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임금의 초상화를 모신 곳, 덕수궁 선원전 터
선원전은 궁궐에서 선대 왕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공간으로, ‘아름다운 옥의 근원’을 의미하며 왕실의 뿌리를 상징했다. 덕수궁의 북문 영성문을 비롯해 빈전 흥덕전, 혼전 홍복전 등이 있었고, ‘영성문 대궐’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독립된 영역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1919년 고종 서거 후 선원전은 일제에 의해 무참히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는, 경성제일 공립 고등여자학교(경기여자고등학교 전신), 조선저축은행 중역사택 등이 들어섰다. 2011년 국가유산청 소유로 변경되었고, 2021년부터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현재 발굴 조사가 끝난 공터는 개방되어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으며, 선원전 터 서쪽에 위치한 조선저축은행 중역사택은 특별한 사진전과 함께 내부를 공개한다. 국가유산청 홍보대사인 이명호 작가의 <회화나무, 덕수궁…>이다. 덕수궁 선원전 터의 200년 된 회화나무를 주제로, 역사 속에서 사라진 선원전의 기억을 되살리는 상징적인 역할로 주목했다. 전시는 8월 31일까지.
ADD 서울시 중구 정동 1-8
아관파천 피란길, 고종의 길
선원전 터에서 경사로를 올라 드높이 위치한 ‘고종의 길’로 향한다. 1896년 아관파천 때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길로, 덕수궁 돌담길에서 옛 러시아공사관(현재 정동공원)까지 이어지는 약 120m 구간이다. 폭은 3m 남짓으로, 복잡한 도심과 한순간 차단된 듯한 고즈넉함이 느껴진다. 높은 돌담길을 따라 나서면 정동공원으로 이어진다. 과거 러시아공사관이던 곳은 한국전쟁으로 건물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며, 언덕 높이 자리한 탑 등 일부 시설과 터만 볼 수 있다. 이 역사적인 길은 2016년 아관파천 120주년을 기념하여 복원사업이 시작되었고, 3년간의 복원 과정을 거쳐 2018년 10월 정식으로 개방되었다. 이제 이 길은 방문객들에게 19세기 말 역사적 사건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당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고종이 피신하던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때 그 시절의 역사를 되새기며 역사와 현대를 잇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ADD 서울시 중구 덕수궁길 83
옛 신아일보 별관, 신아기념관
정동길 중심에서 높은 돌출형 출입구로 시선을 사로잡는 신아기념관. 1930년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지어진 이 건물은 정동에서는 비교적 늦게 지어진 건물이지만, 붉은 벽돌로 지어져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당시 관공서에서만 사용하던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민간 건축에 적용한 사례로 근대 건축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정면 중앙의 벽돌 아치는 지하층의 출입구 역할을 하고, 지상층은 양 옆 계단을 통해 들어간다. 과거 미국의 싱거 미싱회사 한국지부로 사용되었던 이 건물은 1969년 신아일보사에 매각되었으며, 1975년 3층과 4층을 증축해 건물 규모를 확장했다. 신아일보는 1965년 창간된 종합일간지인데, 1980년 신군부의 강제 언론 통폐합으로 폐간되었다. 현재 신아일보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기념관으로 사용 중이며, 층마다 소일베이커, 라파르마, 갤러리모순 등 다양한 숍을 만날 수 있다.
ADD 서울시 중구 정동길 33
을사늑약의 현장, 중명전
국립 정동극장 왼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붉은 벽돌로 된 서양식 건물이 고고하게 서 있다. 대한제국의 슬픈 역사를 목격해온 중명전이다. 현재의 건물이 세워지기 전에는 고종의 서재인 수옥헌으로 불렸다. 1899년 황실 도서관으로 준공되었다가 1901년 화재로 소실된 이후 1904년 현재 중명전의 원형이라 볼 수 있는 건물이 완성되었다. 경운궁(현재 덕수궁) 대화재 후 중명전으로 거처를 옮긴 고종이 업무를 본 편전이기도 했다. 그러나 1905년 바로 이곳에서 을사늑약이 행해졌으며, 고종이 애통한 마음을 알리고자 헤이그 특사 파견을 준비한 곳이기도 하다. 1층 전시실에서는 이 비통한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이 건물은 2006년 문화재청에 의해 인수된 후, 2009년 12월 전체 보수 공사를 마쳤으며, 2010년 8월부터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ADD 서울시 중구 정동길 4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