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파빌리온의 작가들

여름 파빌리온의 작가들

여름 파빌리온의 작가들

매해 런던의 여름이 기다려지는 이유, 바로 서펀타인 갤러리의 파빌리온 때문이다.

티에스터 게이츠, 서펀타인 파빌리온. photo Gene Pittman © Walker Art Center, Mionneapolice

영국 런던 켄싱턴 가든에 있는 서펀타인 갤러리는 훌륭한 전시 외에도 매해 여름 건축가를 초청해 진행하는 여름 파빌리온으로 유명하다. 2000년 자하 하디드를 초청하여 일회성 프로젝트로 시작한 후원의 밤 모임이 2024년까지 이어지는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도 알 만한 건축가의 이름을 읊어보자면, 렘 쿨하스, 프랭크 게리, 장 누벨, 피터 줌토르, 헤르조그 드 뫼롱 등이 있다. 건축가뿐 아니라 아티스트에게도 열려 있어 올라퍼 엘리아슨, 아이 웨이웨이, 티에스터 게이츠 등도 참여했다. 2024년 파빌리온의 이슈는 처음으로 한국의 건축가 조민석이 선정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이미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서 황금사자상 받은 것을 비롯해 국제 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서펀타인 파빌리온을 기점으로 그의 이름을 좀 더 대중적으로 세계에 알리게 된 셈이다.

조민석(매스 스튜디오), 서펀타인 파빌리온. photo Iwan Baan © Serpentine

photo Iwan Baan © Serpentine

‘아키펠라직 보이드 Archipelagic Void’라는 이름의 파빌리온은 ‘마당’을 상징하는 중앙의 원형 공간에서 별 모양으로 뻗어나가는 다섯 개의 건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공간은 강당, 도서관, 갤러리, 티하우스, 플레이타워의 역할을 맡는다. 파빌리온은 지난 6월 7일 개관하여 오는 10월 23일까지 진행할 계획인데, 올가을 런던 프리즈 아트페어에 방문한다면 서펀타인 갤러리를 방문해 전시와 함께 파빌리온 건축도 즐기면 좋겠다. 한국에는 조민석 건축가의 작품이 꽤 많은데, 그중 창경궁 근처 원남교당을 가장 추천하고 싶다. 종교 건축물이면서도 모두에게 열려 있는 영적인 아우라가 서려 있다. 그의 아버지가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지은 조행우 건축가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부자가 각기 다른 유명 종교 건축물을 지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모리미술관, <티에스터 게이츠: 아프로 밍게이> 전시 장면. © Mori Art Museum, artist

한편 2022년 파빌리온의 선정 작가인 미국 예술가 티에스터 게이츠의 대규모 개인전이 가까운 일본의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진행 중이다. 시카고에 기반을 둔 흑인 작가로 서펀타인 파빌리온에서도 흑인 이민자의 역사와 도예, 다도, 명상 등의 프로그램을 ‘블랙 채플’로 표현한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흑인의 역사를 문화와 연결시킨 점이 포인트다. 블랙 채플이 런던 내 유명한 미술관 ‘화이트 채플’과의 대조점이라면, 이번 전시에서 제안한 ‘아프로-밍게이 Afro-Mingei’는 미술에 대한 대척점으로 ‘민예(밍게이)’에 주목하는 것이다. 밍게이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평론가 제창한 용어인데, 한편으로 공예라는 이름으로 통칭된다. 그러나 공예와 달리 민예는 생활 속에서 무명의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져 쓰였으며, 민중들의 삶의 지혜를 담고 있다. 이를 작가는 미국 시민권 운동의 정신인 ‘흑인은 아름답다’ 프로파간다와 연결시킨다. 흔히 고급미술로 여기는 회화와 조각에 반해, 소홀이 여기며 제대로 된 예술로 취급받지 못한 민속용품과 사회에서 가장 하류층에 속한 흑인의 삶을 공통점으로 본 것이다. 티에스터 게이츠는 2004년 일본 도예마을 도코나메에서 직접 도예 수업을 받으며 일본의 문화와 도자 예술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는데, 이는 이번 전시를 풍성하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 전시는 9월 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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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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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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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예술가

흙에서 색을 찾아내고 화염으로 그림을 그리는 도예가 김시영.
불과의 하모니에서 탄생한 그의 조각에는 작게 응축한 우주가 담겨 있다.

