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
올해로 설립 230주년을 맞은 루브르 미술관의 온고지신 프로젝트에 주목해보자.
이우환 작가의 안내를 받으며 파리 루브르 미술관을 관람한다면 어떨까? 바로 이런 꿈같은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 루브르 미술관이 일곱 명의 현대 예술가를 초청하여 그들과 함께 주요 소장품을 둘러보는 투어 프로그램 ‘루브르의 대화’가 그것이다. 10월 14일 이우환 작가를 시작으로 12월 9일까지 2주 간격으로 카더 아티아, 다니엘 뷔렌, 줄리앙 크뢰제, 쉐일라 힉스, 시몬느 파탈,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에스터가 안내자로 나선다. 누구나 루브르 뮤지엄의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할 수 있는데, 참여 비용은 12유로, 미술관 50% 할인 입장료 9유로로 총 21유로(약 3만원)다.
미술관에 작가들의 작업 스튜디오를 제공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시작한다. ‘루브르 뮤지엄의 주인(Les Hôtes du Louvre)’이라는 본 프로젝트로 오는 12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작가들은 미술관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작업할 수 있다. 시작을 여는 두 작가는 앞서 소개한 미술관 투어에도 참여하는 카더 아티아와 엘리자베스 페이튼. 카더 아티아는 알제리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프랑스 출신의 작가로 파리 국립장식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를 중심으로 다문화적 성장 배경을 반영한 작업을 펼쳐왔다. 엘리자베스 페이튼은 미국 작가로 인물화를 통해 정치, 사회, 문화적 요소가 상호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이미지로 구현해낸다.
한편 10월 20일부터 22일까지 아트 바젤이 파리에 론칭한 ‘파리 플러스’ 기간에는 루브르 미술관의 앞뜰인 튈르리 공원에서 아트페어 장외 프로그램인 ‘다섯 번째 계절(La Cinquième Saison)’을 진행한다. 제목의 뉘앙스처럼 계절의 구분이 사라지고, 지구온난화 등 환경문제가 심각해진 오늘날 공원의 나무, 바위, 연못 등 자연의 요소에 주목하는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곳곳에 설치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여러 국적을 지닌 작가 26명의 작품을 찾아다니는 동안 관객들은 공원에서 동물과 식물을 만나고, 물이 흐르고 뿌리가 나오는 곳을 환기하게 된다. 튈르리 공원은 2025년 파리 올림픽의 중심지가 될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변화는 올해로 설립 230주년을 맞은 루브르 미술관이 끊임없이 새로워지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1793년 8월 10일, 프랑스혁명 이후 시민들에게 500여 점의 회화 작품을 바탕으로 문을 열었던 순간을 미술관의 공식적 시작으로 보는 것이다.
왕의 거처였다 미술관으로 변신한 루브르 미술관의 역사도 그러하지만, 프랑스야말로 전 세계 사람을 끌어들여 이를 자양분으로 흡수하며 문화 성장을 이룬 국가다. 스페인 출신의 피카소, 러시아 출신의 샤갈이 과거의 사례라면, 한국 출신의 이우환, 알제리 출신 부모님을 둔 카더 아티아, 스위스 바젤에서 시작하여 파리까지 진출한 아트 바젤은 이 시대의 대표적인 사례다. 프랑스는 글로벌 문화를 수용하되, 그것을 프랑스화하면서 자신들의 뿌리를 굳건하게 만들어야 세계 사람들이 파리를 찾는 이유가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이번 가을, 루브르 미술관의 ‘온고지신’ 프로젝트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끊임없이 재해석해서 풍부하게 만들고, 그럼으로써 미래의 문화를 키우는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