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츠에서 보낸 72시간 1

메츠에서 보낸 72시간 1

메츠에서 보낸 72시간 1
모젤 강을 사랑하는 예술 역사가 치아라 파리시와 함께한 72시간.

“이제는 강과 가깝지 않은 곳에서는 살 수 없을 거 같아요.” 로마 출신의 치아라 파리시는 테베르 강가에서 자랐다. 2019년 11월에 퐁피두-메츠 PompidouMets의 관장으로 지명된 예술 역사가 치아라는 모젤 Moselle 강 가까이에 새로운 터전을 잡고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메츠는 오랜 시간 군사 도시로 기능했고 13세기의 생테티엔 Saint-Etienne 성당으로도 유명하지만, 강을 따라 연결되는 항해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모젤 강은 메츠에서 여러 지류로 갈라지다 이내 세이유 Seille 강을 맞이한다. “물의 흐름을 따라 도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강이 구불구불 흘러 도심까지 이어진답니다!” 치아라의 물길을 따라가면 보자르 예술학교, 젊은 예술가의 작품이 걸린 갤러리, 오페라 극장, 쿠르 도르 박물관, 트레조 박물관 등에서 구현하는 ‘예술적 생동감’을 경험할 수 있다. “일상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장소가 이런 곳이에요. 메츠가 문화예술에 진심을 다하기 때문이죠.” 천 개의 얼굴을 지닌 도시, 기꺼이 축제 같은 분위기를 내는 이 도시는 이곳 프랑스 동쪽에서 피어나 여행자의 마음에 안착했다.

모젤 강이 띠처럼 도심을 두르고 있다. 강가에는 조깅할 수 있는 긴 둑이 이어진다.

퐁피두-메츠를 운영하는 치아라 파리시. 그녀는 전시뿐만 아니라 6월 말에 오픈한 정원도 함께 운영한다.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스포츠 정신이 가득한 학교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M-TISS

 

  “여기서 춤추고, 먹고…. 이곳은 언제나 저의 ‘카사’예요!” 세네갈 출신의 매니저 장 딥 엔두르는 삶의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그는 이 문학 카페에서 컨퍼런스를 조직하고 운영한다. “이곳에서는 ‘주고받는’ 만남을 해야 합니다.” 작가이기도 한 진정한 메츠인(人)이 이곳에 대해 설명한다.

ADD 16, rue de la Fontaine

 

L’HÔTEL DE FOUQUET

 

  이 객실보다 더 재미있는 장소가 있을까. 18세기에 지은 호텔이지만 활기 가득한 생-루이 광장에 자리한다. 벽에 색상을 더하고 디자인 가구를 놓아 실내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ADD 8, Place Saint-Louis

 

LE CLOÎTRE DES RÉCOLLETS

 

  “이곳의 정원을 좋아해요. 정원에는 약용 꽃이 100종 넘게 자라고 있어요. 살균, 소화, 소염, 혈관 강화 등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어요!”

ADD 1, rue des Recollets

“12월에도 메츠 사람들은 집 밖에서 살아요.”

 

LE BANDIÈRA DE ROBY

 

  “나무로 만든 1970년대 이탈리아 배에서 아페리티프를 마시며 이 도시를 유랑하는 기쁨이란!” 베네치아 선박에는 로비 라쿠초의 크리스털 유리잔이 늘 준비돼 있다.

ADD Quai des Regates

LA VILLA CAMOUFLE

 

  파비엔 제냉-움베르트는 뇌이유-쉬르-센 Neuillysur-Seine을 떠나 고향인 로렌으로 돌아와 20세기 초에 지은 이 빌라에 호텔을 만들었다. 아르데코 스테인드 글라스가 인상적이다.

ADD 13, Rempart Saint-Thiebault

 

FORMES ET COULEURS

 

  이 숍은 메츠에서 20년의 역사를 지녔다. 트렌디한 브랜드 셀렉션이 돋보이는데 그중 80%가 이탈리아 브랜드다.

ADD 9-1 1, rue du Lancieu

 

LE JARDIN BOTANIQUE

 

  100년 된 은행나무, 세쿼이아, 볼드 사이프러스가 자라는 4.4헥타르의 공원을 지나면 만날 수 있는 보태니컬 정원. 19세기의 온실에는 열대식물이 자란다. “이곳에서는 실보테라피 Sylvotherapy 수업도 받을 수 있어요.”