기름 가마 ‘베가 Vrga’에서 구워지고 있는 행성 메타포 시리즈. 성형 시 각진 형상들은 1350℃ 이상의 불길 속에서 엿가락처럼 늘어지며 고온과 고압을 통해 부드러운 라인을 가지게 된다.

빛의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은 행성 트래디셔널 시리즈.

달항아리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도예가 김시영의 모습.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날, 강원도에 위치한 도예가 김시영의 작업실을 찾았다. 그는 작은 마을처럼 형성된 작업실 한쪽에 마련된 차실로 나를 안내했다. “차 마시며 이야기 나눠요. 찻잔을 기울일 때마다 빛에 따라 형형색색으로 일렁이는 색깔을 한번 보세요.” 제각기 독특한 검은 빛을 띤 다완에 고운 녹빛 말차를 내어주며 말했다. 도예가 김시영의 작업은 불과 흑자에 대한 깊은 매혹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득하네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불에 처음 매료된 시점부터 시작해볼게요.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바라던 부모님의 뜻에 따라 용산 공업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거기서 금속재료학과를 공부했어요. 아직도 뇌리에 깊게 박혀 있는 장면 중 하나가 작은 용광로에서 끓인 쇳물을 부어 물성이 변화하는 모습이에요. 그게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그때부터인 것 같아요. 불의 신비로움에 매료된 게.” 김시영 작가가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이 경험은 대학에서 금속재료를, 대학원에서 세라믹을 전공하면서 더욱 심화되었고, 결국 공학적 접근에서 예술적 접근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우연히 이천의 세라믹 공장에서 일하게 된 경험을 살려, 1990년 자신의 고향인 가평에 첫 가마터를 잡고 본격적으로 전업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행성 트래디셔널과 행성 메타포 작업. 벽면에 걸린 작품은 도예가 아버지의 업을 이어받아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는 딸인 김자인 작가의 필드 바이브레이션 페인팅 작품.

여러 지역의 흙을 사용해 만든 행성 플래닛과 행성 메타포 작업.

빛의 갤러리에 놓인 행성 메타포 시리즈.

강원도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만난 김시영 도예가.

김시영의 작업에서 흑자는 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다양한 광물질이 함유된 흙을 사용하여 고온에서 오랜 시간 구워 흑자의 독특한 색감과 질감을 표현한다. 흑자는 통일신라 말기 시작되어 고려시대에 주로 만들어졌지만, 일상생활에서 활용도가 낮아 점차 그 맥이 끊겼다. 반면, 중국과 일본에서는 희소성이 높은 흑자를 천목(天目)이라 부르며 귀하게 여겨왔다. 작가는 이러한 흑자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주목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빛깔과 형태를 찾는 작업에 매진해왔다. 그의 흑자 작업은 적합한 흙을 찾는 데서 출발한다. 가평, 홍천, 철원, 제주 등 전국 각지의 흙을 채취하고 조합하여 태토와 유약으로 만들고, 각각의 흙의 지질적 특성을 연구한다. 예를 들어, 가평의 잣나무 숲 아래 부엽토를 활용한 ‘서가 흑자’는 독창적인 색을 만들어낸 작업이다. 그렇게 흙 속에 숨겨진 광물질이 불을 통해 저마다의 모습을 드러내도록 하는 것이 작가의 작업 방식이다. “백자는 흙에 있는 모든 광물질들을 제거한 뒤 사용하죠. 그런데 저는 불 자체에 매료되어이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오히려 불을 가지고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흑자의 가능성을 보고 처음부터 흑자 작업을 택한 거예요. 흑자가 가진 자연 그대로의 색, 총천연색을 유심히 보기 바랍니다.” 그의 작업에서 핵심 요소인 불은 흙으로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힘과 조화를 이루는 과정이다. 언젠가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색이 나오는 것을 보고 불의 신비로움에 확신을 가졌다며 말을 꺼냈다. “색이 정말 예쁘게 나왔어요. 그때 뭔가 제가 단서를 잡았나 봐요. 불에 의해서 나왔다는 게 처음엔 믿기지 않았어요. 마치 산타클로스가 가마의 굴뚝으로 들어가 놓고 간 줄 알았어요. 정말로요.” 김시영 작가의 가마 안에서는 매일같이 작은 빅뱅의 소용돌이가 일고 있는 것이다. ‘우주’, ‘행성’ 같은 키워드를 사용하는 이유 역시 자신의 가마를 통해 새로운 형태와 색을 창조하는 과정을 우주의 축소판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수억 년 동안 지구에 먼지가 쌓이고 압축되고 또 혜성이 와서 부딪히고 깨지면서 지역마다 흙 성분이 다 다르게 된 거잖아요. 저는 그런 과정을 작은 가마 안에 재현해 새로운 형태와 색을 탄생시키는 것을 하나의 응축된 우주로 보고 있습니다. 엉뚱한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외계인이 나중에 제 작품을 볼지 모른다는 상상도 해요.(웃음)”

