도 뭔가에 집중해야 할 때면 여지없이 데스크 램프를 켠다. 데스크 램프도 플로어 램프처럼 변형된 형태도 있다. 스탠드 자리가 없을 만큼 빽빽한 책상을 위한 훌륭한 해결책이다. 방향을 틀어 천장이나 벽에 빛을 비추어 공간에 강약을 줄 수도 있다. 직접적으로 떨어지는 강력한 조명보다 평면에 반사되어 산란되는 빛은 평온함을 준다. 잘 디자인된 조명은 공간의 오브제로써도 충분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여러분을 독서의 세계로 가이드해줄 것이다. 아이들에게 억지로 책을 읽으라는 말보다 멋진 테이블 램프를 선물해보자. 자연스럽게 책을 읽거나 글 또는 스케치를 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멋진 의자와 책장이 있어도 조명이 없다면 그 기능을 다 하기 어렵다. 서재가 사라져가고 있는 요즘, 나만의 서재 분위기를 램프를 이용해 만들어보자. 저렴한 조명도 좋지만 약간의 사치를 부린다면, 노트나 스케치북 한 장, 책 한 권의 깊이가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주변을 감싸는 램프의 빛으로 만들어진 공간은 적막한 시간에 따뜻한 친밀감과 집중도를 높여준다. 주변의 조도를 낮추고 램프를 통해 빛으로 공간을 만들어보자. 램프의 디자인 스토리를 통해 엔지니어링과 의도를 이해하면 더욱 뜻깊게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면서 디자인 백그라운드를 이야기해보자. 멋진 화젯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빛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조명과 친숙해져보자. 알고 쓰면 더욱더 매력적인 아이템이 될 수 있다. 영화 <굿 윌 헌팅>의 주인공 윌과 랭보 교수가 같이 수학 문제를 푸는 장면에 멋진 램프가 책상에 자리하고 있다. 램프가 공간에 어떻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여러분도 공간에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게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