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2021년 말 대전 문지동에 상륙한 캐주얼 다이닝 앤디팬디는 미식에 목말랐던 지역민을 열광시켰다.
오픈 1년여 만에 탄탄하게 자리잡은 앤디팬디, 매력의 이유는 명료하다.
ADD 대전시 유성구 엑스포로446번길 38 1층
OPEN 11:00~22:00(15:00~17:30 브레이크 타임), 일요일 휴무
웰컴! 2021년 말 대전 문지동에 상륙한 캐주얼 다이닝 앤디팬디는 미식에 목말랐던 지역민을 열광시켰다.
오픈 1년여 만에 탄탄하게 자리잡은 앤디팬디, 매력의 이유는 명료하다.
ADD 대전시 유성구 엑스포로446번길 38 1층
OPEN 11:00~22:00(15:00~17:30 브레이크 타임), 일요일 휴무
196개의 객실은 흰색과 월넛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5개의 레스토랑과 바, 인피니티 풀과 실내 수영장 그리고 피트니스 센터와 사우나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췄다. 투숙하지 않더라도 한강을 배경으로 석양을 바라볼 수 있는 이브닝 라운지에서 와인 한잔을 기울여봐도 좋겠다.
TEL 02-6410-1000
처음 예술을 접했던 때가 언제일까요?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도자기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어요. 1세대 도예가이신 지순택 선생님께 배웠죠. 도자기가왜 좋았는지는 모르겠고, 여하튼 미술반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아마도 선배들한테 휩쓸려 도자기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이후 대학에서 서양학과를 전공하면서 관심을 끈 게 우리나라 고미술이었어요. 소위 말하면 그 당시에는 골동품이었죠. 그게 그렇게 좋더군요(웃음).1960년대 국내 문화 예술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1960년대는 토요일 오전까지 일하던 때였어요. 토요일 오후만 되면 청계천 일대에 다양한 문화 예술이 펼쳐졌어요. 그곳에서 처음 접한 게 바로 라이브 재즈였어요. 존 케이지 같은 현대음악도 있지만, 꼽추 춤을 추는 공옥진 선생부터 사당패 김덕수까지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것이 내가 처음 접한 문화 예술이었던 거죠. 그즈음 우리나라 문화의 도입기이자 정체성을 찾자는 분위기가 일었던 것 같아요.대학생 때부터 고미술상을 시작하셨다고요?
지금에야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붙여 고미술상이라 하지만, 그때는 그냥 고물상이었어요. 헌책방 바로 옆에 고물상이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나도 청계천에 고물상을 조그맣게 차렸어요. 그게 소위 말하면 보물 찾기였던 거예요. 청계천 8가부터 9가, 그 뒤에 황학동까지 저녁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어요. 서양화가 권옥연 선생님, 한창기 선생님 그리고 우리나라 자수박물관을 개관한 허동화 선생님까지 이분들이 저녁마다 모아온 전리품을 가져와 자랑을 하는 거예요. 나는 학생이었으니까 그중에서도 제일 막내였죠. 그렇게 고물상을 시작했어요. 그때는 장사라기보다는 정말 보물 찾기였죠.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리어카를 끌고 다니면서 고물을 팔았어요. 엿장수의 엿과 고물을 바꾸기도 하고요. 리어카를 끌고 있는 고물상이 나를 “학생, 학생.” 하고 불러요. 미술대학 학생이면 이거 가져다 천만 갈면 새것으로 쓸 수 있다고요. 리어카에 캔버스를 한아름 꽂아 놨더군요. 그래서 들춰봤더니 ‘환기’ 사인이 있는 거예요(웃음). 그때는 그럴 때였어요. 김환기 화백이 프랑스로 넘어가기 전에 정리하면서 흘러나왔던 것같아요. 정말 그야말로 보물섬이었죠. 보물을 찾을 수 있는 장소가 바로 고물상이었어요.1984년 동숭동에서 첫 시작을 알린 두손갤러리가 이후 다양한 행보를 보이다 잠시 모습을 감췄어요. 올해 재개관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국내 미술 시장의 열기가 뜨거워진 이유도 있나요?