김시영 도예가의 작은 차실. 벽면에 걸린 작품은 김자인 작가의 <아리데센스 레드 2>. 그 앞에 놓인 달항아리는 위, 아래 접붙이기 기법을 발전시켜 사선으로 접붙이기를 시도해본 작품이다.

다채로운 색을 지닌 다완은 행성 트래디셔널 B 시리즈.

성형 후 자연건조 중인 행성 트래디셔널 시리즈.

그의 흑자는 단순한 검은색이 아닌 깊고 검은 공간감 위에 찬란한 색을 띤다. 이를 ‘구조색’이라고 하는데, 표면 물질의 미세한 구조에 의해 빛의 반사와 간섭으로 만들어지는 색을 뜻한다. “화학적 색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공작의 꼬리, 비눗방울, 빗물이 고인 웅덩이 같은 것이 모두 구조색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의 작업은 쉽게 형용할 수 없는 색, 예를 들어 푸르스름하면서도 불그스름한 듯한 오묘한 색들을 발견할 수 있다. 또 다른 요변 현상은 형태의 변형이다. 약 1350~1450℃의 높은 고온 가마 속에서 일어나는 예상치 못한 변형에서 영감을 얻으며, 물레성형 외에도 캐스팅과 직조 등 다양한 성형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실용적 용기 형태에서 벗어난 조각적 작업을 이어간다. 이것이 바로 행성 메타포 작업이다. 달항아리의 은유적 버전이자 무정형에 가까운 추상 조각 작품인 행성 메타포는 불에서 녹아 내리며 일그러진 형태에 인간의 신체를 결합한 것이다. “상온에서 만들어지는 조각들은 예술가의 머릿속에서 철저히 계획하에 행해진 거잖아요. 하지만 웬만한 것도 전부 엿가락처럼 휘어버리는 불 속에서는 제가 원하는 흐드러짐의 정도를 잘 조절해 멈추고, 마무리는 불이 조각한 거란 말이죠. 그래서 제 작업은 추상적인 요변의 자연 조각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작가의 의도도 들어갔지만, 불과의 하모니에서 탄생한 조각인 거죠. 이러한 불확실성이 인생과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우리의 인생도 불확실성 그 자체죠. 그래서 불 속에서 탄생하는 불확실성이라는 형태를 조금 더 직접적으로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해보고자 한 작업이에요.” 김시영 작가가 말했다. 작은 흑자 다완으로 시작해 달항아리, 무정형의 인체 조각으로까지 진화를 거듭한 그의 작업은 한 번 더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도자기를 굽기 위해 쓰이는 붕판(탄화규소 SIC 캔버스) 자체에 유약을 발라 화염으로 그림을 그리며 물성 자체를 실험한 것을 발판 삼아 흙과 광물질을 직접적으로 만나게 해주는 작업을 할 예정. “여태껏 하나의 피조물을 창조해냈다면 앞으로는 가마 자체가 작업이 될 거예요. 상상하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특정 지역의 흙으로 만든 가마를 만들 예정이에요.” 흙의 비밀과 새로운 영역을 계속해서 탐구하는 김시영 도예가. 그의 작업은 단순한 도예를 넘어 불과 흙, 그리고 우주로의 여행을 떠나게 한다. 언젠가 우두커니 서 있는 커다란 가마를 보게 된다면, 그것이 김시영 도예가가 부단한 실험을 거쳐 만들어낸 불의 조각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작업실 입구. 그 안에는 김시영 도예가가 만든 작은 마을이 존재한다.

