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각기 다른 존재가 모인 하나의 풍경이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드러내고 더불어 사는 삶을 은유한 강서경의 풍경 속으로.
풍경화를 감상할 때 느껴지는 경이가 있다. 서양의 풍경화는 화려한 색채와 사실적인 묘사로 대자연이 그려낸, 말 그대로 ‘그림 같은 풍경’ 앞에서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든다. 반면 동양의 풍경화, 그중에서도 산수화는 힘 있는 선과 여백의 깊이에서 대자연의 절제된 아름다움과 함축된 기운이 느껴져 입을 꾹 다물고 음미하게 한다. 강서경 작가는 전통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연구에 기반해 평면 회화를 시공간적 차원으로 확장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그리고 이번 전시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를 통해 전시장 전체를 한 폭의 수묵화로 탈바꿈시켰다.
시간의 흐름 가운데 변화하는 자연과 그 속에 함께하는 개인의 이야기가 공존하는, 거대하지만 섬세한 풍경이다. 전시 제목이자 신작의 영상 제목인 ‘버들 북 꾀꼬리’는 전통 가곡 <이수대엽 二數大葉>의 ‘버들은’을 참조한 것으로, 버드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꾀꼬리의 움직임과 소리를 풍경으로 읽어낸 선인들의 비유를 가져왔다. 그 풍경을 장식한 요소 하나하나를 살펴보면서 그녀가 만든 여백 사이를 거닐어본다. 진경 산수화는 상상과 이상에 기반한 풍경을 그린 관념 산수화와 달리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걸어보기도 한 실제 풍경을 그린 전통 풍경화다.
철, 실, 비단 등으로 구성된 ‘산’ 연작은 딱딱함과 부드러움, 채움과 비움이 공존하는 강서경 조각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신작이다. 작가는 따스한 봄볕의 색과 기운을 담은 봄 산, 싱그러운 푸르름을 뽐내는 여름 산, 암반과 단풍이 어우러진 가을 산, 백설의 미묘한 색과 반짝임을 포착한 겨울 산을 전시장 곳곳에 배치했다. 관람 동선에 따라 계절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산’ 연작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사계의 시간과 진경 산수화의 풍경을 몸소 느껴보도록 유도했다.
M2의 B1에 들어서면 바닥과 벽으로 ‘낮’과 ‘밤’이 펼쳐진다. 계절의 흐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산’ 연작처럼 자연의 순환 주기를 나타낸 작품이다. 빛과 어둠을 통해 하루의 순환을 상징했고, 두터운 물성을 지닌 카펫으로 시각화했다. 한편 바닥으로부터 낮게 떠 있는 모빌들이 빛에 반사된 윤곽을 드러내며 어두운 전시장을 수놓은 ‘산-아워스’는 알루미늄을 구부리고 표면을 두드려 만든 추상 작품이다. 산의 능선, 해와 달, 인간의 형상을 연상시키며 색을 반전한 한 폭의 수묵화처럼 전시장을 풍경으로 펼쳐 보인다. 전시장 중앙에 높이 매달린 모빌 형태의 작품 ‘귀’는 회화 매체를 공감각적으로 확장한 강서경 작품의 특징이 잘 드러난 신작이다. 마치 바람 소리, 새의 지저귐, 풍경 속을 거니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모두 감지하려는 듯 커다랗게 확대되어 있고, 보이지 않는 기류에 미세하게 반응하며 움직인다. 그 모양은 쌍을 이룬 귀가 하나로 붙은 것 같기도, 하늘에 떠 있는 구름 같기도 하다.
로비의 대형 미디어 월에서 펼쳐지는 신작 영상 ‘버들 북 꾀꼬리’는 전시 공간에 펼쳐놓은 작품들을 스크린 속으로 가져와 움직임과 소리를 더하고, 이를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으로 확장한다. ‘산’과 ‘산-아워스’, ‘귀’ 등 산수화의 산세를 떠올리게 하는 조각들이 한데 어우러져 검은 사각의 화면을 채우고, 작품들 사이사이를 뛰어다니는 어린아이와 지나가는 사람의 모습도 보인다. 이러한 움직임은 버드나무 사이를 날아가는 꾀꼬리 같기도, 첩첩산중을 휘감아 흐르는 구름을 닮기도 했다. 강서경은 사회 속 개인에게 허락된 자리, 나와 함께 사는 다른 이들의 존재, 그들과 더불어 관계 맺는 ‘진정한 풍경’을 늘 고민해왔다. 그리고 비로소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미술관에서 유기적으로 헤쳐 모인 각각의 작품들처럼 나와 너, 우리가 불균형과 갈등을 끊임없이 조율하며 온전한 서로를 이뤄가는 장을 제시했다. 전시장에서 풍경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그 사이사이 존재하는 여백을 직접 거닐어보면서 각자의 움직임과 그 움직임으로 연결된 관계를 생각해보자. 전시는 12월 31일까지.
자료제공: 리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