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가서 처음 본 영화를 기억한다. 9살 때쯤이었나. 모조리 때려 부수는 블록버스터 영화 덕후인 아버지를 따라가 본 <킹콩>이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브라운관 속 영화 채널을 통해서만 나오는 영화만 접하다 처음으로 돌비 사운드와 한 벽면을 가득 메운 스크린의 생생한 화질을 접했으니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소위 영화덕후, 영화광이 생기는 이유를 나는 그 나이에 깨우쳐버린 셈이다. 지금에야 워낙 소셜 네트워크나 매체가 많다 보니 덕질의 방법이 무궁무진하지만, 과연 예전 영화광들은 어떤 식으로 영화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드러낼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늘 있었다. 그러다 프로파간다에서 출간한 전집 시리즈를 보고 나서 이마를 탁하고 칠 수밖에 없었다. 구매한 것은 <영화카드대전집> 시리즈. 총 3권까지 출간된 이 시리즈는 1970~90년대 한창 제작되었던 대표적인 영화 홍보물이자 굿즈인 영화 카드 디자인을 아카이빙한 책이다. 당시 손바닥만 한 크기로 제작된 영화 카드는 카렌다라고도 불렸는데, 앞면에는 영화의 포스터, 뒷면에는 캘린더나 지하철이 있는 도시에 살고 있었다면 노선도가 실려 있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개봉관과 재개봉관 그리고 도시에 따라서도 디자인이 달라 영화광들에게는 미친 듯이 덕질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특히 개봉 극장의 이름과 개봉연도가 함께 적혀 있어 영화카드를 보면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나지 않았을까 싶다. 책장을 넘기며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웅본색>등의 홍콩 영화카드를 볼 때 나도 모르게 반갑다가도 듣도 보도 못한 옛 영화가 나오면 절로 당시의 감성에 산뜻한 충격에 빠지며 완독했다. 아마 그 시절을 살아 온 이들에게는 더욱 입체적인 감동과 반가움을 선사하지 않을까. 이번 마감이 끝나면 이 두꺼운 책들을 들고 본가로 내려가야겠다. 이 책을 가장 좋아할 사람이 바로 그곳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