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평에 복합문화공간 이함캠퍼스가 개관했다.
남한강이 바로 앞에 흐르는 수려한 풍광이 매혹적이다.
건축가 김개천이 설계한 이함캠퍼스는 수려한 풍광으로 유명하다.
이함캠퍼스 E-HAM CAMPUS는 1999년 건축가 김개천과 두양문화재단 이사장 오황택이 손잡고 완공했다. 두양문화재단의 건립 이전에 이미 완성된 것이다. 하지만 오황택 이사장이 개관을 어떻게 할지, 어떤 곳으로 발전시킬지 고민하는 데만 자그마치 20여 년이 걸려 이번 여름 드디어 문을 연 것.
성당의 삼각 지붕을 연상시키는 마지막 전시장 외관은 숭고함마저 풍긴다.
캠퍼스를 따라 흐르는 물줄기가 중앙 정원으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오 이사장이 그간 이곳을 방치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지난 시간 동안 매일 이곳을 찾아 조경을 직접 가꾸었다. 아담했던 메타세쿼이아 묘목은 건물 높이보다 훌쩍 자라서 이함캠퍼스를 도시 문명으로부터 완벽하게 감싸안았다. 미리 계획한 조경이라기보다는 계절과 세월의 변화에 맞춰 조금씩 꽃과 나무를 가꾸었고, 1만 평의 대지에는 직접 수집한 장대석과 주춧돌, 석조 유물과 조각을 곳곳에 배치해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요즘은 작은 산책길인 둘레길도 만들고 있으니, 가히 양평 제일의 풍광이라 할 수 있겠다.
베르나르 브네의 조각을 설치한 작은 언덕.
오 이사장은 문화 예술 전공 학생을 위한 장학사업에 이어, 2015년부터 서울에서 건명원을 운영하고 있어 존경받고 있다. 젊은 세대에게 인문, 과학, 예술이 연계된 무료 인문학 교육을 실시하는 것. 이러한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효율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이함캠퍼스 개관을 공들여 준비한 것이다. 총 9개의 건축물이 모여 있는데,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이함캠퍼스라고 크게 쓰여 있는 창고 건물이다. 최근 만든 건물로 아직은 비어 있지만, 앞으로 전시장 등 여러 용도로 활용할 예정이다. 나머지 8개의 건물은 콘크리트 자재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어 바라보는 마음도 편안하다.
나무 사이에 숨어 있는 안내 데스크 건물은 본격적인 캠퍼스의 시작을 알린다. 프랑스 조각가 베르나르 브네 Bernar Venet의 녹슨 철 조각을 지나면 방문객의 포토 스폿인 작은 언덕이 나타난다. 사방으로 오솔길이 있는 이 잔디 언덕은 정면의 건물이 외부에 잘 보이지 않게 만드는 효과까지 있다. 오솔길을 지나면 보이는 건물은 사무실과 수장고, 아티스트 레지던시다. 이제 전시동으로 자리를 옮겨 개관 전시 <앰비언스 Ambience> 를 살펴보자. 오 이사장은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 스튜디오 사일로랩 SILO Lab의 전시를 보고 한눈에 반해 개관전으로 결정했다. 이곳은 실험적 현대미술과 다채로운 문화의 흐름을 대중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표방하기에 젊은 아티스트 그룹 사일로랩의 전시가 특히 잘 어울린다.
첫 번째 전시장에서는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빛의 물결을 표현한 ‘잔별’을 만날 수 있다. 전시장의 향기를 담은 인센스도 구입 가능하다.
망망대해에서 만나는 등대의 불빛을 표현한 ‘해무’.
빛과 소리, 안개와 향기가 어우러진 개관전은 사일로랩의 첫 개인전이기도 하다.
6개의 전시동에서 만나는 7개의 작품은 관람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우주, 하늘, 태양, 별과 같은 자연을 모티프로 어둠 속에서 펼쳐지는 빛의 움직임을 표현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짙은 어둠 속의 안개와 향기에 멈칫하게 된다. 어둠을 눈에 익혀야 본격적으로 작품을 즐길 수 있으니, 잠시 기다려야 한다. 7개의 신작은 제목도 아름답다.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빛의 물결을 표현한 ‘잔별’, 물안개가 자욱한 망망대해에서 이정표가 되는 등대의 불빛을 표현한 ‘해무’, 수평선 위로 차오르는 시간의 색깔을 담은 ‘채운’, 심해에서 해수면까지의 여정을 담은 ‘칠흑’, 파도를 통해 일렁이는 마음을 표현을 ‘파동’, 달빛이 반짝이는 잔물결을 수조에 재현한 ‘윤슬’, 밤하늘의 찬란한 별의 움직임을 키네틱 아트로 표현한 ‘찬별’이 바로 그것이다.
