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허브로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아트 페어 시즌을 맞아 해외 디자이너들이 한국을 찾았다.
독창적인 세계관을 뽐내며 서울을 예술의 무대로 물들인 4인의 크리에이터, 그리고 그들이 포착한 서울의 면면들.
순간을 담은 디자인, 발렌틴 로엘만
깊은 심연의 바다를 품은 듯한 푸른색의 커피 테이블.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독일 출신 디자이너 발렌틴 로엘만 Valentin Loellmann은 독특한 가구와 오브제 창작으로 주목받고 있다. 스케치를 사용하지 않고 순간적인 감각을 바탕으로 공간과 상호작용을 상상하며 작품을 제작한다. 그의 작업은 에너지를 중시하며, 각 작품이 고유한 언어로 새로운 공간에서 존재할 수 있도록 창조된다.
디에디트 공간에 맞게 제작된 주방.
이번 전시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한다. 디에디트 THE EDIT에서 진행한 두 번째 전시다. 한국에 선보인 일부 작품을 비롯해 신작들, 특히 이 공간의 사이즈에 맞춰 제작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별한 주제 대신 기존 작업처럼 자연 속의 소재들을 탐구하고 결합해 만든 작품들이다. 처음으로 ‘키친’을 선보인다.
주방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내가 오랜 시간 머무는 아틀리에에서 영감을 얻었다. 주방은 집에서 가장 사교적인 공간으로 중심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모이고 관계가 시작되는 곳이다. 이번에 선보인 작품은 현장에 직접 방문해 사이즈를 맞춰 제작했다.
스테인리스 스틸과 우드 소재의 결합이 돋보이는 ‘스텝 Step 1×13’.
가구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사실 가구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되고 싶지 않다. 미술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고, 많은 미술적 반경을 탐험하는 과정에서 가구를 접하게 된 것뿐이다. 디자인을 해보니 작품을 팔게 되었고, 그 과정이 반복되며 가구 디자인을 선보이게 되었다. 내 작업은 완벽한 가구나 디자인 작품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작품 그 자체로만 존재할 뿐이다.
최근 아트 퍼니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티스틱한 가구를 디자인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바라보는지?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웃음) 나에게 좋은 컬렉터란 가구나 페인팅 작품들을 구분하지 않는 컬렉터가 아닌가 싶다. 내가 생각하는 가구는 순수미술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는 작품이기 때문에 그렇다. 가구 디자이너로서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것은 아직 사람들이 페인팅이나 조각 작품에 불어넣는 가치보다 가구에 불어넣는 가치가 평가절하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한국 사람들이 공간을 대하는 방식이나 정서가 나와 더 맞는다고 생각한다.
새롭게 선보인 주방에 선 발렌틴 로엘만.
디자인 형태는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 작업실 주변 환경에서 영감을 얻는다. 작업할 때는 매우 직관적이다. 스케치하지 않고 창작에 몰두하며, 순간적인 에너지를 표현하고자 한다. 가구 디자인의 경우도, 테이블을 만든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작품이 테이블의 형태를 하고 있을 뿐이다.
