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도시의 설계자들

미래 도시의 설계자들

미래 도시의 설계자들

매년 창의적인 신진 건축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2024 젊은건축가상’ 수상자 세 팀과의 인터뷰.

필동2가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조경빈

‘필동2가아키텍츠’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한다.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담고 있는 필동2가에서 사무소를 개소하고 서울을 기반으로 건축 활동을 하고 있다. 건축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합리적인 접근을 하고 경험적 스케일을 토대로 계획하여 작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건축사 사무소 이름의 의미는? 필동2가는 종이, 금속, 자재 등을 가공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 점이 건축적인 태도로서 매우 의미가 컸다. 유행에 민감한 접근으로 소비되는 건축보다는 일상적인 관찰을 통해 경험한 것이 설계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그런 세밀한 관찰이 건축에 부품처럼 작동할 때 의미 있게 다가온다.

© 노경. 다양한 경사 지붕으로 변화를 준 남산동 주민공동시설.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는? 막연히 좋아하는 건축가라는 질문에는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라고 말했다. 빌라 사보아, 빌라 라로슈, 롱샹 성당 등은 그 시대의 기술을 뛰어넘으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고, 시대를 앞서간 조형미는 현시점에도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요즘에는 국내외 많은 건축가의 작업을 경험하면서 건축가의 특정 작품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 브래드 클로필 Brad Cloepfil(Allied Works Architecture)의 클리포드 스틸 박물관 Clyfford Still Museum은 단순한 형태와 콘크리트의 다양한 표현, 건축과 랜드스케이프를 통한 관계 맺음이 주변에 영향을 미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과정이 느껴지고 그 건축이 온전히 전해질 때 그 건축가의 팬이 되어가는 것 같다.

© 노경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하나를 정하기는 어렵지만, 공통적으로 현장에서 단계별 협의를 통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기억에 남는다. 뼈대를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논의되는 치열한 협의, 그 뼈대 위에 덧대는 공정의 한계를 통해 실물로 마주할 때 현장의 경험이라는 소중함을 느끼곤 한다.

© 노경

최근 진행한 프로젝트는? 최근 마무리한 작업인 ‘서초동 1515’는 다른 현장에 비해 조건이 뚜렷했다. 협소한 대지, 급한 경사지와 좁은 도로 등 주변의 물리적인 한계가 있었지만, 건축의 제한 조건 덕분에 오히려 계획의 방향성은 뚜렷했다. 한계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건축적 태도를 배우게 된 작업이다.

© 박영채. 송판 노출 콘크리트 벽과 검은 구로강판으로 제작한 계단의 매스감이 멋스럽다.

이번 젊은건축가상에서 ‘주어진 건축적 환경에서 적정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건축가’라는 평을 받았다. 필동2가아키텍츠가 건축 설계 과정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점은 무엇인가? 건축은 다양한 협의와 결정이 만들어내는 집합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반복되는 과정에는 협의 시점, 관계, 의도 전달이 건축물의 완성도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실제로 구현 가능한 합리적인 설계를 바탕으로, 다양한 상황 속 유연한 협의와 건축을 만들어가는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반기 계획에 대해 들려줄 이야기가 있나? 젊은건축가상을 받으며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진행 중인 건축 작업들이 잘 완료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정리하지 못한 채 쌓여 있던 흔적을 정리하고, 이를 동력 삼아 더 나은 건축을 해보고자 한다.

하반기 계획에 대해 들려줄 이야기가 있나? 젊은건축가상을 받으며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진행 중인 건축 작업들이 잘 완료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정리하지 못한 채 쌓여 있던 흔적을 정리하고, 이를 동력 삼아 더 나은 건축을 해보고자 한다.

© 노경. 오래된 다세대 주택을 다양한 평면 구성과 붉은 벽돌로 대수선한 봉선동 대영빌라 220.

© 노경. 좁은 대지와 경사로를 활용해 다이내믹한 파사드를 만든 서초동 1515.

© 노경. 골목길 재생사업 프로젝트로 진행한 후암동 반반.

