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정보기술, 가전 전시회 CES 2023의 하이라이트.
변화에 빠져들어라(Be in It)
지난 1월 5~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 2023은 축제의 장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에서 벗어나 3년 만에 100% 오프라인으로 행사가 진행되면서 11만5000여 명에 달하는 인파가 몰렸다. 참가 업체도 코로나19 이전 수준인 3100여 개에 달했다. CES는 글로벌 기술 트렌드를 바꾼 ‘게임 체인저’들이 첫선을 보이는 자리로 유명하다. CD 플레이어(1981년), 마우스(1986년), HD TV(1998년), 태블릿 PC(2010년), 스마트워치(2012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올해 행사에서도 ‘기술은 쉼 없이 진보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가전 분야는 ‘초연결’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삼성전자 세탁기와 LG전자 TV를 회사별 앱에 접속해 제어해야 했다. 글로벌 빅테크도 마찬가지다. 아마존의 알렉사, 구글 어시스턴트 등과 연동하는 제품이 따로 있었다. 올해부턴 상황이 바뀐다. 주요 기업들이 통합 스마트홈 IoT 표준인 ‘매터’를 적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구글과 아마존,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일제히 연결성을 강조하며 세상의 모든 제품이 하나로 연결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CES가 모터쇼를 방불케 하는 자동차 기술의 경연장이 된 것은 최근 몇 년간 계속된 흐름이다. 올해는 완성차 업체와 차량 부품업체는 물론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빅테크 기업까지 모빌리티를 화두로 내세웠다. 빅테크들은 자동차를 ‘움직이는 엔터테인먼트 기기’로 정의하고 이를 구동할 수 있는 솔루션과 소프트웨어를 공급하겠다고 설명했다.
오감을 자극하는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장비가 대거 등장한 점도 눈에 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부드럽게 휘는 갈대의 촉감, 배를 관통하는 총알의 충격, 화재 현장의 뜨거운 불길, 모닥불에 구운 마시멜로 냄새 등을 가상의 공간에서 구현했다는 게 참가 업체들의 공통된 설명이었다. 시각 일변도였던 VR·AR 시장이 한 단계 진화한 셈이다.
헬스케어 업체들은 ‘병원에 갈 필요가 없는 세상’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싱가포르 스타트업 애바이스헬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가 내놓은 동전 모양의 애바이스MD를 가슴 윗부분에 붙이고 기다리면 심박수, 호흡기 상태, 기도협착 여부 등이 수치로 표시된다. 의사는 앱에 자동으로 기록된 폐 소리의 데이터를 보고 전화 통화로 환자에게 치료법을 제시한다.
삼성전자, LG전자를 비롯한 주요 참가 업체들은 부스 안에 최신식 PC방 또는 오락실을 옮겨놓은 듯한 게임존을 마련했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게임 관련 시장이 급팽창했다는 점을 감안한 행보다. 제품군도 다양해졌다. 곡선으로 휜 게이밍 모니터를 필두로, 게이머 전용 의자와 소파, 콘솔 기기, 사운드 바 등이 전시장을 빼곡하게 채웠다. 3차원(3D) 안경이 필요 없는 노트북, 건전지가 필요 없는 리모컨, 선 없는 TV…. CES의 또 다른 키워드는 ‘뺄셈’이었다. 행사 참여 업체들은 기업이 그간 필수 요소로 여기던 부분을 과감하게 빼는 기술을 잇달아 선보였다. 가전제품에도 미니멀리즘이 대세가 됐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공통된 설명이다.
Part 1 생활 가전과 자동차
아침에는 노란 차, 저녁에는 파란 차
아침에 출근할 땐 상큼한 노란색 차를 타고 나갔다 퇴근 때는 분위기 있게 푸른색 차를 몰고 오면 어떨까. BMW가 공개한 ‘i 비전 디’는 이런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이 차는 외장 색상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카멜레온 카다. BMW는 2022년 CES에서 전자잉크 기술을 활용해 차량 색상을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또 검은색에서 흰색으로 바꾸는 기술을 공개했는데, 올해는 풀컬러로 업그레이드했다. 이 차는 헤드라이트와 그릴 형태를 바꿔 기쁨, 놀람 등의 표정까지 지을 수 있다.
안경 없이 구현한 3차원 세상
불편한 3차원(3D) 안경 없이 입체 영상을 즐길 수는 없을까. 대만 업체 에이수스가 내놓은 답은 ‘예스’다. 이 회사는 CES에서 세계 최초로 3D를 구현하는 OLED 디스플레이 기술 ‘에이수스 스페이셜 비전’을 선보였다. 노트북에 내장한 카메라가 사용자 눈의 움직임을 따라다니면서 조금씩 각도가 다른 3D 이미지를 제공한다. 화면 속 공룡이나 꿀벌을 사용자의 시야에 맞춰 다른 각도로 보여주기 때문에 화면이 바깥으로 튀어나온 것처럼 느껴진다.
