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술계가 주목하기 시작한 한국 아트의 현재와 가까운 미래를 조망해본다.
한류 흐름이 가장 늦게 도착했다는 미술. 다행히 빠른 속도로 세계 미술계의 주요 현장 곳곳에서 한국 미술가들의 활동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2023년 가을, <뉴욕타임스>는 미국 미술관 5곳에서 한국 미술 전시회가 열리고 있음을 대서특필했다. 먼저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린 1960~70년대 한국 아방가르드미술(LA 해머미술관 순회), 필라델피아미술관에서 1989년 이후 한국의 현대미술전시, 샌디에이고미술관에서 한국화의 색 의미를 소개하는 전시,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개관 25주년 기념 전시, 12세기부터 현대미술에 이르는
한국 미술품 컬렉션 하이라이트 전시, 마지막으로 덴버미술관의 분청사기 특별전 등 전시회는 대부분 올해까지 연결되어 진행 중이다. 사실 이러한 흐름은 뒤늦게 한류에 올라타려는 취지라기보다, 수년 전부터 기획된 전시를 이제서야 무대에 올린 것이다. 통상 전시 준비기간은 다른 장르에 비해 더 많은 시간과 예산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다만, 한류에 대한 관심 덕분에 관계자들의 오랜 노력이 비로소 제대로 주목받게 된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전시회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은 새로운 예술의 자양분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이 흐름이 유럽과 중동에서 터질 모양새다. 먼저 김수자 작가가 부르스 드 코메르스 미술관으로부터 ‘백지위임장(Carte Blance)’를 받았다. 이 것은 미술관에서 작가에게 전권을 부여한다는 존중의 의미로 쓰이는 표현인데, 파리의 기메 아시아미술관에서 2015년 이배 작가를 초청해 미술관 4층 원형홀을 내어줄 때에도 붙인 이름이다. 2021년 개관한 부르스 드 코메르스 미술관은 15세기부터 존재하며 증·개축을 거듭하다 1889년 증권거래소로 확립된 건축을 안도 타다오가 리노베이션한 것으로 유명하다. 둥근 돔형 천장 아래 화려한 역사화가 복원되었고, 유리로 된 중앙부에서는 실내에 자연광을 드리워 공간 속에 빛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김수자 작가는 가로 29m에 달하는 원형홀, 로툰다(Rotunda)의 바닥을 거울로 덮었다. 거울에는 천장의 벽화와 유리창, 그리고 그 모두를 관찰하는 나와 다른 관람자들의 신체가 반영된다. 높이 50여m의 공간은 반사 효과 덕분에 무한대로 확장되며, 우리 시선을 끝도 없는 먼 곳으로 쭉 늘어뜨리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전시는 즉각 전 세계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기 시작했는데, 아마 23년 갤러리 라파이예트 백화점에서 열린 그녀의 설치 작품을 기억하는 관객들이 많을 것이다. 부르스 드 코메르스 미술관처럼 천장이 유리 돔으로 덮인 백화점 중앙홀을 활용했는데, 유리창에 빛을 반사시키는 특수필름을 붙여 건물 내부에 오로라가 피어오르는 듯한 환경을 만들어냈다.
카타르 도하에서는 디자인 비엔날레를 개최하며, 국립미술관 앞에 최병훈 작가의 벤치 작품을 영구 설치했다. 실제 의자 기능을 하지만, 멀리서 보면 마치 한국의 산수 풍경을 담은 동양화처럼 보이는 작품이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는 오는 9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이불 작가가 건물 외벽에 대형 작품을 선보인다. 또한 9월에는 키아프와 프리즈 아트페어가 동시에 열리는 시기인데, 광주 비엔날레와 부산 비엔날레가 함께 열려 세계 미술계가 다시 한 번 한국을 주목할 듯하다. 너무 진부한 표현이지만,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것은 작은 국토를 가진 우리의 숙명이다. 이제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문화를 수출하는 시기로, 깊은 뿌리를 지닌 한국의 아트 콘텐츠가 세계 문화와 교류하며 좀 더 크고 아름다운 열매 맺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