ADD 27 ter, rue du Pont-a-Mousson, Montigny-les-Metz

 

“메츠는 유럽은 물론 프랑스 역사의 한 부분이죠.”

 

LE 83

 

  “지중해 감성을 지닌 패밀리 레스토랑의 활기찬 분위기가 좋아요. 이곳에서는 친숙하고 정겨운 음식을 맛볼 수 있어요.” 요리사 제롬은 네그레스코 Negresco에서 니스를 거쳐 이곳에 자리 잡아 재능을 펼치고 있다.

ADD 83, rue Mazelle

CREDIT
editor 발레리 샤리에 Valerie Charier
photographer 루이즈 데노 Louise Desn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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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 위스키 한잔

가을밤, 위스키 한잔

가을밤, 위스키 한잔
깊어가는 가을밤에 특히 잘 어울리는 짙은 위스키. 음식부터 디저트까지 다양한 조합으로 즐기는 위스키의 매력에  빠져보길.

전통의 멋을 담은 위스키, 광화문 더 발베니 바

130여 년 전통을 지켜온 싱글 몰트 위스키 발베니의 두 번째 바가 오픈했다. 아시아에 단 두 곳뿐인 발베니 바인 데다 음식과 함께 즐기는 위스키 페어링을 선보여 더욱 기대되었다. 강렬한 향으로 식전주나 식주후로 마시는 위스키이지만, 음식과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소개하고 싶어 특별히 고심한 메뉴다. 먼저 위스키는 따뜻한 꿀과 바닐라의 풍미를 담은 발베니 더블우드 12년을 추천받았다. 부드럽게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맛으로 어떤 음식과도 페어링하기 좋다.
크로스티니 플레이트와 송훈 칵테일
광화문점에서만 만날 수 있는 시그니처 칵테일도 인상적이다. 발베니는 2021년부터 장인 정신의 가치를 소개하는 발베니 메이커스 캠페인을 진행 중인데, 올해의 주제인 한국 전통 악기에서 영감을 받은 칵테일을 선보인 것. 먼저 도자기 관악기인 송훈은 달항아리 잔과 생강 향으로 흙의 에너지를 표현했다. 발베니 더블우드 12년에 레몬 생강청을 더하고, 당귀 잎을 올려 산뜻한 흙의 향을 입혔다. 상큼한 향으로 어떤 음식과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장구는 칵테일 위에 올린 달고나를 깨먹는 방식으로, 전통 타악기인 장구의 매력을 고스란히 담았다. 달달한 맛으로 음식과 페어링하기보다는 디저트처럼 즐기기를 추천한다.
제주산 딱새우 아뇰로티
위스키와 함께 페어링할 음식으로는 크로스티니 플레이트와 제주산 딱새우 아뇰로티를 주문했다. 바삭하게 구운 작은 빵 위에 토핑을 올려 먹는 크로스티니는 버섯과 문어, 무화과가 각각 두 피스씩 제공된다. 다채로운 맛으로 위스키와 함께 곁들이기 좋았다. 아뇰로티는 딱새우가 들어간 라비올리, 그 위로 훈연한 리코타와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를 올렸다. 비스큐 소스에는 발베니를 넣어 부드러운 풍미를 더한 것이 특징. 크로스티니의 빵을 소스에 찍어 접시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세 가지 발베니와 함께 즐기는 푸드 페어링 세트도 준비되어 있다. 발베니 14년, 16년, 21년 각각의 특징에 맞춰 준비된 핑거 푸드로 비교하면서 맛을 즐길 수 있다. 향긋한 술 한잔이 생각날 때 다시 방문할 예정.

