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대한 사유와 아시아 근대성에 대해 탐구하는 싱가포르 미디어 아티스트 호 추 니엔.
다양한 매체를 통해 20년에 걸쳐 아시아의 근대성과 역사를 탐구해온 호 추 니엔 Ho Tzu Nyen. 그는 싱가포르의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으로서 역사적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독특하고 세련된 영상을 작업해왔다. 특히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아시아의 근대성에 주목했다. 서구의 변증법적 역사 속에서 획일적으로 치부되어온 아시아의 문화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다차원적인 아시아의 시공간을 연구하고 있다.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 때 싱가포르 대표 작가로 참여했으며 싱가포르 아트뮤지엄, 일본 도쿄도미술관, 프랑스 팔레 드 도쿄,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등에서 개인전을 선보인 바 있다. 최근엔 2024 샤넬 넥스트 프라이즈를 수상하며 주목할 만한 비주얼 아티스트로 손꼽히고 있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개인전 <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 Time&the Cloud>에서는 20년에 걸친 그의 작업 세계를 총망라해 선보인다. 전시 제목인 ‘클라우드’는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구름은 거대한 자연의 요소이자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상징물이며, 모호한 미지의 대상이다. 또한 온라인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서버이자 데이터베이스를 의미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러한 의미를 이중 스크린으로 표현했다. 신작 <시간(타임)의 티 T for Time>(2023-2024)는 시간에 대한 작가의 다층적 탐구를 두 개의 스크린을 통해 선보인다. 후면 스크린에는 실사 이미지가, 그 앞에 놓인 스크린에는 이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영상물이 재생된다. 영상에는 동서양의 신화적, 문화적 인식 차이에서부터 철학적 사유, 시간을 계량화하는 도구, 서구의 근대적 시간의 발명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주제가 작업 전체를 관통하며 장대하게 펼쳐진다.
맞은편에는 또 다른 신작 <타임피스 Timepieces>(2023-2024)가 재생된다. 43개의 모니터 영상 설치 작업인 이번 작품은 ‘시간(타임)의 티’를 구성하는 42개 챕터를 개별적인 이미지로 풀어낸 작품이다. 모니터 속 영상은 각각의 시간성을 부여받아 1초, 24시간, 약 165년(해왕성의 공전 주기) 등 다양한 주기로 반복 재생된다. 작가만의 ‘클라우드’ 장치를 통해 중첩되기도 펼쳐지기도 한 이미지는 시간에 대한 사유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스페이스1에서는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그의 대표작 <호텔 아포리아 Hotel Aporia>(2019)를 만날 수 있다. 일본 전통 료칸 기라쿠테이에서 열린 가미카제 특공대의 마지막 연회를 통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담은 작품이다. 이번 전시 역시 료칸을 연상시키는 다다미 방에서 영상이 재생되며, 그 사이로 부는 스산한 바람이 생경한 감각을 일깨운다. 전시는 오는 8월 4일까지.
이미지 제공: 아트선재센터 사진: 남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