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잠 못 이루는 밤 Part 2

베니스의 잠 못 이루는 밤 Part 2

베니스의 잠 못 이루는 밤 Part 2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받은 미술가 이강승, 김윤신을 현지에서 만났다. 거대한 비엔날레 전시장 아르세날레와 자르디니에서 331개 팀(명) 작품이 전시 중이기 때문에 한국 작가 4인의 작품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숨은그림찾기처럼 이들 작품을 탐색해보는 것은 어떨까?

 

Part 2 한국 미술가 인터뷰

 

미술가 이강승, 영원한 이방인

이강승은 미국 중심으로 활동하는 퀴어 아티스트다. 성 정체성과 퀴어 커뮤니티연대를 중심으로 삼베에 금실 자수와 흑연 드로잉 등 섬세한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 특징. 특히 그의 작품은 본전시장 아르세날레와 자르디니 모두에서 만날 수 있어 세계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강승 작가는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에서 각각 설치와 영상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출품작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자르디니의 전시 공간 중 한 곳을 채운 작품이 인상적이다. 자르디니에서는 7.6m 대형 바닥 설치 작업 〈무제(별자리) Untitled(Constellation)〉와 양피지 작업 6점을 전시하고 있다. <무제(별자리)>는 60개 이상의 작은 작업이 하나의 작품이다. 작품마다 인물이나 사건이 주요 서사이지만, 이번에 선보인 작품은 하나의 절대적 내러티브가 아니다. 지난 작품에서 나타난 인물도 재등장했다. 그 외 사라진 인물,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자수 작품과 여러 수집품이 있다. 싱가포르계 무용가 고추산, 홍콩계 미술가 쳉퀑치, 영국 영화감독 데릭 저먼, 미국계 사진가 피터 후자, 브라질계 미술가 호세 레오닐슨 등의 인물을 기리고 기억하는 요소가 곳곳에 등장한다. 이 전시장으로 들어오는 입구가 세 개인데, 어느 방향으로 들어오든지 간에 작품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형식이다. 벽에 걸린 작품 6점은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 인류가 사용한 가죽 재질 양피지다. 이 가죽을 만들기 위해 사라져야 했던 생명을 되돌아볼 만큼 중요한 재료이니, 각각의 작품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아르세날레 전시장의 영상 작품에 대해 설명해달라.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3>에서 소개된 영상 〈라자로〉가 상영된다. 두 명의 무용수가 싱가포르 안무가 고추산의 작품 〈미지의 영역〉을 재해석한다. 그들은 퀴어의 사랑에 대한 작업으로 알려진 브라질 미술가 호세 레오닐슨의 옷 설치 작업〈라자로〉(1993)를 오마주해 두 벌의 삼베 드레스 셔츠가 하나로 이어진 의상을 입고 벗으며 교감을 표현한다.

본전시 주제인 ‘이방인은 어디에서 있다’와의 연계성은 무엇인가? 이번 전시 작품의 주제는 좀 더 개인적 공감을 바탕으로 한다. 외국에서 사는 퀴어 한국인이라는 개인사와도 연계된다. 신작으로 비엔날레 제안을 받았는데, 감독이 이번 비엔날레에서 하고 싶은 말은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다’인 것 같다. 성 소수자의 정체성을 가진 자만이 이방인은 아니다. 소속 사회와 정체성이 일치되어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구상 모든 사람은 이방인과 같은 존재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는가? 이번에 선보인 작품들은 의도적으로 친밀한 이미지를 내포한다. 예술사를 공부했거나 퀴어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더욱 친근하게 여겨질 것이다. 나의 작품 세계는 사실상 이번 비엔날레 주제인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에 항상 연결되어 있었다. 이 전시장에는 내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쪽 벽에 걸린 작품 5점은 2020년 작고한 영국 퀴어 여성 작가 로마니 에블리 Romany Eveleigh의 작품이다. 생전에 주목받지 못한 작가인데, 감독은 처음부터 내 작품이 그녀와 함께 전시되기를 바랐다. 세대 간 연결을 강조하며, 내 작업에서도 퀴어 커뮤니티 구축을 중요시하기에 의미가 있다. 이번 비엔날레 감독이 큐레토리얼적 측면에서 거의 모든 전시장에서 세대 교차를 보여준 것이 흥미로웠다.