INSTAGRAM @balvenie_kr

MZ를 위한 위스키 바, 개나리 위스키 한남

위스키는 내게 쉽지 않은 술이다. 도수가 워낙 높기도 하지만 위스키 특유의 중후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다소 부담스럽달까. 신사동에 이어 한남동에 2호점을 오픈한 개나리 위스키는 위스키 전문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카페처럼 가벼운 분위기를 풍긴다.
탈리스커10년과 리얼 진저 하이볼
반면 위스키 리스트는 절대 가볍지 않은데 싱글 몰트, 버번, 테네시, 블랜디드, 아이리시, 재퍼니스 등으로 나뉜 리스트만 해도 대략 70여 종. 짐빔 소다나 진저 하이볼, 얼그레이 하이볼, 마가리타 하이볼 같은 기존 메뉴도 있지만, 모든 위스키의 온더록 가격에 1천원만 더하면 잘 어울리는 믹서를 더해 하이볼로 만들어준다는 점도 재미있다. 생강으로 직접 만든다는 리얼 진저 하이볼과 탈리스커 10년, 글렌피딕 12년, 러셀 10년을 한 잔씩 선택했다.   필수 주문이 아닌 터라 안주 종류는 많지 않은데, 아무래도 높은 도수의 위스키에 어울릴 법한 중식 베이스의 메뉴가 주를 이룬다. 시그니처인 양꼬치 탕수육과 개나리완탕, 무화과 플래터를 주문했다. 쯔란을 베이스로 해 향신료 내음이 물씬풍기는 양꼬치 탕수육은 맛있었지만, 메뉴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점이 내심 아쉬웠다. 들어갈 때만 해도 분명 텅 비어 있었는데, 8시가 넘어가자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MZ로 추정되는 젊은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요즘 위스키가 핫하다더니 정말이었네.  

INSTAGRAM @gaenari_hannam

어른을 위한 빙수, 신라호텔 더 라이브러리

곱게 간 우유 얼음에 망고를 듬뿍 올린 망고 빙수부터 멜론을 썰어 넣은 멜론 빙수, 여름철 갈증을 해소하는 수박 빙수까지. 이외에도 딸기 빙수, 샤인머스켓 빙수, 카이막 빙수 등 유명 호텔에서는 시즌마다 이색 빙수를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마치 유행처럼 자리 잡은 빙수 메뉴는 이제 호텔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가을에 웬 빙수 이야기냐 싶겠지만, 깊어가는 가을밤과 완벽한 조합을 자랑하는 빙수 메뉴가 새롭게 등장했다. 이름하여 빙스키. 빙수의 성지인 신라호텔에서 새롭게 내놓은 ‘허니콤 아포가토 빙수’에 위스키를 페어링한 메뉴다.
허니콤 아포가토 빙수
빙스키는 우유 얼음 위에 진한 지리산 벌집꿀을 통째로 올린 허니콤 아포가토 빙수에 글렌피딕 15년과 글렌리벳 15년 한 잔으로 구성된다. 큼지막한 벌집을 입안 가득 머금고 차가운 우유 얼음을 한입 넣자 두 눈이 절로 감겼다. 달달함이 초과됐을 즈음 코끝을 찡하게 울리는 위스키 한 모금은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줬다. 특히 향긋한 오렌지 껍질과 자몽 향을 머금은 글렌리벳 15년이 허니콤의 달콤함과 어우러졌던 기억.
글렌피딕 15년과 글렌리벳 15년
그리고 커피, 말차, 팥, 블루베리, 아이스크림, 쿠키 등 취향대로 빙수를 즐길 수 있는 곁들임 재료도 제공되어 먹는 재미를 더했다. 호텔 라운지 특유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만끽하며 맛본 달콤, 쌉싸래한 빙스키의 조합은 단연 빙수계에 새롭게 떠오르는 루키이지 않을까. 빙수 단품 가격은 6만8천원, 위스키 페어링 시 5만원의 추가 요금이 붙는다. 이외에도 취향에 따라 스파클링 와인 2잔 혹은 스위트 와인 2잔, 와인 한 병 중 택할 수 있다. 빙스키는 12월 시즌 메뉴인 딸기 빙수가 시작되기 전까지 진행된다고 하니 깊어가는 가을밤을 짙고 달콤하게 마무리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TEL 02-2230-3388

을지로 위스키 & 디저트 바 필로소피 라운지

그동안 위스키를 마실 때 달콤한 디저트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건, 멈출 수 없이 구미를 당기는 디저트의 매력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서울 을지로와 충무로 사이 구석진 골목길에 문을 연 위스키&디저트 바 ‘필로소피 라운지’도 그걸 잘 알고 있나 보다. 쑥 위스키, 밤 위스키, 백도 위스키 등 친숙한 재료를 인퓨징한 창작 위스키와 함께 어울리는 다채로운 디저트를 판매한다.

