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잠 못 이루는 밤 Part 1

베니스의 잠 못 이루는 밤 Part 1

베니스의 잠 못 이루는 밤 Part 1

단 하나의 미술 행사를 봐야 한다면 그것은 단연코 베니스 비엔날레다. 2년에 한 번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 말이다. 올해는 4월 20일부터 11월 24일까지 열리니 휴가차 다녀오기에도 적합하다.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는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주제이자, 클레어 퐁텐의 작품 제목이기도 하다.

 

Part 1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키워드 7

예술감독 아드리아노 페드로사 Adriano Pedrosa가 브라질 출신 퀴어 큐레이터라는 점만으로도 관전 포인트를 예측해볼 수 있을 것. 아무리 공명 정대한 감독일지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전시에 반영할 수밖에 없고, 자신이 잘 아는 분야의 작가 군단을 초대하기 마련이다. 본전시의 주제는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 Foreigners Everywhere’이다. 이 문구는 컬렉티브 그룹 클레어 퐁텐 Claire Fonraine이 2004년 시작한 작품에서 유래했는데,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라는 영문 네온사인 작품을 발견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인종 차별과 외국인혐오증에 맞서 싸운 집단의 이름에서 유래한 문구다. 외국인은 세계 어디에나 있으며, 우리 모두가 이방인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더불어 예술가들이 여러 이유로 항상 여행하고 있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따라서 주요 초점은 외국인, 이민자, 국외 거주자, 디아스포라, 망명자, 난민, 특히 세계 남부와 북부를 이동하는 예술가들에게 있다. 세계 최고 비엔날레로서 베니스에서 관심을 모은 미술가와 미술 경향은 곧장 미술관과 갤러리 전시, 아트 페어 출품으로 이어진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비상업적 예술 축제이지만 상업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흥미롭다. 몇 년 전만 해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주목받은 작가의 작품이 미술 시장에 등장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지만, 최근에는 바로 다음 아트 페어와 갤러리 전시에서 이들 작품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는 6월에 열리는 넘버 원 아트 페어인 스위스 아트 바젤 바젤에서 이번 비엔날레 작가들의 작품을 확실히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비엔날레가 열리는 두 개의 전시장 아르세날레 Arsenale와 자르디니 Giardini로 지금 출발해보자.

 

1 한국 미술의 물결

퀘리니 스탐팔리아 재단에서 열리고 있는 유영국의 전시 <무한 세계로의 여정>.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열린 구정아의 <오도라마 시티>.

이번 비엔날레에 작품을 선보인 작가는 총 331개 팀인데, 생존 작가는 40% 정도다. 예술감독은 생존 작가에게 큰 전시 공간을 주었고, 작고 작가의 작품은 전시 속 전시의 형식으로 소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강승, 김윤신, 고 이쾌대, 고 장우성 작가의 작품이 초대되었다. 아드리아노 페드로사 감독이 지난해 한국을 직접 찾아와서 이 작가들의 작품을 선정했다. 자르디니 국가관의 한국관에서는 한국의 향기를 주제로 삼은 구정아 작가의 <오도라마 시티>가 펼쳐지고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아르세날레와 자르디니에서 열리는 본전시뿐 아니라, 베니스 시내에서 열리는 병행 전시와 외부 전시가 수백 개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한국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병행 전시와 외부 전시도 10개에 이른다. 그동안 <단색화>, <윤형근> 개인전 등 한국 작가의 전시가 꾸준히 열리기는 했지만 이렇게 많은 한국 전시가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인증을 받은 30개의 병행 전시 Eventi Collaterali에 한국 기관과 갤러리에서 기획한 <이성자: 지구 저 편으로>, <광주비엔날레: 마당, 우리가 되는 곳>, <이배: 달집 태우기>, <유영국: 무한 세계로의 여정>이 포함되어 있다. 외부 전시로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참여 작가 38개 팀 전시 <모든 섬은 산이다>, <신성희> 개인전, 국내외 작가 35명 그룹전 <노마딕 파티>, <이승택과 제임스 리 바이어스> 등이 관심을 모았다. 한국 작가 전시만 보아도 시간이 부족하다. 한국 작가들의 대규모 베니스 전시는 한국 미술을 알리는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베니스 비엔날레 병행 전시 <지구 저 편으로>에 참여한 이성자의 작품. © 이성자, 교통의 중복, 1971, 130×162cm.

