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아름다움을 품은 정원 베케가 오랜 준비 끝에 확장한 새로운 공간을 선보인다.
자연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지는 곳이다.
“정원은 지구의 표피예요. 정원의 규모는 아주 작지만 자연의 거대한 흐름이 이어지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자연의 동맥과 정맥을 이으며 좋은 연결점을 만드는 것, 그것이 나의 역할이에요.” 조경 디자이너이자 생태정원가 김봉찬 대표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질서가 담긴 자연주의 정원을 선보인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그가 내면 깊숙이 체득해온 자연의 섭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평강식물원, 제주 비오토피아 수풍석 박물관, 국립 백두대간수목원 암석원, 아모레 성수 등 그가 만들어낸 이 시대의 정원이 더욱 특별한 이유일 터. 그런 그가 2018년, 마침내 30년간의 노하우를 담아 자신만의 정원 ‘베케’를 선보였다.
본래 그의 부모님이 40년간 일구던 귤밭이었고, 이후에는 김봉찬 대표가 정원 식물을 키우던 밭이었다. 그래서 베케의 커다란 목련나무를 비롯해 정원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식물은 씨앗부터 발아해 키운 것이다. 생태정원가답게 그의 정원은 식물을 그저 보기 좋은 방식으로 전시하거나 장식한 곳이 아니다. 식물이 살아갈 터전을 먼저 생각하고, 식물 간의 관계를 고려한 지속 가능한 정원이다. 토양과 기후, 서식처에 맞도록 식물의 자리를 잡아주고,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현했다. 꽃이 없어도 아름답고, 시들고 볼품없는 것도 눈여겨볼 만한 정원이다.
베케는 제주 방언으로 ‘돌담’을 의미한다. 밭을 일구는 과정에서 쌓인 돌은 자연스레 밭의 경계를 형성하고, 엉성하게 쌓인 돌담은 그 자체로 멋진 자연의 요소다. 베케의 시작인 돌담 주위로 이끼 빗물 정원을 만들고, 지면보다 낮은 건물에서 자연을 바라보도록 유도했다. 바로 베케의 상징적인 장면인 ‘자연을 보는 창’이다. 이곳이 단순히 정원이 있는 카페나 포토제닉한 장소로 알려지는 것이 아쉽던 김봉찬 대표는 정원 중심 공간으로 나아가고자 베케를 확장했다. 기존 공간은 정원을 작품처럼 감상하는 ‘베케 뮤지엄’으로 바꾸었고, 새로운 정원과 공간을 열어 정원 도슨트와 멤버십 회원제를 운영한다. 정원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함이다. 기존 공간을 함께한 설치미술가 최정화 작가가 이번에도 총괄 디렉팅을 맡았다. ‘첫 번째 베케’의 건축은 정원을 겸손하게 바라보는 공간이 나 창이었다면, ‘두 번째 베케’는 건축과 자연이 공생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의 이창규, 강윤정 건축가가 함께하며, 정원과 건축이 서로 존중하는 공간을 구현했다. 건축을 위한 조경이 아닌, 설계 초기 단계부터 정원을 중점적으로 고려한 프로젝트다. 새로운 건물은 세 동으로 나눠 앉혔다.
안내가 시작되는 A동, 워크숍과 강의가 진행되는 B동, 라운지 겸 카페 역할을 하는 C동은 하나의 길로 연결된다. 그리고 공간과 공간 사이에는 자연이 펼쳐지는 ‘길의 건축’이다. 건물의 길은 정원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새로운 정원은 제주에서 볼 수 있는 식생을 모았다. 평평했던 땅은 ‘굼부리(제주 방언으로 화산 분화구)’ 형태로 움푹하게 파내고, 그 위에 건물을 띄워 제주 원시림의 숲을 구현했다. 건물 주위를 빙 둘러 정원으로 향한다. 쭉쭉 위로 뻗은 노각나무 숲을 지나가는데, 직선적인 건물에 조화롭게 어울리도록 군더더기 없이 날씬한 형태의 나무를 심었다. 건물 맞은편으로는 한라산 계곡의 절벽을 표현한 베리 정원이 있고, 건물 아래로는 푸른 초원 같은 숲이 펼쳐진다. 오름의 습한 초원을 그리기 위해 만든 이끼 사초 정원이다. 종류도 크기도 다른 식물들을 모아 심었지만, 무엇 하나 모나지 않고 거대한 초원처럼 어우러진다. 다양성을 품은 단순함은 그 무엇보다 안정적이고 평온함을 준다. 김 대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체성의 원리다. 양쪽으로 쏟아지는 정원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가장 낮은 땅에 다다른다. 굼부리 바닥보다 낮은 옴팡질이다. 움푹 파였다는 뜻의 ‘옴팡진’ 길이다. 정원에서 가장 낮은 땅으로, 이곳에서는 자연과 건축을 저절로 올려다보게 된다. 겸손함과 숙연함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모든 존재는 아름답거나 아름다워지려 노력해요. 그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요. 질서와 규율에서 오죠. 혼돈과 질서는 서로 다른 개념이 아닙니다. 혼돈의 끝이 질서인 거죠.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은 물리적으로 공생하게끔 살게 되어 있어요. 혼돈에서 질서로 가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이치입니다. 자연이 안정되고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공생의 관계에 있어요. 이것이 정원 디자인의 기본입니다.” 자연의 숲은 혼돈에서 질서로 가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준다. 바람이 불어도, 태풍이 지나쳐도 끊임없이 나아간다. 베케의 두 번째 정원은 이제야 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머잖아 무성하게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다. 알맞게 피어낼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고려하고 자리를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풀과 나무와 돌과 흙은 서로 의지하며 깊게 뿌리내릴 것이다. 공생하는 자연이다.
ADD 제주 서귀포시 효돈로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