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줄리앙에게 드로잉은 언어와 같다. 그의 언어는 국경도, 세대 간의 경계도 없이 누구와도 즐겁게 소통할 수 있다.
순수함과 어리숙함 사이의 낭창한 표정과 기행처럼 느껴지는 장난스러운 포즈, 절로 웃음이 나는 독특한 액션을 취하고 있는 캐릭터를 본 적이 있다면 맞다. 어디선가 한 번쯤 본 듯 익숙한 일러스트는 장 줄리앙 Jean Jullien의 작품이다. 강아지가 주인을 산책시키는 장면과 오랜 시간 전화하면서 태닝을 한 듯한 남자의 모습 등 자유분방하고 재치 있는 그의 그림은 쉽고 단순하며 직관적이다. 장 줄리앙의 그림은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한국의 어린아이부터 프랑스의 노부부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다. 국경을 뛰어넘어 남녀노소 누구나 장 줄리앙의 작품을 이해하고 향유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이 통역이 필요 없는 일종의 언어적 역할을 하길 바란다. 친근하고 장난스러운 언어로 관객에게 다가가 일상에 즐거움을 더하고 그들을 웃음 짓게 하면서 소통하는 것이다. 음식을 앞에 두고 포크 대신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일러스트나 ‘MONDAY’란 글자에 힘겹게 매달린 사람의 일러스트 등 현시대의 디지털 중독과 월요병을 상징하는 몇몇 작품에서 작가의 예술관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비판적인 성격이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기보다 불쾌한 것을 유쾌하게 바꿔 사람들을 웃게 하고 싶다.” 장 줄리앙은 일상의 다양한 상황을 풍자와 해학으로 그려낸다. 예리하고 날카롭게 문제를 지적하지만 그의 그림이 부담스럽지 않은 이유 역시 직관적이면서도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모두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품 활동을 시작한 동시에 세계적인 브랜드와 협업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지금까지도 수많은 작품을 쏟아내고 있다. 습한 날씨에 널어둔 빨래처럼 마르지 않는 작가의 영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장 줄리앙은 항상 스케치북을 갖고 다니며 인상적인 장면을 마주했을 때 즉흥적인 드로잉으로 순간을 기록한다. 그러한 기록은 친구, 가족, 동물, 바다 등 일상에서 비롯되며 훗날 그 기록이 모여 작품의 밑그림을 이룬다. 회화든, 영상이든, 설치물의 형식이든 미술 작품은 언어로써 작가의 메시지를 감상자에게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그리고 대개 작가가 전달하는 의도나 메시지는 간단하지 않고 복잡하며 함축적이고 때로는 철학적이다. 어쩔 수 없이 설명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장 줄리앙 역시 같은 고민을 했고 이내 답을 찾았다. 세밀하게 묘사하기보다 표현하는 방식에 집중한 것이다. 그의 작품은 드로잉, 회화, 일러스트, 애니메이션, 조형 등 표현 장르도 다양하고 패션, 출판, 가구, 생활용품, 레저 등 활동 분야도 폭넓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어떠한 제약 없이 여러 분야에서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작가가 “나의 기술적 능력은 한계가 있을지 몰라도 나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다”고 말한 것처럼 지금도 새로운 시도를 통해 그만의 작품 세계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그의 창의적인 시도는 브랜드 누누 NouNou에서 확인할 수 있다. 누누는 장 줄리앙이 대학에서 만난 절친인 허재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함께 론칭한 컬렉션이다. 패션에서 리빙까지 장 줄리앙의 그림을 활용한 다채로운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 탈에서 모티프를 얻은 스툴과 귀여운 표정이 그려진 와인잔, 강아지 모양의 벤치 외에도 테이블, 러그, 우산, 인형,액세서리 등 다양한 아이템이 있다. 누누란 브랜드 이름은 허재영의 딸이 장 줄리앙의 아들 이름인 루 Lou를 두고 누누라고 부른 데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이토록 막역한 두 사람의 우정은 현재 DDP뮤지엄에서 진행 중인 장 줄리앙의 첫 회고전 <그러면, 거기>까지 이어진다. 허재영 디렉터와 함께 기획한 이번 전시는 장 줄리앙이 일상을 기록한 스케치북 100권부터 드로잉, 회화, 영상, 미디어아트까지 1000여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전시장 곳곳에서 시트지처럼 감쪽같이 연출된 작가의 핸드 드로잉 작품도 찾아볼 수 있다. 그의 독창적인 영감과 따뜻한 감성으로 가득한 이번 전시에서 일상의 빛나는 순간을 만끽해보길. 전시는 2023년 1월 8일까지.
자료제공: 서울디자인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