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취향
한번 시작하면 빠져나올 수 없는 바느질의 매력. 마치 수양하듯 한 땀 한 땀 수놓다 보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온갖 잡생각마저 어느새 잊혀지기 마련이다. 구멍 난 양말, 올 풀린 니트, 헤진 인형에게는 새 생명을 불어 넣고 마음속 깊이 내재되어 있는 나만의 예술적 감성까지 더한다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트워크도 만들어볼 수 있다. 바로 여기, ‘죽음의 바느질 클럽’에서 말이다. 치앙마이식 손바느질을 전파하고 있는 일명 죽.바.클은 옷짓기와 수선, 자수 워크숍을 통해 바느질의 매력을 널리 전파하고 있다.
2016년 태국의 바느질 스승님으로부터 소수민족의 바느질 방식을 전수받은 복태와 한군. 이들은 버리는 것 없이 재단해 옷을 만드는 고산족 만의 지혜가 담긴 옷 짓기부터 소수민족 고유의 자수, 치앙마이식 수선 등 손바느질로 가능한 다양한 영역들을 탐구한다. 또 창조적 의생활, 손쓰는 감각의 이로움을 공유하기 위해 다양한 지역에서 두문불출하며 활발히 워크숍과 전시를 열고 있다. 창의적이고 감각적인 의생활로 안내하는 죽바클의 이야기를 전한다.
두 분을 소개해주세요. 저희는 ‘선과 영’이라는 이름으로 포크 듀오 음악 활동을 하고 있어요. ‘선과 영’은 2022년 10월, 정규 1집 <밤과 낮>을 발매했고요, 그 앨범으로 2023년 제 20회 한국 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음반과 노래를 수상하게 되었어요. ‘선과 영’은 마음을, 세상을, 사람들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느낀 감정과 이야기들을 음악에 담아 전하고자 합니다.
죽음의 바느질 클럽이라 불리는 이름이 참 독특합니다. 어느 날 워크숍에 함께한 참가자 한 분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7시간을 바느질에 몰두하다가 일어나면서 내뱉은 한 마디가 “이거 완전 죽음의 바느질인데요?”였어요. 그 이름이 강렬하게 와닿아 이름 짓게 되었어요. 정말 말 그대로 한번 빠지면 멈출 수가 없어 ‘죽도록’하게 된다 하여 ‘죽음의 바느질 클럽’이기도 하고요. ‘우리는 죽을 때까지 바느질을 멈추지 않는다’는 뜻도 있어요. 그러나 저희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바는, ‘바느질을 통해 마음속 번뇌를 죽이고 새로 태어나자’는 의미가 있어요.
태국의 바느질 스승님으로부터 전수받으셨다고요. 그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우연히 들른 카페 안에 작은 옷 가게가 있었어요. 핸드메이드 아이옷을 판매했는데, 단순하지만 너무 귀여운 옷에 반해 아이 옷을 사서 나오는 길에 지금 우리의 바느질 스승님인 엑 Eak을 만나게 된 거죠. 엑은 야외 카페에 놓인 흔들의자에 앉아 50일 된 아이를 어깨에 걸친 채 바느질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 반해 버렸어요. ‘너무 멋진 삶이다!’하고 말이죠. 그래서 바느질을 알려달라고 했고, 처음에는 거절당했는데 그 카페에서 우연히 자꾸 만나게 되면서 친구가 되었죠. 그렇게 바느질을 배우게 됐어요.
스승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No Serious & Relax’ 그 자체인 분이에요. 웬만해서는 서두르는 법이 없고, 급한 일도 없죠. 그렇지만 매우 부지런한 사람이에요. 늘 여유와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스승님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엔지니어로 전형적인 삶을 살다가 소수민족들의 교육, 인권은 위한 비영리단체에서 일을 하고 환경 운동도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의 방식과 기술을 배우게 되면서 바느질을 시작했다고 해요. 이제는 사라져가는 그들의 바느질 기법과 그 안에 담긴 정신을 기록하고 젊은 세대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어 하세요. 삶으로서의 바느질을 하시는 분이죠. 천상 아티스트이기도 하고요.
치앙마이식 손바느질 만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제가 엑에게 배운 정신은 이러해요. 삐뚤삐뚤해도 괜찮고, 촘촘하지 않아도 되는, 손으로 만든 옷이니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자기만의 바느질로 자유롭게 옷을 짓는 것. 기법은 존재하지만 정확한 순서를 지킬 필요는 없는, 어찌 되었든 옷이 되기만 하면 되는, 휘뚜루마뚜루 정신이에요.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즐거울 만큼 하다가 멈춰도 되는, 그러다 언젠가 옷이 되는 것. 이것을 저희는 ‘치앙마이 정신’이라 불러요.
비닐봉지나 쓰레기봉투에도 바느질을 하는 모습이 굉장히 독특했어요. ‘죽음의 바느질 클럽’은 두 가지 트랙으로 진행되는데요. 복태는 치앙마이식 바느질 기법으로 옷을 짓고, 한군은 수선 작업과 스티칭 작업을 해요. 한군은 수선 작업을 통해 다양한 소재들을 만나다 더욱 다양한 소재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그러다 비닐봉투에까지 바느질을 하게 된 거죠. 한번 사용되고 버려지는 비닐봉투를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비닐봉투를 아름답게 바느질해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서요.