다양한 곳에서 채취한 흙은 물성 연구를 위해 사용된다.

아름다운 붉은 빛깔을 입은 행성 트래디셔널 시리즈. 작가가 특히 애정하는 작품이다.

김시영 작가의 네 번째 장작 가마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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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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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시티 바젤을 방문해야 하는 이유

아트 시티 바젤을 방문해야 하는 이유

아트 시티 바젤을 방문해야 하는 이유

일주일 정도 시간 동안 바젤을 완벽하게 들여다보기는 어렵다. 285개 갤러리 부스와 언리미티드, 파꾸르, 캐비닛, 토크, 필름 등의 프로그램까지 모두 둘러본다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이다. 더군다나 아트 페어가 행사장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바젤 시내의 미술관과 갤러리는 일제히 대형 전시를 개최하며,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전시는 페어 기간에 배치한다. 바젤은 독일, 프랑스와 국경을 나란히 하는 만큼, 독일 비트라미술관은 바젤을 찾는 관람객이라면 꼭 한번 방문하는 머스트 비지트 플레이스다. 올해 비트라는 <트랜스폼 Transform! Designing the Future of Energy>와 <사이언스 픽션 디자인 Science Fiction Design>으로 두 개의 전시를 개최했다.

쿤스트뮤지엄 바젤의 <댄 프레빈> 전시.

스위스 최고의 인기 미술관 파운데이션 바이엘러 정원에서는 필립 파레노의 작품 위로 후지코 나카야의 안개 분사 작품이 펼쳐진다.

아프리칸 작가 전시가 열리고 있기에 서두에 언급한 쿤스트뮤지엄 바젤, 쿤스트할레 바젤뿐 아니라 필수적으로 방문해야 할 바젤의 미술관이 많다. 먼저 파운데이션 바이엘러의 그룹전은 미술관에 대한 고정관념에 혁신을 일으킨 전시를 선보인다. 샘 켈러 관장은 8명의 큐레이터와 기획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전시를 선보였다. 전시 제목이 매일 바뀌고, 작품이 옮겨 다닌다. 처음에는 불이 난 줄 알았다. 필립 파레노의 작품 <멤브레인>과 함께 후지코 나카야의 물안개 작품이 10분마다 한 번씩 정원을 가득 메우기 때문이다. 그 안에 들어가면 어안이 벙벙하다. 작품을 들고 직원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더군다나 그 그림들이 고흐의 것이라니!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 구정아의 작품이 모네 그리고 마크 로스코와 함께 걸려 있어 탄성을 자아낸다.(8월 11일까지)

장소를 이전해 새롭게 개관한 쿤스트하우스 바젤랜드의 그룹전 <리와일딩>.

아름다운 라인강변의 팅글리뮤지엄.

쿤스트할레 바젤 미술관에서 열리는 아프리칸 작가 <토인 오지 오두톨라> 개인전.

이전해서 재개관한 쿤스트하우스 바젤랜드 Kunsthaus Baselland에서는 그룹전 <리와일딩 Rewilding: Opening exhibition of the new Kunsthaus Baselland at Dreispitz>이 열리고 있다. 21세기의 기후 문제와 사회 변화에 직면한 자연과 생명체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8월 18일까지) 뮤지엄 팅글리 Museum Tinguely에서는 키네틱 아티스트 장 팅글리의 상설 전시와 과도한 상품 생산의 부조리를 유머러스하게 보여주는 미카 로튼버그 Mika Rottenberg의 개인전 <아니메터 팩토리 Antimatter Factory>가 열리고 있다.(11월 3일까지) 바젤은 라인강과 공원의 도시이기도 하다. 라인강을 수영해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있을 정도며, 날씨 좋은 날이면 많은 사람들이 수영복을 입고 강변에 앉아 일광욕을 한다. 하지만 이번 아트 바젤 기간에는 비 때문에 강물이 불어나서 그런 낭만적인 풍경은 보지 못해 아쉽다. 내년 아트 바젤을 방문하는 이들은 수영복을 꼭 준비하기 바란다. 아트 페어만 보기에는 바젤이 너무 아름답다.

