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손갤러리 김양수 대표가 고미술 고수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백남준, 전광영 전시처럼 그가 기획한 국내외 현대미술 전시가 워낙 유명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고미술 작품 감상을 어려워할까? 그럼에도 현대미술 애호가의 다음 관심은 고미술이 될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고미술의 매력은 현대미술 그 이상이기에, MZ 컬렉터들도 고미술에 주목을 한다. 얼마 전부터 가수 BTS의 멤버 알엠 RM도 고미술 경매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김양수 대표는 1969년 서울대 미술대학에 재학하면서 고미술상을 열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고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중학교 때 도자기 작가 지순탁의 작업실을 찾아가서 도예를 배웠으며, 서양화를 공부하면서 고미술상을 연 것도 자신이 좋은 작품을 사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구분할 필요가 없어요. 현재와 과거의 예술 모두 삶의 진실을 마주 하고 있으며, 인간의 사고 가치를 담은 작품들이 같은 시간, 한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미술과 현대미술의 믹스 앤 매치가 잘 어울리는 것은 시간이 어우러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좋은 작품이라면 언제 어디서라도 그 아름다움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요.” 그는 현대미술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고미술 아트페어 라라페어 LALA Fair(Living Antique Living Art Fair)를 개최하고 계간지도 만들고 있다. 2023년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서는 스타 디자이너들과 통영 자개 장인의 협업 작품을 발표했고, 알레시에서는 거장 박서보의 와인 오프너를 제작했다. “밥은 체력을 키우고, 예술은 정신을 치유합니다. 미술관은 건강을 치료하는 병원입니다. 최근 영국 레딩 교도소를 미술관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가장 치료가 필요한 환자인 죄수들이 수감되었던 감옥을 예술 공간으로 만든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레딩 교도소는 2021년 뱅크시가 탈옥수의 그림을 남겨 더 유명해졌지요.” 그래서 요즘 김양수 대표의 책상 위에는 아일랜드 문학가 오스카 와일드의 시집이 놓여 있다. 오스카 와일드는 200여 년 전 동성애 혐의로 레딩 교도소에 수감된 적이 있다. 뱅크시의 탈옥수 벽화에 타자기가 그려져 있어, 이것이 오스카 와일드를 은유한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다. 김 대표가 2024년의 미술관 프로젝트를 하면서 200년 전의 시에서 영감을 받는다는 것은, 과거의 예술이 현재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많은 이들이 고미술이 정확하게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졌는지, 진품인지 가품인지 여부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고미술과 현대미술은 같습니다. 보기에 아름다우면 아름다운 것인데, 우리나라는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고미술을 바라보고 있어요. 작품을 예술적 가치보다 투자 개념으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봅니다.” 미술 작품은 내가 좋아하고 아름답다는 것이 중요하지, 제작 연도와 보존 상태가 우선은 아니다. ‘컬렉션은 눈이 아니라 귀로 산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모두가 마케팅에 휩쓸리고 있다. 하지만 고미술 감상은 현대미술보다 쉽다. 미학적 표현이나 실용성도 중요하지만 내 안목을 믿어야 한다.
“전통은 과거에 만들어진 것을 오늘의 시선으로 보는 것이고, 현대미술은 지금 만들어진 것을 지금 보는 것이니, 고미술 감상이 훨씬 쉽지요. 현대미술은 아직 그 가치를 입증할 수 없는 혼란의 시기에 있고, 시간이 더 지나봐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신나는 것은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몰랐던 당대의 음악들을 듣는 일이에요. 200년 전 예술을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 AI가 자동으로 추천해주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레딩 교도소 프로젝트에 과거의 예술이 큰 아이디어를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예술은 주식이 아니라 기호식품과 같다. 그래서 그는 과거 뉴욕에서 갤러리뿐 아니라 카페를 운영했고, 서울에도 카페를 열 계획 중이다. 문화는 동물과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이고, 기호식품이 그 도시의 독창적 문화를 만든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만화 같은 꿈을 꾼다. 살아보지 않았던 시간을 궁금해하고, 가보지 않았던 나라의 물건을 갖고 싶어 한다. 고미술 작품을 현대 공간에 믹스 앤 매치 한다는 것은 꿈의 실현일 수 있다. “과거로 돌아가볼 수는 없지만, 고미술 작품을 감상하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아름다움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로 갈 수는 없지만 상상하고 꿈꿀 수 있다는 것이 즐거운 일이지요. 이것이 바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특혜입니다. 그래서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같이 두어도 언제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김 대표가 <메종 투 메종 2024>의 고미술 큐레이팅에 참여함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는 ‘모르는 한국’이라는 올해의 전시 제목에도 깊이 공감한다. 1960년대 수출 급성장 정책 등으로 인해 현재의 한국 문화는 땅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수경 재배같이 연약한 상태다. 이제부터라도 문화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간과한 것이 무엇인지 둘러보아야 한다.
“이번 프리즈&키아프 서울에도 외국에서 많은 사람이 한국에 옵니다. 해외 유명 작가 작품에 대한 집중이 당연하겠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특별한 것을 보여줄 수 있을지 생각해봅시다. 우리만 가지고 있는 예술에 대한 방향을 고민해보면 어떨까요? 지난 시대의 작품이 2024년에도 여전히 매혹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모르는 한국> 전시가 하나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100년 역사의 옛 구세군회관 ‘정동 1928 아트센터’에서 현대미술과 고미술, 현대 디자인과 과거 디자인이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축제 <모르는 한국>(8월 29일부터)이 펼쳐진다. 전시장에서 김 대표를 만나면 주저하지 말고 인사를 건네보자. 감동의 순간을 공유하는 것은 예술 애호가의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