 

2 황금사자상의 의미

황금사자상 최고작가상은 뉴질랜드 마오리족 여성 작가 그룹 마타호 컬렉티브가 선정됐다.

황금사자상 국가관상은 호주 토착민 미술가 아치 무어가 참여한 호주관이 차지했다.

자르디니와 베니스 시내 곳곳에는 총 87개의 국가관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참가하는 국가는 베냉 공화국, 에티오피아, 동티모르 민주공화국, 탄자니아 연합공화국의 4개국이며, 파나마와 세네갈은 자국 국가관을 가지고 첫 참가했다. 본전시 작가뿐 아니라 국가관도 황금사자상 수상 후보이다 보니, 비엔날레가 국가 올림픽과 다름없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오프닝 직후 열리는 수상자 발표가 어떤 전시 작품에 중점을 두어야 할지 모르는 초보 관람객에게는 명확한 감상 지표가 되기도 한다. 올해 황금사자상은 두 개 부문 모두 남반구에서 탄생했다. 황금사자상 최고작가상은 뉴질랜드 마오리족 여성 작가 4인으로 구성된 마타호 컬렉티브가 선정됐다. 아르세날레 입구에 설치된 이들의 대형 섬유 설치 작품은 포토 스팟으로 유명하다. 황금사자상 국가관상은 미술가 아치 무어가 참여한 호주관이 차지했다. 호주 토착민 출신의 아치 무어는 분필로 호주 원주민의 역사를 그려넣은 작품을 선보였다. 뉴질랜드와 호주가 황금사자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집트 출신 터키 예술가 닐 얄테르 Nil Yalter와 이탈리아 출신 브라질 미술가 안나 마리아 마이올리노 Anna Maria Maiolino는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3 정치적 이슈의 그림자

예술은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올해도 여기 저기서 시위가 열렸고, 자르디니 26개 국가관 중 두 곳은 전시를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국가관은 개막 전부터 전시 반대 여론에 시달렸고, 결국 전시하지 않기로 했다. 이스라엘 대표로 참석하는 작가 루스 파티르는 ‘휴전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잡치한 인질 석방 합의가 이뤄지면 전시관을 열 것’이라는 문구를 붙였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비엔날레에 이어 올해, 두 번 연속 국가관 전시를 열지 못했다. 국가관이 없는 볼리비아가 러시아 전시관에서 대신 전시를 열었다. 베니스 곳곳에는 ‘인종 학살 국가관을 반대한다’는 대량학살반대예술연맹(ANGA)의 포스터가 붙었다. 곳곳에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을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붉은 종이가 뿌려졌다. 우크라이나는 국가관 전시는 아니지만 비엔날레 병행 전시 <데어 투 드림 Dare to Dream>를 갖고 있다.

 

4 K-큐레이터의 힘

김해주큐레어터가 싱가포르 국가관 예술감독을 맡아 멋진 전시를 선보였다.

한국 미술가뿐 아니라 한국 큐레이터도 재능을 뽐냈다. 김해주, 이숙경 큐레이터가 각각 싱가포르관과 일본관 예술감독을 맡아 멋진 전시를 선보인 것. 김해주 큐레이터는 현재 싱가포르 아트 뮤지엄(SAM)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2022년 부산 비엔날레 예술감독 출신이다. 미술가 로버트 자오 런휘가 김 큐레이터에게 협업을 제안했다. 로버트는 환경과 인간의 삶을 탐구하는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싱가포르에 형성된 이차림(Secondary Forest)과 그 안의 새로운 생태계에 대한 영상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영국 맨체스터대학 휘트워스 뮤지엄 관장이자 2023년 광주 비엔날레 감독을 맡은 이숙경 큐레이터가 일본관 큐레이터로 임명되어 미술가 모리 유코와 손을 잡았다. 모리 유코와 이 관장은 지난해 광주 비엔날레에서도 좋은 호흡을 보여주었다. 모리 유코는 장소 특정적 설치 작품과 사운드 아트로 알려졌으며,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일상용품을 통해 예술과 생명에 대한 의문을 제시했다.