베니스 비엔날레를 보러 갈 독자들에게 작가로서 조언을 해준다면? 선주민과 이주민이 전시 중심인 비엔날레다. 이번 비엔날레의 핵심은 전시를 배움의 기회를 삼는 것이 아닐까? 이 모든 작가와 작품에 대한 지식을 가진 전문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배울 수 있는 전시라는 것이 좋다. 나도 많이 배웠고, 우리 지식을 의심하고 돌아봐야 하는 전시라고 본다. 우리나라 지식 체계는 세계 정치 지형과 역사 속 불평등에서 기인한다. 그렇기에 우리 의식은 이미 식민지화됐을 수도 있으니, 비엔날레를 통해 지식 자체를 의심해보는 계기로 삼는 것은 어떨까? 사실 비엔날레 존재 자체가 문제적이다. 2024년 우리에게 비엔날레가 꼭 필요한지 모두 의심해야 한다. 21세기 작가들이 올림픽처럼 국가주의를 기반으로 황금사자상을 겨냥하며 전시를 시작했지 않은가! 우리나라 역시 짧은 역사를 벗어나기 어렵기에 항상 의심하고 질문해야 할 것이다.

 

미술가 김윤신, 동서남북의 창작자

아름드리 나무에 반해 아르헨티나에서 40년간 활동하다가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초대를 계기로 귀국한 구순의 여성 작가다. 강인한 작가적 접근이 돋보이는 조각은 이방인이 새로운 소재로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개발해온 과정의 증거다.

김윤신 작가는 자르디니에서 8점의 조각 작품을 전시 중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참여 소감이 궁금하다. 이런 순간은 상상하지 못했다. 작품만 만들고 살았기에 사실 베니스 비엔날레에 대해 잘 몰랐다. 이번에 출품한 연작 <합이합일 분이분일 合二合一 分二分一>는 돌 조각 4점과 나무 조각 4점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만든 출품작 중 나무 조각 4점은 소나무와 호두나무 같은 원목을 사용했고, 돌 조각 4점은 오닉스 Onyx와 재스퍼 Jasper 같은 준보석이 재료다. 원목과 준보석을 조각하는 과정이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재료의 속살과 표면의 시각적 대조가 이번 출품작의 공통점이다. 1974년 상파울로 비엔날레 이후 참여한 대형 행사이기에 의미가 더욱 크다.

<합이합일 분이분일> 연작에 대해 설명해달라. 지난 60여 년 동안 나무, 돌 등 자연 재료가 지닌 속성을 강조해왔다. 1970년대 후반부터 조각을 ‘합이합일 분이분일’이라는 제목으로 칭하고 있는데, ‘서로 다른 둘이 만나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가 되며, 그 합이 다시 둘로 나뉘어 각각 또 다른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조각의 재료와 작가가 하나가 되며 합(合)을 이루고, 그러한 합치의 과정이 재료의 단면을 쪼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가는 여러 분(分)의 단계로 이루어지며, 결과물로서 또 하나의 진정한 분(分), 즉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는 것.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작가로서 본전시 주제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에 대한 소감은? 평생 여러 나라를 누비며 작업해왔는데, 작가라면 작업하는 순간이 바로 자신의 나라다. 스스로 동서남북 작가라고 생각한다. 한국, 프랑스, 아르헨티나를 오가며 작품을 만들어왔기 때문에 지구 모두 작업 공간으로 생각해온 셈이다.

예술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예술은 끝이 없기 때문에 예술이다. 완성이란 애매하다. 우리는 매일 반복하며 살고 있다. 예술은 삶이고, 삶이 예술이다. 시작과 끝이 있다고 이야기하기 어려우니 삶이다. 우리는 삶의 길지 않은 지금 이 순간에 산다. 순간이 중요하다. 모든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자연 그대로가 잠시 연장되는 것이 삶이 아닐까?

