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꿈

인형의 꿈

인형의 꿈

도자 인형의 오묘한 표정으로 이질적이면서도 생경한 감각을 일깨우는 최지원 작가. 그의 그림은 언제나 단숨에 몰입하게 되는 긴장감이 존재한다.

상하이에서 선보일 신작 준비 중인 작업실 전경.

무표정한 도자 인형이 저 멀리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인형 뒤 블라인드 사이로 푸르스름한 빛이 새어나오며 매끄러운 표면의 얼굴을 비춘다.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새벽녘이 떠오른다. ‘포세린 돌’을 중심으로 독특한 구성과 색감을 선보이는 최지원 작가의 그림은 언제나 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도자기라는 소재부터 살펴보자. 단단한 표면을 가졌지만 한편으로는 순식간에 깨져버릴 수 있는 한없이 연약한 존재. 소재의 이중적인 면모가 이질적이면서도 생소한 감각을 자아낸다. 작가는 순간적인 몰입을 선사하는 긴장감에 주목한다. 잠시 숨을 멈추고 그림을 바라보게 되는 순간, 작가의 도자 인형은 또 다른 생명을 얻는다. “지금까지 그려온 작업들을 아울러 보면 ‘생명이 없는 대상’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사람의 형상을 한 인형이나 생명을 빼닮은 모조품들이요. 제 대표 작업인 포세린 돌도 마찬가지고요. 개인적인 감각과 경험을 생명이 없는 존재를 경유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나만의 방식으로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죠.”

Ready, Set, Go(2024), oil on canvas, 112.1×145.5cm.

반질거리는 도자 인형의 표면과 빈티지한 소품이 두드러지는 최지원 작가의 그림.

멈춰버린 순간 The Paused Moment(2023), oil on canvas, 162.1×227.3cm.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 개인전을 진행한 그는 최근 아트페어 ‘아트 오앤오 Art OnO’와 상하이 ‘백스테이지 아트 Backstage Art’에서 선보일 신작을 준비 중이다. 작업실에 들어서니 커다란 캔버스에 푸른 벨벳 커튼이 넘실거렸다. 상하이에서 선보일 작품인데, 오래된 극장 뒤편에 마련된 아트 스페이스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극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감정과 구조적 특징을 표현하고자 커튼을 좀 더 적극적으로 등장시켰다. “평소에 이미지 수집을 많이 해요.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면들이요. 간략한 드로잉 스케치와 함께 포토샵 콜라주로 먼저 이미지 구상을 합니다. 보여주고 싶은 분위기를 위해 인형의 자세와 시선, 입고 있는 옷, 전체적인 구도, 색감 등 계획적으로 고민해요. 작업할 때는 빠르고 직관적이에요. 순간적인 몰입감이 정말 즐겁죠.” 작업 구상을 마친 후, 캔버스에 도자 인형의 표면을 빚어낸다. 얇은 레이어를 쌓아 올리는 순간이 마치 생명 없는 대상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나의 색에서 뻗어나가는 톤온톤 색 조합을 즐겨 사용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한 프레임이 하나의 빛을 발산하는 느낌인데, 그만이 주는 강렬한 에너지를 즐긴다. 텍스처를 섬세히 표현하는 만큼, 같은 색이어도 재질과 광택의 유무에 따라 다른 색으로 비춰지는 과정이 매력적이었다.

도자 인형을 중심으로 감각적인 평면 회화를 선보이는 최지원 작가.

