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Asia’s 50 Best Restaurants

2024 Asia’s 50 Best Restaurants

2024 Asia’s 50 Best Restaurants

방콕, 마카오, 싱가포르에 이어 마침내 올해의 메인 스테이지로 선정된 한국. K-팝에서 시작된 열기가 K-미식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었던 2024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시상식 현장을 소개한다.

서울에서 열린 2024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어워드의 뜨거웠던 현장.

시상식 전후로 글로벌 관계자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부대 행사가 열렸다.

지속 가능한 미식을 탐색하는 교류의 장, 아시아 50 베스트

K-미식 역사를 새로 쓴 2024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어워드가 올해 서울에서 개최됐다. 셰프, 미디어를 포함해 관계자만 2000명 넘게 한국을 방문한 이번 행사는 미식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영국의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의 아시아 버전이다. 지난 3월 26일 오후 6시,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그랜드볼룸의 F&B 부스가 순식간에 모두 찼다. 네트워킹 리셉션을 위해 국내 톱 셰프들이 참여한 미식 부스와 스폰서 주류 업체의 스페셜 음료를 경험하기 위해 빠르게 입장한 관계자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은 단순한 순위발표용 시상식이 아니라 2013년에 시작된 미식의 미래와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자리로서 의미가 크다. 서울이 개최 도시로 선정됐을 때 주관사인 서울시와 농림축산식품부, 국내 셰프와 미디어들이 환호한 이유는 서울이 미식의 미래를 이끌 도시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행사가 한 번 치러지면 올림픽이나 엑스포와 맞먹는 수준의 경제 효과가 창출되고, 전 세계 미디어의 주목도가 높아져 국가 브랜딩에도 기여한다.

시상식 현장 분위기를 더욱 뜨겁게 만든 셰프들의 각종 아뮤즈 부슈.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의 공식 후원사인 산펠레그리노.

화제의 중심이었던 미니 신라면.

맛있는 음식에 빠질 수 없는 각종 주류도 함께했다.

핵심은 ‘관계자들의 잔치’가 아니라 선정된 도시의 미식과 그를 둘러싼 문화 전반, 셰프와의 교류를 통해 협업하고 소통하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시상식 전후로 준비된 다채로운 부대 프로그램 또한 서울에 모인 글로벌 관계자들이 지속 가능한 미식을 의논하고 연대하기 위한 자리다. 포시즌스 호텔의 <대중의 음식 Food of the People 베스트 토크>, 50 베스트 셰프들과 국내 유명 셰프들이 함께 요리하는 컬래버레이션 다이닝 이벤트 <시그니처 세션>, 한국의 최고급 요리와 질 높은 식재료를 선보이는 <셰프의 만찬>, 미디어 라운드 테이블 행사 <셰프와의 만남> 등, 모든 프로그램이 빠르게 매진돼 K-미식에 대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 스타 셰프들의 시그니처 디시를 맛볼 수 있었던 서울 고메 존.

미식계의 오스카상, 환호와 흥분으로 가득했던 시상식 현장

시상식 전에 두 시간가량 진행된 네트워킹 리셉션 파티. 스탠딩 파티였지만 매체에서만 만날 수 있는 스타 셰프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스폰서 부스들의 창의적인 음료와 셰프들의 미식 부스가 오픈하자 파티장은 점점 더 붐비며 열기로 가득찼다. 참석자들은 화요, 스카치위스키 벤리악, 사케 닷사이, 진 마레에서 제조한 칵테일과 음료를 손에 들고 셰프들이 준비한 스페셜 미식 부스에 줄을 섰다. 이타닉가든, 그린테이블, 에빗, 윤서울 등 쟁쟁한 톱 셰프들이 직접 참여해서 시그니처 디시를 조금씩 맛볼 수 있게 서브했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방문해야 맛볼 수 있는 완벽한 아뮤즈 부슈에 모두가 감탄했다. 오후 8시, 본격적인 시상식이 시작됐다. 순위에 든 레스토랑들은 300명 이상의 F&B 전문가들이 진행한 투표를 통해 선정된다. 투표 자격은 셰프, 음식작가, 여행미식가에게만 주어지며 한 사람당 레스토랑을 6~8개 추천할 수 있다. 유권자는 최근 1년 반 사이 다녀온 곳만 투표할 수 있고, 자국 레스토랑은 6개까지 투표할 수 있다. 익명을 기반으로 한 비밀투표라 매년 드라마틱한 결과가 발표되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본시상식에서 순위가 발표될 때마다 환호의 열기가 대단하다.

