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바젤은 세계 최고의 아트 페어다. 지난 6월 열린 아트 바젤은 왜 죽기 전에 바젤을 꼭 한번 방문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명확히 보여주었다.
“베니스에서 보고 바젤에서 사라 See in Venice, buy in Basel!” 미술계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이 명언은 올해도 맞아떨어졌다. 지난 4월 시작한 베니스 비엔날레 Venice Biennale에서 작품을 보고, 연이어 6월에 열리는 아트 바젤에서 작품을 구매하라는 의미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주제는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 Foreigners Everywhere’이고, 키워드는 ‘퀴어’, ‘남미’, ‘이방인’이었다.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는 컬렉티브 그룹 클레어 퐁텐 Claire Fonraine의 작품에서 유래했는데, 이번 페어에서도 그들의 작품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방인은 ‘외국인, 이민자, 국외 거주자, 디아스포라, 망명자와 난민 등’을 의미하기에, 이번 베니스에서는 특히 아프리카 대륙을 본의 아니게 떠나야 했던 흑인 작가의 작품을 대거 만날 수 있었다. 이는 얼마 전부터 현대미술계를 강타하고 있는 ‘블랙 피플’ 키워드와 일맥상통한다. 그래서인지 이번 아트 바젤에선 아프리칸 작가의 작품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통상적으로 남미 원주민까지 아프리칸 작가에 포함하곤 한다.
바젤 대표 미술관 두 곳에서도 아프리칸 작가의 전시를 연 것이 흥미로웠다. 쿤스트뮤지엄 바젤 Kunstmuseum Basel에서 <댄 플래빈 Dan Flavin>과 <우리가 우리를 보았을 때 When We See Us>를 개최했다. 그중 별관을 통째로 사용한 흑인 작가 그룹전 <우리가 우리를…>이 인기를 누렸다. 또 가장 핫한 블랙 아티스트인 아모아코 보아포, 기디온 아파, 헨리 테일러 등의 작품을 가까이 접할 수 있었다.(10월 27일까지 전시) 콘스트할레 바젤 Kunsthalle Basel에서는 젊은 두 작가의 개인전 <토인 오지 오두톨라 Toyin Ojih Odutola: Ilé Oriaku>와 <기슬라인 렁 Ghislaine Leung>이 각각 열렸는데, 흑인 작가 토인 오지 오두톨라의 전시가 현대미술 이슈와 직결되어 관심을 모았다.(9월 1일까지) 아프리칸 작가들은 대부분 인물초상을 그린다는 것도 흥미진진하다. 아프리칸으로서 정체성을 탐닉하는 것이 작업의 시작이다 보니 사람을 그린다고 분석할 수 있겠다. 또한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 작가 모리 유코 Yuko Mohri의 과일에 전구를 꽂은 작품과 본전시에 초대받은 김윤신, 이강승, 그리고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언급상을 받은 아르헨티나의 트랜드젠더 작가 라 촐라 포블렛 La Chola Poblete의 작품 등을 바젤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베니스 시내 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줄리 메레투, 빌렘 드 쿠닝, 로버트 인디애나, 에디 마티네즈 등의 작품도 아트 페어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제 아트 바젤은 막을 내렸지만, 베니스 비엔날레는 오는 11월까지 지속되니 끝나기 전에 방문해보면 좋겠다.
한국 미술을 주목하라!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세계 최고 아트 페어에서 한국 작가의 작품을 발견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이번 페어에 우리나라 갤러리는 총 3곳이 참여했다. 갤러리의 특색을 뽐내는 메인 섹터인 ‘갤러리즈 Galleries’에 부스를 낸 갤러리 현대와 국제갤러리, 그리고 젊은 작가의 작품을 조명하는 ‘스테이트먼트 Statements’ 섹터의 우손갤러리가 바로 그 주인공. 국제갤러리는 매년 아트 바젤에 참여한 우리나라 대표 갤러리이며, 갤러리 현대는 지난해 18년 만에 다시 참여하게 됐다. 국제갤러리는 김윤신, 박서보, 양혜규, 함경아 같은 한국 작가를 필두로 해서 슈퍼 플렉스, 로니 혼, 아니쉬 카푸어 등 해외 작가의 작품을 배치했다. 갤러리 현대는 유럽을 무대로 활동한다는 공통점을 가진 김민정, 신성희 작가의 2인전을 선보였다.
