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이는 사람들과 화려한 불빛,
커다란 간판으로 둘러싸인 관광지에 지쳤다면 제주도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유채밭과 자연을 벗 삼아 돌담을 따라 걷다 보면 진정한 여행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올레,
제주 올레길 코스 추천.
푸른 바다와 초장이 맞닿는 곳에 있는 신풍리 바다 목장. 제주 토종 말을 지척 거리에서 볼 수 있다
제주 방언인 ‘올레’는 원래 집으로 가는 좁은 골목길을 이르는 말이다. 2007년부터 트레킹 코스로 개발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모두 26개로 늘어났다. 섬 동쪽 성산포 근처에서 시작된 올레는 돌담길을 따라 오름과 유채밭, 해안을 지나 섬의 남쪽을 훑어 섬 서쪽 한경까지 꼬불꼬불 이어진다. 돌멩이나 나무에 아무렇게나 그린 파란색 페인트, 나무와 돌담길 곳곳에 달린 리본만이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활짝 핀 꽃길을 지나 뒷동산에 오르면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정해진 목표 없이 쉬엄쉬엄 걷다 보면 느긋하게 걷는 소들조차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코스별로 대여섯 시간 정도 걸린다. 하지만 이도 평균일 뿐, 많이 보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그 시간은 길어진다.
게으른 사람이 놀며 쉬며 걷는 길 올레. 올레꾼들은 쏟아지는 햇볕을 한가득 받으며 작은 모래가 깔린 해안을 걷기도 하고, 때로는 깊은 숲을 지나 바람이 부는 해안 절벽 위에 오른다. 올레를 걷는 사람들을 일컫는 올레꾼. 올레꾼들은 이렇게 천천히 올레를 걷고 나서야 비로소 여행이 얼마나 느긋하고 행복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그저 걷는 길, 올레···. 목이 말라도 천천히, 말똥이 가로막아도 두리번거리며 걷다 보면 자신의 몸 속에서 자신의 발자국 소리가 울릴 것이다. 쿵쾅쿵쾅, 오랜만에 내 심장이 뛴다.
해질녘, 통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하늘에서 말을 건네는 듯하다
난산리 마을 올레를 걷다 만난 자그마한 전통 문화 체험장. 별 생각 없이 다가갔다가는 돼지들의 향긋한(?) 냄새와 합창 소리에 놀라게 된다
3 COURSE 온평포구~당케포구
장장 14km에 걸친 중산간 길의 고즈넉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코스, 양옆에는 오래된 제주 돌담과 제주에 자생하는 수목이 울창하다. 나지막하지만 전망이 탁 트인 ‘통오름’ 은 제주 오름 고유의 멋을 느낄 수 있으며, 중간에 김영갑 갤러리를 들러보는 것도 좋다. 중산간 길을 지나면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는 ‘신풍리 바다 목장’ 길이 열린다. 푸른 바다와 푸른 초장이 함께 어우러지는,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바당 올레길이다.
돌담 아래 한가득 핀, 이름 모를 들꽃
전투 경찰 해안 경비대 초소를 지나 펼쳐진 왕돌 해안. 눈부신 햇살이 바다 위에서 부서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물 아래에 자갈이 있어 바다색이 먹색인 것도 유별나다
7 COURSE 외돌개~월평포구
외돌개를 출발하여 법환포구와 켄싱턴리조트 서귀포를 경유해 월평포구까지 이어진 총 15.1km의 해안 올레. 올레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자연생태길인 ‘수봉로‘와 ’수봉교’ 를 만날 수 있다. 수봉로와 수봉교는 올레 개척 당시, 올레지기 김수봉 님이 염소가 다니면 길을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직접 삽과 곡갱이만으로 계단과 같을 만들고, 큰 돌을 직접 맨손으로 옮겨 다리를 만들었다고.
저 멀리 범섬이 보인다. 하여 범섬 바다 산책길. 들꽃이 동무가 되어 혼자 걸어도 외롭지 않다
넋을 잃고 야자나무가 즐비한 스모루 소공원을 지나면, 이곳에 사는 백구 서너마리 짖는 소리에 깜짝 놀라게 된다. 낯설어 짖는 건지 반가워 짖는 건지 속내를 알 수 없지만 눈빛이 고운 것이 분명 순한 개들이다.