F&B 브랜딩 전문 회사 ‘현현’이 만든 곳이라 그런지 MZ들이 탐낼 만한 포토제닉한 인테리어도 눈에 띈다. 올리브 그린 컬러를 포인트로 한 공간은 호텔 라운지처럼 말쑥하다. 독립적으로 분리된 테이블과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는 편하게 들르기 좋다. 위스키 봉봉, 위스키 샌드 등 위스키에서 모티프를 따온 메뉴도 눈에 꽂힌다. 위스키 샌드는 부드러운 식감의 비스킷 안에 브랜디에 절인 체리와 칼루아가 더해져 한입에 위스키를 머금은 듯 독특한 향이 매력적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 등장해 궁금증을 더했던 위스키, 카발란 솔리스트 올로로소 셰리와 페어링하니 단맛이 자연스레 씻기며 진한 셰리의 달콤함이 남았다.
위스키 샌드
 
카발란 솔리스트 올로로소 셰리
미드나잇 파르페는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 요거트 젤라토 위에 버번 바닐라 시럽, 무화과가 담긴 독특한 조합이다. 필로소피 라운지의 시그니처인 마롱 쇼콜라 위스키를 곁들였는데, 위스키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밤 향이 신박하면서도 낯설다. 무화과와 밤, 위스키의 조합이라니. 익숙한 맛인데도 색다른 느낌이랄까. 개성 강한 피트 위스키도 디저트와 함께라면 잘 넘어간다. 짐 머레이의 ‘위스키 바이블 2010’에서 3위를 차지한 인도 피트 위스키 암룻 퓨전과 캐러멜 소스에 적신 버터 스카치 푸딩을 페어링하니 위스키가 친구를 제대로 만났다. 강한 요오드 향의 스파이스함이 발산되자 달달한 푸딩이 진가를 발휘한다. 피트 위스키가 부드러워지는 마법이다. 가을밤만큼 어울리는 안주가 더 있을까. 한잔에 뜨겁게 달아오르는 체온을 적당하게 식혀줄 쌀쌀한 날씨도 한몫한다. 그저 위스키 한 잔과 디저트 한 조각이면 충분할 뿐.
미드나잇 파르페

INSTAGRAM @pl_seou

CREDIT
포토그래퍼 원하영, 김민지, 원지은, 박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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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밤의 계절

솔밤의 계절

솔밤의 계절
24절기의 맛과 멋 그리고 따뜻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엄태준의 솔밤 이야기.
안심과 양송이로 만든 뒥셀을 넣어 말은 송화버섯과 브라운 버터에 볶은 꽃송이버섯. 곤드레 장아찌와 참죽나물을 올리고 양지와 버섯 베이스 소스를 함께 곁들였다.
  태양이 떠 있는 각도에 따라 1년을 나눈 24절기.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부터 씨를 뿌리기 시작하는 망종, 일교차가 커지는 처서, 겨울 큰 추위가 오는 대한까지, 우리 옛 선조는 절기마다 삼면을 둘러싼 바다와 산, 들에서 난 제철 식재료로 음식을 해먹었다. ‘한식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1년이 걸린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이유.  
크림으로 만든 바바로아 소스 위에 캐비어와 단새우를 레몬 제스트와 함께 곁들인 메뉴. 위에는 대파와 파프리카 컬, 딜꽃을 올리고 직접 구운 크래커를 함께 냈다.
 
