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받은 미술가 이강승, 김윤신을 현지에서 만났다. 거대한 비엔날레 전시장 아르세날레와 자르디니에서 331개 팀(명) 작품이 전시 중이기 때문에 한국 작가 4인의 작품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숨은그림찾기처럼 이들 작품을 탐색해보는 것은 어떨까?
Part 2 한국 미술가 인터뷰
미술가 이강승, 영원한 이방인
이강승은 미국 중심으로 활동하는 퀴어 아티스트다. 성 정체성과 퀴어 커뮤니티연대를 중심으로 삼베에 금실 자수와 흑연 드로잉 등 섬세한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 특징. 특히 그의 작품은 본전시장 아르세날레와 자르디니 모두에서 만날 수 있어 세계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출품작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자르디니의 전시 공간 중 한 곳을 채운 작품이 인상적이다. 자르디니에서는 7.6m 대형 바닥 설치 작업 〈무제(별자리) Untitled(Constellation)〉와 양피지 작업 6점을 전시하고 있다. <무제(별자리)>는 60개 이상의 작은 작업이 하나의 작품이다. 작품마다 인물이나 사건이 주요 서사이지만, 이번에 선보인 작품은 하나의 절대적 내러티브가 아니다. 지난 작품에서 나타난 인물도 재등장했다. 그 외 사라진 인물,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자수 작품과 여러 수집품이 있다. 싱가포르계 무용가 고추산, 홍콩계 미술가 쳉퀑치, 영국 영화감독 데릭 저먼, 미국계 사진가 피터 후자, 브라질계 미술가 호세 레오닐슨 등의 인물을 기리고 기억하는 요소가 곳곳에 등장한다. 이 전시장으로 들어오는 입구가 세 개인데, 어느 방향으로 들어오든지 간에 작품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형식이다. 벽에 걸린 작품 6점은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 인류가 사용한 가죽 재질 양피지다. 이 가죽을 만들기 위해 사라져야 했던 생명을 되돌아볼 만큼 중요한 재료이니, 각각의 작품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아르세날레 전시장의 영상 작품에 대해 설명해달라.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3>에서 소개된 영상 〈라자로〉가 상영된다. 두 명의 무용수가 싱가포르 안무가 고추산의 작품 〈미지의 영역〉을 재해석한다. 그들은 퀴어의 사랑에 대한 작업으로 알려진 브라질 미술가 호세 레오닐슨의 옷 설치 작업〈라자로〉(1993)를 오마주해 두 벌의 삼베 드레스 셔츠가 하나로 이어진 의상을 입고 벗으며 교감을 표현한다.
본전시 주제인 ‘이방인은 어디에서 있다’와의 연계성은 무엇인가? 이번 전시 작품의 주제는 좀 더 개인적 공감을 바탕으로 한다. 외국에서 사는 퀴어 한국인이라는 개인사와도 연계된다. 신작으로 비엔날레 제안을 받았는데, 감독이 이번 비엔날레에서 하고 싶은 말은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다’인 것 같다. 성 소수자의 정체성을 가진 자만이 이방인은 아니다. 소속 사회와 정체성이 일치되어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구상 모든 사람은 이방인과 같은 존재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는가? 이번에 선보인 작품들은 의도적으로 친밀한 이미지를 내포한다. 예술사를 공부했거나 퀴어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더욱 친근하게 여겨질 것이다. 나의 작품 세계는 사실상 이번 비엔날레 주제인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에 항상 연결되어 있었다. 이 전시장에는 내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쪽 벽에 걸린 작품 5점은 2020년 작고한 영국 퀴어 여성 작가 로마니 에블리 Romany Eveleigh의 작품이다. 생전에 주목받지 못한 작가인데, 감독은 처음부터 내 작품이 그녀와 함께 전시되기를 바랐다. 세대 간 연결을 강조하며, 내 작업에서도 퀴어 커뮤니티 구축을 중요시하기에 의미가 있다. 이번 비엔날레 감독이 큐레토리얼적 측면에서 거의 모든 전시장에서 세대 교차를 보여준 것이 흥미로웠다.
