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풍경

내면의 풍경

내면의 풍경

캔버스 표면을 문지르고 물감을 흡수시키는 과정을 반복하며 묵은 감정을 해소한다. 최윤희 작가의 캔버스는 매일의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오는 6월에 있을 전시 준비 중인 최윤희 작가의 작업실.

오래된 기억이 불현듯 떠오를 때가 있다. 차마 말하지 못한 문장, 잠시 잊고 있던 묵은 감정이 우리 몸 어딘가에 존재하다 갑작스레 존재감을 드러낸다. 최윤희 작가는 이러한 내면의 감정에 귀를 기울인다. 우리 안에 있지만 표현하지 않은 것, 혹은 표출되지 못한 감정이 어떤 형태로 남아있을지 궁금했다.

지갤러리에서 황수연 작가와 함께 선보인 2인전 <두꺼운 피부> 전경.

“나를 이루는 다양한 존재,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이 갔어요. 다양한 감정, 소리, 호흡이 오가는 순간도 보이지는 않지만 저의 내면에 어떤 형태로 남아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 흔적을 추적해가는 여정을 표현한 거죠.” 지난겨울, 지갤러리에서 선보인 2인전 <두꺼운 피부>에서 그는 내면의 풍경을 수많은 레이어와 깊은 입체감으로 표현했다. 비정형적으로 흐르는 반투명한 얼룩과 엉킨 실타래 같은 가느다란 선은 이리저리 뒤섞이며 압축된 시간을 담은 신체의 풍경이 된다.

최윤희 작가는 캔버스 위에 다양한 색의 물감을 덧발라 얇은 레이어를 만들며 작업한다.

최윤희 작가는 캔버스 위에 다양한 색의 물감을 덧발라 얇은 레이어를 만들며 작업한다.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표현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단순히 물감을 발라 질감을 살리기보다는 캔버스에 온전히 스며드는 것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마치 감정을 소화시키는 과정과 닮았다. “물감이 잘 흡수될 수 있도록 캔버스부터 가공해요. 얇게 바르다 보니 천이 가지고 있는 성질이 두드러지더라고요. 그 위로 표면이 매끄러워질 때까지 물감을 문지르며 채워나가요.”

이 과정에서 물감은 본래 색을 드러내기보다 캔버스에 얇게 스며들며 변한다. 물감이 마르면 그 위로 또 다른 물감을 올린다. 색이 섞이면서 또 다른 풍경이 만들어지기를 기다린다. 오랜 시간이 지나 물감의 자국만 남은 듯한 형상을 비춘다. 때로는 문장이나 단어를 그림의 어딘가에 메모한다. 물감으로 덮여 관객에게 전달되지는 않지만 작업 과정에서 떠오르는 감정을 자연스레 해소하는 방법이다. 오래된 감정 위로 또 다른 기억이 채워지듯 켜켜이 쌓인 물감은 깊은 내면을 바라보게끔 한다.

스케치를 벽면에 붙여놓은 작업실.

“스케줄이 일정하지 않은 직업이다 보니 나 자신의 루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매일 아침 작업실로 출근해 작업을 하죠. 오래 붙잡고 있기보다 짧더라도 매일 꾸준히 작업하기로 결심했어요.” 최윤희 작가의 일상은 그의 작품과 닮아 있었다. 한 겹씩 문지르는 과정을 반복해 하나의 풍경을 완성하듯, 매일 똑같은 하루를 지구력 있게 꾸준히 채워나간다. 그리고 새롭게 발견되는 의외의 순간을 기다린다.

내면의 감정을 그려내는 최윤희 작가.

요즘은 오는 6월에 있을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는데, 길이 6m의 대형 캔버스에 작업을 한다. 기존 작업한 것 중 가장 큰 규모인데, 가능한 한 내면 감정을 가장 크게 펼쳐내려 한 듯하다. “매일의 시간을 그리는 데에 중점을 뒀어요. 감정이든 작업이든 물고 늘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 과정 자체가 자연스레 녹아 있는 작품을 그려나가고 싶어요.”