 

그라운드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김한중

‘그라운드아키텍츠’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한다. 효창동에 위치한 작은 건축사사무소다. 용산의 카페 트래버틴, 어프로치 커피 같은 상업 공간부터 인텔리안 테크놀로지스 평택연구소, CSG 테크놀로지 사옥 같은 건축 프로젝트까지 한계를 두지 않고 작업하고 있다.

건축사사무소 이름의 의미는? 건축이 지나치게 목적화되면 공간이 땅에서 멀어지고 건강한 도시에 필요한 관계성이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우리 정체성은 땅과 연속적인 삶에 있다. 그러한 삶은 단순히 1층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사무실 이름을 ‘그라운드 플로어’의 ‘그라운드’를 사용하고 있고, 사무실도 효창공원 둘레의 1층에 있다.

© 베이스먼트워크숍. 용산의 오래된 가옥의 구조를 살려 대비를 준 카페 트래버틴.

© 노경. 거대한 장난감 같은 재미를 주기 위해 지붕에 알록달록한 색감을 사용한 청원초등학교 체육관.

© 노경. 사선형 대지에 맞춰 계단식 단차가 생긴 건물 외관에 곡선 디자인을 적용한 인텔리안 테크놀로지스 연구소.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는? 렌조 피아노 Renzo Piano, 노먼 포스터 Norman Foster, 리처드 로저스 Richard Rogers. 특히 리처드 로저스 건축은 단순히 기술적인 진보를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건축이 도시와 만나는 부분에서 사려 깊고 따뜻한 인상을 준다. 아주 작은 디테일들로 거대한 규모를 만들어내면서도 사람들에게 위압적이지 않은 공간감을 만든다는 점에서 본받고 싶은 건축가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인텔리안 테크놀로지스 방문객 라운지. 샌드위치 패널로 만들어진 안테나 공장에 바이어들을 위한 시설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보통 공장의 1층은 층고가 굉장히 높다. 이곳 역시 2개 층으로 조성 가능했으나, 로비 천장을 낮게 구성한 상태였다. 그래서 천장을 걷어내고, 새로운 층을 신설했다. 제도적으로 무척 어려운 프로젝트여서 조마조마해 하던 기억이 난다.

가장 최근 진행한 프로젝트는? ‘나이키 신발을 만드는 회사’로 알려진 부산의 CSG 테크놀로지스 사옥의 준공을 준비하고 있다. 사하구 공단에 위치한 공장의 3층짜리 사무동을 리노베이션하는 프로젝트다. 오래된 공장 부지의 사무동이 갖는 황량함을 해소하기 위해 건물 저층부에는 거대한 처마를 끼워넣었다. 또한 건물 주변에 새로운 반외부 공간을 통해 하나의 신발을 만드는 연구자와 생산자들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적 구조를 만들려고 했다.

© 노경. 기계가 만들어지는 조합 원리를 적용한 인텔리안 테크놀로지스 방문객 라운지 계단.

이번 젊은건축가상 심사평 중 “건축이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일깨웠다”는 평을 받았다. 건축 설계 과정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점은 무엇인가? 만드는 일의 측면에서 재료의 솔직한 물성과 그것의 구축 방식. 어느 날 바닥에 타일처럼 깔린 돌들을 보며 좌절감을 느낀 적이 있다. 물성의 완성도가 무조건적인 정교함에 있다고 생각하는 점이 자연석을 가져다가 타일 같은 면을 만들어내는 일의 원인이라 생각한다. 카페 트래버틴 프로젝트에서는 어떻게 하면 돌의 ‘돌 같은’ 물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고민했고, 오랜 과거의 방식으로 두 덩어리 원석을 구입해 자르고 켰다. 사람이 만들어 하나하나 묘하게 다르게 가공된 판석은 자연의 돌이 가지는 불완전함을 지니고 있었고, 각각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반기 계획에 대해 들려줄 이야기가 있나? 젊은건축가상이 특별한 이유는 작품이 아닌 사람에게 주는 상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건축물에 주는 건축상이 과거에 주는 상이라면, 젊은건축가상은 미래에 주는 상이다. 독립해서 사무실을 운영한 지 어느덧 10년이 다되어간다. 다음 페이즈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너무 감사하게도 좋은 기회를 얻었다. 이번 수상을 기회로 삼아 더 좋은 팀을 꾸리고, 더 좋은 건축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선랩건축사사무소
현승헌