도자 인형과 어우러진 소재들도 흥미롭다. 최지원 작가는 인형 너머의 공간을 점차 확장하고 있다. 도자 인형의 미끄러질 듯한 질감에 매료되고 무감각하고 공허한 표정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인형이 놓이는 ‘방’에 대해 고민 중이다. 빈티지한 색감과 화려한 패턴의 옷, 벽시계, 블라인드, 최근 작업에서 볼 수 있는 실크와 벨벳 소재의 드레스 등 그가 자주 사용하는 소재들은 일상적인 듯해 보이지만 비현실적인 감각을 일깨운다. 오랜 과거의 시간이 느껴져서일까. 작가에게는 유년시절의 추억을 환기시켜 주는 소재이며, 긴장감과 자극을 주는 요소다. “어릴 때 학교나 친척집에는 꼭 뻐꾸기 시계나 괘종시계가 있었잖아요. 정각마다 울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 시계 아래에서 기다린 기억이 있어요. 커다랗게 궁서체로 쓰인 ‘축 발전’ 같은 텍스트도 흥미로웠고요. 저는 의외로 과거의 것에 관심이 많아요. 그런 요소들을 재미있게 회화 안으로 가지고 오는 것 같아요.” 정교한 계획으로 구상된 ‘방’은 생동감이 넘치는 일반적인 방이라기보다 진공 상태의 공간처럼 느껴진다. 똑딱이는 벽시계의 울림처럼 귀기울이게 되고, 방 안으로 미세하게 드는 빛을 주목하게 만든다. 잠시 숨을 멈추고 몰입하게 되는 긴장감. 우리는 순간의 긴장 뒤에 따라올 해방감을 안다. 강렬한 첫인상 뒤에 여운을 주는 최지원 작가의 그림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SPECIAL GIFT
최지원 작가에게 증정한 끌레드뽀 보떼의 더 세럼은 피부 본연의 힘을 일깨워 생기 있고 매끄러운 피부를 완성시켜 준다. 또한 피부에 고르게 퍼지고 빠르게 흡수되어 24시간 보습 효과를 유지시킨 후 피부 길을 열어 다음 단계 제품의 흡수를 높여준다. 50mL, 3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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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포토그래퍼

이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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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Asia’s 50 Best Restaurants

2024 Asia’s 50 Best Restaurants

2024 Asia’s 50 Best Restaurants

방콕, 마카오, 싱가포르에 이어 마침내 올해의 메인 스테이지로 선정된 한국. K-팝에서 시작된 열기가 K-미식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었던 2024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시상식 현장을 소개한다.

서울에서 열린 2024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어워드의 뜨거웠던 현장.

시상식 전후로 글로벌 관계자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부대 행사가 열렸다.

지속 가능한 미식을 탐색하는 교류의 장, 아시아 50 베스트

K-미식 역사를 새로 쓴 2024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어워드가 올해 서울에서 개최됐다. 셰프, 미디어를 포함해 관계자만 2000명 넘게 한국을 방문한 이번 행사는 미식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영국의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의 아시아 버전이다. 지난 3월 26일 오후 6시,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그랜드볼룸의 F&B 부스가 순식간에 모두 찼다. 네트워킹 리셉션을 위해 국내 톱 셰프들이 참여한 미식 부스와 스폰서 주류 업체의 스페셜 음료를 경험하기 위해 빠르게 입장한 관계자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은 단순한 순위발표용 시상식이 아니라 2013년에 시작된 미식의 미래와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자리로서 의미가 크다. 서울이 개최 도시로 선정됐을 때 주관사인 서울시와 농림축산식품부, 국내 셰프와 미디어들이 환호한 이유는 서울이 미식의 미래를 이끌 도시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행사가 한 번 치러지면 올림픽이나 엑스포와 맞먹는 수준의 경제 효과가 창출되고, 전 세계 미디어의 주목도가 높아져 국가 브랜딩에도 기여한다.

시상식 현장 분위기를 더욱 뜨겁게 만든 셰프들의 각종 아뮤즈 부슈.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의 공식 후원사인 산펠레그리노.

화제의 중심이었던 미니 신라면.

맛있는 음식에 빠질 수 없는 각종 주류도 함께했다.

핵심은 ‘관계자들의 잔치’가 아니라 선정된 도시의 미식과 그를 둘러싼 문화 전반, 셰프와의 교류를 통해 협업하고 소통하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시상식 전후로 준비된 다채로운 부대 프로그램 또한 서울에 모인 글로벌 관계자들이 지속 가능한 미식을 의논하고 연대하기 위한 자리다. 포시즌스 호텔의 <대중의 음식 Food of the People 베스트 토크>, 50 베스트 셰프들과 국내 유명 셰프들이 함께 요리하는 컬래버레이션 다이닝 이벤트 <시그니처 세션>, 한국의 최고급 요리와 질 높은 식재료를 선보이는 <셰프의 만찬>, 미디어 라운드 테이블 행사 <셰프와의 만남> 등, 모든 프로그램이 빠르게 매진돼 K-미식에 대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 스타 셰프들의 시그니처 디시를 맛볼 수 있었던 서울 고메 존.