나무를 작품의 소재로 즐겨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무 조각에 일부러 껍질을 붙인 것은 아니다. 70년대 우리나라에서 소나무를 조각에 많이 사용하면서 껍질과 속살의 대비를 선보였는데, 파리에서도 신문에 크게 실릴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아르헨티나에서도 껍질이 얇은 수종은 이를 남기고 작업하곤 했다. 어릴 적 일제강점기에 나무 숲이 베어지는 모습을 보고 마음에 좋지 않았다. 학업을 마치고 작업실이 좁아서 처음에는 조각을 하지 못하다가 드디어 나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나무 구하기가 어려워 미송을 육면체로 쌓아올려 작품을 만들고, 다음 전시에서는 이를 흐트러뜨려서 다시 작품으로 만들곤 했다. 나무에 반해서 아르헨티나로 갔을 만큼 나무를 편애한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해달라. 죽기 전에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한국에 왔는데, 비엔날레 초대를 계기로 한국에 정착할 수 있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되었다. 구순이 되어서야 이제 미술에 대해서 알 듯하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젊어서는 작업 속에 빠져 살았고, 지금부터는 김윤신이라는 작가를 나타내야 하고 미술을 통해 나를 내놓으려고 한다. 내 작업을 미술사에 남기고 싶다. 비엔날레는 현대적 대형 전시인데, 나는 오히려 거꾸로 원초적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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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Photographer

La Biennale di Venez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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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잠 못 이루는 밤 Part 1

베니스의 잠 못 이루는 밤 Part 1

베니스의 잠 못 이루는 밤 Part 1

단 하나의 미술 행사를 봐야 한다면 그것은 단연코 베니스 비엔날레다. 2년에 한 번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 말이다. 올해는 4월 20일부터 11월 24일까지 열리니 휴가차 다녀오기에도 적합하다.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는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주제이자, 클레어 퐁텐의 작품 제목이기도 하다.

 

Part 1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키워드 7

예술감독 아드리아노 페드로사 Adriano Pedrosa가 브라질 출신 퀴어 큐레이터라는 점만으로도 관전 포인트를 예측해볼 수 있을 것. 아무리 공명 정대한 감독일지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전시에 반영할 수밖에 없고, 자신이 잘 아는 분야의 작가 군단을 초대하기 마련이다. 본전시의 주제는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 Foreigners Everywhere’이다. 이 문구는 컬렉티브 그룹 클레어 퐁텐 Claire Fonraine이 2004년 시작한 작품에서 유래했는데,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라는 영문 네온사인 작품을 발견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인종 차별과 외국인혐오증에 맞서 싸운 집단의 이름에서 유래한 문구다. 외국인은 세계 어디에나 있으며, 우리 모두가 이방인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더불어 예술가들이 여러 이유로 항상 여행하고 있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따라서 주요 초점은 외국인, 이민자, 국외 거주자, 디아스포라, 망명자, 난민, 특히 세계 남부와 북부를 이동하는 예술가들에게 있다. 세계 최고 비엔날레로서 베니스에서 관심을 모은 미술가와 미술 경향은 곧장 미술관과 갤러리 전시, 아트 페어 출품으로 이어진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비상업적 예술 축제이지만 상업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흥미롭다. 몇 년 전만 해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주목받은 작가의 작품이 미술 시장에 등장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지만, 최근에는 바로 다음 아트 페어와 갤러리 전시에서 이들 작품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는 6월에 열리는 넘버 원 아트 페어인 스위스 아트 바젤 바젤에서 이번 비엔날레 작가들의 작품을 확실히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비엔날레가 열리는 두 개의 전시장 아르세날레 Arsenale와 자르디니 Giardini로 지금 출발해보자.

 

1 한국 미술의 물결

퀘리니 스탐팔리아 재단에서 열리고 있는 유영국의 전시 <무한 세계로의 여정>.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열린 구정아의 <오도라마 시티>.