 ‘선랩건축사사무소’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한다. 선랩은 건축이 갖는 공공성과 사회적 가치를 기반으로, 우리가 생활하는 일상적인 공간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한 실천적 작업을 목표로 일하고 있다. 2012년 창업 프로그램 참여를 시작으로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고 10년 정도 작업을 진행해왔다.

건축사사무소 이름의 의미는? 2012년 관내 취약계층 집수리 활동인 ‘관악동작 해뜨는집’을 지원하는 역할로 시작했다. 노후주거 환경 개선과 지역 아카이빙 시스템을 목표로 ‘해뜨는집 연구소’란 의미를 담아 선랩이란 이름을 지었다.

© 조재혁. 고시원 대안모델 작업으로 진행 중인 쉐어어스 프로젝트. 커뮤니티 및 공용 공간, 쾌적한 동선 설계 등 취약한 환경 개선을 위해 오랜 시간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내년 하반기 완공 예정인 해남 우수영 유스호스텔 리모델링 작업의 조감도.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는? 건축을 실행하는 관점을 이해하고 나니 사무엘 막비 Samuel Mockbee, 카메론 싱클레어 Cameron Sinclair 같이 실천적인 작업을 하는 건축가들을 바라보고 있다. 건축물보다 사람을 향한 방향도 의미가 있지만, 그 방향성 안에서 건축물을 만들어내고 실행하기 위해 수반되는 무수한 작업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자원과 자본, 사람, 지속성을 고민하며 의미 있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의지를 가진 건축가의 열정과 노력이 필요한데, 그 의미를 선행적으로 잘 보여준 건축가들이라 생각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이번에 수상하게 된 고시원 대안모델 작업인 ‘쉐어어스 프로젝트’. 고시원이라는 사회적 이슈와 물리적으로 열악한 환경을 가진 공간에 대해 건축가로서 변화를 만들고 싶었다. 설계부터 시공, 운영까지 10여 년의 시간 동안 고시원을 바꾸는 작업을 진행했고, 이러한 취지에 공감하고 같이 작업해준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한계를 느끼고 오해가 생기기도 했지만, 제도 기획이나 인식 전환 같은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쉐어어스’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운영되고 있으며 공간적, 지역적인 개념의 모니터링을 통해 개선 방향을 연구하는 현재진행형 프로젝트다. 최근 진행한 프로젝트는? 해남 우수영 유스호스텔 리모델링 작업. 지역 활성화를 위한 제안과 운영 관리를 포함한 공간 기획 및 설계 프로젝트다. 지역 재생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차에 제안 공모를 통해 당선되었고, 현재 공사 진행 중으로 내년 하반기 완공 예정이다. 운영과 관련한 상세한 협의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점이 아쉽지만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 조재혁