작업실에 대해 좀 더 소개해달라. 1900년대 지은 대형 가스 공장을 2019년 인수해 아틀리에로 사용하고 있다. 작업실은 작품 활동에 있어서 핵심 코어라고 본다. 작업하는 공간 이전에 내가 설계한 작은 생태계다. 작업실은 커다란 나무와 같고, 작품들은 그 나무에서 자라는 열매와도 같다. 나 자신만의 에너지가 아닌 작업실 전체 에너지가 작품을 생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가구를 넘어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작업은? 작품 방향성은 가구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건축에도 관심이 많다. 가구 디자인은 점점 더 하고 싶지 않은 방향성이기도 하다. 스튜디오에서 인테리어 작업을 시작했다. 이솝 Aesop 플래그십 스토어 같은 상업 공간 프로젝트에도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공간 사이즈에 맞춰 커스터마이징 제작하는 방향성과 연계되어 있다.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가구 디자이너로서 활동하는 것 외에 다른 프로젝트들도 소개하고 싶다. 예를 들어 남아프리카에 집을 짓는다거나 다른 공장 시설을 집으로 개조해서 짓고 있는 등 가구 디자이너로서의 노동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건축학적 가치를 불어넣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까 봐 무섭다.(웃음) 또 다른 프로젝트는 작업실에 3층짜리 세라믹 워크숍 아틀리에를 짓고 있다. 아버지가 세라믹 아티스트였기에 어릴 적부터 세라믹이 익숙했다. 앞으로 프로젝트에서도 세라믹 관련한 요소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세라믹 접시라기보다 세라믹이라는 물질을 가지고 가구에 접목하거나 다른 일들을 상상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 인상적인 장면이 있나? 한국은 네 번째 방문이지만 언제나 비즈니스 목적으로 왔기 때문에 서울에만 있었다. 이번에는 시간을 내어 서울을 벗어나볼 계획이다. 본격적으로 한국을 경험해보기 전 감상을 말하자면, 10년 전 디에디트를 처음 만났을 때 한국 사진작가의 작품을 선물 받았다. 배병우 작가의 소나무 숲을 포착한 작품이다. 그것이 한국을 나타내는 좋은 인상이라 생각한다. 한국을 잘 모르기 때문에 명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다른 문화권임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볼 때마다 한국과의 연결점과 정취를 느낀다.
KOREA TRIP
디에디트의 중정 이번 전시에서 가장 좋아한 풍경. 주변 녹지와 공간의 균형이 잘 어우러진 점이 가장 즐거운 포인트였다.
고요한 뮤지엄 산 잠시 도시를 벗어나 평화롭고 조용한 곳에 있는 경험도 좋았다. 물에 비쳐 반사되는 자연이 내 스튜디오를 떠올리게 만든다.
남산에서 발견한 의외의 디테일 마지막 날 둘러본 남산.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흘려 보내는 배수로의 디테일이 매우 인상 깊었다. 뜬금없어 보일 수 있는 오래된 자재를 이용하였지만, 배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미래를 그리는 디자이너, 아틀리에 비아게티
채티 소파에 앉아 있는 알베르토 비아게티(왼쪽)와 로라 발다사리.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알베르토 비아게티 Alberto Biagetti와 오페라 가수를 겸하고 있는 아티스트 로라 발다사리 Laura Baldassari로 결성된 디자인 그룹 아틀리에 비아게티 Atelier Biagetti. 이들은 부부이자 예술적 동반자로 현대 사회의 강박관념과 인간 행동에서 영감을 받아 몰입형 환경을 구축하고 오브제를 주인공으로 한 독특한 장면의 연출을 즐긴다.
조립, 분해되는 과정으로 퍼즐처럼 표현한 마인드 티저 소파.
지난 밀란 디자인 위크에서 선보인 <웨어러블 카사 Wearable Casa> 전시 공간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모습이다. 밀라노에서 큰 관심을 받은 웨어러블 카사 컬렉션을 서울에 그대로 재현했다. 이 프로젝트의 주요 영감은 MCM 김성주 회장이 제안한 ‘웨어러블 카사’라는 제목에서 비롯되었다. 우주에 대한 그녀의 비전은 MCM의 핵심 가치를 반영하며 우리 작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집을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개인화된 몰입형 경험으로 재해석해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려 했다. 카사(집)의 의미를 다기능적이며 변형 가능한 오브제로 재해석해 선보였다.
서울에서 새롭게 재현하며 특별히 기대한 반응이나 변화가 있었나? 웨어러블 카사라는 개념은 매우 매력적이다. 이는 우리 신체가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아이디어를 실현하며 옷과 오브제가 공간 속에서 함께하며 우리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집을 입는다’는 개념은 건축학적 관점뿐 아니라 인류학적, 심리학적 관점에서도 흥미로운 주제다. 놀이적 요소를 활성화하면서 동시에 교환과 공유, 그리고 창의적 에너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
MCM 하우스가 우주를 상징하는 미래적 공간으로 변신했다. 이곳을 채우고 있는 오브제들을 통해 관람객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던지고자 했나? 이 오브제들은 가정이나 직장뿐 아니라 보트나 우주선, 심지어 다른 행성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다목적 제품이다.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언제 어디서나 휴대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러한 오브제들은 어떤 경우에는 가족의 추억이 담긴 물건이나 소중한 예술품처럼 특별한 의미도 지닌다. 각 오브제는 단순한 기능을 넘어 이야기를 전달하고, 사용하는 이들에게 미소와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을 목표로 만들었다.