미식계의 오스카상, 환호와 흥분으로 가득했던 시상식 현장

시상식 전에 두 시간가량 진행된 네트워킹 리셉션 파티. 스탠딩 파티였지만 매체에서만 만날 수 있는 스타 셰프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스폰서 부스들의 창의적인 음료와 셰프들의 미식 부스가 오픈하자 파티장은 점점 더 붐비며 열기로 가득찼다. 참석자들은 화요, 스카치위스키 벤리악, 사케 닷사이, 진 마레에서 제조한 칵테일과 음료를 손에 들고 셰프들이 준비한 스페셜 미식 부스에 줄을 섰다. 이타닉가든, 그린테이블, 에빗, 윤서울 등 쟁쟁한 톱 셰프들이 직접 참여해서 시그니처 디시를 조금씩 맛볼 수 있게 서브했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방문해야 맛볼 수 있는 완벽한 아뮤즈 부슈에 모두가 감탄했다. 오후 8시, 본격적인 시상식이 시작됐다. 순위에 든 레스토랑들은 300명 이상의 F&B 전문가들이 진행한 투표를 통해 선정된다. 투표 자격은 셰프, 음식작가, 여행미식가에게만 주어지며 한 사람당 레스토랑을 6~8개 추천할 수 있다. 유권자는 최근 1년 반 사이 다녀온 곳만 투표할 수 있고, 자국 레스토랑은 6개까지 투표할 수 있다. 익명을 기반으로 한 비밀투표라 매년 드라마틱한 결과가 발표되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본시상식에서 순위가 발표될 때마다 환호의 열기가 대단하다.

올해 영예의 1위를 거머쥔 일본의 레스토랑 세잔 전경. 도쿄 포시즌스 호텔 7층에 자리한다.

일본 도쿄 아자부다이힐스에 자리한 레스토랑 플로릴레쥬 Florilége는 2위에 올랐다.

세잔의 메뉴.

네오 프렌치 요리를 선보이는 세잔의 다니엘 캘버트 셰프.

1위는 도쿄의 세잔, 어떤 레스토랑이 순위 50위 안에 들었을까?

올해 1~50위 리스트에는 아시아 내 19개 도시가 포함됐고, 8개 레스토랑이 새롭게 순위권에 진입했다. 영예의 1위는 셰프 다니엘 캘버트가 이끄는 세잔 Sézanne이 차지했다. 세잔은 일본 최고급 재료에 프렌치 기술이 더해진 네오 프렌치 요리를 선보이는 곳으로, 프랑스 샹파뉴의 작은 마을 세잔을 레스토랑 이름으로 정했다. 도쿄 포시즌스 호텔 7층에 위치하며, 2022년에는 17위, 지난해 2위, 올해 마침내 1위를 거머쥐었다. 싱가포르는 10위에 오른 프렌치 파인다이닝 오데트 Odette를 포함해 총 9개 레스토랑이 순위에 올랐다. 모던 바비큐 레스토랑 번트 엔즈 Burnt Ends가 15위, 식물학 기반의 미식 레스토랑 유포리아 Euphoria가 20위, 모던 프렌치 차이니즈 레스토랑 본 Born이 25위, 농심이 후원한 레스토랑 세로자 Seroja는 31위다. 그리고 메타 Meta가 28위, 레자미 Les Amis가 30위, 롤라 Lolla가 43위를 차지했다. 방콕은 3위에 오른 가간 Gaggan을 포함해 8개 레스토랑이 순위에 올랐다. 누사라 Nusara가 6위, 슈링 Sühring이 7위, 소른 Sorn이 11위, 르 두 Le Du가 12위, 올해 아시아 최고의 여성 셰프 상을 받은 피사야 셰프의 포통 Potong이 17위, 쌈랍 쌈랍 타이 Samrub Samrub Thai가 29위, 반 테파 Baan Tepa가 42위를 차지했다. 홍콩은 4위에 오른 더 체어멘 The Chairman을 포함해 총 6개 레스토랑이 순위에 올랐다. 중식당 윙 Wing은 5위, 네이버후드 Neighborhood가 16위, 모노 Mono가 27위, 카프리스 Caprice가 32위, 안도 Ando가 37위를 차지했다.