이번 젊은건축가상 평가 중 건축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민이 호평을 받았다. 선랩건축사사무소가 생각하는 건축의 의미는? 실상 우리 사회에서 건축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상대적인 것 같다. 건축가의 구축적 작업, 사용자의 기능적 도구, 공간을 구성하는 환경적 대상, 사회에 대응하는 자원인 자본적 재산으로서 건축이 갖는 의미는 바라보는 시선과 입장에 따라 무수히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이런 관점 중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 장소에서 문제를 발견하거나 더 나은 생활을 위해 공감할 수 있는 건축 작업을 하고 싶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필요로 하는 건축의 의미를 나와 내 주변에서 찾아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반기 계획에 대해 들려줄 이야기가 있나? 고시원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정말 드물게 ‘고시원’을 주제로 연구한 분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중 작업 초기부터 교류가 있던 조재혁 박사가 2022년 선랩에 합류하며 또 다른 연구 및 기획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제주도 해안가 주변의 공간 기획 및 운영 프로젝트로, 제주 경관과 마을의 정체성 변화에 대해 고민하며 작업하고 있다. 장기적인 목표로는 고시원 다음 스텝으로 사회적인 생애주기에 따른 ‘임대주택’을 공간적, 사회적 이슈로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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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채운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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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빈히 만을 바라볼 수 있는 아만노이. 와일드 캣 트레킹, 타이 안 마을 사이클링 투어를 비롯해 아트 클래스, 키즈 전용 피트니스 세션 등 다채로운 키즈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미국 그랜드 티턴 국립공원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아만가니. 와일드 사파리 투어와 광활한 자연을 누비며 짜릿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최초의 텐트 스타일 리조트인 아만와나는 모요사톤다 국립공원의 일부에 위치해 자연과 가까운 휴식을 선사한다. 모요섬 근처의 살레 만은 고래상어의 주요 서식지로, 연중 내내 고래상어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 중 하나다. WEB am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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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스턴트 에디터

채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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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W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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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넘나들며 개성 강한 작업을 선보이는 안태원과 무나씨와의 만남.

뿌리, 안태원

그림, 입체, 영상, 애니메이션 등 여러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작업하는 안태원 작가. 인터넷의 물질성을 주제로, 인터넷에서 빠르게 변화하고 확산되는 밈 Meme을 활용한 위트 넘치고 개성 강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P21 갤러리에서 선보인 안태원 작가의 개인전 <뿌리 Puuri> 전경.

디지털 밈을 활용한 개성 있는 작업을 선보이는 안태원 작가.

P21에서 선보인 개인전의 제목 <뿌리 Puuri>는 작가의 인스타그램 계정명이기도 하다. 무슨 의미인가? 대학 입시 준비할 때, 같은 반 친구가 불러준 별명이다. 아주 독특한 친구였는데, 나무 뿌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단순히 어감이 좋았던 것 같다. 이번 전시의 기획 단계에서 ‘뿌리’와 전시 주제를 연결 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케이블이 뿌리처럼 퍼져나가는 형상이나 에어브러시로 물감을 뿌리는 행위 등 내 작업 전반에서 볼 수 있는 ‘뿌리’들에 주목했다.

초기 작업부터 꾸준히 인터넷에 떠도는 밈 이미지를 적용하고 있다. 워낙 친구들과 실없는 농담 하는 걸 즐긴다. 그 순간을 이미지화한 것이 밈 같다. 앞뒤 맥락이 사라지고 그 순간에 새로운 맥락을 부여해 농담처럼 소비되는 현상이 재미있었다. 작업 자체에 무게감을 주려 하지 않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밈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야기가 조금씩 추가되었다.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지고 새로 등장하는 행태의 중간을 딱 잡아서 현실에 멈춰두는 작업들이다.

반려묘 히로의 모습을 위트 넘치게 표현한 조각들. 왼쪽은 유선형의 곡선으로 표현한 <Hiro is flexible> , 오른쪽은 <Hiro is everywhere>.

그러면서 작업에 점차 반려묘 ‘히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히로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밈을 그리던 중에 유명한 고양이 밈을 활용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히로를 만났다. 어미를 잃은 길고양이다. 히로를 키우면서 고양이 밈을 사용할 필요가 없겠더라. ‘히로를 밈에 등장하는 유명한 고양이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밈에 히로를 적용한 작품들이 보여주는 해체주의적이고 독특한 형태가 인상적이다. 고양이뿐만 아니라 밈에서 볼 수 있는 형태 같다. 후가공이 아닌 이미지도 밈이 되지만, 가공하는 이들이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담겨 과장되고 왜곡된 이미지가 있지 않은가. 그러한 특징을 히로에게도 적용했다.