모듈식 매트 형식의 가구 타타무 주변으로 밤하늘의 별처럼 세팅된 클렙시드라 조명.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혁신적인 오브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모래시계 형태의 조명 클렙시드라 Clepsydra와 구름을 연상케 하는 채티 소파 Chatty Sofa가 이번 컬렉션을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작품이다. 클렙시드라는 충전이 가능한 휴대용 조명으로 모래시계의 고전적인 형태를 띠고 있어 시간과 빛의 개념을 나타낸다. 여기에 라탄 모자를 덧붙여 조명 갓으로서 역할과 동시에 공간에 부드러운 분위기를 더한다. 반면 채티 소파는 이탈리아어로 집을 의미하는 단어 카사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되었다. 실제로 소파 모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CASA’의 스펠링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소파는 집의 의미를 상기시키며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집 같은 느낌을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기술과 디자인의 융합이 작품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데, 이 두 가지 요소를 조화롭게 사용하는 데 있어 주의 깊게 봐야 할 부분이 있나? 우리 작업을 통해 집이라는 개념을 변형시켜, 어디를 가든지 우리를 따라다니는 개인화된 몰입형 경험으로 바꾸고자 했다. 먼저 이번 작품들의 경우 모두 두 가지 용도가 있다. 예를 들어, 클렙시드라 조명은 등불이자 모자로 사용할 수 있으며, 타타무는 소파나 다다미로도 변형이 가능하다. 이처럼 두 가지 용도를 통해 실용성과 창의성을 동시에 제공하고자 했다. 또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설계한 전시 구성은 두 개의 평행한 차원, 즉 현실/물리적 세계와 가상/메타버스 세계를 펼쳐 선보인다. 메타버스에서는 이 작품들이 꿈같은 차원에서 중심 무대를 차지하며 기능이 변화하고, 마치 디즈니의 판타지아처럼 ‘자신만의 생명’을 얻은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관람객들은 두 시점에서 작품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으며, 현실과는 또 다른 차원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한국의 인상적인 장면을 키워드로 설명해달라. 조화로운 대조, 활기찬 거리, 은은한 우아함, 문화적 융합, 울려 퍼지는 전통.
앞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한국에 대한 기억이 영감이 될 것 같나? 물론이다. 한국의 전통과 현대의 독특한 조화가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서울의 초현대적인 도시 풍경 속에서 고대 문화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융합되는 모습은 우리 작업에 영감을 주었다. 우리는 새로운 해석과 독창적인 디자인을 탐구하는 자유가 기억, 가치, 전통에 대한 존중과 공존하기 바란다. 웨어러블 카사 전시장을 찾은 방문객들이 과거와 미래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나누는 우주를 경험하며 공간과 더 깊이 있고 다층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KOREA TRIP
MCM의 포스터 앞에서 주말에 방문한 성수동에서 한국의 젊은 열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고, 이번 프로젝트에 함께한 MCM 캠페인 이미지를 만나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남겼다.
황학동 서울 중앙시장 로컬 마켓은 그 도시의 오래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시장은 활기가 넘치고 친절한 사람과 다양한 음식의 향으로 가득했다.
박물관에서 딸과 함께 한 컷 국립민속박물관 안에 있는 오촌댁을 방문해 딸 알테아와 함께 마주보며 무릎을 꿇고 사진을 찍었다. 서울의 높은 빌딩과 화려한 도심 속에서 전통적인 요소를 관람할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신당동 간판 신당동을 방문했을 때 한 간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신당동이 서울에서 떠오르는 지역이라고 해서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방문했다.