5 스타 작가는 건재하다

프리다 칼로의 작은 자화상 옆에는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이 걸려 있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는 누구일까? 아마도 자르디니 초상화 섹션에 자화상이 걸려 있는 프리다 칼로일 것이다. 프리다 칼로의 작은 작품 앞에는 직원이 항상 서 있을 정도다. 그만큼 이번 비엔날레는 스타 작가를 내세우기보다는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가 중심의 구성이 매력적이다. 하지만 병행, 외부 전시에서는 지금 미술 시장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미술가 에디 마티네즈, 마우리치오 카텔란, 윌리엄 켄트리지, 이우환, 쩡판즈, 피에르 위그, 짐 다인 등의 전시를 만날 수 있다. 게다가 이 작가들이 베니스를 직접 찾아오자 미술애호가들은 환호했다. 골목에서, 전시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스타 작가들은 비엔날레의 묘미다. 스타 작가들이 바쁜 스케줄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곳에서 전시를 연다는 것은 베니스 비엔날레가 상업적으로도 큰 힘이 있다는 방증이다. 베니스에서 최고의 전시를 선보인다는 것은 작가의 자존심과 직결된다.

팔라초 디에도에서 열리는 그룹전 <야누스>에선 이우환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 Lee Ufan, Beyond Venice, Relatum – The Location, 2024, Steel, stone. Photo by Massimo Pistore. Courtesy of Studio Lee Ufan, ADAGP and Berggruen Arts & Culture _ Palazzo Diedo

© Lee Ufan, Beyond Venice, Response (3), 2023_2024, Acrylic on canvas. Photo by Massimo Pistore. Courtesy of Studio Lee Ufan, ADAGP and Berggruen Arts & Culture _ Palazzo Diedo

 

6 남미 작가들의 부상

이번 비엔날레 주제는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인데, 직관적 주제이다 보니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작품 캡션마다 작가의 고향과 활동 도시가 어디인지 살펴보게 되는 단점도 있다. 아드리아노 페드로사 예술감독이 비엔날레 최초로 남미 출신이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남미 작가 작품을 대거 발견할 수 있다. 유럽 한복판 베니스에서 남미 작가의 작품을 다채롭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아르헨티나 여성 작가 라 촐라 파블리트 La Chola Poblete는 퀴어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은 그림과 사진 작품 등을 선보였다.

 

7 퀴어 전성시대

레바논 작가 오마르 미스마르 Omar Mismar는 퀴어 형상을 담은 강렬한 타일 작업을 선보였다.

아드리아노 페드로사 예술감독이 퀴어이다 보니, 퀴어 작가의 전시가 강세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퀴어’는 성(性) 소수자의 의미이지만,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이방인’의 하나로도 여겨진다. 섹시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의 작품이 중심을 이루는 퀴어 작가 작품은 비엔날레 곳곳에 등장한다. 또한 캐나다, 중국, 홍콩, 인도, 멕시코, 니카라과, 파키스탄, 페루, 필리핀, 남아프리카, 미국 퀴어 작가의 작품을 모은 큰 전시장이 있다. 그리고 중국, 이탈리아, 필리핀 작가의 작품을 모은 퀴어 추상화 섹션도 발견할 수 있을 것. 우리나라의 이강승 작가도 퀴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박해를 받고 인정받지 못한 퀴어 작가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다. 일부 작품의 작가 설명에는 아예 작가의 성 정체성을 밝혀 관람객의 작품 이해를 돕는다.

 

한국 현대미술의 정수는 무엇인가?
최정주 전시감독과의 만남

<한국 미술의 정수: 손에서 정신으로의 여정>의 감독 최정주에게 전시에 대해 물었다. 콘실리오 유럽 델 아르테 재단 Concilio Europeo dell’Arte Foundation 공모를 통해 최우수 콘텐츠로 선정된 협력 전시라는 점이 특별하다.