 

INTERVIEW 미술가 김민정과의 만남
생 폴 드방스의 사색

언리미티드’ 섹터에서 주목 받은 신작 <트레이스>. © 아트 바젤 언리미티드 2024, 김민정, 부스 U61 전경 이미지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Hyunda

미술가 김민정.

이번 아트 바젤에서 가장 돋보인 한국 미술가는 김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언리미티드’ ‘갤러리즈’ 섹터에서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선보였다. ‘언리미티드’는 오직 아트 바젤에만 있다. 엄격한 심사를 거친 스타 작가 70명의 초대형 작품을 선보이는 섹터다. 아트 바젤에서 가장 화려한 전시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양화에 기반을 둔 김민정 작가의 작품을 두 섹터에서 선보인다고 하자 페어가 시작되기 전부터 기대를 모았고, 마침내 공개된 그의 작품은 미술 애호가를 감탄하게 만들었다. 김 작가는 한지를 향으로 태우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페어에서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 기법을 이용한 신작 <트레이스 Traces>를 선보였다. 거대하고 화려한 작품들 사이에서 조용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신작은 관람객들을 매료시켰다.

‘갤러리즈’ 섹터에서 신성희 작가와 2인전을 선보였다. © 김민정, Alveare, 2015, mixed media on mulberryHanji paper, 132×190cm

<트레이스>는 8m 길이의 수묵화 <산 Mountain>을 중앙에 두고, 양 옆의 벽에 <타임리스 Timeless> 두 점을 배치한 작품. <산> 연작은 제목 그대로 먹으로 그린 풍경화인데, 그는 처음 물결치는 파도 소리를 그림으로 그리고 싶었으나, 막상 완성된 그림을 보니 어린 시절 고향 광주에서 보던 산이 떠올라 산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타임리스>는 <산> 작업을 자른 후 가장자리를 불로 태우고 배열한 연작이다. 관람객들은 지문이 없어질 정도의 섬세한 작업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며 놀라워했다. ‘갤러리즈’는 각국의 대표 갤러리들이 대표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는 섹터다. 김 작가는 갤러리 현대와 함께 참여해 동양 정신을 담은 새로운 조형 작품을 선보였다.

아트 바젤의 두 섹터에서 호평을 받은 소감이 어떠한가? 작품을 준비하면서 잔뜩 긴장한 바람에 건강이 염려되었는데, 좋은 평가를 받아서 한숨 돌렸다. 작품의 재료인 한지는 습도에 민감하다. 유럽의 높은 습도 때문에 원래는 한국에 가서 작품을 제작하려고 했는데, 최근 3년 정도 작업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컨디션이 좋지 못해서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생 폴 드방스 작업실에 가습기를 8개 놓고, 뜨거운 히터도 틀고 습도를 30%에 맞추어 완성했다.

한지 작업이 그렇게 까다로운 줄 몰랐다. 조금 더 상세히 이야기해달라. 내 그림은 종이가 결정한다. 이에 한지를 섬긴다고 표현한다. 한지는 살아 있고 움직인다. 우리나라 닥나무는 추운 환경에서 자라서 견고하고 사납다. 한지는 갑옷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강하고, 한국인 기질과 비슷한 것 같다. 예전에는 장인이 한지를 만들었는데, 요즘은 그런 종이는 구하기조차 어렵다. 매년 50~100kg 정도의 한지를 인사동 ‘백제한지’에서 프랑스로 배달시키고 있다.

