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정리나 푸드디렉터.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음식을 대하는 그의 근황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굉장히 바쁘게 지내신다고 들었어요. 이사도 하고, 늘 해오던 컨설팅과 행사도 진행하고, 지난 6월에는 정관 스님, 파브리 셰프와 함께 한국-이탈리아 140주년 공식 만찬 총괄 디렉팅도 담당했어요. 그리고 비놀로지라는 와인 다이닝을 운영하면서 새로운 요리책 작업도 하고 있고요. 평소에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영감받기 위해 정말 많이 돌아다니긴 해요. 새로운 레스토랑이나 디저트 가게가 문을 열면 바로 달려가는 편이에요.
‘푸드디렉터’라는 직함이 누군가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하나요? 그래요. 많이 헷갈려 하시는데, 저는 스스로 셰프나 스타일리스트가 아니라고 말씀을 드려요. 제가 하는 가장 대표적인 일은 럭셔리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의 식음료 컨설팅과 대행 운영을 하는 업무예요. 브랜드 VVIP를 대상으로 여는 사의 전반적인 기획자이자 총괄 디렉팅 역할을 하는 거죠. 미쉐린 스타 셰프와 함께 메뉴 개발도 하고 서비스 디자인도 하고, 스타일링 컨셉트를 잡기도 하고요. 지금까지 약 30명의 셰프들과 협업을 했어요. 그 외에 오설록, 올리타리아, 해녀의 부엌 같은 식음료 브랜드의 메뉴나 스타일링 컨설팅도 꾸준히 해왔죠.
많은 사람과 함께 일하고 조율하는 업무가 대부분이겠어요. 주로 설득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브랜드나 셰프에게 이런 컨셉트로 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하는 거죠. 브랜드가 원하는 정확한 포인트를 구현해야 하기 때문에 셰프들 사이에서 스타일링이나 플레이팅 같은 사소한 것을 다 조율해야 돼요.
무엇보다 LG 사(현 LX인터내셔널) HR 인재육성팀에서 7년간 근무한 이력이 눈에 띄었어요. 기업에서 교육하는 팀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기업과 팀에서 요구하는 교육의 커리큘럼을 짜고 자료를 만드는 전반적인 업무였어요. 먼저 각 사업부의 교육 니즈를 파악하고 레벨을 파악한 다음 그에 부합하는 강사들을 찾는 거죠. 그런 뒤에는 강사와 함께 우리가 원하는 교육 콘텐츠 내용을 조율하고 함께 만들었어요. 사내 행사 진행이나 기획 같은 것도 했고요.
어떻게 보면 지금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식음료 업계로 어떻게 넘어오게 된 거예요? 당시 자회사에 와인 수입사가 있었어요. 제가 근무하던 빌딩 지하에 있었는데, 그곳을 방앗간 드나들 듯 다녔어요. 취미로 시작한 와인이었는데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면서 식음료 업계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사실 프랜차이즈 김밥집을 하고 싶었어요.(웃음) 일단 퇴사하고서 뒤늦게 요리 관련 학교와 수업을 듣기 시작했어요. 제가 요리를 잘하는 것도 아닌 터라 다소 늦은 나이에 완전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한 거죠. 르 코르동 블루 요리학교부터 나카무라 아카데미 제빵 과정, 궁중연구원까지 수료했어요. 당시 제가 가장 잘하는 게 교재 만드는 일이라 용감하게 책을 먼저 낸 거죠.
그 요리책이 2018년 시공사에서 출판한 <eat! At home: 오늘, 양식하다>군요. 무려 3쇄까지 하고 대만에 판권까지 수출했던데요. 직장인 니즈에 맞춰 손쉽게 그럴싸한 양식을 만드는 레시피북이에요. 당시 한 10곳의 출판사에 기획서를 냈지만 유일하게 받아준 곳이 시공사였어요. 한 번도 제 기획서가 떨어진 적이 없었는데 만만치 않은 현실에 좌절도 많이 했죠. 지금 같으면 스타일링도 어느 정도 하는데, 그때는 쉽지가 않았어요. 레퍼런스로 도나 헤이 같은 책을 사서 참고하고, 러프한 스타일링을 한다고 제주도에서 철판을 공수해오고… 정말 혼자서 열심히 만든 기억이 나네요.
