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대표하는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메르시의 CEO 아서 거비가 <메종>을 초대했다. 진정한 파리지앵의 철학과 그가 예찬하는 삶의 예술은 메르시 매장과 아파트 ‘르 피에 아 테르’ 곳곳에 아름답게 스며들어 있었다. 5일간 직접 머무르며 온몸으로 경험한 메르시에서의 시간.
파리 마레 지구에 위치한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메르시. 이곳의 마스코트와도 같은 빨간 빈티지 자동차가 방문객을 반긴다.
14년 전, 파리 마레 지구에 문을 연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메르시. 이제는 메르시의 마스코트와 같은 존재로 여겨지는 이 빨간 자동차를 처음 본 때를 상기시켜 보니 10년 전쯤 되는 것 같다. 그때와 같은 모습으로 마레 지구를 우두커니 지키고 있는 메르시는 여전히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파리에 가면 꼭 들러야 하는 작은 명소처럼 말이다. 내게는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던 메르시를 다시 찾아 이곳의 CEO 아서 거비 Arthur Gerbi를 만났다. 메르시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단순히 물건을 사러 온다는 의식보다는 삶과 일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고 싶다는 아서 거비. 일상을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세운 메르시만의 독특한 전략과 철학에 대해 들어봤다.
파리 시내에 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자연 풍광이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메르시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메르시는 ‘어떻게 하면 일상 생활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합니다. 사람을 존중하고, 집, 라이프스타일, 예술적 삶을 돌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와비사비 Wabi-sabi’와의 조화를 기반으로 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갑니다. 단순히 브랜드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자연스럽게 감동시키는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소비를 촉진하는 역할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침 햇살을 만끽하며 커피 한잔의 여유를 갖기 더없이 좋은 메르시의 북카페.
진정한 파리지앵이 무엇인지 가감 없이 보여준 메르시의 CEO 아서 거비.
10년이 지나도 변치 않은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메르시만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특별한 전략이 있나요?
메르시는 파리의 본모습을 빠르게 체험할 수 있도록 관광객이 아닌 파리지앵을 대상으로 합니다. 파리의 많은 상점이 대부분 관광객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의 정반대 전략을 내세우고 있는 겁니다. 메르시는 변치 않는 타임리스를 지향합니다. 계속해서 바뀌는 환경 속에서도 우리만의 가치를 보존하며, 이를 통해 세상을 앞서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특별한 마케팅을 내세우지 않는 이유도 그러한 맥락에서인가요?
메르시는 마케팅이 개인마다 가진 정체성을 부정하고 일관된 모습을 강요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대에 적응하려는 노력은 꾸준히 이어가지만 동시에 개인의 특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패션 스토어처럼 운영하고 있지 않습니다. 메르시는 패션에 관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케팅을 하지 않습니다. 매일 연구하는 유일한 주제는 ‘어떻게 하면 일상 생활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까’입니다.
메르시의 시그니처 제품과 같은 에코백. 에코백 하나쯤은 필수로 구입해야 한다.
가구와
조명, 테이블웨어를 비롯한 각종 패브릭 제품과 의류까지 만나볼 수 있다.
상품을 큐레이션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메르시에는 정말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좋은 품질의 브랜드와 함께 영속적인 제품을 제안함으로써 환경을 고려한 소비를 장려합니다. 코트 하나를 사더라도 사계절 입을 수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지금 입고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과소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구매하여 오랫동안 사용하는 것입니다. 메르시는 그러한 가치를 중시합니다.
예를 들면 지속 가능성과 환경을 고려한 제품은 어떤 것이 있나요?
메르시는 빈티지 제품을 꾸준히 제안해왔습니다. 환경을 고려한 소비와 함께 영속적인 제품을 제안하고 킨츠키 같은 수리 기술을 활용하여 빈티지 제품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속 가능성은 우리가 지닌 중요한 가치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가구와 조명, 테이블웨어를 비롯한 각종 패브릭 제품과 의류까지 만나볼 수 있다.