이번 작업에는 처음으로 얼굴이 등장한다. 원래 학창 시절부터 친구들 얼굴 그리는 걸 좋아했다. 사람들의 인상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지금처럼 에어브러시를 잡기 전에는 드로잉을 엄청 많이 했는데, 그때도 내 그림에는 공간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무언의 존재감을 그려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내 얼굴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리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을 함께 그렸다. 평소 사람들을 많이 보며 마음속에 축적되어 있던, 스쳐 지나가는 인상과 기억을 버무려 손 가는 대로 인물의 인상을 구현했다.

코너에 놓아둔 스툴에도 히로의 모습이 담겨 있다.

작업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 작업 과정은 정해져 있지 않다. 불현듯 떠오르는 잔상을 포착하려 한다. 무작위로 앨범 속 히로의 이미지를 디지털 툴로 편집해보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에스키스 (Esquisse, 밑그림)가 나오면 평면으로 옮길지, 입체적으로 구상할지 등 실물로 어떻게 옮길지 고민한다. 작업할 때는 눈앞에 보이는 재료를 과감하게 사용하는 편이다. 현재는 조각하는 친구들과 작업실을 같이 사용하다 보니, 그들의 재료들을 활용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어떤 부분을 시도했나? 이미지를 온전히 감싸지 않고 노출시키려 했다. 기존에는 입체 조각 재료로 조형을 해놓고, 그 위에 에어브러시로 여유 공간 없이 페인팅해 작업을 완성하는 편이었다. 이번에는 감싸는 이미지의 부분부분을 노출시켰다. 도구로 일부러 깎아낸 부분도 있고, 질감을 살려 마치 껍데기가 불규칙적으로 벗겨진 것 같은 느낌을 만들었다.

그 이유는? 완전한 결과물보다 불완전한 형태로 마감 짓고 싶었다. 아무래도 난 90년대생이다 보니 디지털 감수성이 풍부하다. 현실 사물을 보는 것만큼이나 디지털 이미지가 익숙하다 보니, 결과물 또한 디지털에서 편집한 듯한 이미지가 나온다. 그와 반대로 작업 과정에서는 아날로그적인, 열심히 몸을 쓰고 땀 흘리며 만들고 싶었다. 디지털 감수성이 담겨 있기 때문에 더욱 불완전한 형태로 구현한 것이다. 디지털상에서 편집 과정을 거친 작업을 현실로 옮겨 형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데, 조각을 파내는 공정 자체가 엄청 수고스럽다. 시간과 노동이 그 전 작업들보다 두세 배 더 힘을 들여야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이 놓일 좌대도 처음으로 함께 제작했다. 마치 작품의 일부처럼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작업 과정의 변화를 가지면서,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원래 전공이 평면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조각을 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하반기에는 평면으로 다시 돌아갈 예정이다. 분기별로 계속 변화를 주려고 한다. 조각에 집중하는 시기가 있다면 그 다음은 평면을, 그리고 또다시 조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평면과 입체를 오가는 과정을 가지면 시야가 바뀐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나? 조각 재료를 다루는 데 능숙하지 않다 보니 편집된 이미지를 현실의 조각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비슷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그대로 복사는 안 되더라.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나의 해석이 들어가게 된다. 처음 평면을 작업할 때는 편집한 이미지를 마치 프린터기가 된 것처럼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 넣기 바빴다면, 조각을 하고 페인팅으로 돌아가니 조각 작업처럼 나만의 해석을 담게 되었다. 앞으로도 편집된 효과를 어떻게 해석해서 재현해볼지 더욱 고민하게 될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입체 조형에 히로를 씌운 첫 작업. 이번 전시장에 있는 모든 작업의 시작이 된 작품이다. 그 작품은 아쉽지만 판매해서 지금 갖고 있지 않다. 항상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최근 준비 중인 작업에 대해 소개해달라. 연말에는 마이애미에서 열리는 아트 바젤에 나가려고 한다. 그리고 내년에는 일본 디젤 갤러리와 영국 런던에서 개인전을 여는데 준비 중이다. 열심히 작업해야 하는 시점이다. (웃음) 국내보다 해외에서 반응이 더 좋다. 그래서 더 신기하다.

