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곡 바람에

금곡 바람에

금곡 바람에

고요한 고택에 스며든 바람, 그리고 섬유에 새겨진 자연의 기억.
무형문화재 안동포 마을인 금소의 풍경과 삼베실에 깃든 애환이 전통 한옥과 자연의 조화 속에서 다시금 살아난다.

역사를 빚는 손

안동의 대마섬유를 다루는 어르신들의 손에는 세월의 흔적이 깊이 새겨져 있다.

그 손길은 자연과 하나되어 대마를 섬유로 엮어내고, 그 속에서 전통을 이어간다.

주름진 손바닥과 손끝에서 전해지는 따스함은 대마섬유에 스며들어 안동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예술작품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금소 마을 봇도랑 물길에 사는 버들치

 봇도랑을 따라 흐르는 물길에는 작은 생명들이 어우러져 살아간다. 삼베를 짜는 재료인 개추리를 꼬리에 달고 버들치가 물 아래에서 춤추듯 노닌다.

안동포 마을의 소소하고도 아름다운 일상은 이 물길을 따라 번지고 물속의 작은 존재들은 그 속에 빛나는 생명을 이어간다.

고요한 바람

금소 마을의 한적한 재배지에서 자라난 헴프는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바람에 나부끼는 이파리는 시골의 고즈넉함을 닮아 한없이 유연하다.
안동 한지로 고택의 벽면을 감싸고 개추리로 재현된 밭은 농촌의 정겨운 풍경을 담아낸다.

금곡재 하얀 제비 떼 

금소 마을의 고택에 하얀 제비 떼가 날아들어 바람을 타고 유영한다. 섬유로 만든 제비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한없이 자유로이 한옥의 기둥 사이를 누빈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날개를 퍼덕이며 고택의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다.

아직 닿지 못한 꿈

무거운 도시의 압박을 벗어나 구름처럼 가볍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픈 소망을 담은 백아란 작가의 ‘입지 못할 옷’ 시리즈.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부유하는 듯한 이 작업은 마음의 해방을 갈망하는 현대인의 내면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당겨지는 인연

세상은 넓지만, 사실 우리는 좁은 공간 속에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잡고 당기며 붙들고 살아간다.

우리 삶의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과 상황을 표현한 작품. 서로 얽히고설킨 섬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복잡한 세계를 보여준다.

CREDIT

에디터

,

포토그래퍼

임태준

기획 및 연출

안동단

참여작가

이도경, 백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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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된 한국 5 – 안동의 숨결

알게 된 한국 5 - 안동의 숨결

알게 된 한국 5 - 안동의 숨결

<메종>이 주목한 로컬 브랜드 안동단. 메종 투 메종 2024에서 팝업전시가 열린다.

안동단 매장 안쪽에 자리한 레레관. 이곳을 찾은 방문객이나 협업을 위해 찾은 손님들을 맞이하는 공간이다.

한국의 정체성과 독특한 디자인 철학을 보여주는 특별한 장소가 안동에 문을 열었다. 한국적 감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을 즐기는 디자이너 윤이서가 지난해 가을, 안동에 마련한 ‘안동단’이다. 안동 관광두레 주민사업체와 합작으로 운영하는 기념품 편집숍 안동단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는 약 5년 전부터 시작됐다. “안동은 한국 전통의 정수가 살아 있는 곳이에요. 특히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위치한 농암종택 같은 곳은 그 자체로도 매우 아름답죠. 이러한 지역적 특징에서 느낀 영감이 제게 큰 영향을 미쳤어요.” 안동의 자연과 문화, 전통을 배경으로 윤이서 디자이너의 머릿속에는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가 마구 샘솟았다. 그런데 ‘단’의 의미는 뭘까. 당시 한국적인 스타일을 일명 ‘K 스타일’이라 표현하는 데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K 스타일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을 고민했다. “해외에 나가면 K 스타일, K 푸드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데, K라는 표현이 한국의 본질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고 느꼈어요.” 윤이서 디자이너는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해 일본의 젠 Zen처럼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단어를 고민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단색 미학과 그 속에 담긴 단아한 아름다움에 주목하게 되었고, 그 결과 ‘단’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었다. “단일민족이라는 뜻도 있어요. 이 단어에는 우리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하얀 벽지, 한지 방, 그리고 백자 같은 단색 아름다움이 바로 그것이죠. 이런 단색의 미를 단순한 것 같지만 매우 깊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었어요.” 윤이서 디자이너는 예부터 한국인들은 단아함을 미의 기준으로 삼아왔고, 이는 여전히 우리의 미적 기준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문화적 뿌리에서 출발해 윤이서 디자이너는 ‘단’을 중심으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고, 그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안동단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고요한 멋이 느껴지는 공간.