올해 영예의 1위를 거머쥔 일본의 레스토랑 세잔 전경. 도쿄 포시즌스 호텔 7층에 자리한다.

일본 도쿄 아자부다이힐스에 자리한 레스토랑 플로릴레쥬 Florilége는 2위에 올랐다.

세잔의 메뉴.

네오 프렌치 요리를 선보이는 세잔의 다니엘 캘버트 셰프.

1위는 도쿄의 세잔, 어떤 레스토랑이 순위 50위 안에 들었을까?

올해 1~50위 리스트에는 아시아 내 19개 도시가 포함됐고, 8개 레스토랑이 새롭게 순위권에 진입했다. 영예의 1위는 셰프 다니엘 캘버트가 이끄는 세잔 Sézanne이 차지했다. 세잔은 일본 최고급 재료에 프렌치 기술이 더해진 네오 프렌치 요리를 선보이는 곳으로, 프랑스 샹파뉴의 작은 마을 세잔을 레스토랑 이름으로 정했다. 도쿄 포시즌스 호텔 7층에 위치하며, 2022년에는 17위, 지난해 2위, 올해 마침내 1위를 거머쥐었다. 싱가포르는 10위에 오른 프렌치 파인다이닝 오데트 Odette를 포함해 총 9개 레스토랑이 순위에 올랐다. 모던 바비큐 레스토랑 번트 엔즈 Burnt Ends가 15위, 식물학 기반의 미식 레스토랑 유포리아 Euphoria가 20위, 모던 프렌치 차이니즈 레스토랑 본 Born이 25위, 농심이 후원한 레스토랑 세로자 Seroja는 31위다. 그리고 메타 Meta가 28위, 레자미 Les Amis가 30위, 롤라 Lolla가 43위를 차지했다. 방콕은 3위에 오른 가간 Gaggan을 포함해 8개 레스토랑이 순위에 올랐다. 누사라 Nusara가 6위, 슈링 Sühring이 7위, 소른 Sorn이 11위, 르 두 Le Du가 12위, 올해 아시아 최고의 여성 셰프 상을 받은 피사야 셰프의 포통 Potong이 17위, 쌈랍 쌈랍 타이 Samrub Samrub Thai가 29위, 반 테파 Baan Tepa가 42위를 차지했다. 홍콩은 4위에 오른 더 체어멘 The Chairman을 포함해 총 6개 레스토랑이 순위에 올랐다. 중식당 윙 Wing은 5위, 네이버후드 Neighborhood가 16위, 모노 Mono가 27위, 카프리스 Caprice가 32위, 안도 Ando가 37위를 차지했다.

국내 레스토랑 중 가장 높은 13위에 오른 밍글스.

밍글스를 지휘하는 강민구 셰프.

도쿄는 올해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세잔 Sézanne을 포함해 4곳이 순위에 올랐다. 프렌치 재패니즈 퀴진을 선보이는 플로릴레지 Florilège가 2위, 덴 Den이 8위, 나리사와 Narisaw가 14위, 사젠카 Sazenka가 39위를 차지했다. 올해 시상식 개최 도시인 서울은 13위를 차지한 강민구 셰프의 밍글스 Mingles를 포함해 네 곳이 순위에 올랐다. 김대천 셰프가 이끄는 세븐스도어 7th Door가 18위, 온지음이 21위, 안성재 셰프가 이끄는 모수 Mosu가 41위를 차지했다.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의 콘텐츠 디렉터 윌리엄 드루 William Drew는 “아시아에 위치한 19개 도시의 다양한 레스토랑을 서울에서 소개하는 자리를 가져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는 소감을 전했다.

조선팰리스에서 열린 산펠레그리노 영 셰프 아카데미 경연대회 미디어 초청 행사.

미래 셰프를 양성하는 산펠레그리노 영 셰프 아카데미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의 메인 스폰서인 산펠레그리노와 아쿠아파나는 전 세계에 미식문화를 널리 알리고자 매년 ‘산펠레그리노 영 셰프 아카데미’를 개최한다. 미식업계를 책임질 미래의 젊은 셰프들을 지원하고 발굴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올해는 서울 조선팰리스호텔 이타닉가든에서 미디어 런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싱가포르 오데트의 줄리안 로이어 셰프와 세로자의 케빈 웡 셰프, 내음의 이안 고 셰프가 참석한 이번 프로그램에서 내음을 총괄하는 한석현 셰프, 라망시크레와 이타닉가든을 이끄는 손종원 셰프가 패널로 참석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미식계의 미래를 전망하는 자리를 가졌다. 30세 미만의 셰프라면 산펠레그리노 영 셰프 아카데미 경연대회에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시그니처 레시피를 준비해 공식 홈페이지에 신청하면 된다. 1차 서류심사는 국제 이탈리아 요리학교 알마 Alma가 진행하며, 올해 하반기에 지역 결선 참가자가 최종 공개된다.