인파라디소 아트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현대미술의 정수>. © 정혜련, 14를 결합하는 방식, installation in mixed media, UP_377×410×48cm, DOWN_300×300×200cm, 2024.

지난 4월 베니스 비엔날레와 더불어 전시가 시작되었는데, 현지 평가는 어떤지 궁금하다. 전시장 인파라디소 아트 갤러리가 자르디니 초입에 위치하고, K-아트 전시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5월 중순 현재 하루 평균 200명, 주말에는 300~400명 정도가 방문할 정도로 인기다. 학생부터 미술 관계자까지 단체로 찾아오기에, 주말 오후에는 이탈리아어와 영어 도슨트를 진행한다.

기하 추상의 하인두, 단색화의 박서보, 신형상회화의 고영훈, 미디어 설치의 정혜련 등 한국미술의 미술 경향 중 한국 현대미술 경향 네 개와 작가 네 명을 선정한 기준은 무엇인가? 1970~80년대 미술 흐름인 단색화가 재조명된 것은 한국 현대미술 원류가 지닌 저력을 증명하는 것. 이제 세계 관심은 ‘K-아트의 다면적 특성이 무엇인가’라는 지점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기획자로서 1960년대부터 동시대까지 이어져온 미술의 연대기적 특성과 고유성을 알릴 필요성을 느꼈다. 그중에서도 1960년대 말의 기하추상부터 1970년대의 단색화, 1980년대의 신형상회화, 동시대의 복합매체 현상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미술의 단면은 새로운 조형 실험의 필요성과 한국적 예술의 정립에 대한 시대적 염원을 제시한 대표적 미술 현상이다.

전시 제목 <한국 현대미술의 정수: 손에서 정신으로의 여정>의 의미를 설명해달라. 한국 현대미술은 빈손으로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로 인해 전통의 맥을 놓치고 전쟁이 쓸고 간 황폐한 환경을 극복하면서 지형도를 스스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작가 신체를 상징하는 손은 새로운 조형적 자극을 체득하는 창구였고, 이는 고유의 전통과 철학을 내재화하는 과정을 거쳐 시대와 호흡하는 정신적 가치를 발화하며 나아갔다. 하인두 작가는 기하추상의 조형성에 전통과 생명의 가치를 투영했고, 동서양의 미학을 재해석하는 독자적 언어를 정립했다. 또한 박서보 작가는 노동의 신성성을 한국적 미감과 동양 철학의 정신성으로 꽃피워 독특한 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 그리고 고영훈 작가는 대상의 형상을 극사실적으로 강조해 본질이 지니는 근원적 의미를 들여다보게 하는 신형상회화의 물꼬를 트면서 일상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했다. 정혜련 작가는 전통적 미감과 정서를 현대의 융복합적 설치로 재해석해 전통과 현대, 자연과 인간이 교차하는 공감대를 형성해왔다. 그동안은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이 특정 장르나 작가에 국한된 것이었다면, 이제는 미술사적 접근과 심층 분석을 전제로 한 기획이 뒷받침되어야 할 때다. 전시는 11월 2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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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Writer

이소영

Photographer

La Biennale di Venez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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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결정

시간의 결정

시간의 결정

시간의 흐름을 주제로 까르띠에의 예술성과 창의성을 조명한 전시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개최됐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황홀한 까르띠에 주얼리의 향연.

