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샹탈 크루젤의 집을 방문했다. 지난 42년간 그녀가 갤러리스트로서 선보인 전시 그리고 마음을 나누었던 작가들과의 추억이 곳곳에 담겨 있다.
아트바젤 파리 플러스의 성공으로 인해 파리가 더욱 뜨거워졌다. 뉴욕과 런던, 바젤과 홍콩에 밀려 잠시 잊혀졌던 파리가 원래 의 위치를 다시 찾은 것. 아트바젤 파리 플러스 아트 페어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파리 고유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매력은 증폭되었다. 그 중심에는 샹탈 크루젤 Chantal Crousel 갤러리와 같은 흥미로운 명소가 있다. 샹탈 크루젤 갤러리는 아트 페어와 전시로 우리나라 미술 애호가에게 알려졌으며, 지난 가을 프리즈 Frieze 서울에 참여하며 한국에 첫 인사를 했다. 이번 아트바젤 파리 플러스 기간에는 양혜규 작가의 개인전을 열어 파리를 찾은 세계 미술 애호가를 매혹시켰다. “한국은 전통문화, 활기찬 현대미술,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미술관이 매력적입니다. 2009년 제53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양혜규 작품이 눈에 띈 것도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을 겁니다. 2012년 멕시코 미술가 아브라함 크루스빌레가스 Abraham Cruzvillegas와 처음 한국을 방문했고, 아브라함은 그해 광주 비엔날레에 참여했어요. 같은 해 나는 카셀 도큐멘타 전시에 양혜규를 초대했고, 이것이 그녀와의 첫 협업이었어요. 그리고 2013년 우리 갤러리에서 양혜규의 첫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최근 그녀가 가장 공들이고 있는 퀴리연구소의 비영리 프로젝트에도 양혜규와 손을 잡아 <매혹적인 연 – 버터플라이 배트 그립의 곡예사 Mesmerizing Kite – Acrobat in Butterfly-Bat Grip>를 선보였다.
퀴리연구소는 노벨상 .2회 수상자이기도 한 마리 퀴리의 업적을 기려 설립한 암 연구센터이자 병원이다. 2023년 봄, 파리에서 서쪽으로 9.6km 정도 떨어진 생클루에 새로운 센터의 개관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곳에 양혜규 작가의 거대한 월페이퍼 작품을 설치하는 것. 프로덕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양 작가가 한지로 한국의 전통 연 에디션 작품을 제작했다. “이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상호작용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 양혜규 작가의 작품을 추천했습니다. 그 작업을 위해 나는 그녀에게 50개의 연 에디션 제작을 의뢰했습니다. 퀴리연구소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이 연은 빛과 자유를 향한 열망의 상징을 담고 있어요.” 샹탈 크루젤 갤러리는 1980년 파리에 문을 열었는데, 그녀가 국경을 넘나드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에서 갤러리 정체성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다른 문화, 다른 사회와 관련된 미술가를 만나고, 현대인이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본 질적 질문을 해석하는 작가와의 교류에 관심이 깊다. 그녀 역시 벨기에 출신이며, 그녀의 갤러리는 토니 크랙, 브루스 매클린, 길버트&조지, 제니 홀저, 바바라 크루거, 리처드 프린스, 신디 셔먼과 같은 거장의 작품을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1990년대에도 가브리엘 오로즈코 Gabriel Orozco, 모나 하툼 Mona Hatoum, 압살론 Absalon, 리크리트 티라바니자 Rirkrit Tiravanija 등 주요 미술가의 프랑스 첫 전시를 열어 파리를 새로운 세계에 풍덩 빠지게 했다.