아트 바젤에 처음 참가한 우손갤러리는 ‘스테이트먼트’의 영예를 안았다. 스테이트먼트는 전문가의 심사를 거친 신진 갤러리와 젊은 작가에게 참여 기회를 준다. 오묘초 작가의 작품을 선보인 우손갤러리는 <아트뉴스 ART news>와 <아트시 ARTSY>에서 ‘아트 바젤 베스트 부스’로 선정되었다. 오묘초 작가의 참여 작품 <누디 핼루시네이션 Nudi Hallucination> 연작은 환경오염으로 인해 심해에 살게 된 미래 생물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조각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갤러리뿐 아니라 해외 갤러리 부스에서도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연이어 발견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이제 우리 미술가는 한국만의 자랑이 아닌 것이다. 특히 여성 작가의 맹활약이 눈에 띄었다. 세계적 명성을 가진 양혜규, 이불, 김민정 작가의 작품은 여러 갤러리에서 전시되었다. 독일 바바라 빈 Babara Wien 갤러리와 프랑스 샹탈 크루젤 Chantal Crousel의 양혜규, 미국 리먼 머핀과 싱가포르 STPI의 이불, 영국 모던 인스티튜드의 김보희, 미국 탄야 보나크다르 Tanya Bonakdar 갤러리의 김수자, 독일 노르덴하케 Nordenhake의 김민정, 영국 필라 코리아스의 구정아, 오스트리아 네스트 세인트 스테판 로즈마리 슈바르트발터 Galerie Nächst St. Stephan Rosemarie Schwarzwälder의 윤종숙 등. 이 작가들의 작품이 각각의 부스에서 빛을 발했다. 리먼 머핀에서는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받은 김윤신, 서도호 작가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특히 고요한 동양화에 기반을 두고 있는 김민정, 김보희 작가의 작품은 휘황찬란한 작품이 가득한 유럽 갤러리 부스에서 반짝이는 존재감을 보여줘 놀라웠다. 젊은 여성 작가들의 작품도 선전했다. 독일 에스더 쉬퍼의 아니카 이, 미국 커먼웰스 앤 카운실의 갈라포라스 김, 캐시 캐플란 Casey Kaplan의 신디 지혜 김, 영국 카를로스/이시가와 Carlos/Ishikawa의 이목하, 스페인 트라베시아 쿠아트로 Travesia Cuatro의 김조은아침 등의 작품이 눈에 띄었다. ‘출산’과 ‘동물’ 소재의 강렬한 작품으로 알려진 사진작가 신혜지의 작품은 미국 가가 Gaga 갤러리와 리나 스파울링스 Reena Spaulings에 각각 선보였다. 이미래 작가는 독일 스푸르스 마거스 Sprüth Magers와 미국 티나 킴 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물론 남성 작가의 작품도 발견할 수 있었고, 단색화 작품이 여전히 인기가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 레비 고비 다얀 Levy Gorvy Dayan의 이우환, 블럼 Blum의 하종현, 미첼 이네스&네시 Mitchellinnes& Nash의 김근태, 영국 화이트 큐브의 박서보, 일본 도쿄갤러리의 이우환, 박서보, 이진우, 바바라 빈 갤러리의 김용익의 작품이 컬렉터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해외에서 인정받은 작가가 스타로 떠오르는 상승세에 빨리 오르기 때문에, 이 작가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아시아 작가, 아시아 갤러리의 활약
아트 바젤에서 우리나라 미술가들이 선전했지만,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작가와 갤러리도 성장을 보여주었다. 바로 얼마 전만 해도 바젤의 아시아 갤러리는 열 손가락 꼽을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 확연히 늘어난 아시아 갤러리 수만 보더라도 세계가 우리를 주목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올해 페어에는 40개국 285개 갤러리가 참가했는데, 처음 참여한 갤러리가 22곳이었다. 처음 참여한 갤러리 중 아시아 갤러리가 6곳이다. 우리나라의 우손갤러리, 중국 상하이의 뱅크 Bank와 마델른, 대만의 티나 캉 갤러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ROH 프로젝트, 일본 오사카의 제3 갤러리 아야 The Third Gallery Aya가 주인공이다. 아트 바젤은 세계 최고 아트 페어인 만큼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행사가 많다. 특히 ‘언리미티드 Unlimited’는 바젤에만 있는 초대형 작품 전시 섹션인데,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이 큰 물결을 이루었다. 일본 작가 히로시 스기모토, 쿠사마 야요이, 시오타 치하루, 중국 작가 루양, 한국계 미국 작가 크리스틴 선 킴, 중국계 캐나다 작가 도미니크 펑, 김민정 등의 작품이 포토 스팟이 되었다. 심지어 올해 처음 열린 언리미티드 관람객 인기 투표 The Unlimited People’s Pick에서는 시오타 치하루의 작품이 2위, 대만 작가 우티엔창의 작품이 3위를 차지했다. 1위는 현지 바젤 갤러리 폰 바사 Von Bartha가 선보인 프란시스코 시에라 Francisco Sierra인데, 수족관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우리도 바느질이나 해볼까?
‘여성’, ‘남미’, ‘이방인’이라는 최근 미술계의 화두는 태피스트리 Tapestry 소재 작품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수십여 개 부스에서 직물과 자수 소재의 작품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베니스 비엔날레 역시 마찬가지였다. 뉴욕과 서울에서 운영하는 티나 킴 갤러리에서도 이신자, 강서경, 임민욱, 파시타 아바드 Pacita Abad 등 직물을 즐겨 사용하는 여성 작가의 작품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티나 킴 갤러리는 최근 94세의 이신자 작가와 전속 계약을 하기도 했다. 바젤에 걸린 이신자 작가의 태피스트리는 마치 남미 작가의 작품인 듯 이국적으로 보였다. 티나 킴 대표는 태피스트리 열풍은 새로운 등장이 아니라 재발견이라고 말했다. “많은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그간 미술계에서 소외되어온 장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미술 교육을 받은 백인 남성 작가에서 벗어나 라틴아메리카, 인디안, 아시안의 미술사와 작가를 연구하다 보니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 작가들이 태피스트리를 즐겨 사용한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