예올에서 얻은 영감 북촌에 위치한 예올 전시장에서 본 대장장이 정형구 작가의 작품이다. 한국의 대장간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뜻깊었다. 한국 장인의 작품을 직접 마주할 수 있어 큰 영감을 받았다.
선과 선율에 담긴 한국의 미, 티보 에렘
아름다운 나무의 모습을 그린 일러스트를 병풍에 새겨넣었다.
프랑스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 티보 에렘 Thibaud Hérem은 한국의 전통 건축물과 자연에서 깊은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린다. 약 20년간 한국을 오가며 전시와 작업을 이어올 정도로 한국에 대한 그의 사랑은 남다르다. 한옥과 소나무 같은 풍경에서 영감을 받은 그의 작품은 건축의 디테일과 자연의 유기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독특한 미학을 만들어낸다.
소나무를 그린 작품.
한국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2006년, 지금 내 절친이자 에이전트, 갤러리스트인 허재영 디렉터(워킹위드프렌드)를 런던에서 만나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우리는 영어도 서툴렀지만, 그게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금방 친해졌다. 그가 나를 자신의 결혼식에 초대했고, 그때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한국의 문화, 특히 사람들의 따뜻한 영혼에 매료되었고, 그 이후로 현재까지 한국을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 건축물이나 자연 요소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한 작품들이 많다. 한국의 어떤 면이 특히 영감을 주었나? 처음에는 한국의 전통 건축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에서의 첫 전시 때 한국 건축물, 특히 윤보선 고택에 있는 건물을 그리게 되면서 한국 건축의 디테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 소나무 형태가 매우 그래픽적이라고 느껴졌고, 건축과 나무를 결합한 작업이 현재 내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건축물 중에서 특별히 즐겨 그리는 스타일이 있나? 근대적인 건축물을 특히 좋아한다. 아주 오래된 건축물도 좋지만, 20세기 초반의 건축물이 내게는 특별히 흥미롭다. 유리로 된 현대 건물보다는 조금 더 형태적이고 디테일을 살릴 수 있 건물들을 선호한다. 나무 중에는 800년이 넘은 한국의 오래된 소나무들이 내게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한남동에 위치한 워킹위드프랜드 갤러리에서 열린 티보 에렘의 전시 <콘크리트 드림>.
두 해 전, 드라마 <그 해 우리는>의 배우 최우식 캐릭터를 통해 작품을 선보이며 큰 사랑을 받았다. 한국 대중문화와 함께 작업한 소감이 어떠한가? 이 프로젝트는 내게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고 엄청난 기회였다. 종종 TV 드라마나 영화의 감독들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스토리를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해 우리는>팀은 많은 것을 사전조사해 스토리를 만든 것이 느껴졌고, 내게 여러 질문을 하며 중요 핵심을 잘 짚어냈다. 다른 사람이 내 작업을 대신해서 표현하는 것을 보는 것이 조금 낯설기도 했지만, 동시에 매우 겸손해지는 경험이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신작 <유토피아> 시리즈는 기존 작업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이번 시리즈는 기존 건축물에서 벗어나 순수한 형태와 선에 집중한 작업이다. 색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선과 구조에만 집중했다. 브루탈리즘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했고, 기존 건축물과는 완전히 다른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건축물을 창조하고자 했다. 이는 지난 20년간의 건축 그림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었으며, 새로운 출발이자 기존 작업의 진화라고 할 수 있다.
유토피아 작업과 식물 삽화를 함께 선보인 이유가 궁금하다. 식물과 건축물의 조화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정원 가꾸는 걸 정말 좋아한다. 정원은 집의 한 부분이며 건축과 자연은 상호보완적 관계라 생각한다. 건축물은 구조적이고 직선적인 반면, 나무는 유기적이고 자유롭다. 이 두 요소가 함께 있을 때 작품은 더욱 완성도 있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보이차 브랜드 월하보이와 협업이 진행되었다.