가구와 조명, 테이블웨어를 비롯한 각종 패브릭 제품과 의류까지 만나볼 수 있다.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1층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돔 형식의 높은 둥근 지붕이 있는 1층은 매장 내 가장 영향력 있는 공간입니다. 메르시 팀의 공동 아이디어를 통해 전시가 기획되며, 전시는 보통 1~2개월 정도 진행됩니다. 각 전시마다 그 분위기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공간 구성에 노력을 기울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사진전 ‘파시피크 Pacifique’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프래그런스 브랜드 로라 제임스 하퍼의 파운더인 라미 멕다치 Rami Mekdachi의 사진전입니다. 그는 메르시의 친구이자 캔들과 향수 컬렉션을 만든 주인공이며 아이코닉한 장소를 촬영하는 사진가로도 유명합니다. ‘파시피크’전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유쾌하게 만드는 요소들에 관한 전시입니다. 태평양 연안에서 직접 공수한 음악, 향기, 이미지와 에너지를 통해 기쁨과 영감이 넘치는 여정을 담았습니다. 그와의 협업은 마치 한겨울 속 파리에 비추는 한 줄기 햇살처럼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였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사진 전시 ‘파시피크’. 프래그런스 브랜드 로라 제임스 하퍼의 파운더인 라미 멕다치의 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사진 전시 ‘파시피크’. 프래그런스 브랜드 로라 제임스 하퍼의 파운더인 라미 멕다치의 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메종>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어떤 테이블 위에 어떻게 식기를 차려놓아야 할지, 어느 자리에 컵을 놓아야 할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 바랍니다. 어느 일본 작가의 말처럼 서랍을 비우고 최소한의 옷만 유지해보세요. 이러한 과정에 시간을 투자하다 보면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일요일에 시장에 가서 꽃을 사고, 토마토를 사는 일은 큰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이것이 우리가 전하고 싶은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핵심 가치입니다. 삶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기 위해 아파트를 꾸미는 시간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러한 단순하고 신중한 행동이 분명 기쁨과 만족을 줄 것이라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결국 삶의 예술은 복잡한 것이 아니니까요.
현재 진행 중인 사진 전시 ‘파시피크’. 프래그런스 브랜드 로라 제임스 하퍼의 파운더인 라미 멕다치의 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
르 피에 아 테르에서 보낸
파리지앵 라이프
모자를 닮은 황금빛 제르바소니 조명이 거실의 중심을 잡고 있다.
어두운 올리브 색으로
마감한 복도와 현관.
어두운 올리브 색으로
마감한 복도와 현관.
19세기 후반, 정확히 1870년에 지어진 이 아파트는 보존을 위한 일부 수리만 이뤄졌을 뿐 단 한 번도 공사한 적이 없다. 마치 멈춰 있는 타임캡슐처럼 말이다. 놀라운 역사를 품은 115㎡의 ‘르 피에 아 테르 Le Pied à-terre’ 아파트는 메르시만의 큐레이션을 통해 완성된 새로운 놀이터다. 곳곳에 역사적 유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곳은 뜻밖의 행운을 마주하듯 욕실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벽난로, 선반 등이 대부분 온전한 상태로 유지되어 있었다. 주방 바닥에 깔린 300개의 테라코타 타일 또한 당시 모습 그대로다. 일부 손상되거나 유실된 곳은 콘크리트를 메워 보완했지만 분명 본래 모습이다. 이는 메르시가 고집한 두 가지 주요 컨셉트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
19세기 건축 양식과 현대적인 가구가 조화를 이룬 다이닝.
편안함과 아늑함을 중심으로 완성한 침실. 1950년대 빈티지 옷장을 침대 헤드보드로 활용한 점이 재미있다.
첫째, 본래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며 그 고유함을 강조할 것. 예외의 경우 현대적이고 창의적인 솔루션을 찾아 이를 보완했다. 둘째, 그 과정에서 복제품이나 모조품, 혹은 위조품을 사용하는 것은 절대로 배제시킨다. 메르시만의 디자인 철학은 단단하고 견고한 일관된 철학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아서 거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이 바로 메르시의 본질입니다. 르 피에 아 테르 아파트는 메르시의 정신을 쉽게 표현하는 방법이었을 뿐이에요. 많은 사람이 매장에 들어와서 구경하지만, 그들은 아마 그 뒤에 숨어 있는 본질을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이 아파트는 메르시가 무엇인지를 경험하고, 이를 통해 우리의 본질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거실에서 바라본 침실 뷰.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따사롭다.
아서 거비가 직접
일본에서 구입해온 빈티지 흔들의자.
이 아파트에서 한 가지 재미있었던 기억은, 19세기에 지어졌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사용성을 고려한 구조와 숨어 있는 수납이었다. 내부 벽면 곳곳에 장이 숨겨져 있었는데, 마치 보물찾기하듯 하나씩 열어본 기억이 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수납 공간을 설계해 사용성과 미적 아름다움을 모두 만족시켰다. 거실은 블랙&화이트, 다이닝은 짙은 청록&우드, 올리브 색상으로 물들인 복도 등 공간마다 색상의 변주를 준 점도 재미있었다. 또 이곳을 채우고 있는 가구와 조명, 작은 소품 하나까지에서 메르시가 내세우는 삶의 예술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걸을 때마다 삐그덕 소리를 내던 원목 바닥과 코끝을 감싸는 차가운 기운이 익숙해질 즈음 서울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아침 햇살을 듬뿍 머금은 거실에서 마신 커피 한잔의 여유가 너무나 그립다.
1870년대에 사용된 스테인드글라스를 그대로 살린 욕실.
테라코타 타일 색상에 맞춰 레드 컬러로 장식한 빈티지 감성의 주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