비닐봉지 바느질 작업은 하나의 아트 워크라고 볼 수 있나요? 비닐봉지에 작업을 하다 보니 비질이라고 해서 다 같은 비질은 아니더라고요. 질감, 두께, 색감, 크기 등 너무도 다양하더라고요. 그 소재들을 탐구하며 바느질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며 작업을 확장시켜 나가게 되었어요. 쓸모’가 아닌 ‘작업’ 그 자체에 매료되어 몰두하고 있으니 어떤 관점에서는 아트 워크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바느질을 할 때 영감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손길 가는 대로, 마음 흐르는 대로 작업하시나요? 손길이 가고 마음이 흐르려면 분명 인풋이 있어야 합니다. 그만큼 내 바느질에 대한 확신도 있어야 하고요. 때문에 자연, 풍경, 음악, 영화, 그림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영감을 받습니다. 일상 속에서 듣고 보고 느낀 것들을 자연스럽게 수집하듯 기록하거나 기억해둡니다. 그리고 어느 날 바느질을 통해 어떤 느낌들이 표현되는 것 같아요.
워크숍은 정해진 커리큘럼을 갖고 운영되는 건가요? 저희는 음악을 하고 죽음의 바느질 클럽을 운영하고 있지만 세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자 부부이기도 해요. 그래서 워크숍을 자주 여는 이유는 무엇보다 생활을 영위하기 위함이 가장 커요. 그러나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요청이 있기에 자주 열기도 해요. 워크숍 역시 두 가지 트랙으로 진행되는데요. 한군이 진행하는 수선과 스티치 워크숍 그리고 복태가 진행하는 다양한 옷 만들기 워크숍이 있어요. 수선과 스티치 워크숍은 원 데이로 진행되고, 옷 워크숍은 2회차 워크숍으로 진행돼요. 원피스, 로브, 후드 자켓, 스커트, 바지, 겨울에는 누빔 자켓 등 다양한 옷 만들기 워크숍이 있어 대부분 이어서 워크숍을 수강하는 분들이 많아요. 수선과 스티치는 3시간 동안, 옷은 4시간 동안 진행돼요. 꽤 시간이 걸리죠. 워크숍은 주기적으로 열려고 하고 있고, 모집은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신청받고 있어요.
가장 최근 전시인 바이호미 아틀리에와 함께 한 전시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소개해 주세요. 세 분의 운영진이 운영하고 있는 가방 브랜드 바이호미는 매년 작가를 선정해서 콜라보 전시를 진행하고 있어요. 저희는 작년에 워크숍을 통해 만나게 되었고, 전시 제안을 받게 되었어요. 이번 전시 ‘니들 댄스 Needle Dance’는 바이호미 가방 위를 춤추는 바느질의 춤을 선보이고, 바이호미 가방에 어울리는 치앙마이식 바느질로 만든 옷들을 선보이는 전시에요. 저희로서는 첫 번째 판매 전시이기도 하고요. 저희가 그간 느끼고 배워온 바이브를 전달하기 위해 이번 전시에 사용된 거의 모든 재료들은 모두 치앙마이에서 공수해 왔어요. ‘죽음의 바느질 클럽’ 바느질의 정수를 선보이는 뜻깊은 자리입니다.
앞으로 예정된 전시나 워크숍이 있나요? 다가오는 7월 24일에는 고양시립미술관 아람미술관에서 진행하는 ‘플라스틱 파라다이스’ 그룹전에 참가하게 되었어요. ‘니들 댄스 온 비닐봉투’라는 전시명으로 한국의 비닐봉지 작업을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어요. 비닐봉지에 새겨진 바느질의 아름다움을 선보이고 드러내는 전시에요. 늘 조연의 역할로 (사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스치듯 지나가는 엑스트라 취급을 당하고 있는) 존재하는 비닐봉지를 주연으로 내세워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함으로써 다시금 비닐봉지를 조명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이 전시는 약 3개월간 진행될 예정이에요. 워크숍은 매달 다양하게 열 예정이고요. (인스타그램 @da_jojin_da를 통해 공지합니다). 그리고 10월 5일과 6일에는 망원동에 위치한 ‘스페이스 소다 2022’에서 제2회 치앙마이 페스티벌을 개최해요. 저희 바느질 스승님인 엑을 포함한 치앙마이 수공예 작가 친구들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고, 이들과 함께 죽바클 멤버들이 다양한 수공예품을 선보이는 자리가 될 거예요. 페스티벌인 만큼 디제잉 공연과 맛있는 태국 음식을 준비할 예정이고요.
죽바클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치앙마이 소수민족들의 바느질로부터 비롯된 만큼 그들과 공생할 수 있는 지점을 모색해 보려고 해요. 그들 덕분에 저희들이 바느질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고, 많은 이들에게 전파하게 되었으니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그래서 조금 더 깊게 다양한 소수민족들을 만나 바느질 기법을 배우고, 그들이 만든 수공예품이나 직조 원단들을 한국에 소개하고 싶어요.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바느질의 이로움을 알리고 싶어요. 바느질하는 행위 자체가 주는 이로움이 정말 많거든요. 앞으로 더욱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바느질하며 ‘치앙마이 정신’을 공유하고 싶어요!