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공간을 통해 두 인물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과 긴장감을 그려낸 영화를 살펴보자. 2009년 영화 <샤넬과 스트라빈스키>는 혁명과도 같은 예술가의 생애를 살다 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코코 샤넬 간의 미묘한 관계성을 다룬 영화다. 1910년대 후반 격동기를 겪는 러시아로 돌아가지 못한 스트라빈스키의 가족을 위해 샤넬이 거처를 마련해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당시 자칫 과해 보일 정도로 장식적인 아르데코 스타일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 때였지만, 샤넬은 과감히 장식을 배제하고 블랙과 화이트 톤의 매치와 볼드한 선을 포인트로 한 모던한 저택에 스트라빈스키의 가족을 들인다. 그러나 운 좋게 쾌적한 집을 구했음에도 그의 아내만큼은 이 공간을 달갑지 않아 한다. 샤넬의 감각과 안목으로 꾸민 집이 그저 낯설고 불편한 것이었기 때문. 그런 그녀는 공간 곳곳에 비치된 가구를 하나둘 자신의 태피스트리로 덮어버린다. 이어 이러한 모습을 샤넬이 보게 되면서 두 인물간의 미묘하게 날선 감정이 그 어떠한 대사 없이 인물의 뒤편에 놓인 공간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된다.
그런가 하면 영화가 구태여 설명하지 않는 시대, 국가적 맥락을 공간의 구현으로 대신 전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개봉한 웨스 앤더슨의 <프렌치 디스패치(2021)>는 프랑스의 한 가상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다양한 시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칼럼처럼 에피소드화되는 액자식 구성으로 전개된다. 물론, 각 이야기 간의 이음새가 그리 친절한 편은 아니지만, 아담 스톡하우젠이 세트 디자인을 맡아 에피소드마다 확연히 다른 프랑스 도시의 모습과 시대적 배경을 보여주는 공간 인테리어가 다시 한번 웨스 앤더슨의 심미안을 인정하게끔 만들기도 했다. 스콧 피츠제럴드 원작의 <위대한 개츠비(2013)>에서는 영화에서 그려진 당시의 시대, 문화적 풍토를 보다 명쾌히 짚어볼 수 있다. 배즈루어만 감독과 그의 아내이자 세트 디자이너 캐서린 마틴은 원작의 시대적 배경인 1920년대를 재현해내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특히 유럽의 자본이 몰려들어 극도로 활성화된 당시 미국의 경제와 맞물려 유럽에서 성행하던 강렬하고 과감한 장식적 요소와 패턴 등을 강조하는 아르데코 스타일이 미국으로 고스란히 유입된 점에 주목해 대부분의 가구와 소품을 제작했다. 신흥 부자가된 개츠비와 당시 미국의 상위 계층인 데이지 등 다양한 인물의 파티 연회나 그들 각자의 집을 떠올려 보면 보다 쉽게 이해될 터.
새로운 영화적 세계, 영화의 무대와 배경
당신이 영화에 끌리는 수십 가지의 이유가 있을 테지만, 이번엔 영화의 배경을 이루는 인테리어와 세트 디자인에 주목해보는 것은 어떨까. 인상적인 소품으로 자리한 가구를 요목조목 들춰보는 재미는 물론, 공간에 머무는 인물의 심리와 행동, 사회문화적 맥락 등 영화가 미처 말해주지 않는 것들을 보여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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