눈에 보이는 것이 서양미술의 근간이라면 동양의 근간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루를 보내면서 보고 움직이는 것이 반 이상은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벌써 ‘인식’하면서 행동하게 되죠. 사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어떠한 모습을 계속 찾아가는 것을 예술이라고 보는데, 그것을 지금은 다시 물질화해 돈으로 환산해서 바라보고 있어요. 예술의 초심이나 근간은 다 없어지고 전혀 다른 삐둔길로 가고 있어요.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우리가 자연하고 멀어지면서 퇴화되고 있는데, 기술과 과학으로 조금씩 다시 찾아간다고요. 그래서 다시 한번 예술의 본질은 어떤 것인지 되찾아보고자 두손갤러리의 문을 열었어요. 이제는 마감을 할 때예요. 내가 그 동안 받아온 수혜를, 또 많은 지식을 돌려줄 때가 왔다고 생각해요. 쓸데없는 영웅심리라고나 할까요. 소명의식 같은 게 있어요.역사적인 구세군중앙회관을 선택한 점이 매우 흥미로워요.
이 정동이라는 곳은 정말로 대단한 장소예요. 개화기가 시작된 곳이죠. 이를테면 학교도 시작 되었고 이곳에서 외교도 시작되었고. 이 건물도 6년만 지나면 100주년이에요. 우리 두손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이 예술계를 이끌어가보자, 그 시작을 이곳에서 해보자라고 생각했어요. 죽을 때 가지고 가는 것은 하나도 없잖아요.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빌려 쓰는 건데, 소유할 이유도 없고 문화재 건물인 이곳이 얼마나 좋아요.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곳에서 관람객이 무엇을 느꼈으면 하나요?
요즘 사람들은 그림을 돈으로 생각해요. 만약 피카소의 그림이 60억이다라고 하면 사람들이 갑자기 존경하기 시작하죠. 어떻게 내가 그 그림을 가져다 걸고 즐기느냐가 중요한데, 그림을 모시게 되는 거예요. 정말로 잘못된 거죠. 작품이 놓인 공간의 전체적인 환경을 즐겨야 해요. 그래서 리빙 앤티크이고, 리빙 아트인 거죠. ‘리빙’이라는 것이 앞에 들어가는 게 정상적이에요. 그런 면에서 이 건물은 더욱이 가질 수 없는 공공성을 띠고 있어 제격이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화이트 큐브에서 작품을 바라보고 있어요. 화이트 큐브와 집은 완전히 달라요. 화이트 큐브가 주는 환상을 보고 그것이 집까지 연결될 거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예술은 그저 내 삶으로 들어온 하나의 액세서리 같은 거예요. 앞으로 삶과 예술이라는 것이 이분화되지 않았으면 해요.이번 전시 <A Narrative of Korean Art: 한국미술의 서사>에서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 있나요?
전시장 구석에 놓인 권진규 조각가의 흉상이에요.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것을 가장 잘 표현해낸 조각이죠. 영적인 작업을 이토록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나는 그의 흉상을 자코메티와 비교해봤어요. 동양과 서양이 표현하고자 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죠. 권진규 조각가는 아주 단순하게 표현했지만 굉장히 조용하면서도 영적이고, 자코메티의 조각은 현실의 끈끈한 힘듦을 그대로 표현해냈어요.다음 전시를 살짝 공개해줄 수 있나요?
두손갤러리의 재개관을 기념한 이수경 작가의 개인전이 깨진 도자기를 통해 치유의 기능을 제시하고, 새로운 생명을 주는 아주 기본적인 전시였다면 현재 진행하고 있는 두 번째 전시는 우리의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한자리에 모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통시적 미감을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그다음으로는 미래에 우리가 어떠한 예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전시를 열 예정이에요. 이번 밀란 디자인위크의 한국관을 통해 로봇공학을 공부한 정우원 작가를 알게 되었는데, 볼록거울을 수십 개 달아놓은 작품이 매우 흥미로워서 함께하기로 했어요. 5년만 나와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했죠. 그렇게 올 연말을 젊은 사람들의 기운으로 마무리해보려고 해요.앞으로 두손갤러리에 어떤 기대를 걸어도 좋을까요? 다음 행보가 궁금합니다.
기본적으로 두손은 라라 LALA에요. 리빙 앤티크, 리빙 아트죠. 예술이 깃든 삶을 만들어가는 거예요. 우리의 예술이, 또 궁극적으로 동양의 문화가 커지면서 지금이야말로 세계의 예술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것을 어떻게 인간 사회의 옳은 길로 가지고 갈 수 있을까? 자본주의가 대량생산되어 잘못된 케이스가 되었어요. 그럼 그것이 바뀔 때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두손이 시각적 예술의 한 부분으로써 그 역할을 해내는 거예요. 이번에 선보인 알레시와 박서보 작가의 협업도 박서보의 작품이 생활에서 가까이 쓰였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어요. 이러한 행보가 앞으로 두손이 나아갈 길이에요. 작품을 우리의 삶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하고 싶어요. 내가 중심이 되고 사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