‘조른’은 ‘짧다’, ‘모살’은 제주어로, ‘진모살’이라 부르는 중문해수욕장보다 규모가 작아 ‘촌모살’이라 이름을 붙였다. 모래사장에 누워 하늘과 절벽을 보면 마치 엄마의 치마폭 같다
8 COURSE 월평포구~대평포구
전형적인 바당 올레 코스. 용암과 바다가 만나 절경을 만들어 놓은 주상절리와 흐드러진 억새가 펼쳐내는 풍경이 일품인 열리 해안길을 지난다. 해병대의 도움을 받아 해녀들만 다니던 바윗길을 새로 연 해병대길을 지나는 맛도 일품이다.
종점인 대평리는 자연과 어우러진 여유로움과 편안함으로 가득한 작은 마을. 안덕계곡 끝자락에 바다가 멀리 뻗어나간 넓은 들(드르)이라 하여 ‘난드르’라고 불리는 마을이다.
마을을 품고 있는 ‘군산(신산오름)’은 동해 용왕 아들이 스승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모래 위 발자국이 시간을 잃은 올레 여행의 유일한 흔적
중문 더 쇼어 호텔 산책길과 맞닿은 백사장
소나무가 즐비한 박수기정 정상의 유채밭, 박수기정은 대평리에 위치한 130m 높이의 암벽 절벽, ‘기정’은 벼랑의 제주도 사투리이다
9 COURSE 대평포구~화순해수욕장
계곡 올레와 바당 올레를 함께 맛볼 수 있는 길로, ‘제주에도 이런 길이?’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하는 코스다. 정을 쪼아 만든 조슨다리와 박수기정을 가로지르는 길도 압권이거니와 제주의 원시 모습을 간직한 안덕계곡 올레는 제주 올레의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산을 타는 체험, 신비스러운 계곡을 탐사하는 기분, 높을 절벽 위에서 에메랄드 빛 바다의 풍광을 보는 맛을 모두 지니고 있다.
종점을 뜻하는 올레만의 표시
올레로 개방되기 전, 30년 동안 인적이 닿지 않은 산길이라 그런지 곳곳에서 각양각색의 야생화를 볼 수 있다
그 외 올레 코스
1코스 시흥초등학교~광치기해변(15km) 오름과 바다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오름 바당 올레. 말미오름에서 보는 전망이 일품.
2코스 광치기해변~온평포구(17.2km) 대수산봉 정상에서 시흥리부터 광치기해변까지 펼쳐지는 아름다운 제주 동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4코스 표선 당케포구~남원포구(23km) 해안 코스와 오름, 중산간 코스를 경험할 수 있다. 35년 만에 복원된 가는개 숲길이 인상적이다.
6코스 쇠소깍~외돌개(15km) 서귀포 시내, 이중섭거리와 천지연폭포 위 산책로를 거쳐 가장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는 해안-도심복합 올레.
10코스 화순선주협회사무실~하모해수욕장(14km) 해안 올레 코스.
국토 최남단 산이자 분화구가 있는 송악산을 넘는 것이 특징.
11코스 하모해수욕장~무릉2리 제주 자연생태문화체험골(20km) 근대사와 현대사가 녹아 있는 올레. 알뜨르비행장, 섯알오름, 정마리아 성지 등 아픈 역사를 증언하는 길을 걷게 된다.
12코스 무릉2리 제주 자연생태문화체험골~용수포구(17.6km) 바다에서 오름을 따라 이어지는 아름다운 길이 제주시로 닿는 첫 올레.
TIP 올레 걷기에 대처하는 자세
올레를 걸을 때는 단전호흡을 하듯 천천히 걸으며 주변의 작은 돌 하나하나와 눈길을 마주쳐야 한다. 유명 관광지처럼 안내판이 쇠기둥을 세우고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벽이나 바위에 칠한 파란색 화살표는 순방향, 노란색 화살표는 역방향을 뜻한다. 또 화살표 그릴 자리가 마땅치 않으면 어디엔가 노란색과 파란색 리본을 묶어둔다. 그러니 친절하지 않다고 불평해서도 안 된다. 미리 출발 전에 제주올레 홈페이지(www.jejuolle.org)에 접속해 코스별 약도와 주의사항 등을 숙지하고 가면 좋다. 카메라는 풍경을 담는 역할도 하지만, 찬찬히 피사체를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지참하는 것이 좋겠다. 단 무거운 것보다 가볍게 손 안에 쥘 수 있는 것이 낫다.
박수기정 위에 올라서니 너른 들이 있다. 돌담을 경계로 무밭, 배추밭 등의 경작자가 다채롭다
올레 여행의 마지막을 예고하듯 쓸쓸히 지고 있는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