멘토 셰프와 영 셰프가 함께 준비한 7가지 카나페 요리가 제공됐다.

싱가포르 레스토랑 오데트 Odette의 줄리안 로이어 셰프와 세로자 Seroja의 케빈 웡 셰프가 함께했다.

셰프 일곱명이 합심해서 선보인 메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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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지(위키드와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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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vors of The Season

Flavors of The Season

Flavors of The Season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4>에서 다시금 2개의 별을 거머쥔 레스토랑 알렌의 서현민 셰프를 만났다.

광어 베이스 위에 각종 허브로 만든 소스와 유채를 올린 메뉴.

우드 톤 베이스 인테리어로 따뜻함이 느껴지는 레스토랑 모습.

각기 다른 작가들이 만든 잔. 외국인 손님들을 위한 소주를 서빙할 때 사용하는 기물이다.

올해 발표한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4>에서 2스타로 승급한 알렌.

2018년 국내 파인다이닝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서현민 셰프다. 17년 가까이 미국 최고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고,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이자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1위에 오른 ‘일레븐 매디슨 파크’의 수셰프를 거쳐 서울 신사동의 ‘임프레션’ 오픈에 합류한 것. 무엇보다 1년 만에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0>에서 2스타를 받았는데,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일이라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사실 2스타는 제 평생 꿈이었어요. 그때가 30대 중반이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그 꿈을 이뤄버린 거예요. 거기서 독립한다고 했을 때주변에서 다들 ‘또라이’라고 했어요.(웃음) 별 받고 딱 한 달 지나니까 마음 한편이 공허했거든요. 프렌치를 해왔지만 한국 사람이니 한식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강박감에서 벗어나니까 되려 나만의 색깔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2021년 역삼동에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 알렌 Allen의 문을 열었다.

알렌을 지휘하는 서현민 셰프.

레스토랑 알렌의 홀 전경. 왼쪽으로는 두 개의 룸이 자리한다. 투명 창 너머로는 홀과 같은 크기의 주방이 있다.

레스토랑 알렌은 코스마다 이 땅에서 자란 제철 식재료를 맛과 향으로 표현하고 극대화해 한국의 아름다운 사계절을 요리로 승화시킨다. 무엇보다 식재료 수급에 온 정성을 기울이는 이유다. 메뉴 뒷면에 그려진 국내 지도에서 식재료들이 어디서 생산됐는지 찾아볼 수 있을뿐더러, 본격적인 코스 시작에 앞서 오늘 메뉴에 사용할 제철 식재료를 한데 모아 손님에게 보여주는 것이 하나의 퍼포먼스다. 봄에서 초여름 사이인 지금은 강원 춘천의 땅두릅, 경기 양평의 아스파라거스, 돌나물, 은달래, 충남 홍성의 냉이, 지리산 하동의 산취, 원추리, 전남 무안의 세발나물, 울릉도의 명이, 경남 통영의 풋마늘, 전남 여수의 소라 등 전국 각지에서 나고 자란 식재료들이 테이블 위에 오른다. 소위 ‘식전 빵’으로 취급 받는 빵도 차원이 다르다. 술지게미를 발효시켜 만든 천연발효종에 파주 백향미를 비롯한 국내산 통밀을 섞어 매일 아침 구워낸다. 프렌치 테크닉을 베이스로 하되 발효와 숙성 터치가 가미된 서현민만의 컨템퍼러리 메뉴인 것. “한국은 특히 해산물이 좋은 나라예요. 봄에는 나물 종류를, 가을과 겨울에는 뿌리 채소를 다양하게 사용하는 편이에요. 무엇보다 디테일이 중요해요. 보여지는 디테일 말고 맛의 디테일, 진정성 있는 맛이요.” 레스토랑 알렌이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맛뿐만이 아니다. 인테리어(에리어플러스)와 식기 등 레스토랑 전반에 흐르는 공예적인 요소가 제철 음식과 어우러져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다. 오픈 당시 모수 안성재 셰프 소개로 알게 된 ‘정소영의 식기장’ 정소영 대표와 알렌에서 사용할 식기들을 세팅하는 데에만 5개월이 걸렸다. 대다수 작가들의 작품, 새롭고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두 사람의 협업은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북방조개, 호래기 등 각종 해산물 위에 돌나물, 세발나물 등을 곁들인 봄 해산물의 향연.