보이차 전문점 월하보이와의 협업도 흥미롭다. 도자기를 오래전부터 좋아해서 항상 관심을 갖고 있었다. 특히 한국 전통 도자기는 우아함과 섬세함이 인상 깊다. 이번 협업을 통해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서 그 본연의 아름다움도 유지하려 노력했다. 외국인으로서 대중과 전통을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데에 너무 감사한 경험이었다.
한국을 여러 번 방문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매번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한다. 한국은 항상 나를 자극하고 새로운 영감을 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는 남쪽의 수석 컬렉터의 공간을 방문했을 때다. 그곳에서 한국의 자연과 전통적인 미감을 더욱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제주도나 동해안 같은 곳을 방문하면서 한국의 다양한 풍경과 사람을 만났고, 그들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보며 많은 영감을 얻었다.
예술가로서 바라본 한국의 이미지는? 개방적인 사람들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나라. 또 다른 키워드는 ‘공유’다. 한국에서는 단순히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고 사람들과 유대가 깊다. 마지막으로는 ‘자연’이다. 한국에 올 때마다 늘 새로운 곳을 탐험한다. 깊은 시골의 거대한 수석 컬렉션부터 해안가의 놀라운 식당들, 북쪽의 산에서 남쪽의 섬까지!
남다른 한국 사랑을 가진 일러스트레이터 티보 에렘.
KOREA TRIP
남산타워 남산타워는 단순히 서울의 상징일 뿐 아니라 한국에서의 여행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그 발치에서 살고 일하며 마치 등대 같은 느낌이다.
김장하는 날 김치 만들기는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한걸음 더 나아간 것과 같으며, 내게는 영광이었다.
돌담 길 돌담은 유럽인인 내 눈에는 정말 독특하고 그림 그리기에 흥미로운 나무들처럼 한국 문화에 대한 사랑을 더하는 특별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분재 도구 프랑스로 돌아갔을 때 내 정원을 가꾸기 위해 구입한 분재 도구들.
완벽한 나무 청와대 부근에서 포착한 나무. 내게는 ‘완벽’ 그 자체인 나무였다.
경외와 명상의 조화, 지오파토&쿰스
갤러리 신라에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장면. 브루마 샹들리에와 박서보 화백의<Ecriture No.120317> , 2012.
이탈리아와 영국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부부 크리스티아나 지오파토와 크리스토퍼 쿰스가 설립한 디자인 스튜디오 지오파토&쿰스 Giopato&Coombes는 디자인 감각과 예술적 이해를 융합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들의 조명은 인간과 공간의 관계를 재정의하고, 예술과 빛과 자연을 융합한 매혹적인 작품들을 선보인다.
브루마 작품 사이에 선 크리스토퍼 쿰스 Christopher Coombes.
이번 전시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한다. 전시 <숨: To Draw Breath>은 갤러리 신라에서 우리의 조명 조각과 한국 단색화 대가들의 작품을 결합해 ‘숨’의 개념을 마음챙김과 명상의 경험으로 연결하고자 했다. 발렌티나 부찌 Valentina Buzzi가 기획한 이번 전시는 일상을 초월하는 몰입형 경험을 제공하며 박서보, 서승원, 곽인식, 김연규의 작품이 차분한 공간을 선보인다.
큐레이터 ‘발렌티나 부찌’와 협업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우리는 각 프로젝트마다 미학적으로는 매우 달라 보일지라도, 항상 프로젝트 간에 공통된 실마리나 창의적 경로가 있다고 느낀다. 마치 디딤돌처럼 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발렌티나 같은 외부 큐레이터를 참여시키는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녀는 우리 스튜디오의 특정 측면이나 과정을 정의하거나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발렌티나와 함께하는 협업에서 가장 큰 장점은 전시 자체가 하나의 창의적인 과정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장소 특정적 설치물 측면에서 제품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한계를 확장하게 된다.
만개한 꽃나무에서 영감을 얻은 매화 Maehwa 샹들리에. 벽에 걸린 작품은 서승원 작가의 <22-1122 simultaneity>, 2022.
