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끊임없이 반복되는 소멸과 재탄생에 주목한 세 작가의 단체전이 열린다.
단체전의 매력은 하나의 주제로 묶인 공간 속 각기 다른 재료와 물성이 공존한다는 점이다. 2023년 금속공예가 강웅기와 미디어 아티스트 홍성철의 2인전 <유연한 공존>을 기획한 팀 플로우 Flow가 두 번째 전시를 연다. 갤러리를 벗어난 공간에서 다양한 시점으로 작품을 볼 수 있도록 독창적 전시 기획을 하는 팀이다. 플로우의 이성희 큐레이터가 기획한 이번 전시 이름은 <The New Olds>. 박지현, 지누박, 황혜선 세 작가는 오래전부터 소멸과 재탄생, 그 안의 에너지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보냈다. 끊임없이 소멸하고, 또다시 새롭게 탄생하는 재생 과정은 그들에게 중요한 모티브이자 원동력이 됐다. 사라지는 것 속에서 발견한 각기 다른 존재의 가치는 회화와 조각, 설치물을 통해 관람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다. 이번 전시는 더북컴퍼니 토브홀에서 2024년 1월 5일부터 30일까지 열린다.
ADD 서울시 강남구 봉은사로 226 더북컴퍼니 빌딩 지하 2층 토브홀
도무송에서 발견한 특별함, 박지현
이전에 메종과 인연이 있으시죠?
2년 전 메종과 인터뷰했는데, 그때가 그동안 진행해온 작업과 생각을 정리하는 시점이었습니다. 메종 인터뷰가 제게는 새로운 시작이 된 셈인 것 같습니다. 이후 입체적 방향으로 작업을 확장하면서 바쁜 2년을 보냈습니다.
이번 전시에 도무송 시리즈를 선보이신다고요.
도무송은 인쇄 과정 중 특별한 형태나 평면의 인쇄물을 입체로 재단할 때 사용하는 고유한 칼판입니다. 저는 소임을 다한 도무송을 해체한 후 재조립하며 색을 더해 재조명합니다. 특별하기 때문에 다시 쓰이지 못하고 사라지는 존재를 다시 특별하게 존재하게끔 하는 작업이죠. 아트 자카르타에서 처음 시도한 여러 겹의 평면 톰슨 시리즈 신작도 보여드릴 계획입니다.
쓸모없게 된 도무송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 작업실은 인쇄소 골목에 있습니다. 인쇄에 필요한 공정이 골목 여기저기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이죠. 예를 들어 종이가게에서 종이를 옆 인쇄소에 넘기면 인쇄 후 옆 재단소에 갖다주고, 재단된 인쇄물은 그 옆에서 표지를 만드는 식입니다. 아침이 시작되면 마감 시간까지 그 누구도 멈추어 있는 사람이나 사물이 없습니다. 그 분주한 움직임 속에 고즈넉이 쌓여 있는 도무송 목형을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에서 주인공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이리저리 스치는 장면 같았죠.
지속 가능성은 예술계에서도 큰 화두죠. 작가님은 작가노트에 환경적 문제를 담은 작품들과는 다르다는 말을 하셨어요.
제 작업은 ‘다시쓰기’보다는 ‘다시보기’에 더 중점을 둡니다. 본래 의미와 기능을 재해석해서 시각화하는 작업을 이어왔습니다. 일방적으로 주어진 명칭과 의미를 전환시켜 색다른 시각으로 표현하는 식입니다.
도무송 위에 레진을 입히는데, 색감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지난 개인전에서 특별히 한 섹션을 박물관의 보석이나 유물 전시관처럼 연출한 적이 있습니다. 도무송이라는 특별한 존재가 들려줄 이야기에 집중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소 건축, 패션, 디자인 등 거의 모든 분야에 눈과 귀를 열어두고 있습니다.
자료제공 플로우
회화에서 찾은 시간의 흐름, 지누박
작가님은 회화와 가구, 조명까지 작품 세계를 꾸준히 넓혀가고 있는데요.
