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현대사진의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사진가 구본창. 그의 대규모 개인전인 <구본창의 항해>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독일 함부르크 국립조형예술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1985년 귀국한 구본창. 그는 당시 스트레이트 사진(인위적인 변형을 시도하지 아니한 사진)이 지배적이던 한국 사진에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었다. 사회적 사건의 기록이나 실제 대상을 피사체로 삼기보다 자신의 내적 의지에 따라 감성을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사진작가 8인을 선정해 1988년 워커힐미술관에서 <사진·새시좌(視座)>를 선보였다.
이때 출품된 작품들이 한국 사진계와 미술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사진이 객관적 기록이라는 전통적 역할을 뛰어넘어 회화, 조각, 판화 등 다양한 매체의 속성을 반영해 주관적 표현이 가능한 예술 세계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 그 이후로 꾸준히 자아에 대한 탐색과 더불어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실험적인 작품을 지속했던 그의 작업은 아버지 죽음을 계기로 ‘자연의 순환’을 주제로 한 고요하고 정갈한 아름다움을 응축한 모습으로 변화했다. 이 외에도 평소 그가 지닌 오래된 사물에 관한 관심은 전통 문화 유산의 재발견과 탐구로 연결되었다. 탈, 조선백자, 곱돌 공예품, 지화 등 사물이 품고 있는 삶의 흔적을 담은 시리즈로 이어졌다. 또한 구본창은 사진작가뿐만 아니라 넓은 시야를 가진 기획자로 활동하며 한국 근현대 사진작가들을 발굴·소개하는 역할을 해냈다. 이는 구본창이 현재까지 한국 사진의 세계화에 선구적으로 기여한 작가로 평가되고 있는 이유다.
서울시립미술관은 2024년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개관을 앞두고 한국 현대사진뿐 아니라 동시대 미술을 대표하는 구본창의 회고전 <구본창의 항해>를 연다. 당시 ‘연출 사진’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한국 사진계를 뒤흔든 <사진·새시좌(視座)>에 출품된 <탈의기> 등 40점을 포함한다. 그리고 구본창이 지금까지 활동한 전 시기 작품과 작가·기획자로 활동하면서 수집해온 자료를 총망라한다. 내성적이고 섬세한 기질을 지닌 소년 시절부터 현재까지 수집해온 사물과 이를 촬영한 작품, 중학생 때 제작한 최초의 작품 <자화상 1968>을 포함한 사진과 대학생 때 명화를 모사한 습작 등 그동안 접하기 어려웠던 작품과 자료를 선보이는 ‘호기심의 방’으로 시작된다. 이어 작가가 유학 시절부터 제작한 <초기 유럽 1979-1985> 시리즈부터 최근의 <익명자>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선별한 43개 시리즈 작품 500여 점과 자료 600여 점을 시기와 주제에 따라 ‘모험의 여정’, ‘하나의 세계’, ‘영혼의 사원’이라는 부제 아래 전시한다.
이 외에도 도시 풍경을 스냅 형식으로 담은 작품, 자신을 피사체로 삼아 다양하게 변주한 작품, 자연을 추상적으로 형상화한 작품, 오래된 사물이 지닌 손길과 시간을 섬세하게 담은 작품 등 다양한 소재와 형식의 작품을 폭넓게 선보인다. 1979년 용기 내어 자신의 길을 찾아 먼 항해를 떠난 후 4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구본창 작가의 일대기 같은 작품들을 감상하며 우리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 전시는 오는 3월 10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1, 2층 전시실에서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