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찍한 대청 사이로 푸르른 노송과 하늘거리는 색색 가지 들꽃이 바람에 흩날리고, 세월을 품어 멋이 서린 서까래 아래에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과 가구들이 한데 어우러져 미적 영감을 선사한다.
강호지락 江湖之樂
선병국 가옥은 연꽃이 물에 뜬 형국으로 연화부수형의 명당 자리에 위치한다. 그리고 아름드리 우거진 소나무로 둘러싸여 고귀하다. 1919년, 세 단의 석축에 지어진 이곳은 무려 100년이라는 시간을 꼿꼿하게 지켜왔다. 문 너머로 마이클 아나스타시에이드 Michael Anastassiades가 디자인한 플로스의 오버랩 조명과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민병헌 작가의 흑백사진 작품 그리고 또 다른 문 너머 기와 담장 위 싱그러운 자연이 같은 선상에 나란히 서게 되며, 현대와 전통의 콜라주 작품을 그린다. 문틀을 프레임 삼아 말이다.
대청이 만든 세계
한옥에서 몸체의 방과 방 사이에 있는 큰 마루를 대청이라 한다. H자 모양의 한옥 한가운데는 널찍한 대청이 펼쳐진다. 이곳은 한달음에 모든 방으로 통한다. 대청에는 유남권 작가의 벤치와 이번 프로젝트에서 새롭게 선보인 ‘커브 Curve’ 작품이 서까래와 함께 멋스럽게 뻗어 있다. 종이로 만든 기물을 옻칠로 마감하는 지태칠기 전통 기법으로 100년 된 한옥의 모습 만큼이나 깊이감이 느껴진다. 그 끝에는 이세현 작가의 붉은 작품이 전통 산수의 형상을 연상시키며 방문 너머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듯한 판타지를 펼쳐낸다.
달 너머 달
한옥 구조의 특징으로 개방성을 들 수 있다. 모든 문을 활짝 열어 젖히면 공간과 공간이 다층적인 구조로 서로 연결된다. 이는 작품과 작품 간의 연결을 만들어내며 흥미로운 시각적 체험을 선사한다. 15세기 조선 분청사기의독창적인 프로세스인 덤벙 분장기법을 활용한 박성욱 작가의 푸른 달 두 개가 나란히 떴다. 회흑색의 태토를 백토물에 통째 담갔다가 꺼내 표면을 분장하는 기법으로 각각의 편들이 지니고 있는 오묘한 색이 둥근 달의 형태로 드러난다. 두 달 뒤로 민병헌 작가의 눈이 쌓인 산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며 서로 다른 두 세계가 공존하는 듯한 신비로운 상상을 하게 한다.
산수화
자연을 병풍 삼은 한옥의 절경만큼이나 방문 너머 석철주 작가의 ‘신몽유도원도’도 운치 있는 풍경을 자아낸다. 한국 화단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석철주 작가는 캔버스에 색을 칠한 후 일일이 붓질로 바탕을 지워 서서히 이미지를 부각하는 기법을 활용한다. 자세히 보면 특수한 기법으로 도자기의 크랙처럼 표면을 처리해 섬세한 자연 생태를 화폭으로 옮겨 온 듯하다. 석철주 작가의 오묘한 산 아래 유남권 작가의 ‘Curve’ 작품이 강물처럼 보이며 이들의 조화가 마치 한 폭의 산수화 같다.
차가움과 뜨거움
옻의 농도로 수묵을 겹겹이 쌓아 완성한 유남권 작가의 회화작품 아래 기하학 형태의 프라마의 트라이엥골로 Triangolo 의자의 믹스&매치가 현대와 전통의 감각적인 조화를 보여준다.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로 간결한 디자인의 차가운 매력과 옻칠의 인고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작품의 따스함이 미묘하게 대조되며 낯설지만 아름답다.
위선최락 爲善最樂
태우기, 그을리기, 파쇄, 표백, 찢기, 해짐. 한지의 물성을 해체하는 작업 과정을 거친 뒤 그 흔적을 조형적 미로 활용하고 있는 캐스퍼 강의 작품은 오래전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큰 창문 뒤로는 추사 김정희가 쓴 위선최락 서체가 엿보인다.
*충북 보은군 속리산 자락에 위치한 선병국 가옥의 사랑채에서 갤러리 구조와 덴스크가 그린 한 폭의 그림 <사랑채 프로젝트>가 펼쳐졌다. 위선최락, 선을 행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가풍에 따라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후학을 양성하며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보성 선씨 가문의 고택. 대를 이어 예술적 행보를 이어가는 사랑채 프로젝트의 다음 전시도 기대된다(10월 25일까지 프라이빗으로 진행된다).
TEL 갤러리 구조 02-538-4573 덴스크 02-592-6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