미술관에서 영감을 받은 깔끔한 분위기의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20살에 상경한 뒤 호텔에서 중식 요리사로 4년간 일하던 엄태준 셰프는 27살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미국 CIA 유학길에 다시 올랐다. 기본기부터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치열한 생활을 이어갔다. 한국으로 돌아와 프렌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임프레션에서 일했지만, 그의 가슴 한 켠에는 늘 한식이 있었다.  
솔밤을 이끄는 엄태준 오너 셰프.
  임프레션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오랜 기간에 걸쳐 솔밤의 모습을 차곡차곡 그려 나갔다. 인테리어는 좋아하는 미술관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핀 조명을 맞춘 테이블에 계절에 맞게 변화하는 음식을 작품처럼 내고, 손님들이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그 모습을 꿈꿨다. 레스토랑 이름은 달빛에 비치는 소나무가 아름다운 곳을 뜻하는 안동의 옛 지명이자 그의 고향인 솔밤으로 지었다. 코로나19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오픈 11개월 만에 미쉐린 가이드에서 1개의 별을 받았다. 3년 차를 맞이한 지금, 솔밤의 예약은 하늘의 별 따기다.  
홀에서 바라본 키친의 모습.
  “무식하면 용감하다고들 하잖아요. 좋은 재료로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면 누가 몰라주겠냐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 레스토랑을 할 거면, 한식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애호박과 건새우는 예부터 전해내려온 조합이잖아요. 저는 뿌리에 맞게 발전해온 그런 음식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하는 거죠.”  
칼을 좋아해 2년씩 기다려서 받기도 한다는 엄태준 셰프. 터키석 손잡이 칼은 천재 제작자라 불리는 일본 쿠로사키가 만든 제품이다.
  코리안 컨템포러리에 속하는 솔밤은 계절과 절기에 입각한 한국 식재료에 대한 연구와 이해는 물론 한국적인 요리 테크닉을 바탕으로 동시대를 담아내는 현대적 요리를 선보인다는 평을 받는다. 엄태준 셰프는 레스토랑이 쉬는 날에도 통영의 합자장 명인 등 사라져가는 한식을 공부하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선다. 솔밤은 약 13코스로 이루어진 디너만 영업하는데, 물 흘러가듯 튀지 않는 요리와 흐름의 연계성을 중시하는 엄태준 셰프의 철학 때문이다.  
메추리 가슴살 안에 트러플 필링을 넣은 메뉴.
  “수익 측 면을 보면 런치도 영업을 하는 게 맞아요. 일반적으로 런치는 디너를 쇼트 버전으로 만들어서 선보이는데, 그럼 아무래도 더 자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마치 영화의 예고편처럼요. 저는 아직 제가 의도한 바를 그 짧은 시간에 매력적으로 표현해내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제 능력으로는 모든 테이블을 섬세하게 케어할 수 있는 숫자도 25명 이하라 예약도 그렇게만 받고 있어요.”  
솔밤은 총 9개의 테이블이 있다. 섬세한 케어를 위해 25명 이하의 예약을 받는다.
  엄태준 셰프는 코스가 끝난 뒤의 시간까지도 섬세하게 신경 쓰는데, 코스 시작 전에 고른 원목 젓가락과 함께 스콘, 잼을 싸주는 이유. 다음 날 아침과 각자의 일상에서도 문득 솔밤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고안한 선물인 것이다.  
손님 테이블 앞까지 서빙하는 바 트롤리. 엄태준 셰프가 직접 고안한 것이다.
  극장에 한 편의 영화를 올리기 위해서는 수많은 이름이 필요하다.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 투자자, 배급사 직원, 배우, 잠시 스쳐 지나간 단역까지.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뿐 누구 하나 중요하지 않은 이름은 없다. 파인다이닝 주방의 업무도 매일 영화 한 편을 만들어 올리는 일에 가깝다. 엄태준 셰프는 솔밤이 이렇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좋은 팀원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 말한다. 코스가 끝나갈 즈음 메뉴와 함께 19명의 이름이 써 있는 엔딩 크레딧을 손님상에 올리는데, QR코드를 통해 각자의 역할과 그들의 스토리를 상세하게 읽어볼 수 있다.  
식사 전 손님들에게 고르게 하는 8종의 원목 젓가락.
  “솔밤이 엄태준의 서사가 되길 바라진 않아요. 그러면 엄태준이라는 한계치만큼만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제 자식 같긴 하지만, 자식이 제가 되길 바라지는 않잖아요. 단지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는 하나의 세계관인 거죠. 이곳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에너지와 서비스, 음식에 대한 마음이 느껴진다면 그게 바로 파인 아트가 아닐까 싶어요.”
CREDIT
에디터

포토그래퍼 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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