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의 유럽 명화
영국 내셔널갤러리가 소장한 유럽 명화가 한국을 찾았다. 당시 화가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 오늘날 우리가 서 있다.
보티첼리, 라파엘로, 렘브란트, 마네, 모네, 르누아르, 반 고흐 등은 미술사를 잘 알지 못해도 여기저기에서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다. 이름이 생소하다 해도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이나, 마네가 그린 ‘풀밭 위의 점심 식사’ 그림을 보면 모두가 아하(!) 한다. 시대를 대표했던 화가들, 현대까지도 끊임없이 회자되는 이름들, 우리는 이들을 거장이라 부른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영국 내셔널갤러리와 함께 전시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를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미술의 관심이 ‘종교와 신’에 집중되던 시대에서 ‘사람과 일상’에 대한 주제로 확장되어 가는 과정을 거장의 시선을 따라 조명한다.
첫 번째 섹션은 ‘르네상스, 사람 곁으로 온 신’이다. 르네상스 Renaissance는 다시 태어났다는 뜻이다. 14세기경, 사람들이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화가들은 다시 인간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기독교적 관념에 따라 추상적으로 신의 세계를 그렸다면, 이때부터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분석하고 관찰하여 그림에 담았다. 그들은 공간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수학을, 인체를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 해부학을, 영감을 얻으려고 고전을 탐구했다. 안정적인 구도와 적확한 대칭, 흔히 황금비율이라 일컫는 수법이 그림에 적용됐다.
라파엘로의 ‘성모자와 세례 요한’을 보면 성모와 아기 예수, 어린 세례 요한은 신이 아닌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머리 뒤 가느다란 후광이 없다면 성모자라는 것을 모를 정도다. 이들은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를 이루고 있으며, 배경은 완벽하게 대칭이다. 현실감을 더하려고 공기 원근법을 적용해 멀리 있는 풍경은 흐리게 표현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17세기 후반에는 계몽주의가 널리 퍼졌다. 이후 프랑스대혁명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점차 개인의 자유와 행복에 더 큰 관심을 두게 된다. 종교와 사상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기념하고 추억하는 그림이 활발하게 성행했다. 다시 한번 새로운 시대를 맞아 화가들의 시선은 개인의 삶으로 향했다. 카날레토가 그린 ‘베네치아 카나레조 입구’는 베네치아의 모습을 자세하고 정확하게 그린 풍경화다. 유럽의 부유한 엘리트들이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그랜드 투어가 유행했던 시기, 그들은 오늘날 여행 기념품으로 사진 엽서를 사듯 카날레토의 풍경화를 구입했다. 안토니 반 다이크의 ‘존 스튜어트와 버나드 스튜어트 형제’ 그림처럼 기념사진을 촬영하듯 초상화를 주문하기도 했다. 전시의 마지막 섹션은 ‘인상주의, 빛나는 순간’으로 19세기 후반 프랑스에 등장한 인상주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 시기엔 사진이 등장하면서 화가는 더 이상 대상을 그대로 묘사할 필요가 없어졌다.
또한 튜브 물감의 발명으로 야외 작업이 가능했던 시기다. 이제 화가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내면으로 시선을 옮긴 것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과 색채를 그리면서 점차 독창적인 구성이 드러났다. 빈센트 반 고흐의 ‘풀이 우거진 들판의 나비’는 두껍지만 경쾌함이 느껴지는 붓으로 초록색과 노란색, 보라색 물감으로 완성한 그림이다. 실재하는 풍경을 그렸지만 현실과 닮았다고 하기에는 화가의 개성이 강하게 반영됐다.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시간이 흐르면서 거장들의 시선은 점점 신에게서 사람으로 향했다. 화가들이 종교와 권위에서 눈을 뗀 순간 르네상스란 미술의 황금기가 시작됐다. 무엇보다 기득권만 누릴 수 있었던 미술이 평범한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예술로 변해갔다. 그 변화의 끝에 지금의 우리가 서 있다. 거장의 시선을 따라 예술이 오늘날 우리 곁으로 오기까지의 여정을 함께해보길. 전시는 10월 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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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istant editor
강성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