도로 주행도, 하늘 비행도 OK
도로를 달리다 갑자기 차가 막히면? 날아가면 되지. 꽉 막힌 도로에서 한 번쯤 해봤을 상상이 현실이 되는 날이 머지않았다. 미국 모빌리티 스타트업 아스카는 도로와 하늘에서 모두 쓸 수 있는 공륙양용 차량 ‘A5’를 공개했다. 4인승이며 리튬이온 배터리와 가솔린을 동력원으로 쓴다. 지상에선 한 번 충전으로 최대 약 400km를 이동할 수 있다. 하늘로 올라가는 것도 어렵지 않다. 활주로 이륙뿐 아니라 수직 이착륙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걸음 하는 자동차
현대모비스는 전동화 기반 자율주행차 컨셉트 모델 ‘엠비전 TO’를 공개했다. 바퀴가 90도까지 꺾이기 때문에 게가 옆으로 걷는 듯한 ‘크랩 주행’이나 제자리에서 360도 회전하는 ‘제로 턴’ 등이 가능하다. 내부는 편안함을 추구한다. 접거나 회전이 가능한 좌석을 장착했다. 화물 운송 등 목적에 맞게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 폼펙터의 끝판왕
접혀 있는 디스플레이를 펼치고 오른쪽 화면을 당기면 스마트폰 크기의 제품이 태블릿 PC만하게 커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더 당기면 오른쪽으로 반 뼘 정도 추가로 늘어난다. 삼성디스플레이가 공개한 ‘플렉스 하이브리드’의 모습이다. 접었다 펴거나(폴더블), 늘리는(슬라이딩) 것 중 하나만 가능하던 디스플레이가 또 한번 진화한 제품이다. 사용 방법도 어렵지 않다. 공책을 펼치듯 디스플레이를 열고 화면 오른쪽 끝을 잡고 살며시 당기면 된다.
Part2 가정 용품과 인테리어
가상현실의 진화, 이제 촉각까지 재현
미국 기업 햅트X는 물체의 재질에 따라 달라지는 촉감을 구현한 VR 장갑을 선보였다. 이 장갑을 끼면 매끈하고 딱딱한 자동차와 부드럽고 휘는 갈대의 감촉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손가락은 물론 손등, 손바닥을 완전히 감싸는 135개의 ‘공기 방울’을 통해 세밀하게 촉각을 자극하는 게 이 기술의 핵심이다. 장갑 겉에는 장력이 있는 엑소스켈레톤(외골격 로봇)을 달아 무게와 저항까지 느껴진다.
“이 아보카도, 썩었습니다”
신선식품의 유통기한은 보이지 않는다. 싱싱해 보였던 딸기가 다음 날 물러버린다. 겉으로 멀쩡한 토마토도 잘라보면 너무 익어 맛이 없을 때가 있다. 네덜란드 푸드테크기업 원서드는 딸기와 아보카도 등 신선식품을 가져다 대면 AI로 데이터 분석해 얼마나 숙성됐는지를 알려주는 측정 기기를 선보였다. 슈퍼마켓 매대까지 갔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전선과의 전쟁은 끝났다
집 꾸미기에 관심이 많은 인테리어족 입장에서 TV는 ‘계륵’이다. 인테리어 가구와 견줘 디자인에 손색이 없는 TV 신제품이 출시되고 있지만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주변 기기와 TV를 연결하는 전선이다. LG전자가 공개한 ‘LG 시그니처 올레드 M’은 인테리어를 만족시키면서 TV에 대한 고민을 없애주는 제품이다. 97형 TV에 세계 최초로 무선 전송 솔루션을 적용했다. 전원 케이블을 제외한 모든 전선을 없애 TV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게 했다.
손은 떨려도 립스틱은 똑바로 발라야지
화장품을 많이 팔기 위해 로봇을 만드는 시대다. 로레알은 휴대용 로봇 메이크업 애플리케이터 ‘햅타’를 선보였다. 손 떨림이 심하거나 팔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사람도 안정적으로 립스틱과 마스카라 뚜껑을 열고 바르는 동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로레알이 함께 내놓은 가정용 디지털 눈썹 프린팅 디바이스인 ‘로레알 브로 매직’은 증강현실(AR)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눈썹을 그릴 수 있다.
전기 만드는 ‘태양의 나무’
미래에는 가로수가 전기를 생산하는 ‘미니 발전소’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일본 파나소닉은 태양전지를 나뭇잎처럼 만들어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나무를 CES 전시장 한가운데 설치했다. 잎사귀를 만드는 데 쓰인 재료가 페로브스카이트라는 점이 눈에 띈다. 페로브스카이트는 실리콘 태양전지를 대체할 차세대 신소재로 주목받는 물질이다. 가볍고 유연해 벽, 창문 등 어디에나 설치할 수 있다. 파나소닉이 보여준 것처럼 나뭇잎 모양으로 가공하는 것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