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오디오 컬렉터와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오가며 이중생활을 하는 TIS갤러리의 이정엽 대표. 그의 소장품과 빈티지 오디오의 매력에 관해 물었다.
20년 넘게 빈티지 오디오를 수집해온 이정엽 대표는 하는 일이 많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윤현상재 사옥, 한남 더 힐 주택전시관, 융 JUNG 코리아 쇼룸 등 다양한 건물의 설계, 시공, 감리 등을 맡아왔고, 현재는 학동역에 자리한 TIS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포스코 스틸리온과 합작해 만든 건축 자재 덱스퀘어와 독일 프리미엄 스위치 및 스마트홈 솔루션 브랜드 융의 제품을 만날 수 있다. 자재 전시장이라고 하지만 곳곳에 포진해 있는 빈티지 오디오들에 더욱 시선이 간다. 또 오고 싶은 전시장이 되기 바랐다는 그의 애정이 묻어나는 공간. 그는 디자인 경험을 살려 다양한 공간에 꼭 맞는 오디오와 시스템을 추천해주고 오래된 오디오를 복원하는 일도 병행한다. 인터뷰 차 찾은 전시장 한쪽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 오디오’로 알려진 JBL 4530의 진득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유독 빈티지 스피커 소리에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스피커 안에는 자석이 들어 있는데, 1970년대 초반까지 알리코 자석을 사용했다. 이 자석은 짱짱하면서도 깊은 소리를 낸다. 70년대 이후로 알리코 자석이 스피커 부품 사용으로 금지되면서 이런 진득한 소리 내는 스피커를 찾기가 쉽지 않아졌다. 스피커에서 자석의 힘이 이토록 중요한 줄 몰랐다. 소리라는 것은 결국 저음, 중음, 중고음, 초고음이 이루는 밸런스다. 요즘 스피커는 깨끗한 음질을 지녔지만 저음에 다소 약한 편이다. 스피커 속 자석의 힘이 세면 앰프가 크지 않아도 소리가 똘망똘망하게 울린다. 아쉽게도 요즘 스피커들은 앰프가 그만큼 받쳐주어야만 그런 울림을 낼 수 있다.
빈티지 스피커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였나? 고등학생 때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값싼 오디오를 사고, 황학동이나 청계천에 가서 500원짜리 해적판 음반을 사서 듣곤 했다. 이후 브라운이나 베가 같은 오디오 브랜드를 알게 되면서 디자인적으로도 훌륭하고 소리도 좋은 진공관 오디오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50년대에 만들어진 디자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모던한 디자인도 많다.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영국, 독일, 일본 등 해외 사이트를 열심히 뒤져가며 직구도 하고 경매도 하고 꽤나 열심히 모았다. 또 오디오는 시리즈가 있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다.(웃음) 이 전시장 외에 개인 사무실에는 여기 있는 오디오 수의 몇 배는 더 있다. 오디오의 세계는 끝이 없다.
가장 애정하는 스피커가 무라카미 하루키 스피커 같은 것이라고 들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유한 스피커인 JBL4530의 커스텀 버전이다. JBL4560도 특히 애정하는 모델 중 하나다.
커스텀 버전에 대해 좀 더 소개를 부탁한다. 기존에 나와 있는 스피커와 통, 우퍼, 드라이브, 혼 등을 각각 조립해서 만드는 걸 커스텀이라고 부른다. 무엇보다 우퍼를 감싸고 있는 통이 중요한데, 몇십 년 동안 칩보드 소재의 판이 건조되면서 공명을 이루는 것이라 지금 똑같이 만든다 해도 절대로 예전 같은 소리를 낼 수 없다. 이 스피커는 초저음이 뒤쪽으로 돌아 아래로 나오는 백보드 방식이라 더 깊은 저음을 느낄 수 있다. 굳이 좋은 앰프를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울림이 좋기 때문에 좋은 스피커라 생각한다.
요즘 상공간에서 빈티지 오디오를 자주 접하게 되는 것 같다. 오디오는 인테리어의 마지막 정점이라고 생각한다. 공간 디자이너들에게 공간에 잘 어울릴 만한 오디오를 추천해주고 소개하는 일을 시작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한남동 그래픽을 비롯해 최근에는 탭샵바 도산점 작업을 함께 했다. 문의가 오면 공간의 크기와 분위기, 디자인에 관해 논의하고 그에 걸맞은 오디오와 시스템을 찾아 매칭해준다. 예산은 몇십부터 몇천 만원대까지 다양한데, 무엇보다 공간에 잘 어울리는 디자인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Vintage Audio Collection
이정엽 대표가 하나둘 수집한 오래된 물건들
1 영사기와 앰프, 스피커 역할을 겸하는 브라운 사의 비사쿠스틱 Visacustic 1000stereo. 1976년 제품.
2 완벽한 음질을 감상할 수 있는 브라운 사의 TG 1000 릴 테이프 데크. 1971년 제품.
3 1962년 베가 Wega 사에서 출시한 진공관 라디오. 민트와 아이보리의 색 조화가 멋스럽다.
4 영사기와 앰프, 스피커 역할을 겸하는 바우어 사의 T600 Stereosound 모델. 1977년 제품.
5 필립 스탁이 1994년 텔레풍켄 Telefunken을 위해 디자인한 TV. 상부에 매립한 스피커 디자인이 멋스럽다.
6 1969년 브리온베가 Brionvega에서 디자이너 리처드 사퍼 Richard Sapper가 디자인한 라디오 리시버.
7 필립 스탁이 1990년 독일 텔레풍켄 사를 위해 디자인한 휴대용 라디오. 제품 이름은 톰슨 라라라 Tomson LaLaLa.
8 1967년 브라운 사에서 출시한 방송국용 DJ 믹서. 굉장히 희귀한 아이템이다.
9 1971년 브라이언 페리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 영국의 글램록 밴드, 록시 뮤직 Roxy Music이 발표한 모든 스튜디오 앨범의 박스반.
10 브라운 사의 PCS 45 턴테이블과 캥거루 오디오 테이블. 디터람스는 오디오를 위한 가구를 여럿 선보였는데, 1963년 디자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모던하다.
11 1963년 브라운 사가 선보인 PCS 52 턴테이블.
12 필립 스탁이 1996년 알레시에서 디자인한 라디오 겸 시계 톰슨 쿠쿠 Tomson Coo Coo. 뉴욕 현대미술관에 영구 전시된 제품이다.
13 1965년 미국 KLH 사가 선보인 모델 15 턴테이블. 우드 박스가 빈티지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14 카세트 데크의 명가로 알려진 일본 나카미치 Nakamichi 사의 700 시리즈. 가죽 소재 박스에 담겨 있는 휴대용 제품이다.
15 서독의 디터람스와 쌍벽을 이루는 동독의 대표 산업디자이너 카를 클라우스 디텔 Karl Clauss Dietel이 1966년 디자인한 헬리 HELI 사의 스튜디오 모니터 스피커. 스피커 안에 파워 앰프가 내장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