술지게미를 직접 발효시켜 굽는 사워도우.

인테리어 곳곳에서 한국 작가들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오픈 후 첫 평가인 <미쉐린 가이드 2023>에서 1스타를 받은 레스토랑 알렌은 1년 만에 2스타 레스토랑으로 올라섰다. 명예 회복이라는 주변 셰프들의 응원뿐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 쉽지 않았던 운영 상황에 한 줄기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우리 레스토랑이 100여 평인데, 홀과 주방 사이즈가 똑같아요. 늘 같은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정 비용이 만만치 않거든요. 살아 남은 게 감사하다고 했어요. 이런 내막을 아는 지인들에게는 요즘 제가 부활의 아이콘이에요.(웃음)” 차근차근 늘 다음 스텝을 밟아나가는 서현민 셰프는 다가올 6월 파리에서 야닉 알레노, 모수 안성재 셰프와 함께하는 자선행사 기획에 한창이다. 또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나갈그의 행보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본격적인 코스 시작 전, 손님에게 오늘 사용할 식재료를 모아 보여준다.

원추리, 전객이, 나물 테린, 두릅, 딸기 등 봄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아뮤즈부쉬.

레스토랑 알렌 입구에는 단품 메뉴와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와인 바 컨티뉴엄이 함께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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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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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인 정원

시적인 정원

시적인 정원

영국 첼시 플라워쇼가 주목하고 있는 한국 디자이너 황지해의 정원 이야기.

무심하면서도 원시적인 한국 정원을 글로벌 무대에 소개하는 황지해 정원디자이너. 세계적인 정원 박람회 영국 첼시 플라워쇼에서 2011년 <해우소: 근심을 털어버리는 곳>, 2012년 <DMZ: 금지된 정원>에 이어 지난해 <백만 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로 11년 만에 다시 한 번 금상을 받으며, 한국 최초의 ‘3골드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태초로 돌아가고자 하는 자연의 회귀성을 존중하며,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삶에 대해 황지해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 우승민

© Adelina

2023 첼시 플라워쇼 이후에 어떻게 지냈나? 거의 2년간 하나의 전시를 위해 100m 달리기를 해온 것 같았다. 휴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잠깐의 휴식 후에는 2025년 있을 폴 스미스 경과의 전시를 준비했다.

<백만 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를 선보이게 된 시작이 궁금하다. 병원과 약국이 생겨나기 전, 우리는 산과 들의 약초를 통해 병을 치료하고 자연에 의지해 생존해왔다는 데에서 출발했다. 약초의 생장환경을 통해 식물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지리산을 주목한 이유는? 약용식물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분리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1500여 종의 약초가 서식하는 지리산의 생태환경을 관찰했다. 지리산은 ‘한국의 어머니산’으로 불린다. 한국 최후의 원시림이며, 여전히 이름 없는 산봉우리와 계곡이 많다. 특히 지리산은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류가 생성되기 전부터 존재해왔고, 20억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바위가 품어온 사랑이 산야초를 길러낸다. 지리산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미기후가 만든 약초의 생육 환경, 이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 이미지줌

영국에서 지리산의 생태환경을 재현하는 과정이 가장 고민이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식물과 돌 등을 대부분 영국에서 직접 공수한 과정이 궁금하다. 지난해 첼시 플라워쇼는 팬데믹 이후로, 이전보다 더욱 엄격한 규제가 있었다. 전시 후 이동 플랜이 심사 조건 중 하나였고, 정원을 만드는 과정 또한 꼼꼼히 살폈다. 탄소 중립이 실천될 것과 함께 바이러스 문제로 수입을 통제했다. 나무의 경우 보통 6개월 전에 수입해 영국 현지에서 약 3개월간 생육해야만 전시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정원에서 가장 큰 구조를 이룰 한국의 특산종과 희귀종, 멸종위기 식물을 구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수소문 끝에 10년 전 DMZ 정원을 함께한, 영국 북쪽의 노스웨일즈에 거주하는 노부부에게 연락이 닿았다. 이들은 30여 년 전 한국의 지리산과 한라산, 울릉도 등지에서 씨앗을 가지고 와 노스웨일즈에서 키워냈다. 그들에게서 30년 된 지리산의 때죽나무와 함박꽃나무, 산초나무, 노각나무 등을 구해 정원을 준비했다.

