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강국의 신호탄, 카타르 월드컵
2022 월드컵을 개최하는 카타르는 오일리치의 광에 안주하지 않고 문화예술 강국으로 거듭날 준비를 마쳤다.
월드컵 경기로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는 카타르는 사우디아라비아 반도의 여러 국가에 비하면 매우 작은 국토 면적을 지니고 있지만, 석유와 천연가스 등 풍부한 자원으로 가장 부유한 국가로 손꼽힌다. 그러나 친환경 에너지와 디지털 인터넷 등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산업의 흐름이 바뀌어가고 있는 시대, 중동은 여전히 오일리치의 영광을 이어갈 수 있을까? 카타르의 2022년 월드컵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축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2030년 아시안 게임까지 이어지는 문화 국가로의 변모를 시작하고 홍보하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2019년에는 장 누벨이 설계하고, 장 미셸 오토니엘의 작품이 입구를 장식한 카타르 국립박물관을 개관했고, 친환경 에너지로 작동되어 낮에도 인공조명이 필요하지 않은 패션 및 디자인 종사자의 센터 M7도 개관했다. 이자 젠켄의 거대한 꽃 조각이 장식되어 있는 M7에서는 카타르 월드컵을 맞아 발렌티노의 전시와 패션쇼를 개최했는데, 카타르 왕족(카타르 홀딩)이 2012년 발렌티노를 인수하여 사실상의 소유주이기 때문이다.
카타르는 2011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클럽으로 손꼽히는 파리 생제르맹 (PSG)를 인수하였을 뿐 아니라, 같은 해 영국의 유서 깊은 백화점 헤롯을 인수하는 등 국제적인 행보를 펼치며 문화와 예술에 투자하고 있고, 2022년에는 헤롯 호텔 체인 계획도 발표한 바 있다. 스포츠 분야에 카타르 국왕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면, 미술과 럭셔리 산업 분야를 주도하는 이는 국왕의 여동생이자 카타르 박물관국을 맡고 있는 알 마야사 공주다. 10여 년 전부터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을 약 250만 달러(약 3천3백억원), ‘언제 결혼할래?’를 3백만 달러(약 4천억원) 등에 구입한 슈퍼 컬렉터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이슬람 미술관을 비롯한 수많은 미술관 및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하마드 국제공항의 우르스 피셔의 거대한 램프 베어, 컨벤션 센터의 루이스 부르주아의 높이 9m에 달하는 거대한 거미 조각, 올림픽 뮤지엄의 다니엘 아샴의 거대한 행잉 조각, 쉐라톤 홀 벽을 장식한 마틴 크리드의 ‘모든 게 다 잘될 거야’라는 문자 조각 등이 모두 카타르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월드컵을 맞이해 올라퍼 엘리아슨, 제프 쿤스, 카타리나 프리치 등 세계적인 명성의 예술가를 초청해 공공미술 프로젝트 40여 개를 추가함으로써 이제 카타르 도하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도시 미술관으로 변모하여, 비단 월드컵이 아니라도 파리나 로마에 가듯 한번은 반드시 방문해야 할 예술의 성지로 등극했다.
오일머니를 문화에 투자해서 21세기에도 지속되는 문화 강대국으로 변모하려는 시도는 카타르뿐 아니라 중동의 다른 국가에서도 활발하게 일어나는 추세다. 아랍에미레이트에서는 2020년 두바이 엑스포를 선점하며 기회를 노렸으나 팬데믹으로 인해 아쉬운 상황을 맞이했지만, 수도 아부다비에서 2017년 루브르 미술관 분점을 개관한 데 이어 2025년 개관을 목표로 구겐하임 미술관 건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방한하여 화제를 모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가 준비하고 있는 네옴 시티도 친환경 에너지로 작동되는 슈퍼 스마트 시티다. 한때 문화와 예술은 가난한 예술가의 구제와 복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윤리와 의무 혹은 부자들의 플렉스 정도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지만, 실은 21세기의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중요한 성장의 동력이라는 것을 가장 부유한 국가의 행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