이번 비엔날레에 작품을 선보인 작가는 총 331개 팀인데, 생존 작가는 40% 정도다. 예술감독은 생존 작가에게 큰 전시 공간을 주었고, 작고 작가의 작품은 전시 속 전시의 형식으로 소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강승, 김윤신, 고 이쾌대, 고 장우성 작가의 작품이 초대되었다. 아드리아노 페드로사 감독이 지난해 한국을 직접 찾아와서 이 작가들의 작품을 선정했다. 자르디니 국가관의 한국관에서는 한국의 향기를 주제로 삼은 구정아 작가의 <오도라마 시티>가 펼쳐지고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아르세날레와 자르디니에서 열리는 본전시뿐 아니라, 베니스 시내에서 열리는 병행 전시와 외부 전시가 수백 개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한국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병행 전시와 외부 전시도 10개에 이른다. 그동안 <단색화>, <윤형근> 개인전 등 한국 작가의 전시가 꾸준히 열리기는 했지만 이렇게 많은 한국 전시가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인증을 받은 30개의 병행 전시 Eventi Collaterali에 한국 기관과 갤러리에서 기획한 <이성자: 지구 저 편으로>, <광주비엔날레: 마당, 우리가 되는 곳>, <이배: 달집 태우기>, <유영국: 무한 세계로의 여정>이 포함되어 있다. 외부 전시로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참여 작가 38개 팀 전시 <모든 섬은 산이다>, <신성희> 개인전, 국내외 작가 35명 그룹전 <노마딕 파티>, <이승택과 제임스 리 바이어스> 등이 관심을 모았다. 한국 작가 전시만 보아도 시간이 부족하다. 한국 작가들의 대규모 베니스 전시는 한국 미술을 알리는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베니스 비엔날레 병행 전시 <지구 저 편으로>에 참여한 이성자의 작품. © 이성자, 교통의 중복, 1971, 130×162cm.

 

2 황금사자상의 의미

황금사자상 최고작가상은 뉴질랜드 마오리족 여성 작가 그룹 마타호 컬렉티브가 선정됐다.

황금사자상 국가관상은 호주 토착민 미술가 아치 무어가 참여한 호주관이 차지했다.

자르디니와 베니스 시내 곳곳에는 총 87개의 국가관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참가하는 국가는 베냉 공화국, 에티오피아, 동티모르 민주공화국, 탄자니아 연합공화국의 4개국이며, 파나마와 세네갈은 자국 국가관을 가지고 첫 참가했다. 본전시 작가뿐 아니라 국가관도 황금사자상 수상 후보이다 보니, 비엔날레가 국가 올림픽과 다름없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오프닝 직후 열리는 수상자 발표가 어떤 전시 작품에 중점을 두어야 할지 모르는 초보 관람객에게는 명확한 감상 지표가 되기도 한다. 올해 황금사자상은 두 개 부문 모두 남반구에서 탄생했다. 황금사자상 최고작가상은 뉴질랜드 마오리족 여성 작가 4인으로 구성된 마타호 컬렉티브가 선정됐다. 아르세날레 입구에 설치된 이들의 대형 섬유 설치 작품은 포토 스팟으로 유명하다. 황금사자상 국가관상은 미술가 아치 무어가 참여한 호주관이 차지했다. 호주 토착민 출신의 아치 무어는 분필로 호주 원주민의 역사를 그려넣은 작품을 선보였다. 뉴질랜드와 호주가 황금사자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집트 출신 터키 예술가 닐 얄테르 Nil Yalter와 이탈리아 출신 브라질 미술가 안나 마리아 마이올리노 Anna Maria Maiolino는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3 정치적 이슈의 그림자

예술은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올해도 여기 저기서 시위가 열렸고, 자르디니 26개 국가관 중 두 곳은 전시를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국가관은 개막 전부터 전시 반대 여론에 시달렸고, 결국 전시하지 않기로 했다. 이스라엘 대표로 참석하는 작가 루스 파티르는 ‘휴전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잡치한 인질 석방 합의가 이뤄지면 전시관을 열 것’이라는 문구를 붙였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비엔날레에 이어 올해, 두 번 연속 국가관 전시를 열지 못했다. 국가관이 없는 볼리비아가 러시아 전시관에서 대신 전시를 열었다. 베니스 곳곳에는 ‘인종 학살 국가관을 반대한다’는 대량학살반대예술연맹(ANGA)의 포스터가 붙었다. 곳곳에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을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붉은 종이가 뿌려졌다. 우크라이나는 국가관 전시는 아니지만 비엔날레 병행 전시 <데어 투 드림 Dare to Dream>를 갖고 있다.

 

4 K-큐레이터의 힘

김해주큐레어터가 싱가포르 국가관 예술감독을 맡아 멋진 전시를 선보였다.