리산의 편마암은 어떻게 구현했나? 영국 전역을 오가며 돌이 있을 법한 곳을 찾아다녔다. 그 중 거대하고 원시적인 지리산 바위의 형태와 질감이 가장 비슷한 스코틀랜드 북쪽 지역의 돌을 발견했다. 200여 톤의 돌과 바위를 스코틀랜드에서 가져온 것만으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영국 국왕 찰스 3세와 정원 관람 후 포옹하는 모습이 큰 화제가 되었다. 찰스 국왕은 왕이기 이전에 정원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가드너다. 기후 환경에 민감하며, 아시아 식물에도 관심이 많고, 무엇보다 우리 정원의 자연주의 식물에 관심을 보였다. 보통 쇼 가든 안쪽까지 직접 들여다보는 경우는 많이 없는데, 한국 정원의 면면을 깊숙이 살폈고, 약초건조장 안에서 짧게 대화하는 순간도 가졌다. ‘한국 정원을 영국에 가져와줘 감사하다’는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전시 이후 정원 작품의 일부가 영국 왕실의 소유가 되었다는데. 첼시 플라워쇼에서 전시한 지리산 약초건조장이 ‘환경에 대한 희망의 상징’으로 영국 찰스 국왕의 별장인 샌드링엄 캐슬에 영구 보존되었다. 국왕이 사랑하는 캐슬 부지 안 노퍽 Norfolk 수목원에 세워졌고, 이를 위한 작업 진행을 도왔다. 또한 정원의 한국 식물은 암센터로 유명한 자선단체 매기 재단 Maggie’s Centre에 기부되어 암환자 약 3000명에게 보일 계획이다.

가장 한국적인 정원을 위해 중요시한 부분이 있다면? 원시성. 의도하지 않은 무심함. 한국은 본래 정원이 필요 없었다. 주변의 산천과 초목이 정원이니까. 하늘을 나는 크고 작은 새와 벌, 나비, 비와 바람이 정원디자이너였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본래 있던 것을 되돌려줌으로써 원시로 돌아가고자 하는 식물의 관성을 존중해주는 것. 이것이 인간과 자연 간 공생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해외에서 직접 느끼는 한국 정원에 대한 반응이 궁금하다. 한국 식물의 차별화된 미학과 가치는 매우 잠재적이다. 특히 억겁의 시간 동안 지리산 편마암이 길러낸 산야초의 조형성과 생태 환경, 식물의 잠재력과 약학적 가치를 통해 우리에게 놓여 있는 기후 환경과 미래에 대한 생태관을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정원디자이너를 하게 된 계기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평면 작업에서 오는 재료의 한계와 가상 공간에서의 막연한 갈증을 느끼던 중 작업과 생존을 병행하기 위해 작은 골목의 벽화 일부터 조형물, 미술장식 등 현장 작업을 했다. 화판 너머에 살아 숨쉬는 작은 야생화와 풀 한 포기의 조형적인 질서, 변화, 자연의 창조 과정에서 내 존재와 위치를 깨닫게 되었다. 식물이 스스로 드로잉해갈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사명감을 느낀다.

© Adelina

자연이 자생하며 뻗어가는 미래를 그릴 때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있다면? 생태적 양심, 미학적 양심. 현재를 살아가는 지금 나에게 정원 설계는 다음 세대를 위한 실질적 준비이자 행동이다. 자연이 하는 일에 동참하는 과정이라고 항상 생각하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식재 디자인에 대해 고민한다.

정원, 더 나아가 자연에서 느끼는 가장 큰 매력은? 모호하고 불안한 나를 정돈시켜 주는 것. 나무가 움트고, 잎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식물의 생태주기는 삶의 근본적인 물음에 영감을 준다.

올 한 해 행보가 궁금하다. 고양시 꽃박람회에서 <하늘 끝까지>, 전주정원박람회에서 <하고 싶은 말>을 선보일 계획이다. 또 서울 식물원 <움직이는 씨앗>을 재정비할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 최초의 철학학교인 함평군 기본학교의 정원을 조성하고 있다. 세계 정원사에 우리 고유성과 가능성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정신적인 힘, 우리만의 고유 철학이 견고하게 뿌리내리기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외 전시로는 2025 첼시 플라워쇼 준비 중인가? 영국 디자이너 폴 스미스 경과 함께한다. 그는 패션디자이너지만 모든 디자인 영감의 원천은 주로 정원이라고 한다. 이번 전시는 ‘멸종위기 식물 하나가 멸종위기 컬러를 만들어낸다’라는 메시지를 담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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