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의 뉴 코리안 프렌치
더 그린테이블 14주년을 맞은 김은희 셰프가 공간 사옥에서 또 한번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파인다이닝의 오너 셰프로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루 종일 좁고 뜨거운 주방에서 많은 스태프를 진두지휘해야 하는 것은 물론, 메뉴의 특성상 날카로운 긴장 상태를 늘 유지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고된 이 업계를 오래 버티는 여성 셰프가 그래서 더욱 드물다. 더 그린테이블의 김은희 셰프는 그 드문 이들 중 하나다.
올해로 14년 차를 맞이한 그는 셰프로는 다소 늦은 20대 중반에 요리계에 입문해 누구보다 열정 가득한 길을 걸었다. 머리가 하얗게 셀 만큼 바빴던, 미국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서 보낸 3년이 10년 같았다고 말하는 이유다. 2009년 방배동에 더 그린테이블을 처음 오픈했을 당시, 그는 제철 식재료를 사용한 자연주의 프렌치 셰프로 주목받았다. 방배동에서 7년을 보내고 옮긴 압구정에서는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0>의 미쉐린 플레이트로 선정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압구정에서 7년째를 맞이한 2023년,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또다시 레스토랑 이전 기회가 찾아왔다.
“사실 올해 특별한 이전 계획은 없었어요. 다만 압구정이 요즘 젊은 친구들이 즐겨 찾는 동네가 되면서 그린테이블 분위기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던 와중에 주방에서 늘 내려다보던 대추나무가 베여서 사라진 거예요. 그 나무 때문에 이사했는데 말이죠! 그 순간 아, 이제 이사를 갈 때가 되었구나 싶었어요. 마침 지금 같은 건물에 있는 합 신용일 셰프님이 원서동에 자리한 이곳을 소개해주신 거예요. 한식 공간이 있던 자리인데 2년간 비어 있었다고요.”
김은희 셰프의 요리에서 식재료에 대한 탐구는 늘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다. 요리를 시작할 때부터 제철 식재료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 농장을 누볐고, 경동시장을 제 집 드나들 듯 다녔다. 식재료의 가짓수도 점차 늘어나 샐러드에만 최소 30종이 넘는 채소를 사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용하고 남은 채소로 장아찌와 피클, 청을 담그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발효에 관심이 생겼다.
“우리 땅에서 나는 식재료를 따라가다 보니 결국 한식이었어요. 그 세계를 조금이나마 알고 나서야 제 스스로 얼마나 부족한지 깨달았어요. 8년 전부터 사찰 요리부터 궁중 요리까지 본격적으로 한식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다 보니 음식이 점점 변하더라고요. 2년 전쯤에야 비로소 제가 평생 하고 싶은 요리를 찾았어요. 몸과 마음이 편한 코리안 프렌치. 쉽게 말해 밸런스가 좋고 소화도 잘돼서 다음 날 일어났을 때 개운한 음식이요.”
은은한 수묵화 같은 음식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메뉴는 사실 압구정 시절부터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한식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콩피 같은 프렌치 테크닉이 숨어 있고, 반대로 프렌치스러운 분위기가 풍기는 메뉴에는 한식 고조리서에서 영감을 받은 조리법이 숨어 있는 그런 메뉴가 주를 이뤘다. 그가 이름 붙인 코리안 프렌치는 아직 컨템포러리 카테고리에 가깝지만 재퍼니즈 프렌치처럼 언젠가 하나의 분야로 인정받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원서동에 자리한 더 그린테이블에 앉으면 병풍처럼 에워싼 유리창 너머로 계절의 변화와 창덕궁 뷰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1970년대 한국 현대 문화 예술사를 썼다고 평가받는 1세대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인 공간사옥. 바로 옆에는 아라리오 뮤지엄이 자리하고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가 배가된다. “삼면이 창이라 의외로 인테리어를 손댈 부분이 많지 않았어요. 엔알디자인팩토리 김나리 소장님께 부탁드려 한국적인 분위기의 가구를 짜 넣고, 기물을 채워 넣었어요. 제가 창덕궁 멍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는데, 낮 풍경이 정말 황홀해요. 밤에는 마치 우주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니까요. 손님들도 이 기분을 누려보셨으면 해요.”
김은희 셰프는 10여 년 전부터 국내 도예 작가의 식기를 사용해왔다. 예쁜 접시를 발견하면 작가를 찾기 위해 수소문도 서슴지 않았다. 당시 프렌치 레스토랑에서는 흔치 않은 선택이었지만, 손님들이 식사하는 동안 음식과 기물의 아름다움으로 위안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 이사할 때마다 점차 줄어드는 주방의 사이즈도 결국 손님을 향한 마음의 결과다.
“셰프는 연예인 같기도 하고 예술가 같기도 한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누군가가 찾아와주길 기다리면서 끊임없이 정진해야 하거든요. 며칠 전에 직원에게 ‘셰프님은 아직도 주방에서 일할 때 행복해 보인다’는 말을 들었어요. 물론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정말 많았지만, 본인의 의지대로 꾸준히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무엇인가 단단해져 있는 게 우리 삶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