베니스 비엔날레를 보러 갈 독자들에게 작가로서 조언을 해준다면? 선주민과 이주민이 전시 중심인 비엔날레다. 이번 비엔날레의 핵심은 전시를 배움의 기회를 삼는 것이 아닐까? 이 모든 작가와 작품에 대한 지식을 가진 전문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배울 수 있는 전시라는 것이 좋다. 나도 많이 배웠고, 우리 지식을 의심하고 돌아봐야 하는 전시라고 본다. 우리나라 지식 체계는 세계 정치 지형과 역사 속 불평등에서 기인한다. 그렇기에 우리 의식은 이미 식민지화됐을 수도 있으니, 비엔날레를 통해 지식 자체를 의심해보는 계기로 삼는 것은 어떨까? 사실 비엔날레 존재 자체가 문제적이다. 2024년 우리에게 비엔날레가 꼭 필요한지 모두 의심해야 한다. 21세기 작가들이 올림픽처럼 국가주의를 기반으로 황금사자상을 겨냥하며 전시를 시작했지 않은가! 우리나라 역시 짧은 역사를 벗어나기 어렵기에 항상 의심하고 질문해야 할 것이다.
미술가 김윤신, 동서남북의 창작자
아름드리 나무에 반해 아르헨티나에서 40년간 활동하다가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초대를 계기로 귀국한 구순의 여성 작가다. 강인한 작가적 접근이 돋보이는 조각은 이방인이 새로운 소재로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개발해온 과정의 증거다.
베니스 비엔날레 참여 소감이 궁금하다. 이런 순간은 상상하지 못했다. 작품만 만들고 살았기에 사실 베니스 비엔날레에 대해 잘 몰랐다. 이번에 출품한 연작 <합이합일 분이분일 合二合一 分二分一>는 돌 조각 4점과 나무 조각 4점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만든 출품작 중 나무 조각 4점은 소나무와 호두나무 같은 원목을 사용했고, 돌 조각 4점은 오닉스 Onyx와 재스퍼 Jasper 같은 준보석이 재료다. 원목과 준보석을 조각하는 과정이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재료의 속살과 표면의 시각적 대조가 이번 출품작의 공통점이다. 1974년 상파울로 비엔날레 이후 참여한 대형 행사이기에 의미가 더욱 크다.
<합이합일 분이분일> 연작에 대해 설명해달라. 지난 60여 년 동안 나무, 돌 등 자연 재료가 지닌 속성을 강조해왔다. 1970년대 후반부터 조각을 ‘합이합일 분이분일’이라는 제목으로 칭하고 있는데, ‘서로 다른 둘이 만나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가 되며, 그 합이 다시 둘로 나뉘어 각각 또 다른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조각의 재료와 작가가 하나가 되며 합(合)을 이루고, 그러한 합치의 과정이 재료의 단면을 쪼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가는 여러 분(分)의 단계로 이루어지며, 결과물로서 또 하나의 진정한 분(分), 즉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는 것.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작가로서 본전시 주제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에 대한 소감은? 평생 여러 나라를 누비며 작업해왔는데, 작가라면 작업하는 순간이 바로 자신의 나라다. 스스로 동서남북 작가라고 생각한다. 한국, 프랑스, 아르헨티나를 오가며 작품을 만들어왔기 때문에 지구 모두 작업 공간으로 생각해온 셈이다.
예술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예술은 끝이 없기 때문에 예술이다. 완성이란 애매하다. 우리는 매일 반복하며 살고 있다. 예술은 삶이고, 삶이 예술이다. 시작과 끝이 있다고 이야기하기 어려우니 삶이다. 우리는 삶의 길지 않은 지금 이 순간에 산다. 순간이 중요하다. 모든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자연 그대로가 잠시 연장되는 것이 삶이 아닐까?
나무를 작품의 소재로 즐겨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무 조각에 일부러 껍질을 붙인 것은 아니다. 70년대 우리나라에서 소나무를 조각에 많이 사용하면서 껍질과 속살의 대비를 선보였는데, 파리에서도 신문에 크게 실릴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아르헨티나에서도 껍질이 얇은 수종은 이를 남기고 작업하곤 했다. 어릴 적 일제강점기에 나무 숲이 베어지는 모습을 보고 마음에 좋지 않았다. 학업을 마치고 작업실이 좁아서 처음에는 조각을 하지 못하다가 드디어 나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나무 구하기가 어려워 미송을 육면체로 쌓아올려 작품을 만들고, 다음 전시에서는 이를 흐트러뜨려서 다시 작품으로 만들곤 했다. 나무에 반해서 아르헨티나로 갔을 만큼 나무를 편애한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해달라. 죽기 전에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한국에 왔는데, 비엔날레 초대를 계기로 한국에 정착할 수 있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되었다. 구순이 되어서야 이제 미술에 대해서 알 듯하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젊어서는 작업 속에 빠져 살았고, 지금부터는 김윤신이라는 작가를 나타내야 하고 미술을 통해 나를 내놓으려고 한다. 내 작업을 미술사에 남기고 싶다. 비엔날레는 현대적 대형 전시인데, 나는 오히려 거꾸로 원초적으로 돌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