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의 취미라 여겨지던 분재가 젊어지고 있다. 함께 호흡하고 성장하는 분재의 매력에 빠져 브랜드까지 론칭한 메산분재 차경민 디렉터와 이야기를 나눴다.
작은 분재들을 모아둔 아일랜드 형태의 작업대 선반. 차경민 대표가 수집한 빈티지 오브제와 함께 디스플레이했다.
스페이스차를 이끄는 공간 디자이너이자 메산분재 디렉터로 활동 중인 차경민 대표.
분재는 거센 비바람을 이겨낸 고목을 일상의 공간에서 즐기고자 시작되었다. 작은 화분이나 그릇에 나무와 이끼, 풀 등을 심어 수천 년의 신비로움을 압축해 담아낸다. 멋의 기준 또한 자연에서 오랜 시간 버텨온 나무의 아름다움이다. 고목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듯 제각기 아름다운 수형을 뽐내곤 한다. 철사를 꼬아 가지의 방향을 잡고, 껍질을 벗겨내어 죽은 나무의 형태를 만드는 사리 과정에서 때로는 자연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냐는 선입견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나무가 숨쉴 수 있도록 까다로운 생태계 환경을 구현하고 충분한 영양분을 주며 정성스레 가꾸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분재의 가치다.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스페이스차를 이끌며 메산분재의 디렉터로 활동 중인 차경민 대표는 일찍이 분재의 매력에 빠졌다. 직접 만들어가는 작은 숲을 지켜보며 함께 생동하는 기쁨에 대해 그에게 물었다.
분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사실 분재는 어릴 적부터 자주 접했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 취미로 즐겨 하시던 기억이 난다. 2021년, 분재에 대해 커리큘럼이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곳에서 배우고 싶던 차에 지인에게서 ‘유수형분재학교’를 소개받았다. 유수형 교수가 진행하는 분재 학교다. 1년간 수업을 들으며 본격적으로 분재를 시작하게 되었다. 동기들은 대부분 60~70대였다.(웃음)
무엇을 배웠나? 기술과 테크닉을 배우기보다 분재에 대한 이해를 먼저 한다. 아무래도 공간 디자인을 하다 보니 연결이 많이 되었다. 밸런스를 맞추거나 미적인 수형을 찾는 것이 좀 더 수월했다. 분재도 결국 나무를 디자인하는 과정이다. 개인이 수형을 만드는 과정에서 개인의 성향이 드러난다. 흘러내리는 타입(현애형)을 선호한다면 철사걸이로 곡을 더 만들고, 안정적인 형태를 선호한다면 가장 일반적인 역삼각형의 황금비율을 찾으려 한다.
메산분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작년 봄, 유 교수님을 만나 최근 젊은 층이 분재에 관심이 많다는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때부터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아니었으나, 분재의 저변 확대를 위해 무언가를 구상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메산분재에서 유 교수님이 전반적인 분재 작업과 콘텐츠 기반을 채워준다면, 나는 기존에 존재하던 분재라는 개념을 어떻게 좀 더 설득력 있게 만들 것인지 고민하는 역할이다. 고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분재로, 한 번의 전시에 그치는 것이 아닌 브랜드로서 다음 행보가 기대되게끔 만들고자 한다.
이끼를 소복이 담은 분재에서 자연의 생동감이 느껴진다.
분재 작품을 선보이는 쇼룸과 클래스를 운영 중이다. 특히 분재 렌털 서비스가 흥미로웠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어떤지. 우선 고부가가치를 렌털한다는 개념 자체가 아직 낯설게 느끼지는 것 같다. 사실 일본에는 분재 리스가 많고, 익숙한 개념이다. 일정 기간(보통 2주)에 한 번 분재를 교체하거나 지속적인 관리를 제공하다 보니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다. 대형 오피스나 상업 공간, 호텔 리셉션에서 주로 찾는다. 개인 주거 공간에서도 진행했는데, 프라이빗한 공간을 매주 방문한다는 게 서로에게 부담인 것 같아 방법을 고민 중이다.
최근 챕터원 DOQ 공간에서 분재 전시 을 선보였다. 작년에는 쇼룸 오프닝 전시로 빈트 갤러리와 함께 ‘시간’이라는 키워드를 선보였다. 외부에서도 선보이고 싶던 차에 챕터원과 메산분재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먼저 제안을 했다. 챕터원의 새로운 공간인 DOQ 오프닝 전으로 선보이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정말 많은 분이 찾아주셨다. 전시 끝날 무렵에는 1타임당 40~50명씩, 최대 70명까지 찾아주셨다. 게다가 젊은 층이 대부분이었다.
