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마감의 묘미는 선배들과 나누는 스몰 토크다. 칼럼 작성, 검수, 대지 확인까지 온 집중력을 쏟다 비로소 긴장이 풀린 후에 오가는 대화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10월 호 마감 역시 언제나 그랬듯 스몰 토크가 이어졌고 소재가 떨어질 무렵 한 달여 전 부산 여행을 계획해놓았음을 실토했다. 워낙 보물 같은 곳을 많이 다녀본 선배들인지라, 이곳 저곳 추천해준 장소가 많았는데 가장 끌렸던 건 해운대에 위치한 조현화랑. 친구들이 짜놓은 루트와는 정반대인 곳이어서 혼자 떨어져나와야 했지만 좋은 곳이라면 인원이 뭐가 중요하겠나 싶었다. 그리고 조현화랑에 도착한 순간, 옳은 결정이었음을 다시금 느꼈다. 덩굴로 둘러싸인 담벼락을 지나 둔탁한 돌계단을 오르면 그제야 갤러리가 확실하게 보이는데, 유연한 곡선이 늘어선 듯한 외관의 실루엣에 금세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 갤러리 자체는 규모가 크지 않지만, 그럼에도 군데군데 여백을 남겨둔 터라 탁 트인 듯한 개방감이 느껴졌다. 당시에는 컴퓨터 그래픽 등의 기술로 도시를 왜곡한 풍경을 작품으로 선보이는 진 마이어슨의 전시가 진행 중이었는데, 전시 자체에 대한 임팩트가 컸다기보다는 그곳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여유로움이 내 발을 묶었다. 순전히 지금 이 너른 공간이 주는 고요를 더 받아들이고 싶어 괜스레 건물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아 전시 도록을 두어 번 읽거나 저 멀리 보이는 바다를 감상했으니 말이다. 공간이 사람에게 주는 힘이라는 말을 머리로 배워오다 비로소 마음으로 와닿는 시간을 선물 받은 듯했다. 만약 누군가 부산을 여행한다면 주저없이 이곳을 추천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