SPECIAL GIFT

최윤희 작가에게 증정한 끌레드뽀 보떼의 더 세럼은 피부 본연의 힘을 일깨워 생기 있고 매끄러운 피부를 완성시켜 준다. 또한 피부에 고르게 퍼지고 빠르게 흡수되어 24시간 보습 효과를 유지시킨 후 피부 길을 열어 다음 단계 제품의 흡수를 높여준다. 50mL, 3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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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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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 루부탱의 포르투갈 부티크 호텔

크리스찬 루부탱의 포르투갈 부티크 호텔

크리스찬 루부탱의 포르투갈 부티크 호텔

패션 디자이너 크리스찬 루부탱이 자신의 취향을 오롯이 담은 호텔을 오픈했다. 스틸레토 힐의 아찔한 매력만큼이나 매혹적인 하룻밤을 선물하는 베르멜호 멜리데스 호텔.

커다란 금장 장식품과 매혹적인 레드 컬러 타일이 강렬한 몰입감을 준다.

12년 전, 포르투갈 리스본 남부의 작은 마을 멜리데스 Melides에 별장을 구입한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크리스찬 루부탱 Christian Louboutin. 완벽한 풍경과 따스한 햇볕이 드는 몽환적 분위기에 매료된 그에게 딱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하며 느긋한 저녁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이 없다는 것. 여러 건물을 물색하던 그는 마을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집을 찾았고, 그곳에 레스토랑을 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멜리데스 시장이 나타나 호텔 오픈을 제안해 마침내 지금의 베르멜호 Vermelho 멜리데스 호텔이 탄생했다. 호텔 이름인 베르멜호는 포르투갈어로 붉은색을 뜻하며 그의 시그니처 디자인인 매혹적인 빨간색 구두 밑창의 의미를 담아 이름 지었다.

은은한 푸른빛을 내는 벽 색감과 클래식한 창틀 장식의 만남으로 이국적인 풍경이 완성됐다.

삼각형 지붕을 받치고 있는 두 기둥은 조각가 주세페 두크로트가 디자인한 것.

은은한 푸른빛을 내는 벽 색감과 클래식한 창틀 장식의 만남으로 이국적인 풍경이 완성됐다.

루부탱은 건축가 마달레나 카이아두 Madalena Caiado, 텍스타일 디자이너 캐롤리나 어빙 Carolina Irving과 함께 호텔을 설계했다. 작은 마을 속 비밀스럽게 자리하고 있었기에 로컬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호텔을 짓고 싶었다. 빈티지스러운 푸른 벽면과 테라코타 타일의 지붕, 클래식한 창문틀, 굴뚝 등 현지 건축양식에서 볼 수 있는 디테일을 차용해 외관을 설계했다. 그 덕분에 수백 년 역사가 깃든 수도원의 모습을 연상케한다.

서로 다른 소재와 색감, 유니크한 디자인을 입은 가구와 소품이 어우러져 시각적 풍요로움을 안긴다.

크리스찬 루부탱이 디자인한 빨간색 구두 밑창을 연상케 하는 매혹적인 분위기의 라운지.

조개껍데기 문양의 트롱프뢰유 벽화와 여성스러운 라운지체어가 조화를 이룬 복도.

베르멜호 멜리데스는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13개 객실과 스파, 레스토랑을 갖추고 있다. 호텔 내부는 모두 루부탱이 경매에서 낙찰받거나 여행 중 수집한 보물들로 가득하다. 스페인 전통 가구 브랜드 바르구에뇨 Bargueño의 클래식한 캐비닛과 프랑스 인테리어 디자이너 앙리 사무엘 Henri Samuel의 아름다운 자수가 수놓인 벨벳 소파 등 이색적인 가구와 소품들을 호텔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다. 또 주니어 스위트룸 벽에는 그리스 아티스트 콘스탄틴 카카니아스 Konstantin Kakanias가 그린 바다 풍경의 벽화를 감상할 수 있다.

블루 컬러를 포인트로 한 객실.

유명 조경사 루이 베테크의 손길이 닿은 수영장이 딸린 정원.

기하학적 패턴이 새겨진 타일로 마감한 욕실.

바다 풍경 벽화가 그려진 주니어 스위트룸.

수영장 딸린 정원은 베르사유 정원을 조경한 유명 조경사이자 루부탱의 오랜 친구인 루이 베테크 Louis Benech가 맡아 솜씨를 발휘했다. 감귤나무, 갈대, 수풀 등 코끝을 향기롭게 스치는 이국적인 식물을 가득 심었다. 마치 크리스찬 루부탱의 비밀스러운 휴양지를 방문한 듯한 설렘을 안기는 베르멜호 멜리데스에서의 여름 휴가를 꿈꿔본다.