1932년, 까르띠에 소장품 중 하나인 네크리스. © Yuji Ono

회반죽해 마감한 전시대. © Yuji Ono

전시장 도입부를 장식한 스기모토 히로시의 타임 리버스드 작품. © Yuji Ono

2019년 도쿄국립신미술관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전시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이 그 두 번째 문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었다. 까르띠에 컬렉션으로 불리는 소장품들과 아카이브 자료를 비롯해 평소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희귀한 개인 소장품 등 300여 점을 한데 모았다. 이번 전시는 시간을 중심으로 ‘소재의 변신과 색채’, ‘형태와 디자인’, ‘범세계적인 호기심’이라는 세 가지 관점으로 구성된다. 특히 눈부시게 반짝이는 까르띠에의 작품들을 한층 돋보이게 만드는 공간도 이번 전시의 관전 포인트다. 이는 아티스트 스기모토 히로시와 건축가 사카키다 토모유키가 설립한 일본 건축회사 신소재연구소의 실력으로 마치 동굴을 탐험하는 것처럼 오랜 시간 지구가 영위해온 막대한 힘을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어둡고 좁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시침과 분침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시계탑과 마주하게 된다. 이는 1908년 제작된 시계를 아티스트 스기모토 히로시가 개조한 작품인데,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 역행하는 시계를 바라보며 물질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을 알린다. 이후 이어지는 ‘프롤로그’ 공간은 까르띠에의 예술성, 창의성, 뛰어난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미스터리 클락과 프리즘 클락을 감상할 수 있다. 본격적인 전시의 시작이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소재의 변신과 색채’에서는 까르띠에의 혁신적인 디자인을 창조하기 위해 독보적인 노하우로 소재와 색채 다루는 법을 소개한다. 플래티늄을 가미해 더욱 돋보이는 다이아몬드, 규화목 같은 독특한 소재와 다양한 보석을 이용한 대담한 색채 조합까지, 참신하고 창의적인 디자인을 향한 까르띠에의 혁신을 보여준다. 특히 이곳의 쇼케이스는 일본 삼나무인 가스가 스기를 배경으로 활용해 동양적 미감을 더했다. 궁극의 미적 단순성을 지닌 삼나무의 적갈색 나이테가 주얼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챕터 1에 자리한 뚜띠 프루티 파트 쇼케이스.© Cartier © Victor Picon

오야석을 쌓아 올려 땅속 깊은 곳을 연상케 하는 챕터 2 전시 전경. © Yuji Ono

또한 이번 한국 전시를 위해 신소재연구소가 한국 전통 직물인 ‘라 羅’ 섬유의 제작방식을 복원해 전시장에 활용한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촘촘히 얽어 짠 라를 사용해 섬세하고 은은한 반투명의 질감을 표현했다. 이어지는 ‘형태와 디자인’에서는 선과 형태의 본질을 찾아 떠나는 까르띠에의 여정이 테마별로 전시된다. 자연의 선을 완벽하게 표현해낸 에센셜 라인과 스피어, 주얼리 디자인의 건축적 요소를 조명하는 뉴 아키텍처, 주얼리에 움직임을 구현하는 옵틱스 등이 준비되어 있다. 이 공간은 오야석을 쌓아 올려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 보석을 찾는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연출했다. 거친 표면의 돌과 까르띠에의 젬스톤 간의 대비를 즐기며 감상해보기 바란다. 마치 보석이 숨겨진 저 깊은 땅속 동굴을 탐험하듯 말이다. 마지막 챕터인 ‘범세계적인 호기심’은 까르띠에 디자인의 원동력인 세계 문화와 동식물에서 영감을 얻은 독보적인 작품들을 선보인다. 루이 까르띠에의 세상을 향한 끝없는 관심을 바탕으로 한 그의 아트 컬렉션과 라이브러리를 엿볼 수 있다. 이는 회반죽으로 마감한 16m 길이의 타원형 전시대에 놓여 있어 우주를 가로지르는 혜성을 연상케 한다. 관람객은 아주 작은 주얼리를 감상하면서 마치 광활한 우주 공간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가치와 시공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담아낸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전은 6월 30일까지 진행된다.

꽃봉오리를 연상케 하는 브레이슬릿. © Cartier © Victor Picon

팬더 브레이슬릿. © Cartier © Victor Picon

데이비드 센트너 부부의 소장품. © Cartier © Victor P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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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Blooming

Korean Blooming

Korean Blooming

한국 꽃의 세계화를 이끌고 있는 비욘드앤 김형학 플로리스트의 새로운 공간.

작업실을 위해 마련한 신당동의 오래된 공간. 인테리어는 짓다디자인, 공간 스타일링은 아뜰리에태인이 함께했다.

