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빛을 보지 못한 독일 낭만주의 대표 작가를 제대로 알아볼 시간이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산 정상에 서 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소셜미디어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진 이 그림은 19세기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 작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가 1817년 그린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로 함부르크 미술관 소장품이다. 뒷모습을 찍어 올리는 인스타그램 시대의 관객들에게 크게 공감을 얻으며 점차 주목받기 시작한 그림이다. 현재 베를린 국립미술관에서는 작가의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 전시를 위해 함부르크 미술관과 베를린 국립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협력했으며, 2025년 2월부터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순회 전시를 열 계획이다.
살아생전 그의 작품은 아카데미에 전시되었으며,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구매하기도 했다. 그러나 1840년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점차 잊히게 되었다. 그를 다시 발굴한 것은 20세기 초 베를린 국립미술관의 기획 전시였다. 그런데 하필 히틀러가 작품 속 독일 풍경을 ‘독일 민족의 피와 그들이 살아가는 땅’이라는 나치즘의 핵심 사상에 빗대며 그를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손꼽자, 도리어 기피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의 작품이 재평가를 받게 된 것은 무려 1970년대에 이르러서다. 영국의 터너, 프랑스의 들라크루아에 못지않은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 작가로 손꼽히게 된 것. 현대 도시인들이 좋아할 만한 외로운 정서가 매력적으로 여겨지면서 이제는 전 세계가 흠모하는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작품의 독특한 분위기는 그의 개인사를 떼어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독일 북부 그라이프스발트에서 성장하며 자연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해안선과 산맥을 따라 해가 뜨고 지는 순간의 빛의 흐름을 지켜보는 것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자 작품 속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소재이기도 하다.
그는 이곳을 신혼여행지로 다시 선택할 정도로 고향 마을 풍경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의 슬픈 기억을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곱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나서 그 다음해에 누이를, 이어 동생이 얼음에 빠져 익사하는 것을 목격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뒤에 있는 무자비함, 그 속에 있는 인간의 존재는 광활한 풍경 속 미미한 것들로 표현된다. 종교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시대, 그의 작품에서 자연은 그 자리를 꿰찬 신비롭고 초월적인 존재, 늘 인간이 바라보는 대상으로 자리한다. 유화와 스케치를 총망라한 이번 전시는 연대순, 주제별로 작가의 40년 경력을 소개하면서, 여전히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그가 주로 뒷모습을 그린 이유가 얼굴을 잘 그리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소문이다. 전시는 마치 이를 정면으로 반박이라도 하듯 초상화 방으로 시작한다. 같은 주제를 반복적으로 다루며 어떻게 조금씩 변화를 주었는지, 다른 화가 작품에는 프리드리히의 영향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함께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