이함캠퍼스의 조경은 두양문화재단 오황택 이사장이 직접 관리하고 있다.
가족과 연인, 친구와 나들이를 온 관람객은 각기 다른 전시장을 오르내리며 양평의 계절도 경험하게 된다. 마지막 전시장은 마치 교회와 같은 삼각지붕이 특별하며, 마음까지 잔잔해지는 숭고함을 느낄 수 있다. 미디어아트는 첨단기술이 응축된 자연의 반대 개념이지만, 이를 관람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사일로랩의 첫 개인전이기도 한 이번 전시는 2023년 6월 30일까지 이어진다. 오 이사장은 신진 아티스트 사일로랩에게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었고, 방문객은 이를 만끽할 수 있다. 전시를 다 보았다면 카페도 꼭 가봐야 한다. 고요한 연못과 맞닿은 카페 콤마는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스위스 바이엘러미술관을 연상시킨다. 연못에 반사되는 햇살이 인상적인 1층의 모든 가구와 소품은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핀란드 디자이너 에로 사리넨의 튤립 테이블과 튤립 의자, 일본 디자이너 시로 그라마타의 레드 컬러 캐비닛이 콘크리트 건물과 잘 어울린다.
카페에는 디자인 가구가 배치되었을 뿐 아니라, 파티셰가 매일 디저트를 만들고 있으며 맛도 훌륭하다.
천장에는 1960년대 파리에서 사용되었던 빈티지 할로페인 Holophane 유리 조명이 달려 있다. 오 이사장은 유명한 디자인 수집가이기도 하다. 해마다 몇 번씩 해외에 나가서 디자인 가구와 포스터 등을 대거 수집한다. 수공예 오브제에 대한 관심으로 디자인 컬렉션을 시작했으며, 우리나라 목가구와 석조 유물, 20세기 서구 디자인 거장의 가구, 공장 기계와 군용 물품에 이르기까지 관심 분야가 다채롭다. 그의 디자인 컬렉션은 인근에 수장고도 갖추고 있을 정도로 방대하다. 앞으로 이곳에서 디자인 전시도 종종 진행할 예정인데,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아마도 두양 보타니를 우리나라 최고의 단추회사로 성장시킨 그의 특별한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또한 순수미술과 디자인, 무명과 유명 디자인의 경계를 나눌 수 없다는 오 이사장의 철학도 반영된 것이 분명하다. 그는 미술 작품이 일상 용품보다 우리에게 더 큰 영향을 준다고 단언할 수 없다고 본다. 문화에는 우월이 없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라 미술과 디자인의 흐름은 계속 바뀌고 있고, 사회의 가치와 윤리를 반영하기 때문에 세상 모든 것은 나름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문화를 소비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문화 소비자가 문화를 만들어가는 시대가 왔습니다. 이함캠퍼스를 찾는 모든 이들이 문화를 새롭게 만드는 주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위에서 바라본 이함캠퍼스 전경. 낮은 콘크리트 건축물이 양평의 자연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카페 뒤에도 테라스가 멋지게 조성되어 있으니 날씨 좋은 날은 야외에 앉아 계절을 즐겨보자. 그렇다고 이 카페가 건축 디자인과 디자인 가구만 훌륭한 것은 아니다. 르코르동 블루와 나카무라 요리학교를 졸업한 파티셰들이 매일 케이크와 쿠키를 굽고 있으니, 맛있는 디저트와 커피 한잔으로 양평 나들이를 마무리하자. ‘이함 以函’은 ‘써 이以’ ‘상자 함函’을 사용해 ‘빈 상자’를 뜻하며, 공간 전체가 배움의 장소라는 의미로 ‘캠퍼스’를 결합한 이름이다. 그릇을 비워야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듯 이곳 역시 새로운 시도를 추구한다. 전시뿐 아니라 교육과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어질 예정이며, 건명원의 커리큘럼을 도입한 여러 분야의 특강도 준비 중이다. 이번 가을, 양평에서 캠퍼스의 낭만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