한국 단색화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최근 대화 중에 ‘경외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경외감은 우리가 작품을 접하는 이들에게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감정 중 하나다. 이는 복잡한 감정으로서 과학적 연구는 많지 않지만, 경외심이 호흡을 느리게 하고 시간을 더 길게 느끼게 한다는 점이 입증되었다. 앞서 이야기한 이 대화는 발렌티나가 한국 미술, 특히 단색화 운동에서 명상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다는 점과 연결되었다. 우리의 접근 방식은 매우 다르지만 이 주제가 공통된 주제처럼 느껴졌고, 그 창의적 수준에서 연결되고 싶었다. 우리 디자인을 통해 관람자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고, 사람들이 순간과 자신,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더 깊이 연결되기 바란다. 반면 단색화는 명상의 과정과 호흡, 그리고 예술가의 정신과 깊이 연결된 몸짓을 표현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 <브루마 Bruma>에 대해 소개해달라. <브루마 Bruma>는 겨울철 베네치아 라군 위의 아침 안개에서 영감을 받았다. 안개나 미세한 물방울을 고체 물체로 표현하는 데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전통적인 무라노 기법인 풀레고소 Pulegoso를 활용해 유리에 수천 개의 기포를 주입하였다. 이는 공기 방울에 빛이 반사되는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디자인과 제작 후, 이른 아침 안개 앞에서 명상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자연과의 연결감을 강화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발렌티나와의 대화에서 호흡과 관련된 아이디어가 발전하였고, 이번 전시에서는 관람자의 호흡을 추적해 조명에 반영하는 센서를 설치했다. 호흡을 감지한 후, 조명이 호흡과 함께 변하며 전시 공간과의 진정한 연결감을 느끼게 해준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기둥형 조명 밀키 웨이 Milky Way.
전시 준비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두 가지가 떠오른다. 먼저 발렌티나와 준비 과정에서 약 한 달간 서로 다른 시간대와 장소에서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했는데, 조각난 느낌의 대화로 명확한 방향성 없이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전시 제목을 ‘숨을 고르다 To Draw Breath’로 5분 만에 합의했다. 마치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제목은 ‘잠깐 쉬다’는 의미가 있지만, 작품에서 호흡을 표현하려는 맥락과 혼동될 수 있었다. 예술가는 아이디어가 때로는 빠르고 때로는 천천히 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두 번째는 설치 과정에서의 순간이다. <브루마 Bruma>가 갤러리 신라의 큰 창 앞에 설치될 때, 해가 지면서 멋진 그림자와 반사가 생겼다. 방 전체가 특별한 에너지를 가진 것처럼 느껴졌고, 경외감을 느끼게 했다. 우리가 딱 그곳, 그 시간에 있어야 할 것처럼 느껴졌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서울에서의 전시는 항상 뭔가 특별하게 느껴진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나 프로젝트가 있나? 많은 전시가 계획 중이다! 10월에는 두 개의 전시가 있다. 파리 아트바젤의 병행전시인 디자인 마이애미 Design Miami 기간 동안 생제르맹의 새로운 갤러리 공간 개관전이다. 이 전시에서도 <숨을 고르다 To Draw Breath>를 주제로 하며, 브루마를 선보일 계획이다. 그러고 나서 10월 말에는 디파인 서울 Define Seoul에서 전시가 있다. 한국의 멋진 양태오 디자이너가 아트 디렉터로 참여한 예술 및 디자인 박람회로, 성수동의 S Factory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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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을 준 전시 이안갤러리를 방문해 김택상 작가의 개인전 <타임 오디세이 Time Odyssey>를 관람했다. 매우 흥미롭고 영감을 주었다.
특별한 스튜디오 방문 양태오 디자이너의 전통 한옥 집과 스튜디오를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깊이 있는 사유와 미적 풍요로움이 느껴졌다.
단색화의 감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이배 작가의 개인전 . 검은색과 흰색의 조화로운 구성으로, 청동 조각과 숯 붓칠 작업이 독특한 대화를 만들어낸 점이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