본격적으로 이쪽 업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계기가 됐겠어요. 당시 네이버가 블로그 중심에서 영상으로 바꾸면서 온라인 교육 콘텐츠에 대한 니즈가 있었어요. 영상으로 잘 설명해줄 요리 선생님이 필요했는데, 기존 선생님들이 대부분 안 하겠다고 하셨나 봐요.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거기서 제가 손을 들었어요. 요리 콘텐츠를 매주 한 가지씩 3년 동안 연재했어요. 댓글이 실시간으로 달리는데, 익명이라 굉장히 신랄해요. 그 덕분에 실력이 많이 향상됐죠. 그 이후로 식품 브랜드에서 레시피 개발이나 스타일링 작업 문의가 들어왔어요. 작업을 하면서 책도 두 권 더 냈고요.
지금 주로 담당하는 럭셔리 브랜드 분야는 사실 또 다른 영역이잖아요. 제가 다소 늦은 나이에 르 코르동 블루에 들어간 터라 정말 열심히 배웠는데, 당시 총괄 매니저님이 그 모습을 기특하게 봐준 것 같아요. 청담동 명품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케이터링 이슈가 좀 많았는데, 키친이 없다 보니 늘 호텔에서 공수해오는 구조였어요. 아무래도 한계가 있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 컨설팅 의뢰가 들어오면 저에게 연결해준 거죠. 매장에 간이 주방을 만들고 수셰프와 소믈리에 팀을 만드는 방식을 제안하다가 나중에는 대행 운영까지 맡게 됐어요. 그게 벌써 5년도 더 됐네요. 연말 행사부터 자잘한 행사까지 늘 일이 많았어요. 그 덕분에 셰프, 파티시에, 소믈리에 등 많은 분들과 작업할 수 있어서 행복했죠.
그 바쁜 와중에 와인 다이닝 비놀로지도 오픈했는데. 다양한 일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대중적인 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와인을 워낙 좋아하니 캐주얼한 안주와 가볍게 페어링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했어요. 경계 없는 무국적 다이닝에 가까워요. 젊은 셰프들이랑 함께 으쌰으쌰 하면서 만들어 나가는 중이죠.
최근 청담동으로 이사했는데요. 에테르노 청담은 국내 최고가 아파트로 화제가 된 곳이잖아요. 운이 좋게도 마지막 남은 세대를 분양 받았어요. 아직 3분의 2 정도만 입주했고 3분의 1 세대는 내부 인테리어를 하고 있어요. 화제가 된 탓에 지인들이 초대해달라고 하는 단점이 있어요.(웃음) 저는 재택 근무를 많이 하는 편인데, 회의실이나 공용 공간이 잘 돼 있어서 많이 활용하고 있어요.
공간 소개를 부탁드려요. 구조 변경도 하셨다고요. 이 집은 저와 남편, 고양이 나코, 민트가 살 집이라 방이 4개까지 필요 없었어요. 중간 방을 하나 터서 거실과 복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해 간이 좀 더 넓어 보이도록 만들었어요. 거실 한쪽에는 TV 대신에 벽난로를 설치했고요. 방 하나는 서재, 하나는 침실, 나머지 하나는 게스트룸으로 꾸몄어요. 전반적으로 미니멀한 취향이라서 가구가 많지 않아요.
집 안 곳곳에 작품이 굉장히 많네요. 사실 작품을 한창 많이 모으던 적이 있는데, 서울 옥션 매거진 1호에 영 컬렉터로 소개되기도 했어요. 저는 주로 하태임 작가부터 에밀리영, 문형태, 윤위동, 김선우, 박지혜 작가 등 1970~80년대생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컬렉팅하는 편이에요. 이 작가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함께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거든요. 또래다 보니 친분이 생겨서 종종 만나기도 해요.
보통 주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것 같아요. 보통 서재 아니면 주방이에요. 주방은 메뉴 개발을 위해서 셰프, 파티시에들과 테스트하는 사무 공간이 되기도 하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감사한 분들을 초대해 직접 요리해주기도 하죠. 보통 모일 때 한 가지 컨셉트로 요리해요. 조만간 아트 분야 사람들과 작가들이 함께 올 예정인데 ‘화가의 식탁’을 컨셉트로 해서 모네가 즐겨 먹던 코코뱅, 잭슨 폴락의 양송이 스파게티, 피카소의 오믈렛 등을 준비하려고 해요. 재밌고 오래도록 기억될 메뉴일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