한국 미술가뿐 아니라 한국 큐레이터도 재능을 뽐냈다. 김해주, 이숙경 큐레이터가 각각 싱가포르관과 일본관 예술감독을 맡아 멋진 전시를 선보인 것. 김해주 큐레이터는 현재 싱가포르 아트 뮤지엄(SAM)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2022년 부산 비엔날레 예술감독 출신이다. 미술가 로버트 자오 런휘가 김 큐레이터에게 협업을 제안했다. 로버트는 환경과 인간의 삶을 탐구하는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싱가포르에 형성된 이차림(Secondary Forest)과 그 안의 새로운 생태계에 대한 영상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영국 맨체스터대학 휘트워스 뮤지엄 관장이자 2023년 광주 비엔날레 감독을 맡은 이숙경 큐레이터가 일본관 큐레이터로 임명되어 미술가 모리 유코와 손을 잡았다. 모리 유코와 이 관장은 지난해 광주 비엔날레에서도 좋은 호흡을 보여주었다. 모리 유코는 장소 특정적 설치 작품과 사운드 아트로 알려졌으며,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일상용품을 통해 예술과 생명에 대한 의문을 제시했다.

5 스타 작가는 건재하다

프리다 칼로의 작은 자화상 옆에는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이 걸려 있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는 누구일까? 아마도 자르디니 초상화 섹션에 자화상이 걸려 있는 프리다 칼로일 것이다. 프리다 칼로의 작은 작품 앞에는 직원이 항상 서 있을 정도다. 그만큼 이번 비엔날레는 스타 작가를 내세우기보다는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가 중심의 구성이 매력적이다. 하지만 병행, 외부 전시에서는 지금 미술 시장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미술가 에디 마티네즈, 마우리치오 카텔란, 윌리엄 켄트리지, 이우환, 쩡판즈, 피에르 위그, 짐 다인 등의 전시를 만날 수 있다. 게다가 이 작가들이 베니스를 직접 찾아오자 미술애호가들은 환호했다. 골목에서, 전시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스타 작가들은 비엔날레의 묘미다. 스타 작가들이 바쁜 스케줄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곳에서 전시를 연다는 것은 베니스 비엔날레가 상업적으로도 큰 힘이 있다는 방증이다. 베니스에서 최고의 전시를 선보인다는 것은 작가의 자존심과 직결된다.

팔라초 디에도에서 열리는 그룹전 <야누스>에선 이우환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 Lee Ufan, Beyond Venice, Relatum – The Location, 2024, Steel, stone. Photo by Massimo Pistore. Courtesy of Studio Lee Ufan, ADAGP and Berggruen Arts & Culture _ Palazzo Diedo

© Lee Ufan, Beyond Venice, Response (3), 2023_2024, Acrylic on canvas. Photo by Massimo Pistore. Courtesy of Studio Lee Ufan, ADAGP and Berggruen Arts & Culture _ Palazzo Diedo

 

6 남미 작가들의 부상

이번 비엔날레 주제는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인데, 직관적 주제이다 보니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작품 캡션마다 작가의 고향과 활동 도시가 어디인지 살펴보게 되는 단점도 있다. 아드리아노 페드로사 예술감독이 비엔날레 최초로 남미 출신이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남미 작가 작품을 대거 발견할 수 있다. 유럽 한복판 베니스에서 남미 작가의 작품을 다채롭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아르헨티나 여성 작가 라 촐라 파블리트 La Chola Poblete는 퀴어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은 그림과 사진 작품 등을 선보였다.

 

7 퀴어 전성시대

레바논 작가 오마르 미스마르 Omar Mismar는 퀴어 형상을 담은 강렬한 타일 작업을 선보였다.

아드리아노 페드로사 예술감독이 퀴어이다 보니, 퀴어 작가의 전시가 강세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퀴어’는 성(性) 소수자의 의미이지만,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이방인’의 하나로도 여겨진다. 섹시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의 작품이 중심을 이루는 퀴어 작가 작품은 비엔날레 곳곳에 등장한다. 또한 캐나다, 중국, 홍콩, 인도, 멕시코, 니카라과, 파키스탄, 페루, 필리핀, 남아프리카, 미국 퀴어 작가의 작품을 모은 큰 전시장이 있다. 그리고 중국, 이탈리아, 필리핀 작가의 작품을 모은 퀴어 추상화 섹션도 발견할 수 있을 것. 우리나라의 이강승 작가도 퀴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박해를 받고 인정받지 못한 퀴어 작가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다. 일부 작품의 작가 설명에는 아예 작가의 성 정체성을 밝혀 관람객의 작품 이해를 돕는다.