드문 경우이긴 합니다만, 회화 작업과 별개로 다양한 디자인 작업을 해왔습니다. 늘어뜨린 전선으로 만든 스파게티 샹들리에, 루이 비통 백을 패러디하고 펜디와 협업한 페이크 백, 다양한 호텔의 공간 디자인과 브랜딩. 그 외에도 현대카드, 삼성전자와 다양한 아티스트 컬래버레이션한 작품 등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장르를 가르지 않는 모든 표현 영역에 관심이 다양합니다.
나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결과물보다는 아이러니한 현대예술의 개념에 대한 질문을 하는 작가가 맞을 것 같습니다. 많은 분이 제 작업을 회화 작품이라기보다는 개념 예술로 이해해주고 계시거든요. 저도 그쪽에 포커스를 두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본성에는 버려진 무언가를 작품으로 살려내고 싶은 의지는 항상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작품 세계는 버려진 캔버스에서 출발했지요.
항상 어딘가에 버려진 물건에 대한 애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워낙 일상 주변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많았지만, 요즘 같이 과잉 생산되고 소비되는 시대에 길 한쪽에 버려진 물건들은 재활용을 떠나 왠지 애잔함이 느껴져요. 길가에 내버려진 가구나 물건을 보면 “저 아이는 어떤 팔자를 타고 났기에 저곳에 있을까?” 하며 마치 사주팔자를 타고난 사람처럼 그 삶이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술을 하고 살고 있겠죠.
이번 전시 작품에 대해 소개해주십시요.
전체 전시 주제인 ‘소멸과 재탄생’에 맞춰 하나의 독립된 작품보다는 여러 그림이 레이어된 작품을 준비 중입니다. 멈춰버린 시간의 연결 속에서 새로운 시간의 흐름을 만드는 것이죠. 물론 신작과 이전 작품이 하나의 맥락 안에서 함께 전시될 겁니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조화도 중요하고요.
관객들이 이번 전시를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요?
기획자와 작가들의 노력만큼 관객들에게도 신선한 경험이 되었으면 합니다. 요즘처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다양한 미디어에 둘러싸인 시대에 전시를 보며 잠시라도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기 바랍니다. 내면에 잠자고 있던 상상력이 자극될 수 있는 경험이 될 수 있도록 말이죠.
2024년에는 어떤 계획이 있는가요?
현재 저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지만, 2024년은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하는 것이 제 계획입니다.
드로잉 조각의 일상, 황혜선
조각과 드로잉을 접목한 ‘드로잉 조각’이 생경했어요.
드로잉 조각은 공간과 빛을 만나 찰나가 영원으로 각인되는 작업 과정을 보여줍니다. 제 작품은 그려지는 순간부터 걸리는 장소, 빛과 그림자까지 모두 하나의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간을 매스나 양감을 통해 극적으로 채우지 않지만 공간 안에 숨쉬듯 존재하죠.
조각이 굉장히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모습을 띠는 것 같아요. 일상의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일상에서 마주친 순간, 스쳐 지나가는 사람, 기억 속 어디엔가 있었을 법한 사물, 우리의 삶 속에서 슬며시 잊히고 말 순간을 작품으로 기억하려 합니다.
이번 전시를 위해 과거의 아카이브를 다시금 끄집어내셨다고요.
전시장에 왔다가 전시장 근처를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바쁜 발걸음과 대조적으로 시선은 핸드폰에 고정되어 있는 모습에서 정지된 삶(Still-life)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이것을 이전 작품과 연결해서 작업하면 어떨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신작에 대해 소개해주시죠.
얇은 자작나무 합판에 음각으로 그린 드로잉 12장을 합쳐서 부피를 만들어냈습니다. 또 다른 형식의 드로잉-조각이라 할 수 있죠. 제 이전 작업인 ‘Still-Life’처럼 받침대 위에 정물을 세워 표현했습니다.
이분법적 경계 위에 있기를 희망한다는 작가노트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어떤 결론으로 짓는 형태나 의미이기보다는 경계 위에서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 작품 활동을 하고 싶다는 작가적 바람입니다.
관객들이 이번 전시를 보고 어떻게 느꼈으면 하시나요?
우리 일상에서 늘 스쳐 지나가는 주변 사람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나 자신의 모습도 발견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