벨기에 출신의 젊은 여성 갤러리스트로 파리에서 힘든 일은 없었을까. “내가 여성 갤러리스트라는 상황에 중점을 두지 않았습니다. 내 과제는 알려지지 않은 해외 작가를 프랑스에 소개하고, 프랑스 미술 애호가와 비평가들이 그들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나의 이국적 억양이 이러한 단계를 복잡하게 만들 때도 있었지만, 그것을 시간이 필요한 정상적 과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녀의 집은 파리지엔느의 감성이 가득한 아파트이다. 집 안에 가득한 미술 작품은 그녀의 삶의 모든 만남을 증언한다. 디자인 가구 역시 마찬가지다. 예술 작품과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가구와 소품은 그녀와 함께 거주하고 있다. “몇몇 미술가나 작품에 특권을 부여하기는 어렵습니다. 모든 작품과 대화를 나누고 있고, 나에게 똑같이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어요. 가구와 소품은 여행에서 발견한 것들이 많은데, 그것 역시 내 삶의 일부입니다. 아름답게 만들어진 물건을 만나면 사용하거나 시각적 즐거움을 위해서 집으로 가지고 옵니다. 그것은 언어에 새로운 단어를 추가하는 것과 같은 활력을 주지요. 1991년 이 집에 처음 이사 왔을 때는 필요한 가구를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이 집의 첫 번째 거실 테이블은 탁구대였다. 친구들과 저녁을 먹은 후 식탁보를 치우고 탁구를 쳤다고 한다. 현재의 식탁은 그녀가 디자인한 브라질 화산석 소재다. 따뜻하면서도 화려한 형상이다. 샹탈 대표가 집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부분은 눈부신 햇살이다. 창밖으로 들어 오는 빛은 하루가 다르게 매일 변하고, 그녀는 거실에서 부엌으로 그리고 작업실로 이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모든 작품이 중요하다는 그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 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작품이 한 점 있기는 하다. 그녀는 갤러리스트가 되기 전 벨기에에서 중장비 자동차 회사의 비서로 일했다. 현대미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는데, 1972년 우연히 브뤼셀의 루이스 애비뉴에 있는 어떤 갤러리에 들어가게 됐다. 미국 미술가 만 레이의 작품에 매료된 그녀에게 그 갤러리스트는 상세한 설명을 해주었고, 작품을 소장하게 되었다. 이 특별한 경험을 계기로 그녀는 예술그룹 코브라 CoBrA와 미술가 크리스찬 도트레몽 Christian Dotremont에 대한 박사 학위 논문을 집필한 후 갤러리스트의 길을 걷게 되었다.
만 레이의 작품은 여전히 그녀의 집에 걸려 있어 영감이자 동기가 되어주고 있다. 만 레이의 작품은 그녀의 삶을 도전으로 이끌었고 답을 가져왔으며, 훨씬 더 많은 질문도 가져다 주었다. 만약 그때 그녀가 만 레이의 작품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그 갤러리스트가 친절하게 설명 해주지 않았더라면 현재는 어떻게 달라졌을지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그녀가 메가 갤러리들과의 경쟁에서 피에르 위그 Pierre Huyghe, 얀 보 Danh Vo, 볼프강 틸만스 Wolfgang Tillmans와 같은 위대한 예술가와 수십 년간 우정을 유지하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갤러리를 이끌어 왔는지 궁금해진다. 이는 아마도 갤러리의 슬로건이자 40주년 기념 책의 제목인 ‘놀이에 동참할 것을 맹세하시오 Jure-moi de Jouer’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모든 협업은 작가 그리고 고객과의 상호 신뢰와 성실한 관계를 기 반으로 합니다. ‘놀이에 동참할 것을 맹세하시오’라는 표현은 내가 공부하던 시절 멘토였던 벨기에 미술가 크리스찬 도트레몽이 눈 위에 썼던 문장입니다. 그 문장은 두 가지 모순된 개념의 조합이며, 유희와 서약을 의미합니다. 돌이켜보니, 이 개념이 인생 전반에 걸쳐 이어온 운명의 ‘빨간 실’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샹탈 대표는 이제 창립자로서 갤러리 외부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으며, 2020년부터 아들 니클라스 스베넝 Niklas Svennung이 갤러리를 이끌고 있다. 그녀는 새롭게 미술 컬렉션에 관심을 가진 젊은 세대를 위한 조언도 전해왔다. 미술품 수집을 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라는 것. 미술 작품은 우리가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살도록 도와줄 수 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지식이나 감정 없이 투자와 사회적 지위를 위해 예술 작품을 수집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러한 컬렉션은 어느 순간 무너질 것이며, 그녀와 같은 행복을 느끼기는 어렵다. “예술 작품은 우리의 눈, 마음, 감성을 열어줍니다. 겸손, 열린 마음 대립을 받아들이는 여유도 선사합니다.” 샹탈 대표는 미술 작품은 소중한 인연, 새로운 친구와의 만남으로도 이어진다고 예찬했다. 샹탈 대표는 우리도 그녀와 같은 즐거움을 경험해보기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