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고 남은 와인을 코르크 마개로 막아 냉장고에 두고두고 다시 마실 생각은 일찌감치 안 하는 게 좋다.
다시 딸 때마다 와인 맛은 변할 테니까.
남은 와인을 놔둬도 7일 이내 마실 시간이 없을 것 같다면 다른 용도로 활용해보자.
둘이 오붓하게 한잔 하자고 폼 잡고 한 병 땄는네, 다 못 비우고 두어 잔이 남았다. 그냥 코르크 마개를 쿡 눌러 냉장고에 넣어뒀지 뭐. 일주일쯤 지났을까. 문득 생각이 나서 맛을 봤는대 식초처럼 늘어져 있는 거야. 아까운데 어쩌지? 물론 애호가들은 피식 웃을 일이다. 그런 와인조차 고프니까. 하지만 가끔 생각날 때 한 잔씩 마시는 사람들은 이처럼 남은 와인에 대해 살짝 고민도 한다. 그러나 활용할 방법은 많다.
요리할 때 언제나 와인 병을 곁에 둔다.
한 모금 마시면서 보글보글 김치찌개에 1큰술, 라면 끓이면서 1큰술, 생선조림에 1큰술, 닭볶음탕에 2큰술. 비린 맛이나 재료의 잡내를 없애주는 데는 와인만한 재료도 없다. 특히 레드 와인은 돼지고나 쇠고기를 재울 때 둘도 없는 친구다. 고기의 노린내를 없애주고 육질을 부드럽게 해주기 때문이다. 월계수 잎이나 다진 마늘, 통후추를 결들여 재우면 더욱 향기롭다. 고기 1근에 와인 1큰술 정도면 고기 맛 본질을 훼방하지 않고 적당하다.
또 웬만한 프랑스 음식에는 대부분 와인을 첨가하는데 조리 중에 와인을 부어 불꽃이 올라오면 알코올 성분은 날아가고 와인의 맛과 향이 식재료 안에 고스란히 배게 하는 ‘플람베(Flambee)’에 마시고 남은 와인을 사용해도 좋다. 고기 요리가 발달한 프랑스에서 많은 양의 와인과 함께 찜을 하는 코코뱅(Caq au Vin)은 부르고뉴 지방의 와인을 넣은 닭찜으로, 우리가 닭볶음탕을 요리할 때 양념을 넣듯 와인과 육수를 7대3 비율로 넣어 장시간 익힌 요리다. 일부 화이트 와인 생산지에서는 화이트 와인이나 샴페인을 넣고 코코뱅을 만드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드라이한 레드 와인을 사용한다.
화이트 와인이 넉넉히 남았으면 주말 특별식 스파게티에 도전해보자.
올리브 오일에 마늘을 볶다가 바지락을 넣고 화이트 와인을 넉넉히 넣어 끓이면 향긋한 봉골레가 되지 않는가. 여기에 온갖 허브와 향신료를 뿌려 면과 버무리면 레스토랑 부럽지 않다. 이런 날은 빵집에 들러 바게트 하나 사오는 것도 잊지 말자. 올리브 오일에 발사믹 비네거 두어 방울 떨어뜨려 빵을 찍어 먹으면 맛있다.
발사믹 비네거는 남은 와인으로 간단히 만들 수 있다. 좀 오래되어 시큼해진 와인에 식초를 1대3 비율로 섞어 일주일 정도 발효시킨다 올리브 오일과 섞어 샐러드 드레싱으로 활용해도 된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맛보던 스테이크 소스를 만드는 방법도 의외로 간단하다. 레드와인 1/2 컵에 진간장 1술, 발사믹 비네거, 물, 육수, 설탕을 넣고 걸쭉하게 졸이면 된다.
와인을 넣어 새콤달콤한 사과 콤포트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사과를 깎아 설탕이나 꿀을 듬뿍 뿌려(많이 넣어야 맛이 좋다) 랩을 씌워 재운다. 프라이팬에 준비한 재료와 레몬 1조각, 레드 와인 혹은 로제 와인을 붓는다. 사과가 3분의 1 정도 잠길 만큼 넉넉한 게 좋다. 센 불로 가열하여 끓기 시작하면 중간 불로 줄여 사과가 와인을 충분히 흡수할 때까지 조린다. 냉동실에 살짝 얼려 아삭아삭하게 내놓으면 셔벗이 따로 없다. 시나몬 파우더를 뿌리거나 생크림을 곁들이면 시각적인 효과도 빼어나다. 화이트 와인이 있으면 같은 방법으로 배를 졸이는 방법이 있다. 남은 소스는 바게트를 찍어 먹으면 별미 중 별미이다.
시원한 음료수 만드는 방법도 있다.
와인과 차가운 오렌지주스를 1대5로 섞어 여름날 화사하게 핀 미모사 꽃처럼 매혹적인 미모사 칵테일을 만들어보자. 글라스에 얼음을 넣고 화이트 와인과 소다수를 부은 다음 가법게 저어주면 시원한 스프리처가 된다. 큰 볼에 레드 와인 2컵, 오렌지주스 1/2컵, 탄산수 1/2컵,생수 1컵을 넣고 제철 과일을 썰어 얼음을 띄우면 파티나 뷔페 때 인기 좋은 스페인식 샹그리아다.
시나몬 스틱, 오렌지, 정향, 실탕, 물을 넣고 우려내듯 끓여 레드 와인을 넣고 살짝 데워주는 글뤼바인은 유럽식 겨울 영양 음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것도 복잡하다면 가짜 코냑을 만드는 거다. 남은 와인을 냄비에 붓고 끓인 후 주류 백화점에서 파는 럼이나 진을 1대1의 비율로 섞으면 코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