영적인 상태를 만들기 위해 명상과 요가를 통한 훈련을 항상 한다고 들었다. 요가와 명상은 이미 나와 한 몸이 되었다. 정신적 해탈에 이르렀고, 이제는 작업을 안 할 때에도 마음이 평안하다. 그간 힘든 일도 많이 겪었고, 사실 인생이 너무 길다. 그래도 내가 살아야 할 이유는 이 작품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항상 건강했지만, 이제는 보신해야 할 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건강한 정신이 건강한 몸을 만든다고 하는데, 지금은 몸을 보신해야 정신도 맑아진다.

작업 과정에 대해 설명해달라. 스케치 없이 그림을 그린다. 내 작품을 평가하는 나의 지적인 감각을 항상 의심한다. 그래서 망쳤다고 생각한 그림이라도 몇 년씩 그냥 둔다. <타임리스>는 10년간 보관해오던 <산>을 태우고 잘라서 만든 작품이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드는 작품이라도 버리지 않고, 생각나면 꺼내서 과거의 냄새를 맡는다. 내가 죽으면 작품이 남는다. 배설물이 거름이 되듯이, 내 과거가 현재를 이끈다. 불교의 윤회사상과 일맥상통하다. 많은 재료가 있지만 나는 종이를 택했고, 한 재료로 깊이 들어가 실패하더라도 일단 해보는 것이다.

프랑스 남부 생 폴 드방스 Saint Paul de Vence에 작업실이 있다고 들었다. 하루 일과가 궁금하다. 아침 6시 정도 일어나서 정원에 가서 호흡을 하고
스트레칭도 한다. 산도 보고 키우는 닭도 보고, 산책을 한다. 점심 식사는 내가 직접 만든다. 어시스턴트들이 맛있게 먹으면, 그림 판 것보다 더 행복하다.(웃음) 이것이 바로 보시다. 그리고 바로 작업을 시작하거나, 일하기 싫어도 작업실에 있는다. 작업실에서 예전에 망쳤다고 생각한 작품을 꺼내 보기도 하고, 시간을 낭비하곤 한다. 사실 작가에게는 낭비란 없다. 예술은 노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놀지 않으면 예술가가 아니다. 알렉산더 칼더, 루치오 폰타나, 백남준의 공통점은 놀았다는 것이다. 창작의 고통이 있었기에, 놀이하듯 작품이 만들어졌다. 때로는 예술은 신이 만들고, 예술가가 신의 사제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사제는 신과 인간의 중심에 있다. 예전에는 보살이 중생을 구제했지만, 이제는 예술가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 프랑스 알민 래쉬 갤러리와 멕시코 노덴하케 갤러리의 개인전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11월에 열리는 매그 파운데이션 개인전도 기대가 크다. 매그 파운데이션은 작업실이 있는 생 폴 드방스에 있는 유서 깊은 미술관이다. 최근 리노베이션이 끝났는데, 내 전시가 새로운 공간에서 처음 열리는 것이라 여러모로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200×140cm 크기의 <산> 연작을 14점 선보일 예정이다. 그동안 전시 공간이 너무 크면 두려웠다. 하지만 이번 ‘언리미티드’를 통해 8m가 넘는 큰 작업은 처음 해보았는데, 관람객의 반응이 좋아서 용기를 얻었다. <산> 연작은 동양화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일필휘지의 기법이 필요해서 그간 이렇게 큰 작품을 선보인 적이 없었는데 앞으로 더 큰 작품도 할 수 있다고 본다. 작품 영역을 더 넓힐 수 있겠다 싶다.

생 폴 드방스에서 작업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작품 세계에 생 폴 드방스와 고향 광주의 영향이 있을까? 물론이다. 생 폴 드방스는 샤갈이 살았던 동네다.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가 매료되어 주택을 구입하게 됐다. 광주는 유배지로 꼿꼿하고 똑똑한 사람들의 후손이 많다. 천경자 작가도 광주 출생이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천경자가 선배라는 데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천 작가가 과거에 “시간이 없어서 1층에서 도시락을 싸서 2층 작업실로 올라간다”고 말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작가로서 작업에 몰두할 시간이 많지 않다. 죽기 전에 좋은 작품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만남을 최소화하려고 한다. 앞으로 더 깊은 시골로 이사 갈 예정이다. 내가 태어난 이유는 천명(天命)이고, 작가가 내 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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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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