계단 아래 달항아리에 꽂은 꽃가지.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꽃이 만개한 후 지는 과정을 감상할 수 있었다.

지난가을에 가지치기한 감나무. 물에 꽂으니 전시 내내 마른 가지에서 하나둘씩 초록 잎이 돋아났다.

가장 한국적인 꽃집을 꿈꾸는 비욘드앤 김형학 대표.

꽃을 시작한 지 어느새 20년이 넘었다. 시작이 궁금하다. ‘화훼장식사’라는 개념이 처음 신문에 나왔을 때인 것 같다. 우연한 기회로 기사를 보았고,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인지 궁금증에 알아보면서 시작했다. 유년 시절 마당에는 언제나 꽃이 피어 있었고, 지금도 어머니는 정원 가꾸기를 즐기신다. 우연이지만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꽃집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비욘드앤 Beyond N의 전신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꽃집인 ‘꽃나래’다. 1978년 시작되어 4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곳으로, 지금 아흔이 넘은 윤석임 회장에게서 꽃을 배웠다. 당시 지식인 여성이 시작한 사업이자 꽃을 비즈니스와 접목한 최초의 꽃집이었다. 막내로 입사한 첫 회사였는데, 감사하게도 2대 대표로서 브랜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간의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제자와 동료들이 있었겠는가. 그중 나를 믿어주고 선택해주신 데에 정말 감사드린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평생 꽃 사업을 해온 스승의 입장에서 이 브랜드는 단순한 비즈니스 이상의 가치였을 것이다. 꽃 작업에 자부심을 갖고, 브랜드의 명맥을 잇고, 한국적인 꽃 문화를 이어갈 수 있는 이들을 염두에 두신 것 같다. 비욘드앤 이름 역시 꽃나래 Narae Flower 이후를 이어가고자 하는 포부를 담았다.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세계적인 플라워 대회에 출전하며 한국의 꽃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도 하고 있다. 지난해 영국에서 열린 인터플로라 월드컵에서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작년 이후로는 대회에 출전하려는 마음은 많이 내려놓았다. 지난 20년간 계속된 도전과 경쟁 속에 있었다. 아무리 선한 마음을 가진다 해도 누군가는 떨어져야 하는 경쟁이다 보니 지친 부분도 있다. 메인 대회인 인터플로라에서 우승해서인지 더욱 아쉬움이 없는 것 같다.(웃음)

지금 볼 수 있는 한국의 계절과 자연을 통해 한국 꽃의 본질을 표현한 오프닝 전시. 촘촘히 심은 가지의 하단과 자유로운 형태의 윗부분이 대조되며, 땅의 본질을 표현했다.

2층에 자리한 개인 작업실. 벽면 책장에는 그동안 모은 오래된 서적이 가득 꽂혀 있다.

세계적인 플라워 대회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꽃은 어떤가? 플라워 대회 심사기준은 아주 기술적이다. 색채, 구성, 테크닉 등으로 나눠 점수를 매긴다. 한국 꽃꽂이를 대표해 대회에 나가지만 이러한 심사기준은 한국 꽃꽂이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다. 지난 20년간은 테크닉을 연구해왔는데, 앞으로는 나아갈 방향이 바뀌었다.

‘한국적인 꽃’을 정의하자면? 한 단어로 정의하기에는 참 어려운 것 같다. 한국의 미학을 이해하려면 한국의 땅, 문화, 자연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 생각한다. 우리는 공간이 비어 있을 때 아쉬움을 느끼고, 여백이 있는 자연으로 채워왔다. 한국 꽃의 미학은 그런 아쉬움에서 나온다.

한국의 꽃꽂이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적인 꽃은 단순히 식물의 형태와 종류를 넘어 공간에 어떻게 놓이는가에 달려있다. 가령 가느다란 가지를 촘촘히 모아심은 형태는 선적인 미학을 담으려 했고, 화병에 둥글게 말아넣은 것은 그 사이의 여백에 집중하고자 했다. 꽃 너머의 공간을 바라보는 것이 한국적인 꽃을 즐기는 방법이다. 이러한 한국의 꽃을 해외에서 봤을 때 직관적으로 이해하기에는 어렵다. 꽃도 보고, 꽃이 놓여 있는 공간도 보며 조금씩 이해가 쌓여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난 그 시간을 작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잎이 가득 핀 은행나무 가지.