국내 레스토랑 중 가장 높은 13위에 오른 밍글스.

밍글스를 지휘하는 강민구 셰프.

도쿄는 올해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세잔 Sézanne을 포함해 4곳이 순위에 올랐다. 프렌치 재패니즈 퀴진을 선보이는 플로릴레지 Florilège가 2위, 덴 Den이 8위, 나리사와 Narisaw가 14위, 사젠카 Sazenka가 39위를 차지했다. 올해 시상식 개최 도시인 서울은 13위를 차지한 강민구 셰프의 밍글스 Mingles를 포함해 네 곳이 순위에 올랐다. 김대천 셰프가 이끄는 세븐스도어 7th Door가 18위, 온지음이 21위, 안성재 셰프가 이끄는 모수 Mosu가 41위를 차지했다.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의 콘텐츠 디렉터 윌리엄 드루 William Drew는 “아시아에 위치한 19개 도시의 다양한 레스토랑을 서울에서 소개하는 자리를 가져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는 소감을 전했다.

조선팰리스에서 열린 산펠레그리노 영 셰프 아카데미 경연대회 미디어 초청 행사.

미래 셰프를 양성하는 산펠레그리노 영 셰프 아카데미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의 메인 스폰서인 산펠레그리노와 아쿠아파나는 전 세계에 미식문화를 널리 알리고자 매년 ‘산펠레그리노 영 셰프 아카데미’를 개최한다. 미식업계를 책임질 미래의 젊은 셰프들을 지원하고 발굴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올해는 서울 조선팰리스호텔 이타닉가든에서 미디어 런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싱가포르 오데트의 줄리안 로이어 셰프와 세로자의 케빈 웡 셰프, 내음의 이안 고 셰프가 참석한 이번 프로그램에서 내음을 총괄하는 한석현 셰프, 라망시크레와 이타닉가든을 이끄는 손종원 셰프가 패널로 참석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미식계의 미래를 전망하는 자리를 가졌다. 30세 미만의 셰프라면 산펠레그리노 영 셰프 아카데미 경연대회에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시그니처 레시피를 준비해 공식 홈페이지에 신청하면 된다. 1차 서류심사는 국제 이탈리아 요리학교 알마 Alma가 진행하며, 올해 하반기에 지역 결선 참가자가 최종 공개된다.

멘토 셰프와 영 셰프가 함께 준비한 7가지 카나페 요리가 제공됐다.

싱가포르 레스토랑 오데트 Odette의 줄리안 로이어 셰프와 세로자 Seroja의 케빈 웡 셰프가 함께했다.

셰프 일곱명이 합심해서 선보인 메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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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지(위키드와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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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vors of The Season

Flavors of The Season

Flavors of The Season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4>에서 다시금 2개의 별을 거머쥔 레스토랑 알렌의 서현민 셰프를 만났다.

광어 베이스 위에 각종 허브로 만든 소스와 유채를 올린 메뉴.

우드 톤 베이스 인테리어로 따뜻함이 느껴지는 레스토랑 모습.

각기 다른 작가들이 만든 잔. 외국인 손님들을 위한 소주를 서빙할 때 사용하는 기물이다.

올해 발표한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4>에서 2스타로 승급한 알렌.

2018년 국내 파인다이닝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서현민 셰프다. 17년 가까이 미국 최고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고,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이자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1위에 오른 ‘일레븐 매디슨 파크’의 수셰프를 거쳐 서울 신사동의 ‘임프레션’ 오픈에 합류한 것. 무엇보다 1년 만에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0>에서 2스타를 받았는데,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일이라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사실 2스타는 제 평생 꿈이었어요. 그때가 30대 중반이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그 꿈을 이뤄버린 거예요. 거기서 독립한다고 했을 때주변에서 다들 ‘또라이’라고 했어요.(웃음) 별 받고 딱 한 달 지나니까 마음 한편이 공허했거든요. 프렌치를 해왔지만 한국 사람이니 한식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강박감에서 벗어나니까 되려 나만의 색깔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2021년 역삼동에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 알렌 Allen의 문을 열었다.

