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에서 올해 첫 전시로 김홍석 개인전을 선보인다. 작품을 통해 날카로운 위트를 담아내는 김홍석의 예술 세계 이야기.
<하이힐 한 켤레> 2012. © 안천호
김홍석 작가는 개인전 <실패를 목적으로 한 정상적 질서> 소개문에서 “이번 전시에서는 내 작품이 존재하는 공간이 지하 쇼핑몰 또는 한적한 지하철 역과 별다를 바 없기를 바란다. 즉 미술이 특수하거나 특별하다고 느끼는 감상자의 마음에 균열을 내는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평소 그의 작품 세계를 아는 이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먼저 그에 대해 소개하면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를 거쳐 현재 상명대 무대미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 작가는 1980년대 정치적 상황과 독일의 인종차별을 겪으며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현상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고, 그 시선은 지금의 작품에까지 가 닿았다.
국제갤러리에 설치한 김홍석 개인전 <실패를 목적으로 한 정상적 질서> 전경. © 안천호
국제갤러리에 설치한 김홍석 개인전 <실패를 목적으로 한 정상적 질서> 전경. © 안천호
작품에는 서구 우월주의에 대한 반감부터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등이 담겨 있다. 그의 작품은 현재 미국 휴스턴 미술관과 캐나다 국립미술관, 호주 퀸즐랜드 미술관, 일본 구마모토 미술관,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을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서 그가 던진 화두는 ‘뒤엉킴’이다. K2에 놓인 작품에서는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보편적 질서와 개념들이 해체돼 엉켜 있다. 하이힐 높이의 돌 위에 올려진 슬리퍼는 존재의 가치를 상실하고, 조커의 얼굴을 한 고양이는 조커가 고양이 털옷을 입은 것인지 고양이가 조커의 탈을 쓴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또한 실제로 무거워야 하는 돌멩이는 레진으로 가볍게, 실제로 가벼워야 하는 카펫은 브론즈로 아무 무겁게 만들어놓았다. 이는 실재와 허구, 정상과 비정상, 옳고 그름에 대한 경계를 허물며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진정한 현대성, 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는 완전한 자유로움에 도달한다.
〈실재 악당〉 2024. © 안천호
K2 2층에서는 동양화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을 깬 회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동양 미술을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그가 한지 대신 캔버스에, 먹 대신 아크릴을 사용해 사군자를 그린 것. 연꽃과 대나무, 잡목은 단지 회화의 화면 구성을 위해 선택된 주제일 뿐 동양의 군자 정신으로 추앙받던 고고한 의미는 잃어버린 지 오래다.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은은하게 흘러 나오는 배경음악도 작가가 의도한 하나의 장치다. 브리티시 블루스 음악을 통해 갤러리를 고급스러운 공간이라는 이미지 대신 쇼핑몰 같은 단순한 공공 공간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Tension II (Homage to Qi Baishi)〉 2024. © 안천호
이어지는 K3 전시장에서 관람객은 천장을 뚫고 바닥에 떨어진 듯한 거대 운석 덩어리를 마주하게 된다. 운석 덩어리 안에는 모두가 ‘별’이라고 부르기로 합의한 두 개의 물체가 박혀 있다. 하늘에서는 별이라고 불리던 운석이 현재는 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그 안에는 별이라 불리는 뾰족한 모양의 표상이 박혀 있는 모습에서 우리는 실재와 해석의 개념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보게 된다. 전시는 국제갤러리에서 2월 1일부터 3월 3일까지.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