 

무나씨, 김대현

동양화를 전공했으며, ‘무나씨’라는 활동명으로 2009년부터 시리즈를 진행해오고 있는 김대현 작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성에 대한 변화와 성찰을 주목하며, 한지 위에 먹으로 담아낸 묵묵한 감정이 돋보인다.

에브리데이몬데이에서 9월 22일까지 선보이는 개인전 <찰랑> 전경. 왼쪽부터 순서대로 <빛나는 마음>과 <동심>.

무나씨라는 활동명의 의미는 무엇인가? 글쓰기를 좋아하는데, 일기처럼 글을 쓸 때 ‘나는’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많은 것이 싫더라. 나와 내가 아닌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무나’라 지었다. 불교 용어 ‘무아(無我)’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점도 있지만, 불교에서 이름을 가져왔다고 하면 무거운 느낌이 든다. 그런 출발은 아니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이름이다.

존칭 표현인 ‘씨’가 붙은 이유도 궁금하다. ‘무나’라는 이름으로 에세이를 냈는데, 사람들이 ‘무나씨’라고 불러주는 순간 작가적인 자신감을 주더라. 그래서 작가명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한지와 먹을 사용하는 이유는? 동양화를 전공했기 때문에 익숙한 부분이 있다. 또한 잉크가 종이에 스며드는 자체가 매력적이다. 서양 물감은 지울 수도 있고, 덮을 수도 있다. 화면과 물감이 분리될 수 있는 요소를 붙여놓은 것이다. 하지만 먹은 종이 안에 스며들기 때문에 바꿀 수 없는, 되돌릴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또한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붓으로 획을 그을 때 아주 작은 떨림도 다 묻어난다. 매력인 동시에 어려운 부분이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 <찰랑> 앞에 선 김대현 작가. ‘무나씨’로 활동하며, 내면의 감정과 사람 간의 관계성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다.

반복적인 선 표현이나 세밀한 묘사도 특징이다. 작업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 스케치는 컴퓨터상에서 그래픽으로 모두 만든다. 빛과 구도, 표정, 동작 등을 완성시킨 다음 캔버스에 그대로 옮긴다. 그림 그릴 때는 어떤 고민도 하고 싶지 않다. 작품에 컬러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케치가 끝나고 그림 그리기 시작해서는 선긋기와 색칠하기뿐이다. 스케치 전에는 글을 쓰고, 각 작품의 단서가 될 만한 문장이나 단어들을 나열하는 과정이 있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반복적인 작업을 선택한 이유는? 그리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 예전 그림은 한 면을 다 칠하면 끝나도록 선을 그렸다면, 이제는 작업이 빨리 끝나버린다는 아쉬움에 그런 작업을 원치 않는다. 그림과 시간을 오래 보내고 싶고, 오랜 시간을 담고 싶다. 그 과정이 사람들을 그림에 더 머물 수 있게 만드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미술관보다 박물관 가는 걸 좋아하는데, 돌에 새겨 넣은 작품들을 보면 시간이 느껴지는 것이 좋다. 그림에 있어서 나 역시 그런 시간을 담고 싶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보면 따스한 질감이 다가온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듯하다. 주제적인 면에서 작품 속 인물 간의 따스한 느낌이 전달될 수도 있는 것이고, 겹쳐진 선들이 천의 질감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노란빛을 띠는 것은 오리나무 열매를 끓여 우려낸 물로 작업 마지막에 염색을 하기 때문이다. 미색 종이에 좀 더 시간이 지난 듯한 느낌을 주고자 동양화에서 사용하는 기법이다. 이 또한 새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지 않은, 시간성을 담고자 한 이유에서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영상 작품 <기분이 있던 자리>.

반복적인 인물의 등장으로 인연을 표현한 <인연인연>.

사람 사이의 관계성에 주목한 이유가 궁금하다. 처음 그림 그릴 때, 내가 잘 아는 것을 그려야 된다고 생각했다. 대학 졸업할 때도 다짐한 것이 ‘내 어머니나 조카들이 봐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였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일까? 나와 내 주위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가장 현실적이고 실감나는 주제였다. 또한 사람이 등장하는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정이입이 편안하다. 국적, 나이, 성별을 떠나서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어떤 것을 그리든 자신만의 감정을 이입해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주제를 정하게 되었다.