작업실 정면에 자리한 빈티지 오브제와 토기들.

개인 작업실로 마련한 공간을 한국 꽃집으로 열게 된 이유인가. 일본 ‘히비야 카단 Hibiya Kadan’같이 일본만의 미학을 담은 꽃집을 보며, 가장 한국적인 꽃집의 모습을 고민하게 되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찾아와 한국의 꽃 문화를 보고자 한다면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까? 그에 대한 답이 되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비욘드앤은 앞으로 어떤 꽃을 선보일 계획인가. 현재 비욘드앤은 웨딩 비즈니스를 메인으로 작업하고 있다. 앞으로 소비자와 좀 더 가까이 만날 수 있도록 이 공간을오픈했다. 한국적 미학이 담긴 상품들을 선보일 것이다. 더불어 한국 꽃의 세계화에 집중하고 싶다. 해외에서는 아직 한국 꽃에 대한 이해도가 많지 않다. 일본과 중국 꽃꽂이와 쉽게 혼동되기도 한다. 한국적 미감과 꽃의 본질을 표현한 작업들을 통해 ‘이게 우리의 꽃이야’라고 소개하고 싶다.

새로운 공간 오프닝을 기념해 2주간 전시를 진행했다. 간단히 소개해달라. 이번 전시는 오랜 지인인 메타포 서울 김미연 대표와 함께 기획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자리이다 보니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싶었다. 지금 계절에만 볼 수 있는 한국의 자연을 통해 비욘드앤이 지향하는 한국 꽃의 본질을 표현했다.

전시 기간 중에 잎이 난 감나무와 은행나무 가지가 가장 흥미로웠다. 지난가을 가지치기를 하고 남은 가지들을 모았다. 달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마른 가지를 꽂으니 잎이 나오기 시작했다. 3주 전만 해도 잎이 전혀 없었는데, 잎 피울 시기가 되니 잎이 나오는 것이다. 지금이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계단을 오르자마자 마주하는 풍경. 창 너머로 푸른 계절을 감상할 수 있다. 테이블 위에는 난잎을 겹겹이 감아낸 작품을 두었다.

선과 여백의 미학을 보여주는 비욘드앤의 상품들.

1층에 자리한 <흙으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다시 나오는 것>. 쟁기질로 갈아엎은 논의 흙덩이는 자연의 순환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든다.

2층 옥상에 자리한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그 경계의 바라봄>. 가지치기한 감나무 가지가 신원동 작가의 커다란 달항아리에 꽂혀 있다.

1층에서 관람객을 가장 먼저 반기는 흙 작품은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나. <흙으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다시 나오는 것>은 쟁기질로 갈아엎은 논의 흙이다. 원래 다른 작품을 구상 중이었다. 하지만 이 공간에 딱 맞는 그 느낌이 없었는데, 마침 시골집의 논을 보고 오프닝 일주일 전 작품을 바꾸었다. 지금 이 계절에만 볼 수 있는 흙이다. 뒤집어진 흙은 그 다음해에 한 바퀴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잡초는 흙으로 돌아가고, 땅속의 흙은 다시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순환’이라고 이름 지었다.

2층 테이블 위에 자리한, 난잎이 원형을 이루며 겹겹이 쌓인 작품도 인상적이다. 난이 많이 피는 시기가 있다. 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작업이다. 난잎을 겹겹이 감아가며 원을 그린다. 수행의 시간이다. ‘시간’의 쌓임이 곧 이해라고 본다. 좋은 공간이 되려면 이러한 시간이 들어와야 한다. 오래된 공간, 빈티지 가구, 클래식한 예술, 그리고 자연에는 시간이 담겨 있다. 요즘의 공간은 칼처럼 잘려 있다. 물론 그러한 공간도 미적으로 좋지만 시간이 느껴지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은 공간에 시간을 담을 수 있는 방법이다.

CREDIT

에디터

포토그래퍼

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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