메산분재가 렌털 서비스로 진행한 분재. 두 갈래로 높이 뻗어 올라가는 가지의 모습이 힘차다.
잎이 피기 전 가지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 소사나무.
그렇다. 최근 젊은 층의 분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30년 전 유행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웃음) 어릴 적 아버지께서 한창 분재하시던 기억이 있으니 맞는 듯하다. 젊은 층에겐 생소해서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요즘은 깊이 있는 취미 생활이나 프로덕트에 관심도가 많아지는 추세다. 와인, 그림, 빈티지 가구 등 취미로 즐기는 카테고리가 점점 저변 확대되어 깊게 즐기는 것 같다.
분재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 분에 담긴 상태에서 관리만 잘 된다면 영원히 살 수 있는 반려식물이다. 같이 호흡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분재 종류에 따라 즐기는 방식도 다르다. 진백류처럼 사시사철 푸른 것도 있고, 소사나무는 일 년에 한 번 낙엽을 보기 위해 키우고 관리하기도 한다. 농부의 마음이다. 아주 작은 분재에서 주먹만 한 과실이 열리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워낙 잘 간다. 특별한 생각 없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직접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한데, 보통 작업은 언제 하나? 작업은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소요되다 보니 주말에 한다. 집에도 분재가 있지만, 특별히 작업실을 마련하지 않으면 작업이 어렵다 보니 보통 관상용으로 즐기게 되는 것 같다.
가장 애정하는 것은? 여백이 많은 사어천 진백류나 소사나무를 좋아한다. 가장 애정하는 분재는 집에 있는 소사나무였는데, 반 년 전에 죽었다. 노란 잎이 그대로 마른 모습이나 수형이 지금 봐도 여전히 예뻐 가만두었다.
작은 분재들을 모아 꾸민 아일랜드 형태의 작업대.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장수매 8년, 10만원. 소사나무 15년, 25만원. 고사목 분재, 20만원.
향나무 80년 수령은 오래되었지만 제대로 된 사람의 손길을 못 받았던 나무. 10여 년 전 불규칙하게 휘어져 올라간 줄기 모습에 매료되어 입수한 후 지금 형태로 만들어냈다. 가지를 과감하게 줄여 사리를 만들고 공간을 창출해 자연미를 한층 살렸다. 줄기 중간에 강하고 힘있게 휘돌아간 모습이 압권이다.
사어천 진백 40년 분재 용어로 흘러내리는 형태를 반현애라 한다. 절벽에서 자라는 나무의 모습을 재현해 반현애의 아름다움을 담았다. 줄기와 가지에 만들어진 사리에서 오랜 시간 풍파에 시달린 나무의 모습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250만원.
편백나무 60년 죽은 나무와 편백나무를 모아 심은 작품으로, 분재계에서는 처음 시도한 것이다. 우연히 죽은 나무들을 보고 30여 년 전 지리산 정상 부근에서 본 고사목 군락지가 떠올랐다. 살아 있는 나무와 죽은 나무가 공존하며, 계속 성장하는 나무와 점점 소멸해가는 자연의 법칙이 하나의 화분에 모두 담겨 있다.
향나무 50년 새하얀 사리 줄기로 이루어져 곧 수명을 다하고 생명이 꺼질 듯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두 줄기의 생명선이 살아 있어 여전히 영양 공급을 하고 건강한 상태다. 줄기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살리기 위해 철근으로 지지해 상부의 줄기를 과감하게 휘어주었다. 300만원
철사 분재 얇은 철사로 분재 형태를 만든 작품. 휘감아 올라가는 줄기와 작은 가지의 디테일을 섬세하게 살렸다.
Bonsai Tools
분갈이 후 분재 위의 작업 먼지를 털어낼 때 사용하는 분갈이 청소 솔. 왼쪽은 메산분재 대표 컬러를 사용해 만든 제품. 오른쪽은 일본 여행 중에 구입한 것.
가장 기본적인 분재 도구인 세지 가위. 가지를 세밀하게 다듬을 때 사용한다.
분재 작업에서 수형을 잡을 때 가장 많이 필요한 철사 작업. 철사를 감고, 끊고, 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가위들이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혹가위, 철사가위, 집게가위, 가지가위.
세모끌. 나무 껍질을 벗겨내 죽은 고목의 하얀 빛을 만드는 사리작업 조각을 할 때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