 

한국 현대미술의 정수는 무엇인가?
최정주 전시감독과의 만남

<한국 미술의 정수: 손에서 정신으로의 여정>의 감독 최정주에게 전시에 대해 물었다. 콘실리오 유럽 델 아르테 재단 Concilio Europeo dell’Arte Foundation 공모를 통해 최우수 콘텐츠로 선정된 협력 전시라는 점이 특별하다.

인파라디소 아트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현대미술의 정수>. © 정혜련, 14를 결합하는 방식, installation in mixed media, UP_377×410×48cm, DOWN_300×300×200cm, 2024.

지난 4월 베니스 비엔날레와 더불어 전시가 시작되었는데, 현지 평가는 어떤지 궁금하다. 전시장 인파라디소 아트 갤러리가 자르디니 초입에 위치하고, K-아트 전시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5월 중순 현재 하루 평균 200명, 주말에는 300~400명 정도가 방문할 정도로 인기다. 학생부터 미술 관계자까지 단체로 찾아오기에, 주말 오후에는 이탈리아어와 영어 도슨트를 진행한다.

기하 추상의 하인두, 단색화의 박서보, 신형상회화의 고영훈, 미디어 설치의 정혜련 등 한국미술의 미술 경향 중 한국 현대미술 경향 네 개와 작가 네 명을 선정한 기준은 무엇인가? 1970~80년대 미술 흐름인 단색화가 재조명된 것은 한국 현대미술 원류가 지닌 저력을 증명하는 것. 이제 세계 관심은 ‘K-아트의 다면적 특성이 무엇인가’라는 지점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기획자로서 1960년대부터 동시대까지 이어져온 미술의 연대기적 특성과 고유성을 알릴 필요성을 느꼈다. 그중에서도 1960년대 말의 기하추상부터 1970년대의 단색화, 1980년대의 신형상회화, 동시대의 복합매체 현상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미술의 단면은 새로운 조형 실험의 필요성과 한국적 예술의 정립에 대한 시대적 염원을 제시한 대표적 미술 현상이다.

전시 제목 <한국 현대미술의 정수: 손에서 정신으로의 여정>의 의미를 설명해달라. 한국 현대미술은 빈손으로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로 인해 전통의 맥을 놓치고 전쟁이 쓸고 간 황폐한 환경을 극복하면서 지형도를 스스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작가 신체를 상징하는 손은 새로운 조형적 자극을 체득하는 창구였고, 이는 고유의 전통과 철학을 내재화하는 과정을 거쳐 시대와 호흡하는 정신적 가치를 발화하며 나아갔다. 하인두 작가는 기하추상의 조형성에 전통과 생명의 가치를 투영했고, 동서양의 미학을 재해석하는 독자적 언어를 정립했다. 또한 박서보 작가는 노동의 신성성을 한국적 미감과 동양 철학의 정신성으로 꽃피워 독특한 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 그리고 고영훈 작가는 대상의 형상을 극사실적으로 강조해 본질이 지니는 근원적 의미를 들여다보게 하는 신형상회화의 물꼬를 트면서 일상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했다. 정혜련 작가는 전통적 미감과 정서를 현대의 융복합적 설치로 재해석해 전통과 현대, 자연과 인간이 교차하는 공감대를 형성해왔다. 그동안은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이 특정 장르나 작가에 국한된 것이었다면, 이제는 미술사적 접근과 심층 분석을 전제로 한 기획이 뒷받침되어야 할 때다. 전시는 11월 2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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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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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결정

시간의 결정

시간의 결정

시간의 흐름을 주제로 까르띠에의 예술성과 창의성을 조명한 전시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개최됐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황홀한 까르띠에 주얼리의 향연.