무나씨만의 오묘하고 중성적인 캐릭터는 처음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나? 가벼운 낙서로 그리게 된 얼굴이다. 원형적인 사람의 형상을 그리고 싶었다. 성별과 나이, 선하고 악한 캐릭터가 드러나지 않기를 원했다. 지금은 인물의 포즈나 장면에 좀 더 신경 쓴다. 마치 머릿속에서 인형극을 하듯 이리저리 인물들을 배치해보며 그린다.

눈을 감은 듯한, 생각에 잠긴 표정도 인상적이다. 캐릭터와 눈이 마주치면 부끄럽달까?(웃음) 감정 이입을 쉽게 하기 위한 방법 같다.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나무, 풀, 꽃 등 자연물은 정면이 없지 않은가. 자연을 관찰할 때 그것이 나를 쳐다보지 않기 때문에 넋 놓고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이 몰래 어떤 장면을 지켜보는데, 눈이 마주치면 부끄럽지 않은가. 캐릭터들이 정면이 아닌 다른 시선을 바라보는 것은 편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나도 모르게 장치로 사용하는 듯하다.

이번 전시 <찰랑>에 대해 소개해달라. 에브리데이몬데이에서 2년 만에 선보이는 개인전이다. 전시를 준비할 때, 그림 그릴 당시의 감정을 실감나게 담는 것이 나의 미션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러한 부분을 강조하려 했다. 바로 이전 전시가 일본에서 있은 그룹전이었는데, 감정의 질감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지점에서 ‘어떤 감정은 물과 같다’는 결론에 도달해서 물 표현에 대해 좀 더 집중된 그림이 많다.

바위 사이에 누운 인물을 통해 내면의 고독을 주목한 <바위되기>.

감정의 어떤 면이 물과 같다고 느껴졌나? 감정이라는 것이 영향을 주고받기가 너무 쉽다. 마치 물 안에 있을 때 잘 섞이는 것처럼 상대방의 감정이 맞닿아 있지 않아도 전달되는 것이 신기했다. 그래서 ‘너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는 마음으로 작업했다. 지금 아내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현시점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게 생각하는 지점이다.

<바위되기>, <고독의 질감> 등 내면의 감정을 표현할 때 어떤 부분을 강조하려 하나? 작품 속에 표현하는, 내가 느낀 감정은 사적이고, 아내와 겪은 사건이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한 깨달음이다. 그래서 최대한 사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고 감정에 대한 판단이 들어가지 않게, 상상해볼 수 있게 열어두려 한다.

이번에 처음으로 영상 작업을 선보인다. 사실 내가 그린 그림들은 모두 움직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영상으로 인해 설명이 너무 많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영상의 필요성을 잘 느끼진 못했는데, 이번에는 한번 해보자 싶었다. 영상 속 장면 중 이미 그림이 된 작업이 있다. 프랑스에서 전시한 <너의 기분 속을 헤엄치다>라는 작품이다. 왜 그런 장면이 나왔는지 설명하는 식으로 영상을 만들었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작품은? 지금 작업에서 인물 이외에 자연물이 조금씩 등장하고 있는데, 더 많은 자연물을 그려보고 싶다. 나무, 풀, 물, 돌 등 더 많은 비유를 찾아내고 싶다. 영상은 언제든 할 수 있고 부수적인 작업이라 생각한다. 어떤 형태로 작업된다기보다는 주제적인 측면에서 그려보고 싶던 것들을 더 끌어들여보고 싶다.

최근 준비 중인 작업이 있나? 키아프 서울에 출품할 그림들을 그릴 것이다. 그리고 아내(동양화가 화란 작가)와 함께 독일 라이프치히의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갈 예정이다. 그곳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어보고 싶다.

CREDIT

에디터

포토그래퍼

이예린(로그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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