알렌을 지휘하는 서현민 셰프.

레스토랑 알렌의 홀 전경. 왼쪽으로는 두 개의 룸이 자리한다. 투명 창 너머로는 홀과 같은 크기의 주방이 있다.

레스토랑 알렌은 코스마다 이 땅에서 자란 제철 식재료를 맛과 향으로 표현하고 극대화해 한국의 아름다운 사계절을 요리로 승화시킨다. 무엇보다 식재료 수급에 온 정성을 기울이는 이유다. 메뉴 뒷면에 그려진 국내 지도에서 식재료들이 어디서 생산됐는지 찾아볼 수 있을뿐더러, 본격적인 코스 시작에 앞서 오늘 메뉴에 사용할 제철 식재료를 한데 모아 손님에게 보여주는 것이 하나의 퍼포먼스다. 봄에서 초여름 사이인 지금은 강원 춘천의 땅두릅, 경기 양평의 아스파라거스, 돌나물, 은달래, 충남 홍성의 냉이, 지리산 하동의 산취, 원추리, 전남 무안의 세발나물, 울릉도의 명이, 경남 통영의 풋마늘, 전남 여수의 소라 등 전국 각지에서 나고 자란 식재료들이 테이블 위에 오른다. 소위 ‘식전 빵’으로 취급 받는 빵도 차원이 다르다. 술지게미를 발효시켜 만든 천연발효종에 파주 백향미를 비롯한 국내산 통밀을 섞어 매일 아침 구워낸다. 프렌치 테크닉을 베이스로 하되 발효와 숙성 터치가 가미된 서현민만의 컨템퍼러리 메뉴인 것. “한국은 특히 해산물이 좋은 나라예요. 봄에는 나물 종류를, 가을과 겨울에는 뿌리 채소를 다양하게 사용하는 편이에요. 무엇보다 디테일이 중요해요. 보여지는 디테일 말고 맛의 디테일, 진정성 있는 맛이요.” 레스토랑 알렌이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맛뿐만이 아니다. 인테리어(에리어플러스)와 식기 등 레스토랑 전반에 흐르는 공예적인 요소가 제철 음식과 어우러져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다. 오픈 당시 모수 안성재 셰프 소개로 알게 된 ‘정소영의 식기장’ 정소영 대표와 알렌에서 사용할 식기들을 세팅하는 데에만 5개월이 걸렸다. 대다수 작가들의 작품, 새롭고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두 사람의 협업은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북방조개, 호래기 등 각종 해산물 위에 돌나물, 세발나물 등을 곁들인 봄 해산물의 향연.

술지게미를 직접 발효시켜 굽는 사워도우.

인테리어 곳곳에서 한국 작가들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오픈 후 첫 평가인 <미쉐린 가이드 2023>에서 1스타를 받은 레스토랑 알렌은 1년 만에 2스타 레스토랑으로 올라섰다. 명예 회복이라는 주변 셰프들의 응원뿐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 쉽지 않았던 운영 상황에 한 줄기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우리 레스토랑이 100여 평인데, 홀과 주방 사이즈가 똑같아요. 늘 같은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정 비용이 만만치 않거든요. 살아 남은 게 감사하다고 했어요. 이런 내막을 아는 지인들에게는 요즘 제가 부활의 아이콘이에요.(웃음)” 차근차근 늘 다음 스텝을 밟아나가는 서현민 셰프는 다가올 6월 파리에서 야닉 알레노, 모수 안성재 셰프와 함께하는 자선행사 기획에 한창이다. 또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나갈그의 행보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본격적인 코스 시작 전, 손님에게 오늘 사용할 식재료를 모아 보여준다.

원추리, 전객이, 나물 테린, 두릅, 딸기 등 봄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아뮤즈부쉬.

레스토랑 알렌 입구에는 단품 메뉴와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와인 바 컨티뉴엄이 함께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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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포토그래퍼

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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