ADD R, Dr. Evaristo Sousa Gago 2, 7570-635 Melides, Portugal
TEL +351 915 280 511
WEB www.vermelhohot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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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호주에 가야 하는 이유

겨울, 호주에 가야 하는 이유

겨울, 호주에 가야 하는 이유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에서 열리는 트리엔날레의 화제작들이 당신을 기다린다.

AI 로봇을 활용한 아그니에즈카 필랏의 전시 장면. © Sean Fennessy

호주가 점점 현대미술의 새로운 스팟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를 견인하는 행사는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트리엔날레(NGV Tiennale)다. ‘동시대 미술의 강력하고 역동적인 스냅샷’을 추구한다는 기치 아래, 현재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17년 쿠사마 야요이의 대형 설치 작품, 론 뮤엑의 대형 해골 조각 99개 등 슈퍼 스타 작가들과 함께 화려하게 시작을 열었다. 2020년 한층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아쉽게도 팬데믹으로 관광 수혜는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화제작인 레픽 아나돌의 대형 미디어 작품은 온라인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지난해 뉴욕현대미술관 로비에 연중 내내 설치되기도 했다.

대형 색실 덩어리 설치로 주목받은 쉐일라 힉스의 작품. © Sean Fennessy

지난해 12월, 세 번째 행사를 맞아 ‘마법, 물질, 기억’이라는 테마에 맞춰 30여 개국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를 120여 명 초청해서 100여 개의 한층 다채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면면도 화려한데, 그들 중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도 꽤 있다. 리움 미술관에서 전시한 덕분에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바나나 작품, 올가을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대규모 전시가 예정된 엘렘그린&드라그셋, 스페이스K에서 개인전을 연 라이언 갠더 등이 그 예다. 그 외에도 올가을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 회고전을 앞두고 있는 오노 요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대형 색실 덩어리 설치로 주목받은 쉐일라 힉스, 거대한 흑인 조각으로 세계 미술계의 신예 스타로 떠오른 토마스 J 프라이스, 로코코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스타일로 미술시장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플로라 유코노비치, 그리고 한국 작가 유귀미 등이 있다.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외벽에 설치한 오노 요코의 작품. © Sean Fennessy

참여 작품 중 상당수는 이미 선보인 것이지만, 멜버른 관람객과 소통하며 새로운 해석을 더할 것으로 기대된다. 가령 관람객 참여를 전제로 한 영국 작가 데이비드 슈리글리의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전시장 벽에는 테니스 공 8000개가 줄 맞춰 전시되어 있는데, 관람객은 자신의 테니스 공을 가져와서 벽에 전시된 새 테니스 공으로 교체해갈 수 있다. 이 프로젝트를 런던에서 선보였을 때, 작가는 관람객이 낡은 공을 가져와서 새 공으로 바꿔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관람객 대부분이 자신의 테니스 공에 그림을 그리거나 작품화해 새 공으로 교환해갔다. 그들이 원한 것은 자신의 ‘작품’을 유명 갤러리에 전시할 ‘기회’였던 것이다.

라이언 갠더의 설치 작품 <끝>. © Mark Blower

미술관의 의뢰로 새롭게 제작된 작품도 있다. 폴란드 출신의 아그니에즈카 필랏의 작품인데, 머리는 없고 네 다리가 있는 로봇이다. 로봇은 집과 같은 공간을 자유롭게 다니며 그림을 그린다. AI 기세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때이니만큼 관람객에게서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기대를 모은다.

올해 새롭게 더해진 행사는 1월 19일부터 28일까지 약 열흘간 진행되는 ‘트리엔날레 엑스트라’다. 미술관이 매일 밤 11시까지 야간 개장을 하며, 샴페인과 DJ가 함께하는 아티스트의 퍼포먼스와 공연, 토크를 진행한다. 야간 프로그램이 현대미술에 아직 낯선 일반 성인이나 직장인 등을 타깃으로 준비했다면, 주말 혹은 낮 시간을 선호하는 패밀리 관람객을 위해선 장 줄리앙과 함께 별도의 어린이 존을 구성했다. 게다가 모든 프로그램은 무료. 오는 4월까지 전시를 진행하므로 그 시기에 맞춰 호주 방문 기회를 노려보거나, 아예 2026년 12월 말, 10주년을 맞이하는 제4회 트리엔날레를 보며 호주에서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계획을 세우면 좋을 것이다.

데이비드 슈리글리의 테니스 공 설치 전시 전경.

사진제공: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Melbour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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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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