오래된 고가구 반닫이를 높게 쌓아 수납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안동단은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매장이 아니라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기념품화하고 아트 오브제로 전환해 선보이는 공간이다. 윤이서 디자이너는 한국의 각 지역을 탐방하며 그 지역의 문화적 정수를 ‘단’이라는 이름 아래 묶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안동단의 주요 상품 중 하나는 하회탈을 모티브로 한 기념품이다. 전통적인 하회탈의 무서운 이미지를 좀 더 현대적이고 친근한 모습으로 바꾸어 다양한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상품으로 재탄생시킨 것. 기존 전통 미학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룬 오브제가 주를 이룬다. 퇴계 이황 선생이 도산서당을 중심으로 주변을 그린 풍경화 <계상정거도>를 담아낸 달력과 마스킹 테이프, 찻자리 세트를 담은 미니어처 반닫이 등 안동을 주제로 한 이색적인 상품이 그 예다. 매장 공간 인테리어 역시 기존 틀을 과감히 깨버린 모습. 기성 가구나 소품을 사용하는 대신 오래된 가구나 전통적인 소품을 재활용해 공간을 꾸몄다. 예를 들어 전통 가구인 반닫이나 오래된 장을 높게 쌓아 올려 수납장으로 활용하는 등 공간의 전통적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도 기능성을 더했다. 한국의 깊은 전통을 바탕으로 하되 이를 고루하지 않게 현대적으로 변형시켜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윤이서 디자이너. 그녀의 야심찬 프로젝트 안동단은 자신의 철학과 미학이 집약된 공간으로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한국적인 것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탐구해나갈 것이다.

안동 관광두레와 함께 안동단 프로젝트를 만든 윤이서 디자이너.

안동단 매장 입구.

우리나라 전통 반닫이를 모티브로 만든 미니어처 반닫이 차회 세트.

<계상정거도> 풍경화를 담은 마스킹 테이프.

하회탈 오브제는 심심한 에코백에 달아 포인트 아이템으로 활용하기 좋다.

자개장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미니어처 자개장 오브제.

선물을 포장하거나 장식할 때 사용하기 좋은 하회탈 오브제.

독특한 외관이 눈길을 사로잡는 안동단의 건축물.

ADD 경상북도 안동시 영가로 12-1 3층 안동단 INSTAGRAM @andong_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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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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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된 한국 2 – 위대한 유산

알게 된 한국 2 - 위대한 유산

알게 된 한국 2 - 위대한 유산

대한제국의 역사가 담긴 근대 건축물이 가득한 서울 정동길은 산책하기 좋은 거리다.
이곳의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인 덕수궁 중명전에서 문화유산국민신탁 김종규 이사장을 만났다.

덕수궁 중명전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김종규 이사장. 1층은 역사의 현장을 담은 전시장이고, 2층이 그의 사무실이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을 아는지? 영국의 내셔널 트러스트 National Trust에 비견하는 우리나라의 문화유산 보호 기관이다. 보전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을 관리하고 활용하는데, 민간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8개의 국가 소유 문화유산, 매입과 증여를 통한 4개의 문화유산 등 총 12개의 문화유산을 관리하고 있다. 이곳이 매입한 첫 문화유산은 서울 통인동 ‘이상의 옛집 터’다. 2009년, 시인 이상이 21년간 살았던 집을 매입해 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그 외에 우리에게 알려진 문화유산으로는 보성여관, 전주 박다옥, 인천 조흥상회 등이 있다.

보성여관은 아름다운 리노베이션으로 유명하다.

