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기억을 깨우다
잠자고 있던 한옥이 새롭게 깨어났다. 설치미술가 양혜규의 작품으로 빈틈없이 채운 <동면 한옥>전의 면면.
반면 전시장 입구는 말끔하게 정리되어 비교적 익숙한 전시장을 떠올리게 한다. 또 한 가지 특별한 점은 작품을 비추는 그 흔한 핀 조명은 물론 천장 조명도 마다했다는 것.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토템 로봇(2010)’ 연작을 제외하면 전기 양초와 자연광이 전시장을 밝히는 빛의 전부다.
이번 전시는 유보적 휴면 상태에 놓여 있는 공간을 적극 활용한 덕분에 휴면에 접어든 상태이지만, 또 다른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잠재성 또한 느껴지는 양면의 매력을 지녔다. 다가오는 10월 8일 <동면 한옥>전은 막을 내리고 대대적인 공사에 돌입할 예정이다. 유보적 휴면 상태에서 벗어나 또 어떠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줄지 기대된다.
지난 2006년 8월, 인천의 한 민가에서 펼쳐진 양혜규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 <사동 30번지>를 기억하는가. 서해 연안 부두에 인접한 사동의 한 폐가에서 열린 지난 전시는 지금도 다수의 미술인에 의해 기억되고 회자된다.
수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장소인 터라 주변에는 쓰레기가 가득했고 전기와 수도도 끊긴 지 오래였다. 작가는 전시를 위해 거쳐야만 했던 기초적인 단계를 ‘청소한다’와 ‘전기를 연결한다’는 행위로 정립했다. 깨진 거울, 조명 기기, 벽시계, 종이접기로 만든 오브제, 형광 안료 등 작품이라 하기에는 미미한 다양한 요소가 성긴 구성을 이루며, 일반적인 전시 형태에서 벗어난 과감한 시도가 엿보였다.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듯한 전시가 국제갤러리의 한옥 전시관에서 펼쳐졌다.
<동면 한옥>전은 지난 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립된 환경에서 보다 어엿한 작품의 형태를 갖춘 작업을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뜯다 만 벽지, 깨진 벽돌, 옴푹 파인 벽면에 그대로 남아 있는 낙서, 시트지를 덧댄 에어컨 등 연출 방식은 여전히 <사동 30번지>와 많이 닮아 있다. 이 같은 장소성은 물론 시공 중인 한옥이라는 고유한 시간성은 켜켜이 쌓인 지난 시간과 더불어 과도기적 연상을 자아낸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제목으로 차용한 ‘동면’이 주는 느낌을 전시의 주된 테마로 선정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코끝을 스치는 한약재 냄새와 바닥에 흩어진 전기 양초들이 관객을 맞이한다. 어느 한 구석에는 방치되듯 작품들이 바닥에 놓여 있고, 또 다른 구석에는 저장용 항아리나 가마니를 보관해둔 창고처럼 작업물이 가득 들어차 있다. 비교적 협소한 공간이지만 규모가 큰 작가의 작품을 밀도 있게 배치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대들보가 있는 복도에 설치한 ‘중간 유형-서리 맞은 다산의 오발 이무기(2020)’ 작품은 마치 용이 되지 못한 하얀 이무기가 승천의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팔을 하늘로 뻗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