1932년, 까르띠에 소장품 중 하나인 네크리스. © Yuji Ono

회반죽해 마감한 전시대. © Yuji Ono

전시장 도입부를 장식한 스기모토 히로시의 타임 리버스드 작품. © Yuji Ono

2019년 도쿄국립신미술관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전시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이 그 두 번째 문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었다. 까르띠에 컬렉션으로 불리는 소장품들과 아카이브 자료를 비롯해 평소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희귀한 개인 소장품 등 300여 점을 한데 모았다. 이번 전시는 시간을 중심으로 ‘소재의 변신과 색채’, ‘형태와 디자인’, ‘범세계적인 호기심’이라는 세 가지 관점으로 구성된다. 특히 눈부시게 반짝이는 까르띠에의 작품들을 한층 돋보이게 만드는 공간도 이번 전시의 관전 포인트다. 이는 아티스트 스기모토 히로시와 건축가 사카키다 토모유키가 설립한 일본 건축회사 신소재연구소의 실력으로 마치 동굴을 탐험하는 것처럼 오랜 시간 지구가 영위해온 막대한 힘을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어둡고 좁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시침과 분침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시계탑과 마주하게 된다. 이는 1908년 제작된 시계를 아티스트 스기모토 히로시가 개조한 작품인데,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 역행하는 시계를 바라보며 물질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을 알린다. 이후 이어지는 ‘프롤로그’ 공간은 까르띠에의 예술성, 창의성, 뛰어난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미스터리 클락과 프리즘 클락을 감상할 수 있다. 본격적인 전시의 시작이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소재의 변신과 색채’에서는 까르띠에의 혁신적인 디자인을 창조하기 위해 독보적인 노하우로 소재와 색채 다루는 법을 소개한다. 플래티늄을 가미해 더욱 돋보이는 다이아몬드, 규화목 같은 독특한 소재와 다양한 보석을 이용한 대담한 색채 조합까지, 참신하고 창의적인 디자인을 향한 까르띠에의 혁신을 보여준다. 특히 이곳의 쇼케이스는 일본 삼나무인 가스가 스기를 배경으로 활용해 동양적 미감을 더했다. 궁극의 미적 단순성을 지닌 삼나무의 적갈색 나이테가 주얼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챕터 1에 자리한 뚜띠 프루티 파트 쇼케이스.© Cartier © Victor Picon

오야석을 쌓아 올려 땅속 깊은 곳을 연상케 하는 챕터 2 전시 전경. © Yuji Ono

또한 이번 한국 전시를 위해 신소재연구소가 한국 전통 직물인 ‘라 羅’ 섬유의 제작방식을 복원해 전시장에 활용한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촘촘히 얽어 짠 라를 사용해 섬세하고 은은한 반투명의 질감을 표현했다. 이어지는 ‘형태와 디자인’에서는 선과 형태의 본질을 찾아 떠나는 까르띠에의 여정이 테마별로 전시된다. 자연의 선을 완벽하게 표현해낸 에센셜 라인과 스피어, 주얼리 디자인의 건축적 요소를 조명하는 뉴 아키텍처, 주얼리에 움직임을 구현하는 옵틱스 등이 준비되어 있다. 이 공간은 오야석을 쌓아 올려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 보석을 찾는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연출했다. 거친 표면의 돌과 까르띠에의 젬스톤 간의 대비를 즐기며 감상해보기 바란다. 마치 보석이 숨겨진 저 깊은 땅속 동굴을 탐험하듯 말이다. 마지막 챕터인 ‘범세계적인 호기심’은 까르띠에 디자인의 원동력인 세계 문화와 동식물에서 영감을 얻은 독보적인 작품들을 선보인다. 루이 까르띠에의 세상을 향한 끝없는 관심을 바탕으로 한 그의 아트 컬렉션과 라이브러리를 엿볼 수 있다. 이는 회반죽으로 마감한 16m 길이의 타원형 전시대에 놓여 있어 우주를 가로지르는 혜성을 연상케 한다. 관람객은 아주 작은 주얼리를 감상하면서 마치 광활한 우주 공간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가치와 시공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담아낸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전은 6월 30일까지 진행된다.

꽃봉오리를 연상케 하는 브레이슬릿. © Cartier © Victor Picon

팬더 브레이슬릿. © Cartier © Victor Picon

데이비드 센트너 부부의 소장품. © Cartier © Victor P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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