“12개 중에서 울릉도 역사문화체험센터 방문을 특히 추천하고 싶어요. 1910년대에 일본인 제재업자, 고리대금업자가 만든 일본식 2층 주택입니다. 2008년부터 우리가 관리하고 있으며, 지금은 울릉도 역사 전시관이자 커뮤니티 공간으로 쓰고 있어요. 과거의 아픔도 있지만 울릉도 소나무로 만든 건물이 지금까지 유지되어 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 특별하지요. 독도와 더불어 울릉도의 유산은 일본과 시시비비가 걸려 있으니,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관리를 잘 하고 지켜야겠다는 각오를 다집니다. 주민뿐 아니라 관광객의 필수 코스가 되었으니 고마운 마음이지요.” 울릉도로 가는 배편이 좋아져 관광객이 늘고 있고,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체감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가 자주 방문하는 곳은 부산 문화공감 수정이다. 1939년 지은 일본식 2층 목조 건물인데, 일본 무사 계급의 전형적인 주거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다. 근대 주택건축사의 자료로 가치가 있으며, 지금은 근대생활사 전시관으로 쓰인다. 부산이 서울 다음으로 큰 도시이고,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유산이 많기 때문에 이곳이 그 본보기가 되기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다면 문화유산이 왜 중요한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파리에 근대 건축물이 없다면 아무도 파리를 낭만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고, 상하이에 근대 건축물이 남아 있지 않다면 상하이를 ‘아시아의 진주’라고 부르지 않을 것. “만약 우리나라에 품격 높은 문화유산이 없다면 K팝의 탄생이 가능할까요? K컬처가 가능할까요? 우리나라는 5000년의 문화에서 비롯된 세계문화유산이 굉장히 많은데, 7대 사찰과 9대 선원도 이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한지 등재를 진행 중이지요. 역사가 없다면 어느 날 갑자기 멋진 문화가 튀어나올 수 없습니다. 국보와 보물도 중요하지만, 마을 입구의 성황당과 당산나무 한 그루도 의미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리랑’과 같은 무형유산까지 우리가 귀하게 생각하고 보존해야 하는데, 국가가 다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국가가 하기 어려운 섬세한 부분은 우리 국민이 나서서 동참하고 지키면서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김 이사장은 2009년부터 무보수로 이곳을 이끌고 있으며, 회원 가입 권유에 열정적이다. 한 달에 1만원씩 기부하는 문화유산국민신탁의 회원은 최근 1만7000명을 달성했다. ‘만원의 행복’이다. 지난해 10월 회원을 위한 덕수궁 음악회 때는 1만6000명이었는데, 올해 목표를 조기 달성한 것. 김 이사장의 회원 가입 열정이 어찌나 뜨거운지, 일본 전 총리 무라야마 도이미치도 가입시켰을 정도다. 김 이사장과 중명전에서 커피 한잔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먼저 회원 가입부터 해야 할 것. 그는 회원들의 고마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매년 10월에 회원만을 위한 덕수궁 음악회를 갖는다.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쉰 적이 있지만, 올해는 10회를 맞아 팝페라 가수 임형주가 특별 출연해서 덕수궁의 가을 밤을 빛내줄 것이다.

역사의 시시비비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울릉도 역사문화체험센터 방문을 독자들에게 권한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이 1호로 매입해 관리하고 있는 시인 이상의 옛 집.

김종규 이사장의 사무실은 덕수궁 중명전이다. 10년 전부터 이곳을 본거지로 삼았는데, 역사의 현장인 곳에서 근무하면서 좋은 기운을 느끼고 있다. 1층은 을사늑약과 헤이그 열사 파견과 같은 대한제국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전시장이고, 2층은 그의 사무실이다. “이곳은 경운궁에 불이 났을 때 고종이 잠시 머물렀으며, 을사늑약이 이곳에서 불법적으로 체결되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일본에서 영구 귀국한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가 사용하기도 했지요. 건물 설계는 독립문, 정관헌 등을 설계한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이 맡아 이국적입니다.” 김종규 이사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명사 중 한 사람이다.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외에 삼성출판박물관 관장,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어 꼭 참석해야 할 행사가 연일 이어진다. 이 모든 업무는 문화유산 관리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이전에 삼성출판사를 경영하면서 우리 문화의 중요성을 절감했으며, 삼성출판박물관도 유산의 중요성을 알기에 설립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산하 임업시험장에서 근무하며 우리나라에 머문 아사카와 다쿠미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다룬 저서를 여러 권 남겼는데, <조선의 선반>에서는 동양에서 조선 목가구가 으뜸이라고 예찬했습니다. 조선의 목가구는 만든 사람이 아니라 사용자가 완성하는 것이라고 했지요.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를 생각해보세요. 뒤주와 찬장을 매일 동백기름으로 닦고 손질하시던 모습을요. 그렇게 애지중지하셨으니 가구가 몇백 년이 되었어도 아름다운 색을 내지요. 사용자가 완성자라는 것이 백 번 맞는 말이지요.” 21세기의 국민이 바로 문화유산의 완성자인 것이다. 문화유산 지정은 국가유산청이 주도적으로 선정하는 것이지만, 사실 모든 문화는 보존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

부산 문화공감 수정은 1939년 지은 일본식 2층 목조 건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도와달라고 해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을 맡게 되었는데, 인생의 마무리를 문화유산 지킴이로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간 내가 몸 담았던 출판사, 박물관 등도 모두 포괄적으로 문화유산이지요. 함께하는 회원이 1만7000명이 되었으니 보람이 크고, 앞으로 회원 2만 명이 되는 날을 기대해봅니다. 내가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이기 때문에 요새는 후임자를 찾고 있어요. 앞으로 좋은 후임자를 만나서 영속되기를 기원합니다. 아직은 내가 건강하지만 그래도 미리 준비해야지요.”

<메종 투 메종 2024: 모르는 한국>에는 정동 근대 건축물 도슨트 투어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조선 임금의 초상화를 모신 덕수궁 선원전 터, 외국 귀빈을 맞는 덕수궁 돈덕전, 한국 개신교 최초의 교회 정동 제일교회 그리고 운 좋으면 김종규 이사장을 만날 수도 있는 덕수궁 중명전 등의 코스다. 김 이사장은 <모르는 한국> 개최에 크게 감탄했고, 응원의 박수를 보내왔다.

CR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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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김제원

라이터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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